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마리 베이비 (악마의 씨)
로만 폴란스키 감독, 미아 패로우 외 출연 / 필림21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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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Rosemary's Baby

  감독 - 로만 폴란스키

  출연 - 미아 패로우, 존 카사베츠, 루스 고든, 시드니 블랙메어

  원작 - 아이라 레빈의 ‘로즈마리의 아기 Rosemary's Baby’



  예전에는 ‘악마의 씨’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어서, 무척이나 헷갈리게 했던 영화이다. 오래 전에 ‘악마의 씨, Demon Seed’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어서, 두 개가 혼동되었다. 한글 제목은 둘 다 똑같이 ‘악마의 씨’였으니 말이다. 다만 전자는 악마 숭배와 연관이 있는 영화였고, 후자는 고도로 발달한 컴퓨터의 폭주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두 영화 다 ‘아이라 레빈’과 ‘딘 R 쿤츠’라는 탁월한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고, 아기를 낳는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했다.


  로즈마리는 남편과 함께 맨해튼의 아파트에 입주한다. 그녀는 전업주부이고, 남편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이다. 그곳에 사는 다소 과잉 간섭을 하는 노부부를 비롯해 아파트 주민들과 친분을 쌓아가는 로즈마리. 그러다가 그녀가 세탁실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 여성이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후 다른 사람이 맡았던 주요 배역이 남편에게 돌아오고, 남편은 노부부의 말이라면 거의 맹신하다시피 한다.


  이상한 괴물에게 강간을 당하는 악몽을 꾸고 며칠 후,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된다. 하지만 노부부와 남편의 강요로 그들이 소개한 산부인과에 가게 되고, 그녀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를 걱정하던 지인까지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데, 로즈마리는 그가 남긴 책에서 섬뜩한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노부부가 악마를 숭배하는 집단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아, 예전에는 그냥 지루하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다시 보니까 이건 뭐 그냥 후덜덜했다. 연출도 그렇고 배우의 연기도 그렇고 분위기까지. 몽땅 다 그냥 닥치고 찬양해야할 것 같았다.


  이건 어쩌면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결론을 알고 보니까 배우들의 대사나 행동이 무의미해보이지 않았다. 음, 이걸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데……. 하지만 이 영화는 나름 유명해서 상당수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써보겠다.


  로즈마리가 임신한 이후, 남편은 그녀를 예전처럼 잘 만지지 않는다. 뽀뽀를 할 때도 예전처럼 입에다 해주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그녀와 눈을 잘 마주치지도 않고. 일종의 죄책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출세를 위해 부인을 팔아버린 죄책감. 영화를 보면서 욕만 나왔다. 이런 나쁜 놈! 찢어죽일 놈!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패고 이십대 더 때려줄 놈! 하아, 몇 년 동안 할 욕이 두 시간을 약간 넘는 상영 시간에 다 나올 정도였다. 그 남자 욕은 밤이 새도 모자를 것 같으니, 여기서 그만하고 다른 부분으로 넘어가겠다.


  이 영화의 연출이 섬세하다는 걸 느낀 것은, 로즈마리가 아기 울음소리를 따라서 비밀통로로 이어진 방에 왔을 때이다. 거기서 남편은 은근슬쩍 그녀의 눈을 피해 자리를 이동한다. 당연하다. 아기가 죽었다고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으니까. 근데 그게 화면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구도에서도 그런 연기를 하고 있었다. 감독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정성이 느껴졌다.


  게다가 로즈마리가 임신 후 점점 말라가는 과정 역시 잘 다루고 있다. 물론 머리와 화장빨인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괜찮아보였던 그녀의 얼굴이 점점 변해서 짙은 다크서클에 퀭하니 쑥 들어간 눈에다가 홀쭉한 볼이 되고, 그러면서 그녀의 예민함과 불안감이 증가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까지 불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거기에 다른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나 행동 하나 놓칠 게 없었다. 어쩌면 이건 내가 너무 감명을 받아서 오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나 뻔히 아는 진행을 하면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한다면, 그건 진짜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힌트를 한 치의 오차가 없이, 관객들이 감독의 의도에 맞게 생각하도록 배치를 했다면, 그건 칭찬을 넘어서 극찬을 해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간섭이 심한 주책바가지 노부부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힌트가 모이면서 그들의 집착이 공포로 다가오는 과정은 소름끼쳤다. 나중에는 그 노부인의 수다스런 입을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 아, 난 원래 경로사상이 투철한 사람이었는데, 동네 할머니할아버지들에게 인사 잘하고 다니는 그런 사람인데.


