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리에서 100년의 시간을 인내한 단풍나무가 다시 1년 동안 장인의 손을 거쳐 한 대의 피아노로 태어난다. 세기의 피아니스트 호로비치는 오로지 스타인웨이 피아노에서의 연주만 고집했으며 세계의 유명한 콘서트 홀에는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구비되어 있다.
텅 빈 홀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피아노
하지만 연주자의 손이 닿는 순간 소리와 진동의 울림은 청중을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시대 그리고 쇼팽의 시대로 이동 시킨다. 태초에 인간은 의식주의 충족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동물들처럼 배고픔과 종족 번식의 1차적 욕구를 위해서만 살 수 없는 존재,,,아마 유일무이하게 신과 가장 근접한 존재가 인간이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경하고 정신적 풍요를 추구하는 인간에게 예술은 필연적이다.

클래식과 피아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영화 ‘미션‘에서 원주민들은 문자로 가득찬 성경이나 설교가 아니라 가브리엘 신부의 청아한 오보에 연주에 마음의 문을 연다. 그리고 영화 ‘쇼생크의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가 교도소 방송실 문을 걸어 잠그고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축음기에 올려 놓자 스피커를 통해 교도소 전체에 음악이 전해진다. 수감 생활에 지친 재소자들은 모두 잠시동안 넋을 잃고 모차르트에 빠져든다. 세상의 소리와 변화무쌍한 인간의 감정들을 다듬고 정제하여 음악이 만들어진다. 음악...특히 시대와 언어, 인종을 초월한 힘을 가지고 있는 클래식은 위대하다.

음악적 재능이 정말 있는지 없는지 고민하며 매일 오랜 시간 연습하고, 그래도 실수하면 어쩌나, 제대로 칠 수 있을까? 오그라드는 위를 붙잡고 밤을 지새우고, 자신의 펑범함에 좌절하면서 음악을 떠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음악가의 기분을 알기나 할까? 책 439쪽에서

아이가 취미가 아니라 전문적인 연주자을 길을 가기 위한 첫번째 관문인 음대 입시를 치루고 있다. 1%의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무수한 노력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어린 시절부터 중앙 콩쿨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서울의 유명 예중과 예고를 졸업한 아이들이 차지하고 남은 자리 언저리에 살짝 다리 하나 걸쳐 놓고 불투명한 미래를 고민하겠지...아이가 자랄수록 현실적인 고민이 눈덩이처럼 커져 갔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피아노가 좋다.
나무 상자 속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게 너무 신기하다며 눈을 반짝이던 어린 시절,,열정적으로 연주하는 손열음의 피아노 연주회를 본 후, 아이는 피아니스트가 되어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재능에 대한 갈등과 후회 속에서 몇 번의 고비를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시간...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이 책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우승했던 일본 하마마쓰 콩쿨을 모델로 구성기간 12년, 취재기간 11년 그리고 총 7년동안 집필한 온다 리쿠의 대표작이다.

제 6회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호프만이 추천서를 써 준 유일한 제자 가자마 진, 양봉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떠돌아 다니며 생활하는 가자마 진은 피아노가 없는 피아니스트...누군가에게는 선물이지만 누군가는 그의 재능을 재앙으로 삼을 것이라는 호프만의 예언처럼 가자마 진은 클래식계에 파격을 선보인다. 음악의 신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16살 천재 피아니스트 가자마 진은 콩쿨 데뷔 무대에서 자유분방한 음악 해석과 거침없는 연주 실력으로 관객과 심사위원을 압도한다.

자신을 피아노의 길로 이끌어준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피아노에서 멀어진 천재 피아니스트 소녀 에이덴 아야...
어린 시절 유수한 피아노 콩쿨에서 우승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성장했지만 엄마의 죽음 이후 방향을 잃고 피아노에서 멀어졌다. 소진 증후군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아야가 요시가에 콩쿨을 통해 천재 소녀의 귀환을 알렸다. 한층 더 성숙해진 연주실력으로 사람들의 관심은 집중된다.

줄리어드 음대교수이자 요시가에 콩쿨의 심사위원인 너새니얼이 사사한 마사루...부유한 집안과 이국적인 외모 그리고 뛰어난 연주 실력까지 겸비한 유력한 우승 후보 1순위다. 빠짐없이 다 갖춰져서 오히려 매력이 떨어졌던 인물이다.

