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하여 알고싶은 두세 가지 것들
구회영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6년 8월
구판절판


필름(film): 우리가 영화라고 부르는 현상은 필름으로부터 시작한다. 필름은 빛이 닿으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물질이 입혀진 띠모양의 셀룰로이드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만져서 느낄 수 있는 실재하는 물체이다.(중략)그러므로 영화가 세계 속에 존재하는 여러 방식 - 빛과 소리에 의한 한순간의 영상으로서, 관객의 기억과 무의식의 단편으로서, 글이나 사진이나 그림을 통하여 재현된 모습으로서 - 중에서 필름은 가장 구체적이며 물질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7쪽

한 편의 이어진 필름은 또한 한 편의 영화와 동의어로도 쓰인다. 어떤 영화가 지금/여기에 있느냐없느냐를 가늠하는 가장 확실한 - 아마도 유일한 - 기준을 우리는 필름의 존재에서 찾는다. 그래서 <장군의 아들>은 지금 우리에게 있고 - 20여개의 프린트가 전국의 극장에서 '돌아가고' 있으며, 네가(negative)가 보관되고 있으므로- 나운규의 <아리랑>은 지금 우리에게 없다.<아리랑>을 보았던 수많은 선대의 관객들의 증언과 기록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민족의 노래'가 된 그 영화의 주제가가 끊임없이 불리워지고 있음에도, 그러므로 영화가 일단은 필름의 형태를 가지고 있어야만 그 존재를 인정받게 된다는 믿음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는 셈이며, 영화 = 필름이라는 등식이 우리의 일상언어 속에서 받아들여짐은 이러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을 것이다. -7쪽

그러나 필름은 아직 '움직이는 그림' 곧 활동하는 사진 또는 무비(movie)가 아니다. 필름이 복제하는 현실의 모습은 아직은 정지된 세계, 정사진(still photograph)으로 구성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필름은 영화 특유의 기계 장치를 거쳐 관객의 감각기관에 빛과 소리로서 전달될 때 비로소 우리가 영화라 기억하는 현상이 되는 것이다-7쪽

무비(movie;motion picture;활동사진)(전략) 영화가 등장하자마자 '신기한 구경거리'로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무엇보다도 활동사진으로서였다. 대중은 일단 '움직임'을 보고 싶어하였고, 소리나 색채에 대한 요구, 혹은 이야기나 등장인물에 관한 흥미는 나중의 일이었다. 그러나 '움직이는 그림(motion picture)'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 아니듯이, 그리고 영화의 가장 원초적인 매력인 '움직임을 보는 즐거움'이 사실은 일종의 눈속임에 의하여 가능하듯이, "영화=무비/활동사진"이라는 등식에는 영화 자체가 사람들에게 속임수로서- 체제,권력,자본의 유지와 이익을 위하여 -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 숨어 있다.-8쪽

시네마(cinema)(전략) 영화를 '습관적'으로 보는 관객집단이 형성되고 영화제작이 대규모, 대량생산체제를 갖추어감에 따라 영화는 더 이상 관객을 찾아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영화가 배급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들 - 영사기를 돌리기 위한 전기시설, 필름을 운발할 수 있는 교통편, 그리고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할 만큼의 여유를 가진 관객들- 이 충족되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크고 작은 시네마가 들어섰고, 관객들은 영화를 찾아 자연스럽게 극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적어도 TV가 관객들의 극장가기 습관을 허물어뜨리기 전까지는, 극장 설계자들의 유일한 고민은 어떻게 하면 관람에 불편을 주지 않으면서 객석수를 최대한으로 늘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갈수록 늘어나는 주말의 관람인파를 모두 받아들이기 위하여 새로 지어지는 대도시의 극장들은 점점 커졌고(9) 그 규모에 걸맞게 또한 호화로움을 더해갔다.-9,10쪽

