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대로글> 봄날의 갖가지 상념들


1. 비의 낭만을 잃은 날

어제 비가 내렸다. 경기도교육청은 각 초등학교가 학교장 재량으로 휴업하도록 했다. 비가 인체에 해로운지를 떠나 학부모들의 자녀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짐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젠 비가 갖고 있는 낭만의 이미지가 사라질 시점에 와 있다. ‘방사능 비’가 내릴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비를 좋아하는 나는 앞으론 비가 내릴 때마다 좋아하기보다 건강 걱정을 하게 될 것이다. 비를 낭만적으로 맞을 수 있는 시대는 이렇게 해서 끝나는 것인가.


2. 우리는 하나

생선도 야채도 안심하고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원전사고는 일본에서 일어났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오고 있다. 역시 지구는 하나였고, 우리는 하나였다. 그러므로 타인의 삶이 곧 나의 삶의 일부가 된다. 이런 글이 떠오른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다.

만약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대륙이나 모래톱이 그만큼 작아지듯,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다.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

- 존 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3. 인간의 한계

일본의 원전사고는 자연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인간은 세상의 여러 문제를 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먼저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내고 다음으로 문제를 파악하는 것으로써 한계에 이르는 존재로 태어났다. - 괴테어록 32쪽.




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할 수 있다.



나는 인간이었다. 그것은 투쟁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 괴테어록, 32쪽.






오로지 인간만이 불가능한 것을 이룩할 수 있다. 인간은 구별하고 선택하고 판단한다. 인간은 순간적인 것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 괴테어록, 33쪽.




4. 커피의 맛에 집중하기

3일 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잠을 푹 자고 싶어서다. 심각한 불면증 정도는 아니지만, 몇 시간에 한 번씩 자꾸 깨어 아침에 일어나면 푹 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게 문제다. 20프로 수면 부족의 느낌.


커피중독자인 내가 커피의 유혹을 이겨내고 3일이나 마시지 않았으니 오늘은 내게 상을 주기로 하고 커피를 마시기로 하였다. 원래 내 습관은 아침을 먹고 나서 커피를 마실 때면 신문을 펼쳐 드는 것인데, 신문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다 보니 커피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곤 하였다. 커피보다도 신문의 내용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피의 맛에 집중하기 위해 그 습관을 바꿨다. 신문을 볼 때는 신문만 보기로, 커피를 마실 땐 커피만 마시기로 했다.


우리 집은 방마다 벽의 한 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 찻길 부근에 있는 고층 아파트라서 창가에서 활기찬 도시의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창밖엔 자동차가 분주하게 오가고 사람들이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난 이 풍경이 아주 맘에 든다. 요즘 숲 속에 있는 아파트가 인기라고 하지만 그런 아파트가 운치는 있겠지만 특히 밤에 느껴지는 적막한 숲보단 불빛이 화려한 야경을 볼 수 있는 이런 풍경이 난 좋다. 고독한 풍경이 아니라서 좋다.


그리하여 새로 만든 습관은 커피를 마실 때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창가에 앉는 것이다. 창밖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면 커피의 맛에 집중할 수가 있다. 그래서 최대한으로 커피의 맛을 음미하며 마실 수 있다. 오늘 창가에서 며칠 만에 마시는 커피의 맛은 아주 달콤하여 그 좋은 느낌이 온몸에 퍼지는 듯했다. 신문을 보면서 커피를 마셨을 때 커피의 맛을 50% 느낄 수 있다면, 이렇게 마시는 것은 100%의 커피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생의 기쁨은 크지만, 지각이 있는 생의 기쁨은 더욱 크다. - 괴테어록, 39쪽.




이것을 흉내 내어 쓰면, 커피는 맛있지만 음미하는 커피는 더욱 맛있다.



작은 일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을 보거든 그가 이미 큰 일을 이룩한 것으로 생각하라. - 괴테어록, 187쪽.




이것을 흉내 내어 쓰면, 커피를 마시는 작은 행복을 만끽하는 사람을 보거든 그가 이미 큰 일을 이룩한 것으로 생각하라.


작은 것에 감사를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리.