내가 가장 주목한 인물은 28살 최고령 참가자 다카시마 아카시다. 온다 리쿠가 아카시라는 인물을 창조하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음악의 신에게 선택을 받은 천재들끼리 경쟁하는 콩쿠르 이야기 정도 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지만 1%의 재능을 선물받지 못한 평범한 연주자들에게는 절망스러운 소설이 될 뻔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할머니 덕분에 피아노를 시작했고,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악기상점 직원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아카시...전문적인 연주자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은 소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아카시라는 인물에게 가장 공감했다. 비록 3명의 참가자에 비해 천부적인 재능은 타고나지 않았지만 무대에 대한 간절함과 피아노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크다.

우리의 삶에 정해진 시기와 때는 없다. 한 집안의 가장 , 한 아이의 아빠, 악기점의 직원...아카시의 꿈을 가로막는 현실적인 장벽도 피아노에 대한 열정으로 극복해 나간다. 2차 예선 진출에 실패한 설정도 아쉽지 않았다. 국제 콩쿠르에서 1차 예선 통과만으로도 다시금 피아니스트의 꿈을 향한 발판이 되었으리라 본다
음악을 향한 3명의 천재 피아니스트들의 대결도 흥미로웠지만 아카시 이야기에 마음이 더 간 이유는 내 아이도 타고 난 재능보다는 좋아하고 꾸준하게 한 길을 걸었다는 점 때문이다.

아아, 정말로 이 세상은 음악으로 가득하다.
문을 여닫는 소리, 홀의 창문을 때리는 바람, 사람들의 발소리,0 대화, 말 하나하나가 감정이라는 음악의 이미지와 함께 발산되어 이 세상을 채운다. - 책 552쪽에서

비록 타고난 천채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쇼팽과 리스트,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는 아들....언젠가는 이 어두운 입시의 터널을 지나서 사람들에게 음악을 선물하는 연주자의 꿈을 이루게 될 날이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음악을 글로 자세하게 묘사한 작가의 역량도 대단했지만,
역시 음악은 귀로 직접 들을 때가 좋다. 이번 가을~ 이 책 덕분에 클래식이 더욱 친근해졌다. 2주간의 짧은 국제 콩쿠르를 배경으로 700쪽에 가까운 소설을 쓴 작가의 역량에 놀랐고, 1등이 누가될까를 고민하며 읽는 즐거움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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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11-01 0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착한시경 2017-11-01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저희 딸이 아니라 아들이랍니다^^
 

나는 만약 이 책의 제목이 ˝딸들에 대하여˝였다면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딸들은 복수형인데, 딸은 단수형이고 외동딸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호기심때문에 첫장을 넘겼다. 지난 19년동안 연습없이 바로 실전에 투입된 부모 노릇에 조금 지쳐 있었고, 잘못 된 점을 성찰하고 다시 적용해서 키워 볼 둘째 아이도 없으니...죄충우돌하다가 끝난 허망한 기분에 사로 잡혀 있었다.
엄마와 딸 그리고 딸의 연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요양보호사인 엄마가 돌보는 환자 젠이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가족관계는 엄마와 딸 뿐이다. 딸의 레즈비언 애인과 딸 그리고 요양보호사와 환자는 가족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은 한 공간에서 거주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시간을 견뎌간다.

어느 날 내 딸이 동성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레즈비언인걸 알았다면? 유교적 인습에 사로잡힌 한국사회에서 그중에서도 동성애를 죄악으로 취급하는 기독교인이라면,,,40일 작정 금식기도에 당장 돌입해야 할 상황이다. 악한 령에 사로 잡힌 딸을 위해 기도의 눈물을 뿌리고, 그동안 시원찮았던 종교생활을 회개하며 무릎을 꿇고 주님의 용서를 받아야 한다. 내가 이 책에 흥미를 느낀 이유 중 하나는 엄마가 교회 권사라는 설정이다. 현재 딸이 처한 상황들....성소수자이면서 대학시간강사,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렵다. 이런 딸의 현실적인 문제를 감춰야 하는 종교생활의 이중성이다. 교회공동체에서 모두가 형제자매이며 가족이라는 허울뿐인 말의 잔치,,,남의 작은 치부도 숱한 가십거리를 생산해 내는 종교집단에서 엄마가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들도 절대 가족이 될 수 없다.