  그렇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무서운 것이다. 실체를 모르는 막연함에서 점점 구체화되는 공포가, 겉으로 보기엔 너무도 평범한데 실상은 너무도 다른 가족과 이웃이, 안전하다 믿었지만 배신과 음모의 장소가 되어버린 집이라는 공간이, 이 세상은 불신과 악이 지배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영화는 잔잔하지만 오싹하기만 하다.


  꼭 악마주의가 아니라고 해도 사이비 종교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존재하며, 가족이라도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이웃끼리 다툼이 살인으로 번지는 일도 종종 올라오고,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는 말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때보다 지금이 더 각박하고 무서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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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2disc) - 일반판
이규만 감독, 김명민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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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이규만

  출연 - 김명민, 유준상, 김태우, 정유석



  한 시간이 넘어가니 몸이 비비 꼬였고, 2시간 가까이 되니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난 아직도 영화 ‘타이타닉’과 ‘반지의 제왕’ 그리고 ‘킹콩’의 3시간 남짓한 고문 시간, 아니 상영 시간을 잊을 수 없다. 얼마나 지루하고 짜증이 나던지, 킹콩이 여주인공과 공원에서 나름 종족을 초월한 로맨틱한 연애질을 하는 것을 보고 '빨리 죽어!'라고 중얼거렸고, 타이타닉은 '왜 빨리 안 가라앉지?' 라며 시계만 볼 정도였다.


  그런 나에게 이 영화의 상영 시간 역시 고문이었다. 보면서 '빨리 죽일 놈은 죽이고 끝내라.'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이건 빨리 넘어가도 되는 부분이고, 여긴 설명이 부족하고 어쩌고저쩌고 중얼거리면서 보았다. 그래도 집에서 보았기에, 중간에 멈춰두고 딴 짓을 할 수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래, 이건 뭐 내 지랄 맞은 성격의 문제일 것이다. 모든 사건이 45분 안에 다 해결을 봐야하는 초스피디한 미드만 보았더니, 그런 것에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영화는 나쁘지도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그냥 유준상은 미친 놈 같았고, 김명민은 잘 울었고, 김태우는 매번 그런 분위기의 역만 맡는 것 같았고, 정유석은 존재감이 없었으며, 김유미는 예뻤다 정도?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범인이 누구라는 게 너무 일찍 밝혀졌다는 것이다. 아, 진짜 이건 너무했다. 세상에나 반도 지나기 전에 범인이 누구라는 것이 뻔히 보이다니. 어쩌면 그래서 지루하고 짜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처음에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범인으로 몰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분위기로 몰아가면, 아마 저 사람이 범인이구만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짜 그랬었다. 이런, 제길! 미스터리 스릴러의 기본은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런 아슬아슬한 분위기이건만! 이 영화, 후반에 가면서는 눈에 띄게 그 힘을 잃었다.


  범인이 주절거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눈앞에 둔 복수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아니 죽이려면 그냥 죽이지 왜 주절거리다가 반격을 당해? 바보 아냐?


  게다가 극 후반에 등장한 '봐, 불쌍하지? 그렇지? 그러니까 범인에게 동정심을 좀 줘봐!' 라는 감독의 의도가 분명히 보이는 편집은……. 동정심보다는 '그래서 어쩔? 그래봤자 미친놈은 미친놈이잖아?' 이라는 반문만 나올 뿐이었다. 차라리 중간에 범인이 과거의 기억 때문에 고통 받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여줬더라면 조금은 불쌍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사실 중간에 쫌 보여주긴 하는데, 고통 받는 모습이라기보다는 미친 짓하는 걸로만 보였었다. 