5. 처신의 어려움

어느 친척의 장례식장에서 밝은 웃음을 띤 얼굴을 한 적이 있다. 사촌 언니와 오빠, 동생 등 여럿을 한꺼번에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명랑하게 말하며 즐겁게 웃었던 것. 식사하는 자리에서였다. 삥 둘러앉은 낯익은 얼굴들을 보니 즐거운 모임이라도 되는 듯한 분위기에 빠진 모양이다. 난 그때 그곳이 장례식장임을 잠시 잊었다.


물론 장례식장에 들어서며 영정을 보면서는 울음을 참지 못해 눈이 빨개지도록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자 그 울음이 웃음으로 변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장례식장이란 장소에 맞지 않게 웃고 있던 내 모습이 생각나자 몹시 부끄러웠고 죄의식마저 느꼈다. 그런 나를 누군가가 관찰이라도 했다면 나를 얼마나 한심한 사람으로 봤을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상황에 맞게 처신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나’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볼 줄 아는 것의 중요함을 깨달은 날이다.



6. 신정아 자서전

최근에 출판된 신정아의 자서전 ‘4001’이 많이 팔려 화제다. 그녀는 학력 위조 사건이 발생한 2007년 5월 이후 써 온 일기․메모 등에서 일부를 추려 책으로 냈다고 한다. 이 책에서 그녀는 어느 정치인을 실명으로 거론하면서 “...슬쩍슬쩍 나의 어깨를 치거나 팔을 건드렸다”며 그는 “겉으로만 고상할 뿐 도덕관념은 제로였다”고 썼다고 한다.


이 글을 그(어느 정치인)의 가족이 보면 어떤 기분이 들 것인가에 대해서 그녀는 한 번쯤 생각해 봤을까. 한 남자의 가정이 파탄에 이를 수 있게 하는 글이면서 동시에 한 정치인의 생명력을 끊어 놓을 수 있는 글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까. 아무리 거짓 없는 사실이라고 해도 그녀의 인격을 의심하게 만드는 글이다. 그래서 그 사실 여부를 떠나 그 책은 사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녀의 책 내용이 공개되기 전까지 난 그녀의 책 출판 소식을 알았을 때 그녀를 응원하고 싶었다. 책 출판을 재기의 기회로 삼아, 쓰러진 몸을 일으켜 다시 일어나길 바랐다. 상처 받은 영혼에 대해서 비난을 삼가고 싶은 연민이 일었다. 그런데 신문을 통해서 그녀가 쓴 책에 그런 내용의 글이 실렸다는 것을 알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녀에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빠져 있다는 것은 의외다. 왜냐하면 한 번 아파본 사람은 그런 아픔을 누군가에게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7. 카이스트 또 자살

카이스트 학생이 어제 또 자살을 했다. 올해 들어서 학생 4명이 잇따라 자살한 것이다. 성적 스트레스로 자살한 학생도 있다고 한다. 현재의 즐거움 없이 미래를 위해서만 산다면 그건 불행하고도 슬픈 일이다.  




미래를 위해 자신을 준비하며 현재를 즐겨라. - 괴테어록, 68쪽.




8. 황사

오늘은 전국적으로 황사가 나타난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봄은 곱게 오지 않았다. 흙먼지 일으키는 봄바람과 꽃샘추위와 황사를 동반하며 봄은 왔다. 이 모든 것이 지나가고 완연한 봄인가 싶으면 바로 여름이 되고 만다.


예전엔 ‘봄’하면 떠오르는 것은 따스한 햇살이었는데, 이젠 ‘봄’하면 황사가 떠오르게 되었다. 시간에 따라 계절의 이미지도 변한다. 또 무엇이 변할까.


지금 이 시간에도 무엇인가가 조금씩 변하고 있을 것이다.


9. 괴테어록

괴테를 알고 싶어서 괴테어록을 읽었다. 가장 인상 깊은 글은 이것.



재물을 잃는다는 것 - 이것은 얼마간을 잃는다는 것이다.

명예를 잃는다는 것 - 이것은 많은 것을 잃는다는 것이다.

용기를 잃는다는 것 - 이것은 모두를 잃는다는 것을 뜻한다. - 괴테어록, 55쪽.




그러므로 무엇이 되고 싶고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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