딸보다 꼼꼼하며, 솜씨좋고 착한 딸의 애인....
하지만 초등학교 교사도 포기하면서 오직 딸을 잘 키워보기 위해 헌신한 엄마는 이제 육체노동자가 되어 치매 노인을 돌보며 생계를 이어간다. 누구보다 영민하고 엄마를 잘 따르던 딸, 남들보다 넘치게 배운 딸은 대학교 시간강사지만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엄마는 오직 딸을 위해, 딸만 위해, 딸로 인해...딸의 애인인 레인과 딸에게 모진 말을 쏟아낸다.
보편의 삶에서 멀어져가는 딸을 붙잡기 위해 온힘으로 외친다.

남편이고 아내고 자식이라니. 너희들이 뭘 할 수 있니?
결혼을 할 수 있니? 새끼를 낳을 수 있니? 너희가 하는건 그냥 소꿉장난 같은 가야. 서른이 넘어서까지 소꿉 장난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책 106쪽에서

나는 책을 읽는내내...책을 덮은 후까지도 오로지 엄마의 입장이었다. 딸이 많이 배우기를 그래서 자신의 삶을 멋지게 개척하며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던 엄마가 대체 무엇을 잘못한 것인가? 긴 시간 피아노를 치며 진로 목표를 세운 아들에게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고, 쾌적한 연습실을 대여해줬다. 몸이 약한 아들을 위해 한약을 챙기고, 극성스럽게 먹을 것을 챙겼다.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힘들었지만 훗날 멋진 피아니스트가 되어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비어가는 통장 잔고도 맞벌이 부부로 늘 시간에 쫒기며 사는 일상도 견딜만 했다.
이렇게 키운 아들이 어느 날,,,남자 애인을 데려온다. 책 속 엄마처럼 딸애가 죽어 버렸다면 상실감이, 딸애가 여전히 살아있었다면 배신감에 몸을 떨었을 듯 싶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부당 해고 당한 동료들을 위해 기꺼이 길 위에 투사가 된 딸을 본 엄마의 고통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책 속 딸이 미웠고, 현실 속 아들의 상황도 답이 없었다. 내가 자라면서 가장 듣기 싫었던 말...다 널 위해서야, 너 잘 되라고 그런거야
어느 순간 나도 아들에게 습관처럼 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가 아니라 엄마를 배려하지 못하는 딸에게 너무 화가났다. 책 속 엄마와 딸을 통해 끊임없이 나와 아이를 투영하고 있자니 괴로웠다. 하지만 만고불멸의 진리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것이다.
엄마는 젠을 돌보며 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사이만이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는다. 서로 연민을 느끼고 이해하는 관계 그 안에 신뢰와 사랑이 있다면 가족이다.
레인과 그린, 엄마와 딸, 엄마와 첸....모양은 다르지만 가족이었다.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여러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조금 더 폭넓게 생각하면서 읽지 못해 아쉽지만 나랑 비슷한 엄마를 만나서 위로 받았다. 결과를 기다리는 이 시간들...견뎌가겠다

딸애의 삶을 내 삶으로부터 멀리 던져 버리고
딸애의 삶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져서
아무 상관없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지지와 격려, 응원같은 좋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106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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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D 2017-10-27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로 태어나서 아직 ‘엄마‘가 되진 못해 관심밖에 있던 책이었어요. 첨부하신 사진이 예뻐 읽기 시작한 리뷰었는데 당장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좋은리뷰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착한시경 2017-10-27 15:39   좋아요 0 | URL
깊어가는 가을... 꼭 한번 읽어보세요
리제님은 딸의 입장에서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네요
전 정말 엄마 마음으로 읽다보니 울컥울컥했어요ㅠ.ㅠ
엄마 마음을 몰라주는 딸을 원망하면서요~
 
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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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계속 생각했다... 나라면?
보편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아주길 바랐던 딸이 조금은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런 딸을 나는 이해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딸을 포기하고 싶다가도 속이 타서 다시 딸과 싸우기를 반복하겠지.... 갈등의 반복으로 서로 엄청난 상처만 입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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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야단법석,,,,고3 아들의 정신 없었던 수시 일정이 거의 마무리되어 간다. 경부선 타고 서울 톨게이트 지나가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기본 50대 1이요,, 60대 1의 경쟁률을 보며 망연자실했던 가슴을 진정 시키고 도시락까지 싸 가면서 수시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부족한 아들의 실력을 엄마의 지극 정성으로 채워볼 요량으로~ 신을 한번 감동시켜 운명의 지침까지 돌려 보겠다는 열혈엄마의 의지로 버텼다. 아니 그냥 견뎠다.

