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김태용 외 감독, 이영진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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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민규동, 김태용

출연 - 박예진, 이영진, 김민선, 공효진



여학교를 다니다보면, 묘한 분위기를 가진 아이들이 있다.


키도 훤칠하니 크고, 중성적인 매력을 가진 그런 아이들. 그래서 자세히 보면 그런 애들을 둘러싼 아이들 간의 묘한 신경전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런 아이와 친하다는 것이 일종의 자랑거리나 과시, 그런 것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또 은근히 성숙미를 풍기는 아이들도 있다. 여성스럽고 차분하니 영락없이 여자구나, 큰언니구나 하는 그런 느낌을 주는, 몸매도 어른스럽고, 성격도 하는 행동도 다른 학생들과는 뭔가 묘한 인상을 주는 그런 아이들 .


그리고 패거리라고 해야 하나 소집단 위주로 뭉쳐서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노는 애들이 있다. 아무리 같은 반이라지만, 자기 그룹 외의 다른 아이들에게는 약간 배타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면을 보이기도 한다. 만약 그게 다른 반이면 뭐…….


그래서 아이들끼리 싸운다거나 아니면 누군가 그룹 외의 다른 아이와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생기면, 세상이 무너진 듯이 슬퍼하는 경우도 있다. 관찰하는 재미가 있긴 하다. 어떤 의미로는.



이 영화에서도 그런 미묘한 감정의 변화들이 잘 드러나 있다.


중간에 김민선이 이영진에게 관심을 보이자, 김민선의 친구가 너 갑자기 왜 우리랑 안 놀고 그런 애를 신경 쓰냐며 마구 화를 내는 부분도 그렇고, 박예진이 자기 반이 아닌 다른 반을 들락거리자, 그 반의 아이들이 왜 남의 반 애가 와서 설치냐는 듯 한 눈으로 보는 것도 그렇다.


여고 괴담이 나오기 전 세대 어쩌면 그 후 세대들도 그렇겠지만, 집보다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오죽했으면 야간 자율 학습(이라고 쓰고 타율 학습이라고 읽는다)이 끝나고 집에 갈 때, '집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내지는 '좀 있다 만나자.' 라는 인사를 할 정도였을까.


집은 그냥 잠자는 곳이었다. 가족보다는 같은 반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그들이 가깝게 느껴지고 의지하게 되고 그런 것이다. 하루 종일 거의 붙어 다니니까, 속마음도 털어놓고 등등.


그래서 박예진이 이영진에게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낀 것 같다. 친구로 좋아한다는 감정을 넘어서서 말이다. 특히 이영진이 학교에 꼭 있는 훤칠하게 키가 큰 중성적인 아이였으니까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그녀의 애정이 부담스러웠던 이영진이 결별을 선언하자, 널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고 매달렸을지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랑과 절망을 안고, 박예진은 자살을 한다.


사랑하는 그 애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데, 그 애가 보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뭘 해야 할까? 그 애 앞에서 사라져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좀 어리석긴 하지만, 그 상황에서 다른 무엇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자신의 전부이자 우주가 돌아가는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존재인데.



2편의 귀신은 무섭다기보다는 애틋하고 슬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저세상으로 가기 전에, 자신이 머물렀던 학교를 돌아보는 그런 분위기로, 죽어도 떠나기 싫은 사람을 두고 마지막으로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느껴지는 귀신이었다.


음, 사실 아주 친한 친구와 결별을 한다고 해도, 시간은 흘러가고, 우주는 여전히 돌아가고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비록 내 자신의 세상이, 내 마음 속의 우주가 파괴될지라도 말이다.


하긴 내가 죽어도 지구는 움직이고 우주는 팽창을 거듭하고, 어느 별인가는 태어나고 소멸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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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괴담
박기형 감독, 최강희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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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박기형

주연 - 이미연, 김규리, 박진희, 최강희



  내가 다닌 여자 고등학교에는 괴담이 있었다.