  극 중에서 최면 의사와 마취 의사는 처음부터 미묘한 관계로 나온다. 술김에 벌인 최면 놀이 때문이었다. 마취 의사가 벌칙으로 최면에 걸리고, 그 이후 둘 사이에는 뭔가 알 수 없는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그렇다고 BL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나중에 최면 의사가 말하길, 마취 의사가 문제의 소년일 수 있다고 넌지시 언급한다. 주인공은 그의 말을 믿고, 마취 의사가 범인이라 단정 짓고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내가 범인이라면 말이다. 나에게 최면을 걸었던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그가 뭔가 달라졌다. 내가 뭔가 이상한 것을 말했을까? 내 비밀을 털어놓았나? 이런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둘 사이가 껄끄러웠다고 영화에서는 분명히 밝혔다. 


  그러면 내가 살인을 하려고 하는데, 제일 먼저 죽여야 할 존재가 누굴까? 내가 복수할 상대? 아니다. 내 비밀을 알고 있는, 그러면서 믿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니까 마취 의사가 범인이라면, 최면 의사를 제일 먼저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반전은, 후우……. 이 부분만 어떻게 잘 했어도 훨씬 더 재미있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이 부분이 제일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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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 고전의 재창조
김기영 감독, 김진규 외 출연 / 덕슨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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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김기영

  출연 - 김진규, 주증녀, 이은심, 엄앵란, 안성기


  포스터를 보자마자 뭔가 스릴러 같다는 기운이 느껴졌다. 거기다 제목은 ‘하녀’! 오오, 설마 이것은 하녀와 주인님 그리고 주인마님의 삼각관계! 잠깐만 그러면 안성기씨는? 엄앵란씨는? 그러면 5각 관계? 설마 1960년대, 그것도 한국에서 그런 구도가? 순간 당황했다. 이런 앞서나가는 영화라니! 그렇지만 실망스럽게도 안성기씨는 통통한 볼을 가진 주인집의 귀여운 어린 아들로 나온다.


  공장에서 여직원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피아노 레슨이 직업인 선생님. 병약한 부인, 다리가 불편한 딸 그리고 개구쟁이 아들. 이 네 식구가 사는 집에 하녀가 하나 들어온다. 공장에서 추천을 받은 여자로, 몸이 아픈 부인을 대신해서 집안일을 하기 위해 고용한 것이다. 선생님은 무척이나 인기가 많은 남자이다. 공장의 여직원들에게서는 인기 만점으로, 엄앵란도 그를 흠모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그녀가 하녀로 추천한 사람이 바로 이은심.


  이미 자신에게 러브레터를 보낸 여직원을 퇴사하게 한 전적이 있는 남주인공. 어느 날 그 여직원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괴로워하다가, 하녀인 이은심과 그만 관계를 갖는다. 그것도 하필 비 오는 날에. 그리고 그 날 이후, 그녀는 그를 ‘여보’ 라고 부르며 부인 행세를 한다. 설상가상으로 남주인공의 아기를 가졌다는 충격적인 고백까지. 그 때부터 적대감과 살기를 품은 사람들의 묘한 동거가 시작되는데…….


  영화 내내 나오는 곳은 주인공의 집이다. 1층은 부인의 공간이고 2층은 하녀의 공간,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것은 계단과 피아노 소리였다. 특히 계단은 의미심장한 곳이었다. 이 집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곳이 바로 계단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양립할 수 없는 두 세계를 보여주는 1층과 2층의 유일한 통로이다. 양립할 수 없었기에 사고가 생기는 것일까?


  보는 내내 부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식을 위해서라지만, 그녀의 행동은 비굴할 정도였다. ‘머리끄덩이라도 잡고 싸워야지, 이 아줌마야! 한복 곱게 차려입고 재봉질이나 하고 있을 때야? 교양 예의범절 따위는 내팽개치라고! 이런 상황에서 고고해봤자 무슨 소용이야!’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뭐, 1960년대니까 지금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여자도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공감했다. 이혼하고 나면 애들과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니, 남편이 첩질을 하건 하녀가 주인마님 행세를 하건 꾹 참아야 하니 말이다. 