공부도 마찬가지겠지만 입시 당일 컨디션과 조별 배정 시간, 실기 순서 추첨까지 음대 입시내내 살얼음판 딛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긴장때문에 첫 음을 놓치면, 피아노 앞에 줄지어 앉은 10명의 교수님들이 뿜어내는 포스 앞에 주눅이 들어 박자를 제대로 못 잡고 들어가면 혹은 덜덜 떨리는 다리가 주책없이 페달을 잘못 눌렀다면...첫음 시작과 동시에 딱 1분 30초만에 끝나는 입시가 주는 중압감을 누가 알까?
입실한 이후 아이와는 완전 단절이다. 아이가 나올 때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바라 본 캠퍼스...입시생 부모에게는 그곳이 유토피아다. 캠퍼스를 오가는 대학생들은 대체 어떻게 그 지옥같은 경쟁을 뚫고 그 자리에 서게 된 걸까? 애써 잡념을 밀어내며 그저 간절하게 애타는 마음으로 실수가 없기를 그리고 후회없이 잘 표현하고 내려오길 기도했다.

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린다.
오랫만에 몇 권의 책을 구입했다. 집 뒷편 단풍나무 가로수길을 걷다보면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아담한 카페가 있다. 깊어가는 가을 그 카페에 앉아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보겠다.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첫번째 관문 앞에 선 아이에게 온 기운을 몰아주고 싶다. 책을 읽기 위해 찾은 카페에서 나는 오직 아이의 생각만 하다 오겠지....리베카 솔닛에게는 미안하지만 당분간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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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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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혼자 키득 키득거리면서 읽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찡해진다.
이기호의 가족 소설 ‘세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를 읽었다.

까칠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마음 따뜻한 남편과 단단한 차돌처럼 야물딱진 아내 그리고 순진무구~천진난만한 아들들, 어느 날 엄마 뱃 속에 코코몽으로 찾아온 막내딸,,, 이렇게 다섯 가족의 일상 이야기다.
이런 가족 구성원들이 있다면 날마다 생길 수 있는 평범한 에피소드들인데 재미있다. 그리고 그 가족을 둘러 싼 부모님과 이웃 이야기가 주는 뭉쿨함도 있다.

공감하며 읽었고, 그리웠다.
나 역시 스물 다섯 살때부터 새로운 가족 구성원들을 만나서 줄곧 함께 살고 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일도 아니였는데,,, 찌질하고 사소한 일에 참 목숨 걸었다.
예를 들어, 바뀌지 않는 식성이나 tv 시청 취향, 타고난 본성....등등!
하나도 안 바뀌는 일에 힘 빼며 살았다. 때로는 아이를 함께 키우면서 운명공동체로서 동질감을 느꼈다. ‘가족‘이 전부는 아닌데,,,또 전부인거 같기도 하고~퍽 아이러니하다.
우리 강아지 맑음이를 포함해서 이렇게 넷이 함께 보낼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아침에 헤어지고 밤이면 다시 모인다.
그리고 서로 맑음이 밥 주라고 싸우고, 목욕탕 쓰는 순서 정하는 일로목소리를 높인다.
내년 이 맘때 쯤이면....
아들의 간식을 호시탐탐 노리는 중년의 남편도~
제왕적 권위를 누리며 막강 파워를 자랑하던 아들도~
잔소리 대마왕,,,지 멋대로 살아야 하는 나도~
다 그리워지겠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그렇다.
공기처럼 늘 충분히 있을 때는 고마움을 모른다. 부족해야지,,아쉽고 절실하다. 늦은 밤이라도 함께 모일 수 있는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되니 울컥 서글퍼진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던 중....
학원에 다니는 친구의 아빠가 긴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직은 어린~우리 아이들이 아빠의 상실이 주는 아픔을 어떻게 이겨낼까? 아마도 남겨진 가족들과 아빠를 기억하면서 상처를 달랠 수 있으리라,,,
작가 이기호는 세월호 이후로 가족 이야기 연재를 중단했다.. 가족을 잃은 자들의 슬픔을 생각하면 자기 가족 이야기를 더 이상할 수 없다고 했다. 작가의 말처럼 가족과 함께 하는 건 기쁜 일은 더 기뻐지고, 슬픈 일은 더 슬퍼지는 것이다.
뭐야~ 이 작가는 에필로그까지 사람을 울컥하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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