나는 만약 이 책의 제목이 ˝딸들에 대하여˝였다면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딸들은 복수형인데, 딸은 단수형이고 외동딸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호기심때문에 첫장을 넘겼다. 지난 19년동안 연습없이 바로 실전에 투입된 부모 노릇에 조금 지쳐 있었고, 잘못 된 점을 성찰하고 다시 적용해서 키워 볼 둘째 아이도 없으니...죄충우돌하다가 끝난 허망한 기분에 사로 잡혀 있었다.
엄마와 딸 그리고 딸의 연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요양보호사인 엄마가 돌보는 환자 젠이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가족관계는 엄마와 딸 뿐이다. 딸의 레즈비언 애인과 딸 그리고 요양보호사와 환자는 가족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은 한 공간에서 거주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시간을 견뎌간다.
어느 날 내 딸이 동성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레즈비언인걸 알았다면? 유교적 인습에 사로잡힌 한국사회에서 그중에서도 동성애를 죄악으로 취급하는 기독교인이라면,,,40일 작정 금식기도에 당장 돌입해야 할 상황이다. 악한 령에 사로 잡힌 딸을 위해 기도의 눈물을 뿌리고, 그동안 시원찮았던 종교생활을 회개하며 무릎을 꿇고 주님의 용서를 받아야 한다. 내가 이 책에 흥미를 느낀 이유 중 하나는 엄마가 교회 권사라는 설정이다. 현재 딸이 처한 상황들....성소수자이면서 대학시간강사,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렵다. 이런 딸의 현실적인 문제를 감춰야 하는 종교생활의 이중성이다. 교회공동체에서 모두가 형제자매이며 가족이라는 허울뿐인 말의 잔치,,,남의 작은 치부도 숱한 가십거리를 생산해 내는 종교집단에서 엄마가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들도 절대 가족이 될 수 없다.
딸보다 꼼꼼하며, 솜씨좋고 착한 딸의 애인....
하지만 초등학교 교사도 포기하면서 오직 딸을 잘 키워보기 위해 헌신한 엄마는 이제 육체노동자가 되어 치매 노인을 돌보며 생계를 이어간다. 누구보다 영민하고 엄마를 잘 따르던 딸, 남들보다 넘치게 배운 딸은 대학교 시간강사지만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엄마는 오직 딸을 위해, 딸만 위해, 딸로 인해...딸의 애인인 레인과 딸에게 모진 말을 쏟아낸다.
보편의 삶에서 멀어져가는 딸을 붙잡기 위해 온힘으로 외친다.
남편이고 아내고 자식이라니. 너희들이 뭘 할 수 있니?
결혼을 할 수 있니? 새끼를 낳을 수 있니? 너희가 하는건 그냥 소꿉장난 같은 가야. 서른이 넘어서까지 소꿉 장난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책 106쪽에서
나는 책을 읽는내내...책을 덮은 후까지도 오로지 엄마의 입장이었다. 딸이 많이 배우기를 그래서 자신의 삶을 멋지게 개척하며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던 엄마가 대체 무엇을 잘못한 것인가? 긴 시간 피아노를 치며 진로 목표를 세운 아들에게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고, 쾌적한 연습실을 대여해줬다. 몸이 약한 아들을 위해 한약을 챙기고, 극성스럽게 먹을 것을 챙겼다.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힘들었지만 훗날 멋진 피아니스트가 되어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비어가는 통장 잔고도 맞벌이 부부로 늘 시간에 쫒기며 사는 일상도 견딜만 했다.
이렇게 키운 아들이 어느 날,,,남자 애인을 데려온다. 책 속 엄마처럼 딸애가 죽어 버렸다면 상실감이, 딸애가 여전히 살아있었다면 배신감에 몸을 떨었을 듯 싶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부당 해고 당한 동료들을 위해 기꺼이 길 위에 투사가 된 딸을 본 엄마의 고통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책 속 딸이 미웠고, 현실 속 아들의 상황도 답이 없었다. 내가 자라면서 가장 듣기 싫었던 말...다 널 위해서야, 너 잘 되라고 그런거야
어느 순간 나도 아들에게 습관처럼 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가 아니라 엄마를 배려하지 못하는 딸에게 너무 화가났다. 책 속 엄마와 딸을 통해 끊임없이 나와 아이를 투영하고 있자니 괴로웠다. 하지만 만고불멸의 진리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것이다.
엄마는 젠을 돌보며 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사이만이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는다. 서로 연민을 느끼고 이해하는 관계 그 안에 신뢰와 사랑이 있다면 가족이다.
레인과 그린, 엄마와 딸, 엄마와 첸....모양은 다르지만 가족이었다.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여러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조금 더 폭넓게 생각하면서 읽지 못해 아쉽지만 나랑 비슷한 엄마를 만나서 위로 받았다. 결과를 기다리는 이 시간들...견뎌가겠다
딸애의 삶을 내 삶으로부터 멀리 던져 버리고
딸애의 삶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져서
아무 상관없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지지와 격려, 응원같은 좋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106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