시네마는 그러나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중략) 하나는 다양한 도시공간을 게릴라처럼 뚫고 들어가는 소극장 (중략) 또 하나는 '구경거리'로서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테크놀로지들 / 이러한 두 경향은 그것들의 현대성과 첨단기술 / 역설적으로 오늘날의 영화와 관객과의 관계를 영화 초창기의 / 관객을 찾아 상영공간을 만들어가는 소극장 / 영화가 신기한 구경거리임을 새삼 발견하게 하는 새로운 테크놀로지 -10쪽

80년대 헐리우드 영화 텍스트의 안과 밖에 드러난 몇 가지 '증후군'을 살핌으로써 그것들이 90년대의 보다 근본적인 변혁의 '조짐'인지 따져봄은 가능할 것이다. 그 첫번째 증후는 "경계 무너뜨리기"라고 부를 수 있다. 자아와 타자, 중심과 주변, 대회사(MAJOR)와 독립영화(indies),주류(mainstream)와 소수파(cult)의 구분이 점점 희미해져가고, 장르와 장르 사이, 관습(convention)과 새로운 감수성 사이를 '넘나듬'이 예삿일이 된 것이 80년대말의 할리우드 사정이다. 그러나 더욱 문화사적 의의가 큰 경계 무너뜨리기는 창작자/수용자라는 전통적 이분법의 영역에서 일어났다. 여기에는 80년대의 가장 큰 영상혁명을 가져온 비디오가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86쪽

엘리트 비평가와 무식한(?) 대중 사이의 간격도 좁혀져왔다. 대중은 비디오와 케이블 TV를 통해 자신도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고, 불특정 다수의 관객이 아닌 나름대로의 안목과 지식을 가진 특성화된 소집단들로 변모해갔다. 처음 비디오에 적대적 입장을 취했던 헐리우드의 우려와는 달리, 80년대는 대중이 '영화관'을 재발견한 시대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비디오 보급률과 비례하여 극장영화의 총관객수가 80년대 중반 이후 다시 늘어나기 시작하는 현상이 이 가설을 어느 정도 뒷받침한다 보아도 되리라.-87쪽

60년대 후반에 소년기를 보낸 홍콩영화팬 첫세대는 중국무사들의 고풍스런 의상과 그들이 펼치는 '의협'의 세계를 기억한다. 그 다음 세대 관객들은 이소룡의 날렵한 몸놀림과 쌍절봉의 바람 가르는 소리에서, 혹은 성룡, 홍금보, 원표 트리오의 좌충우돌 액션 속에서 홍콩영화를 만났다. 그리고 비디오의 탄생과 함께 자라난 첫세대인 80년대의 가장 새로운 관객들은 주윤발-장국영-왕조현-유덕화로 이어지는 '신드롬'을 형성하며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한가운데에 '홍콩'이라는 고유명사를 깊이 새(227)겨 놓았다.-227,228쪽

그리하여 1990년대초, 서울은 어쩌면 세계에서 홍콩 다음으로 많은 홍콩영화를 동시에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 도시가 되어 있는 듯하다. 직배된 미국 영화, 몸살을 앓는 한국 영화, '고급' 관객을 유혹하는 '예술' 영화 광고들 사이에 칸막이처럼 끼어있는 홍콩영화 광고의 이미 친숙해진 이미지, 그리고 재개봉관 영화광고란의 수많은 홍콩영화 제목들과 비디오가게마다 붙은 무수한 홍콩영화 포스터. 이것이 바로 오늘의 한국 영화관객, 그리고 미래의 한국 영화를 끌고나갈 새로운 세대들의 '영화환경'의 주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228쪽

컬트 무비 / 영화광을 위한 진혼곡 中 (1) 컬트 영화는 정의될 수 없고, 정의되어서도 아니된다. "도대체 컬트 영화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컬트(cult)'라는 외래어를 정의함으로써 답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컬트 '현상'을 가능케 하는 '문화/하위문화(subculture)'와 그 문화를 지탱하는 물적 토대를 이야기함으로써 비로소-우회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물음이다. 컬트는 쉬운 해답을 갖지 않은 문제라 생각하는 편이 컬트를 이해하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컬트의 의미는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열려 있고, 그 내용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컬트는 사전이라는 동어반복의 틀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쉽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은 이미 컬트가 아니며 고정불변의 컬트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229쪽