  깊은 밤, 학교 재단 창립자의 초상화가 걸린 중앙 복도에 서서 그림을 마주보면 눈이 움직인다거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 밑에 시체가 묻혀 있다는 그런 종류였다. 시체 얘기는 그 사람이 일제 강점기 때 열성적인 친일파로 자기 제자들을 종군 위안부로 보낸 전적이 있다는 말과 결합하여 그럴듯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내가 1학년 때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아이의 혼이, 그 날 이후 밤만 되면 학교 안을 헤매고 다닌다는 그런 얘기도 있었다. 빛이 비추는 것을 그 유령이라고 착각하여 -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르지만 - 심야 자율학습을 하고 돌아가던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건 소문일 뿐이었다. 그냥 하품이 나는 늦은 시간의 타율적 자율 학습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아이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였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따로 있었다.


  성적에 따라 아이들을 다르게 대우하는 선생들의 태도.

  몇 명의 남자 선생들이 선생이라는 직위를 이용해서 여학생들에게 행했던, 일련의 수치심을 느끼게 하던 행동들. 지금 생각하면 명백한 성희롱이다. 영화에서 나온 건 그나마 무난한 편?


  지금이야 교권이 바닥을 뚫고 내려가서 그런 일이 있으면 당장 난리가 나겠지만, 십년도 전인, 내가 학교 다닐 적에는 선생의 권위란 실로 무시무시했다. 반항이라고는 꿈도 못 꾸어볼 일이다. 학교에서 부모님을 부르면, 대부분의 부모님들 반응은 '네가 뭔가 잘못했으니까 선생님이 그러시지.'였으니까.


  학생들은 약자였다. 선생이 부모를 불러서 돈을 요구해도, 빌려서라도 갖다 바쳐야 하는 그런 때였다.


  그래서인지 사춘기를 보내는 어린 학생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여학생들에게는 최악으로 느껴질 만한 일들이, 학교에는 더 많았다. 전체가 아닌 일부가 그랬겠지만, 그것들은 귀신보다 더 무서웠다. 학교는 전학을 가거나 졸업을 하지 않는 이상 벗어날 수가 없는 곳이었으니까.


  그래서 여고 괴담을 보는 내내 예전의 기억이 오버랩 되면서 더 실감나게 무서웠고 불편했고, 그들에게 공감을 했다.


  성적 때문에 친구 사이가 멀어지고, 적성과는 상관없이 명문 대학이나 가면 된다는 생각, 적성이나 재능보다는 성적에 좌우되는 풍토, 그리고 하루 3분의 2를 학교에서 보내기에 가족보다 더 가까운 친구 사이의 관계까지. 이 영화는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을 해서 극을 진행했다.


  가장 현실적인 것이 가장 잔인하다던가. 있는 그대로를 담담하게, 너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런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잡아내는 연출이 멋졌다.


  물론 오랫동안 맺힌 한이 너무 쉽게 풀리는 감이 있지만, 어린 여학생이니까. 마음이 여리니까하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1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라 특수 효과가 요즘처럼 멋지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스토리는 괜찮았다.



  ps - 그렇지만 학교가 그렇게 끔찍하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다닐만한 뭔가가 있었으니까. 비록 대학을 가기위한 중간 단계라는 생각으로, 졸업하면 돌아보지도 않을 거라는 마음가짐으로 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버틸만한 일들은 있었다. 하긴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처럼 꿋꿋하게 살아가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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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 오브 데드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유니버설픽쳐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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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랜드 오브 데드 (Land of the Dead)



  로메로의 좀비 시리즈. 밤에 눈을 떠서, 새벽부터 낮까지 쭉 놀던 잘 나가는 언니들의 시간표와 비슷한 좀비 시리즈. 이 영화는 만약에 좀비들이 생각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라는 의문점에서 시작한다.


  좀비들은 드디어 인간들을 한 곳으로 몰아넣는데 성공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이 안전한 피신처이고 좀비들이 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입장을 바꿔서 좀비들의 생각에는 인간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사육하고 있는 것이다. 살이 포동포동해질 때까지 키웠다가 잡아먹는 돼지를 생각하면 될까?


  빈약한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인간들은 좀비를 막았다고 하겠지만, 좀비들의 입장에서는 저 안에 먹을 것들을 담아놨다고 할지도 모른다.


  인간들은 그 안에서도 계급을 나누어 살고 있다. 이른바 있는 놈들은 평상시와 다름없는 생활을 누리고, 없는 놈들은 비참하게 지내고 있다. 인간의 편 가르기를 좋아하는 습성은 좀비들의 공격에 멸종할 위험에 처해있어도, 전혀 사라지지 않는다.


