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에 대하여
린 램지 감독, 틸다 스윈튼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원제 - We Need to Talk About Kevin

  감독 - 린 램지

  출연 - 틸다 스윈튼, 에즈라 밀러, 존 C. 라일리, 시옵한 폴론




  보는 내내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자리가 불편한 것도, 뭘 잘못 먹은 것도, 몸이 안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마음 한구석이 쿡쿡 찔리는 것 같고, 얹힌 기분이었다.


  케빈의 거친 생각과 엄마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때문이 아니다. 케빈과 엄마의 생활이 마치 살얼음판을 조심스레 걷고 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그런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너무도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의식하는 엄마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왜 그녀가 그런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봐야하는지, 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지 하나씩 설명해준다. 처음에 볼 때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느라 좀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꽤나 잘 나가는 여행가였다가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덜컥 임신을 한 그녀. 그렇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그녀가 원했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모든 것에 서툴렀다. 아이를 돌보는 것도, 기르는 것도, 아이와 대화를 하는 것도, 아이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것도 다 그녀는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 나름대로 뭔가 하지만, 지켜보는 내 눈에는 미흡하기만 했다.


  어떻게 아기 우는 소리가 듣기 싫다고, 공사 현장에 유모차를 끌고 갈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공사 소리에 아들의 울음소리가 안 들리자 만족해하는 그녀를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빠는 무조건적으로 아들을 사랑한다. 집을 자주 비우는 직업이라, 그 미안한 마음에 아들에게 물질적으로 보상하는 것이 제일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쁜 종자’의 꼬마 아가씨도 영악했지만, 이 영화의 케빈은 잔인할 정도로 영악했다. 엄마 앞에서는 온갖 성질을 다 부리지만, 아빠 앞에서는 너무도 착한 아들 행세를 한다. 이건 사랑과 신뢰를 주고받는 엄마와 아들이 아니라,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그런 관계였다.


  영화는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상할 정도의 힌트는 준다. 어린 여동생이 어떻게 다쳤는지, 그 현장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케빈이 평소에 활을 잘 갖고 놀고, 제대로 관리를 안 했다고 혼나는 걸 봐서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또한 케빈이 학교에서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는다. 추측을 할 뿐이다. 그런데 그게 더 끔찍하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케빈이 그런 짓을 저지르게 된 것이 엄마의 책임이라고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다. 만약에 그녀가 아들이 아기일 때부터 조금만 더 따뜻하게 대했다면, 모자 관계가 그 지경이 되었을 까라고 추측하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그녀는 현재 아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속죄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웃는 것도 허용이 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케빈이 주인공이 아니다. 그의 엄마가 주인공이다. 그래서 왜 그가 그런 짓을 저지르기로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진짜 태어나면서부터 사이코패스라서 그럴 수도 있고, 세상에 불만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거나 애인을 빼앗겼다거나 등등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걸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엄마가 아들을 그렇게 키웠다고 비난하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는, 나도 그랬으니까. 저따위로 키우니까 애가 그렇게 크지. 어린 딸에게 사랑과 따뜻함이 담긴 눈빛을 주지만, 아들의 시선은 피하는 엄마. 애가 비뚤어지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자란 애들이 다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 케빈과 비슷한 애들이 자라고 있을 지도 모른다.


  모자가 진지하고 애정이 넘치는 포옹을 한 건 영화 마지막에서였다. 그제야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제대로 바라보았다. 모든 일이 다 끝난 뒤에야 둘은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엄마는 아들의 방에 들어가 다른 엄마들처럼 청소를 해주었고, 아들은 엄마의 질문에 냉소적이지 않은 진심이 담긴 대답을 했다.


  너무나도 오래 걸린 화해, 아니 이해의 시간이었다. 두 사람의 격한 포옹이 훈훈하지만, 그 와중에 희생자가 된 많은 사람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엄마역을 맡은 배우와 케빈 역을 맡은 배우 두 사람 다 진짜로 배역에 잘 어울렸다. 케빈 역을 맡은 배우는 패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고, 엄마 역을 맡은 배우는 보는 내가 안쓰러울 정도로 불안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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