(2) 컬트 영화는 관객이 만든다. 관객만이 마지막 판결을 내릴 수 있다. (중략) 관객들은 재해석을 통하여, 관람경험의 '제의(ritual)'화에 의하여, 혹은 애증/찬탄/야유가 뒤섞인 관심으로써 컬트 영화를 길러낸다. 컬트는 상업영화의 생산/소비 메커니즘 속에 관객이 능동적으로 자신들만의 자리를 확보하는 유효한 방식이다. 관객만이 컬트를 결정하고, 최후까지 결정권을 지니는 것이다. -229쪽

(3)컬트 영화의 관객은 언제나 소수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발적이고, 열광적이며, 때로는 광신적인 소수이다. 다수의 관객 대중에게 버림받고 외면당한 영화는 컬트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229)진다. 그것이 소수의 지지자/후원자들에게 발견되면서 이 '미운 오리새끼'는 컬트 영화로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이들은 자신만이 그 영화를 '발견'했다고 생각하다가, 뜻을 같이 하는 다른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확신'을 가지고 컬트 영화에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 이 극장 저 극장을 쫓아다니며 수십번씩 같은 영화를 보고,주인공들의 분장과 몸짓과 대사를 흉내내고, 주위사람들의 옷소매를 잡아끌며, '전도'에 열을 올리는 소수의 '광'들이 컬트 영화의 진정한 주인들이다.-229,230쪽

(4)컬트 영화의 자격은 영화의 상업적 성공과 관계가 없다. "관객동원('동원'이라는 말에 숨은 이데올로기에 주목할 것)"에 실패한 영화는 일단 '소수'만을 위한 영화라는 컬트의 조건에 들어맞는다. 그러나 흥행에 실패한 영화가 모두 컬트 영화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 영화가 소수의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반대로 첫개봉에서 '떼돈'을 벌었다 하여 그 영화가 컬트 영화가 될 자격을 자동적으로 상실하는 것으도 아니다.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 대다수 관객의 취향과는 무관하게 - 영화광들이 그 영화를 '재발견'할 때, 그것은 '대작흥행영화'에서 컬트영화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한 영화가 수용되는 문화의 차이라는 요소가 덧붙여진다. 한 나라에서의 '흥행' 영화가 국경을 넘어가면 '예술'영화가 되듯, 문화적 차이에 따른 관객의 오해(?)가 때로는 컬트 영화를 낳는 근거가 된다. -230쪽

(5) 컬트 영화는 반드시 관객공동체의 문화를 반영하며, 관객공동체의 대변자가 된다. 컬트 영화를 만들고 키워나가는 관객들은 언제나 특정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다(때로는 거꾸로 컬트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러한 집단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집단은 공통된 기호와 취향과 나름대로의 규범을 가지며 공통의 정서로 끈끈하게 맺어진 '공동체'이다. -230쪽

(6) 컬트 영화는 얌전한 영화가 아니다, 컬트 영화는 논쟁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다. 컬트 영화는 상식을 벗어나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상식은 '영화는 모름지기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충고로부터, '영화는 이러이러한 것을 다루어서는(230)안된다'는 경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는다. 그리고 이러한 상식을 깨는 곳에서 컬트 영화는 출발한다. 기존의 영화형식을 거부하는 영화, 그 사회의 정치적, 윤리적 금기를 건드리는 영화, 소외집단의 편에 서는 영화, 영화의 존재 자체가 '사건'이 되는 영화, 이런 영화들은 언제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그 논쟁 속에서 컬트 영화는 태어난다. -230,232쪽

(7)컬트 영화는 단순히 구경거리로 취급되지 않는다. 컬트 영화를 관람함은 일종의 제사/의식에 참여함과 같다. (전략) 관객들은 컬트 영화를 한번 '소비'하고 잊어버리는 다른 영화처럼 취급하지 않는다. 컬트 영화를 관람하는 시간과 공간은 마치 일상을 벗어난 신비로운 체험의 자리와도 같다. 그것은 관객들의 삶 속에 '살아 숨쉬는' 경험으로 남는다. 그래서 컬트 영화는 종교를 모르는 사람에게 종교적 의식에 참여하게 하고, 마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마술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232쪽