  오프닝 부분의 빨리 지나가는 화면 속에서 좀비들은 인간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들리는 목소리. 아마 방송인 것 같은데 거기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우리가 알던 가족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슬퍼하거나 묻어줄 여유도 없습니다. 그냥 머리를 쏴버리세요."



  가족의 해체이자 인간 사이의 연결 고리를 끊어버리는 말이었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좀비라는 것을 약간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리 주위에도 그런 존재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개념은 안드로메다 뒤편으로 보내버린 채 살아가는 인간들.

  남에게 휘둘리며 자기주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들.

  뭔가에 중독되어 그것이외에는 생각하지 않는, 아니 그냥 기계적으로 그것을 취하는 인간들.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폐인이나 중독자 내지는 인간쓰레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런 인물이 가족 내에 있으면, 가족은 붕괴되기 쉽다.


  그들을 보는 가족의 시선은 "왜 그러고 사냐?" 또는 안타까움, 절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일부는 수치스러워하기도 하고 말이다. 심지어 같은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인간이 좀비를 보는 시선과 전혀 다르지 않다. 물론 좀비처럼 마구 죽이지는 않는다. 그러면 살인이니까. 하지만 속으로는 죽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말이다.


  그런 생각을 좀비와 인간의 관계가 무척이나 씁쓸하게 느껴졌다. 좀비와 인간의 관계가 인간과 인간의 사이와 별반 다르지 않는다는 점이 무서우면서 소름끼쳤다.


  인간의 정이라는 건 한없이 끈끈하고 깊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도 간단하게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빈부 차는, 영화를 보는 내내 날 불편하게 만든 부분이었다.


  있는 인간들은 멋진 건물 안에서 아늑하게 살아간다. 밖의 인간들에게 일을 시키고, 그 대가를 지불하면서 말이다. 밖의 인간들은 돈을 벌어오겠다고 좀비들이 설치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슈퍼나 백화점을 싹쓸이해온다. 그러면 안의 인간들은 그것들을 소비하며 풍족하게 살아간다. 밖의 인간들이 그 일을 하다가 좀비가 되든지 아니면 좀비가 되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하든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밖의 인간들은 돈을 모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목표이다. 그것이 이루어질지는 의문이지만, 그런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희망이라기보다는 헛된 기대 같다.


  마치 상류층에 진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 좋은 학교를 가고, 좋은 곳에 취직을 하고. 그러다 좌절하고 분노하고. 뭐 어차피 그래봤자 죽음(=좀비)는 둘 다에게 공평하게 다가오지만 말이다.


  시리즈를 다 보고 난 뒤에 든 생각은 이거다.


  좀비처럼 살 것이냐, 인간처럼 살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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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씨씨 스페이식 출연 / 미디어파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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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부터 말할 캐리는 누구처럼 개그가 뛰어나지도, 또 누구처럼 섹시하지도 노래를 잘 부르지도 않는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왕따 당하기, 노려보기 그리고 염력으로 사람 죽이기! 똑같은 캐리지만, 사람이 다 다른 것처럼 그 능력도 다르다.


  캐리는 수줍지만 꿈 많은 십대 소녀다. 그러나 그녀는 학교에서 왕따였다.


  이유는 별거 없다. 촌스러운 외모와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어머니, 그리고 너무도 순진한 성격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그녀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광신도인 어머니는 그녀가 선택한 게 아니었다. 그런 집안에서 그녀가 자신을 꾸미지 못하게 된 것도 그녀의 의지는 아니었다. 또한 다른 아이들보다 더 순진하고 순수하게 자란 것도 그녀가 고른 게 아니다.


  오로지 선천적인 요인 때문에 그녀는 왕따를 당하고 만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확실히 비이성적인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특히 여자의 순결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과거에 어떤 일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된다. 그녀는 이제 막 생리를 시작한 딸을 죄악에 빠졌다고 학대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캐리는 다른 아이들처럼 멋을 내거나 누구와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가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만약에 다른 아이들처럼 부모에게 반항한다거나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였으면 뭔가 달라졌겠지만, 캐리는 엄마에게 순종하는 순해빠진 순둥이였다. 그래서 반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엄마의 학대와 친구들의 괴롭힘을 참아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 제일 행복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괴롭힘을 받은 그녀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유명한 장면이 여기서 나온다. 친구들의 계획대로 파티의 퀸으로 뽑혀 좋아하는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진 돼지 피. 그리고 들리는 비웃음과 손가락질.


