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누구나 지독한 아픔을 경험했거나 앞으로 경험할 거라고 생각한다. 


다음 글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 



지금도 예쁘지만 어릴 적 그 아이의 귀여움엔 비길 데 없는 광채 같은 게 있다. 그 아이는 내가 아들을 잃고 난 후 1년 안에 태어난 외손녀다. 아들을 잃었을 때, 내 여생에 다시는 근심도 기쁨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장대 같은 아들을 잃은 지옥 같은 고통에 지쳤을 때 겨우 콩꼬투리만한 새 생명이 기적처럼 나에게 왔다. 그 새 생명을 처음 대면했을 때 나는 온몸이 떨리는 듯한 기쁨을 맛보았다. 나에게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 남아 있으리라고는 예상 못한 일이었다. 다행히 그 애를 낳은 딸네가 가까이 살고 있어서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애가 자라는 걸 지켜볼 수 있었다. 비로소 마음 붙일 곳이 생긴 것이다.(174쪽)



근심도 기쁨도 없이 목석처럼 살아낼 수 있으리라고 믿은 건 거짓말이었다. 입으로는 살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그 작은 생명에게 마음을 붙이고 울고 웃고 하였을까. 그 애의 생명력이 눈부시다면 내 생명력은 또 얼마나 징그러운가. 나는 딴 손자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조심 그 애를 얼마나 편애했던가. 그건 손자 사랑이라기보다는 마음 붙일 수 있는 걸 찾아내어 놓치고 싶지 않은 자기애가 아니었을까. (174~175쪽) 



⇨ 세상엔 슬픈 일이 많겠으나 자식을 잃은 슬픔보다 큰 슬픔은 없으리라. 자식을 잃고 나서 밥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는 마음 상태에서는 지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이미 지옥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 


고통에 신음하며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기쁨에 잠겨서 웃는 순간이 온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이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상품 넣기 검색창에 내가 구매한 책이 뜨지 않아 에디션으로 출간된 책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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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3-15 17:0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새생명의 탄생 만큼 기쁘고 감격 스러운 순간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전쟁으로 짓밟히고 사라져 가는 생명들 이 순간에도 너무 안타깝고 슬픕니다 ㅠ.ㅠ

페크pek0501 2022-03-15 17:53   좋아요 5 | URL
슬프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언제쯤 없어질까요?
고통스러운 삶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2-03-15 18:2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선생이 그때 남편과 아들을 거의 동시에 잃었다고 알고 있어요.
그 시대에 아들 낳으려고 막내를 본 듯 했고요. 의대에 다녔는데 과로로 너무 허무하게 가셨는데 제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그때의 아픔과 상실이 글에 잘 나타나 있더라고요^^
자식 잃은 슬픔은 우리가 상상도 못하겠죠 ㅠㅠ

페크pek0501 2022-03-16 12:12   좋아요 3 | URL
남편과 아들을 같은 해에 잃은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걸로 알고 있어요. 제 기억이 맞을지 모르겠네요...
맞아요. 의대생 아들이에요. 아들의 사망 원인에 대해 꽤 화제가 되었었죠.
자식 잃은 슬픔이 가장 큰 슬픔 같아요.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어느 수녀원에서 묵었던 일도 글로 봤어요.ㅠㅠ

stella.K 2022-03-15 20:4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고 이어령 교수님는 손자도 잃고 따님도 먼저 하늘 나라로 보내고
참 함든 시간을 보내셨더라구요. 어머니도 어린 나이에 여의시고.
보기엔 화려하고 당당해 보여도 고난이 참 많으셨더라구요.
저도 오래 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얼마 안 있다 어린 조카녀석이 말을 배워서 이모 이모하는데
마음이 녹아내리더라구요. 아, 이래서 사는 거구나 싶더군요.

페크pek0501 2022-03-16 12:16   좋아요 4 | URL
따님을 잃은 건 알았는데 손자도 잃었군요. 김한길 소설가가 그의 전 사위였죠.
힘든 시간이 많았던 분이네요.
불행과 행복이 섞여 있으니 그나마 우리가 버티고 견디며 살 수 있는 것이겠지요.
부모의 -가족의 죽음을 누구나 경험하니 누구나 죽음의 슬픔은 알 것 같아요. ㅠㅠ

서니데이 2022-03-16 18: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샀었어요. 그런데 초판으로 나온 표지보다 저 여우별 표지가 더 좋은 것 같더라구요.
페크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2-03-17 12:14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과 제가 같은 책을 샀나 봐요. 그 책이 품절되어 에디션 책이 나온 것 같아요.
서니데이 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라로 2022-03-16 20: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고 아직 읽지는 않았어요. 최근에 읽은 책으로 그분의 모든 책에 있는 프롤로그 에필로그 <프롤로그 에필로그>라는 책을 읽었는데 아주 좋았어요. 그분은 글과 삶이 일치가 되는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 얼마 안 되는 작가분으로 제게 다가옵니다. 예전에 아들을 잃으시고 쓰신 <한말씀만 하소서>라는 글을 읽을 때 읽는 저도 너무 괴로웠던 느낌이 여전히 무겁게 저를 내리 누릅니다. 그 책은 여전히 갖고 있는데 그 이후로 손이 안 가요. 남의 불행은 이미 지난 일이라도 무겁게 다가오는데 <프롤로그 에필로그> 책에서 어느덧 그 슬픔에서 나와 씩씩하게 사시는 글을 읽고 좀 먹먹했던 기억도 나네요. 좋은 글 감사해요.

페크pek0501 2022-03-17 12:19   좋아요 1 | URL
오 <프롤로그 에필로그>라는 책은 한 작가의 역사 기록이겠군요.
저도 <한말씀만 하소서>를 읽었는데 많이 공감 가고 슬픈 글이었죠.
다시 평정을 찾은 건- 아니 찾은 것처럼 보이는 건 그분에겐 글쓰기가 있어서일 듯해요.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을 거예요. 할 일이 있다는 건 축복이에요. 몰두하고 있을 땐 딴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질 못하니까요. 그리고 글쓰기 그 자체가 힐링이에요.
라로 님의 서재 이미지 크고 참 좋네요~~
즐겁게 열공하시길 응원합니다!!!

희선 2022-03-16 23: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더는 기쁜 일이 없을 것 같기도 하겠습니다 남편분과 아드님을 차례로 잃으셔서 박완서 님은 더 힘드셨겠네요 새로운 생명이 기쁨을 줘서 다행입니다 사람이 겪는 슬픔은 다 사라지지 않고 조금 옅어지겠지요


희선

페크pek0501 2022-03-17 12:23   좋아요 3 | URL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는 건 결국 시간인 셈이에요. 어떻게든 버티다 보면 밥맛을 되찾는 일이 생기지요. 저도 딸애가 얼른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어요. 자기 자식과 다르게 손주는 아주 예쁘다고 합니다. 자식을 키울 땐 힘들어서 그런지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잘 모르다가 손주는 보다가 안 보면 보고 싶다고 하네요.
희선 님에게도 좋은 일이 가득하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