  남주인공도 뭐. 이런 스토리의 영화에서는 당연히 욕을 먹기 마련이다. 부인이 아파서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나? 그래서 젊은 여자가 옷 훌렁 벗고 달려드니까 아주 그냥…….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해놓고는, 일처리도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이 참으로 한심했다. 그러니까 사고치기 전에 생각을 다시 해봤어야지. 할 때는 좋았겠지. 욕만 나왔다.


  하녀는 그냥 무서웠다. 눈만 뜨고 있어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가 진정으로 그를 사랑했는지, 아니면 후처자리라도 꿰차서 팔자 고치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하룻밤 꿈으로 끝내고 싶었는데, 남자 하는 꼬락서니가 괘씸해서 더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애들만 불쌍했다. 특히 어린 아들.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예전 영화를 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목소리 톤이 참으로 낯설다. 그래서 진지하게 몰입해서 봐야하는 그런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픽'하고 나올 때가 있어서 참으로 난감하다. 이 영화도 그랬다. 아직 내공이 모자란 듯하다.영화가 좀 길었다. 앞부분과 중간에 조금씩 압축해도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살포시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좀……. 이건 뭐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ps. 메이드라는 존재에 대해 이상한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으로 보는 그런 베이글녀에 앞치마한 메이드가 아니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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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
린 램지 감독, 틸다 스윈튼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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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We Need to Talk About Kevin

  감독 - 린 램지

  출연 - 틸다 스윈튼, 에즈라 밀러, 존 C. 라일리, 시옵한 폴론




  보는 내내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자리가 불편한 것도, 뭘 잘못 먹은 것도, 몸이 안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마음 한구석이 쿡쿡 찔리는 것 같고, 얹힌 기분이었다.


  케빈의 거친 생각과 엄마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때문이 아니다. 케빈과 엄마의 생활이 마치 살얼음판을 조심스레 걷고 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그런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너무도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의식하는 엄마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왜 그녀가 그런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봐야하는지, 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지 하나씩 설명해준다. 처음에 볼 때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느라 좀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꽤나 잘 나가는 여행가였다가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덜컥 임신을 한 그녀. 그렇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그녀가 원했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모든 것에 서툴렀다. 아이를 돌보는 것도, 기르는 것도, 아이와 대화를 하는 것도, 아이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것도 다 그녀는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 나름대로 뭔가 하지만, 지켜보는 내 눈에는 미흡하기만 했다.


  어떻게 아기 우는 소리가 듣기 싫다고, 공사 현장에 유모차를 끌고 갈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공사 소리에 아들의 울음소리가 안 들리자 만족해하는 그녀를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빠는 무조건적으로 아들을 사랑한다. 집을 자주 비우는 직업이라, 그 미안한 마음에 아들에게 물질적으로 보상하는 것이 제일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쁜 종자’의 꼬마 아가씨도 영악했지만, 이 영화의 케빈은 잔인할 정도로 영악했다. 엄마 앞에서는 온갖 성질을 다 부리지만, 아빠 앞에서는 너무도 착한 아들 행세를 한다. 이건 사랑과 신뢰를 주고받는 엄마와 아들이 아니라,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그런 관계였다.