  이 모든 상황은 그녀를 미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결국 그녀는 초능력을 발휘해서 친구들을 다 죽이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녀의 죄를 사하겠다며 칼을 든 엄마와 한판 승부를 벌인다.


  왜 그녀가 그런 초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억눌린 그녀의 정신이 내적으로 쌓이고 쌓이면서 그런 힘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사춘기 불안정한 아이가 있는 집에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더 잘 일어난다는 말도 있으니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이 있다. 영화를 보면서, 옛말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캐리의 엄마가 좀 너그러워서 그녀를 풀어줬으면 어땠을까? 만약에 캐리의 그런 상황을 이해하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런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려면 이해와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서 잘났다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에,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분노하고 서로를 파멸시키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한없이 애정을 갈구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중간 중간에 보면 존 트라볼타랑 캐리 피셔(레이아 공주)의 젊은 시절 모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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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연인 (2disc)
손재곤 감독, 박용우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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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대우는 외모 괜찮고 직업도 대학 강사라는 폼 나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는 노총각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 하나 : 그는 언제나 완벽한 여자. 즉, 외모와 머리가 일치하는 여자와 사귀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이유 둘 : 여자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한다.


  위의 두 가지 이유로 그는 오늘도 미팅에서 채이거나 상대 여자의 외모와 머리가 합일을 이루지 못한다는 이유로 퇴짜를 놓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사는 오피스텔(아파트였나?)에 미모의 여성이 이사 온다. 게다가 이삿짐을 흘낏 보니 미술품에 클래식 음반에, 취향도 고상하기 이를 데 없어 보였다. 알고 보니 취미는 독서요 전공은 미술. 얼굴과 몸매, 목소리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이는 그녀. 황대우는 미나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드디어 순서대로 데이트와 키스까지 진도가 나가게 된다.


  비록 그녀의 친한 친구가 술주정뱅이에 교양이 없어 보이는 여자라고 해도, 그녀의 집에 수상한 남자가 얼씬거려도 그는 그녀만 있으면 좋을 뿐이었다. 그런데 조금씩 뭔가 이상한 점이 드러나는데……. 과연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제목은 까먹었지만, 예전에 보았던 프랑스 영화였다. 유명 작가인 여자가 남편감을 고르기 위해 남자 친구들을 부르는데 어찌된 일인지 하나둘씩 사고로 죽게 되고, 그녀는 동생과 시체를 처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코미디 영화였다.


  이 영화도 그런 분위기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남편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유산 상속을 노린 것이지만 말이다.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는 중반에 너무 쉽게 밝혀져 조금 아쉽긴 했다. (아니,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초반부터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미나 역을 맡은 최강희는 귀여웠고, 대우 역을 맡은 박용우는 여전히 어눌한 연기에 어울렸다.


  그래서일까? 최강희가 아무리 칼을 들고 사람을 죽여도, 얼굴에 땀과 흙을 묻혀가며 삽질을 해도 진지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박용우가 여자들에 대해 중얼거리거나 강의를 하는 것을 보면 조만간 잘리겠구나하는 생각만 들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여자는 약하지만, 돈독이 오른 여자는 강하다였다. 돈을 노리고 협박하는 남자들도 가차 없이 처리해버렸다. 물론 시체처리도 확실히.


  그녀에게 친구란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있는 것은 그녀의 돈을 가로챌 궁리만 하는 인간들만 있을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선택한 것이었다. 그럴 위험을 각오하고 일을 벌였을 테니까.


  그녀의 정체를 알아버린 대우가 고뇌하는 부분은, 글쎄? 한국 정서는 확실히 아니었다. 그리고 결말 역시 할리우드 영화 식이었 다. 그래서 같이 보신 어머니는 저게 뭐냐고 버럭 하셨고, 작은 올케는 재미있다고 했던 모양이다. 확실히 할리우드 식 영화에 길든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춘 영화였다.


  한국 정서에 맞는 고전 영화라면, 아마 박용우가 그녀를 눈물로 설득해서 자수를 시키고 끌려가는 그녀를 보면서 '기다릴게!' 라고 외치는 엔딩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막 비장한 노래가 흐르면서 눈물을 흘리며 참회를 하는 최강희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끝이 날 테고 말이다.


  다른 영화를 패러디한 포스터가 무척이나 재미있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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