  영화는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상할 정도의 힌트는 준다. 어린 여동생이 어떻게 다쳤는지, 그 현장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케빈이 평소에 활을 잘 갖고 놀고, 제대로 관리를 안 했다고 혼나는 걸 봐서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또한 케빈이 학교에서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는다. 추측을 할 뿐이다. 그런데 그게 더 끔찍하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케빈이 그런 짓을 저지르게 된 것이 엄마의 책임이라고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다. 만약에 그녀가 아들이 아기일 때부터 조금만 더 따뜻하게 대했다면, 모자 관계가 그 지경이 되었을 까라고 추측하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그녀는 현재 아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속죄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웃는 것도 허용이 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케빈이 주인공이 아니다. 그의 엄마가 주인공이다. 그래서 왜 그가 그런 짓을 저지르기로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진짜 태어나면서부터 사이코패스라서 그럴 수도 있고, 세상에 불만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거나 애인을 빼앗겼다거나 등등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걸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엄마가 아들을 그렇게 키웠다고 비난하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는, 나도 그랬으니까. 저따위로 키우니까 애가 그렇게 크지. 어린 딸에게 사랑과 따뜻함이 담긴 눈빛을 주지만, 아들의 시선은 피하는 엄마. 애가 비뚤어지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자란 애들이 다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 케빈과 비슷한 애들이 자라고 있을 지도 모른다.


  모자가 진지하고 애정이 넘치는 포옹을 한 건 영화 마지막에서였다. 그제야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제대로 바라보았다. 모든 일이 다 끝난 뒤에야 둘은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엄마는 아들의 방에 들어가 다른 엄마들처럼 청소를 해주었고, 아들은 엄마의 질문에 냉소적이지 않은 진심이 담긴 대답을 했다.


  너무나도 오래 걸린 화해, 아니 이해의 시간이었다. 두 사람의 격한 포옹이 훈훈하지만, 그 와중에 희생자가 된 많은 사람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엄마역을 맡은 배우와 케빈 역을 맡은 배우 두 사람 다 진짜로 배역에 잘 어울렸다. 케빈 역을 맡은 배우는 패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고, 엄마 역을 맡은 배우는 보는 내가 안쓰러울 정도로 불안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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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정범식 감독, 김보경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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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정범식, 정식

  출연 - 김보경, 김태우, 진구, 이동규



  아, 어쩌면 이렇게 슬프고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일까!


 기담을 다 본 뒤에 느낀 감상이었다. 호러라고 해서 봤건만, 이 영화 알고 보니 러브 스토리였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 


  물론 무섭고 놀라운 장면도 있었고, 가슴이 약간은 서늘해지는 내용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분명히 호러였다. 그러나 영상은 아름다웠고, 배경에 깔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 서술과 묘사는 무심코 이 영화가 호러 장르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3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영화는, 각각의 이야기에 다른 매력을 부여했다. 그 개성을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각각의 매력을 뽑아보자면, 첫 에피소드는 ‘영상’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딱 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호러 영화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는 잔잔하고 화면은 평온했다. 그 중에서 특히 검색을 해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방 안에서 두 남녀가 마주보고 앉아 있는 장면은 그야말로 아름답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두 번째 ‘호러’였다. 3개의 이야기 중에서 제일 호러적인 면이 강했다. 교통사고에서 혼자 살아남은 어린 소녀. 그녀 앞에 나타나는 엄마와 새아빠의 일그러진 모습들. 특히 엄마 귀신은 진짜 무서웠다. 게다가 어린 소녀를 연기한 아역 배우의 연기도 무척이나 실감났다. 


  마지막은 ‘반전’, 그러니까 스토리였다. 반전에 반전을 주던 마지막 부분. 으음, 김태우씨가 의외로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아, 그렇구나. 그런 거였구나. 마지막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쩐지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눈이 시리도록 밝게 빛나는 빛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차갑다는 기분이 들었던 에피소드였다.


  그동안 하이틴 슬래셔나 묻지마 살인물 내지는 좀비물만 보았는데,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 영화였다. 그렇지만 역시 뭔가 부족하다는 인상이었다. 그건 분명 지금까지 보아왔던 내 스타일의 영화가 아니었던 낯섦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어쩌면 너무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두 번째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이게 호러 영화인지 드라마인지 헷갈릴 정도로 잔잔했다. 물론 그러다가 소용돌이가 몰아치듯이 후다닥 이끌어가는 영화도 있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잔잔하면 잔잔한 대로, 평온하면 평온한 대로 그렇게 흘러갔다. 그래서 어딘지 싱겁다는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골라먹는 맛이 3개나 있으면 그 중에 하나는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니, 이 영화도 그런 의미로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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