(8)컬트 영화는 비평가들을 속이고, 영화이론을 믿지 않으며,제작자들을 배반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그들 모두를 구원한다. 비평가들은 대부분 가장 많은 사람이 동의하리라고 여기는 기준으로 영화를 잰다. 그래서 컬트 영화는 그 기준에 '미달'됨으로써 비평가들의 손아귀를 벗어난다. 영화이론 또한 컬트 영화를 예상하지 못한다. 이론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컬트영화를 뒤쫓아오며 '설명'하고 '해석'할 때 뿐이다. 제작자들은 전혀 엉뚱한 관객들의 반응에 당황한다. 흥행의 공식을 컬트 영화는 여지 없이 깨뜨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컬트 영화의 주인인 관객들은 이렇게 고정관념을 깸으로써 영화가 이론과 자본과 '여론'의 노예가 되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컬트 영화는 자신들이 '불온'하고 '불건전'하다는 딱지를 받기 일쑤지만, 그렇게 됨으로써 영화라는 문화현상이 사라져버리지않고 계속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나가는 데 기여한다. 비평가들과 영화이론과 제작자들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232쪽

(9)컬트영화는 멈추어 있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재발견, 재해석,재평가된다. 컬트 영화는 소수의,소수에 의한, 소수를 위한 영화이다. 그러면서 컬트 영화 자(232)체도 소수파가 된다. 컬트 영화라 불리울 수 있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어렵사리(!)컬트의 대열에 낀 영화가 그 자리를 언제까지나 지킬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후략) (10) 컬트 영화는 부정을 통하여 긍정으로 가는 영화이다. 영화문화의 한쪽 모퉁이에 뚫린, 미래로 열린 창이 컬트 영화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컬트 영화는 정의될 수 없고, 정의되어서도 아니된다. -232쪽

컬트 영화의 발생은 한 사회의 극장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한 사회의 극장문화는 또한 그 사회의 역사적 조건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컬트 영화라 불리우는 현상은 각 사회의 극장문화의 차이에 따라, 그리고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띠고 나타난다. (중략) 기존의 보수적인 배급망을 타기 어려웠던 이 영화들은 처음 대학 캠퍼스나 소규모의 시네클럽들에서 틀어졌다. 그리고 이 영화들이 어느 정도 고정된 관객층을 확보하게 되자 주로 대도시의 학생 거주지역, 예술활동 중심지, 그리고 캠퍼스타운 언저리에 하나둘씩 레퍼토리 시네마(repertory cinema)라 불리우는 영화소극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계열화되어 있던 기존의 영화관들과는 달리 이 소극장들은 독립적으로 운영되었고, 돈을 벌겠다는 목표보다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영화들을 더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영화광들의 소박한(?)의도와, 자신들만의 문화공간을 갖고 싶어하는 젊은 세대의 요구가 맞아 떨어져 생겨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34쪽

컬트 영화 출현의 기반인 소극장들이 '멸종'되어갔던 반면, 헐리우드는 컬트 영화시장에 주목하고 기존의 배급망을 통하여 컬트 영화를 돌리기 시작하였다. 1975년에 나온 <록키 호러 픽쳐 쇼우(Rocky Horror Picture Show)의 대성공이 하나의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중략)그러나 <록키 호러..>의 성공은 흔치 않은 예외에 속한다. 컬트 영화가 보여지는 공간은 갈수록 줄어만 갔는데, 비디오의 출현과 함께 컬트 영화광들은 비디오가 축복인 동시에 저주임을 깨닫게 된다. -236쪽

컬트 영화의 요람이자 보금자리였던 레퍼토리 소극장들이 거의 자취를 감출 무렵인 1980년대 초반, 비디오라는 새로운 영상매체가 등장하였다. 상류계층의 '노리개'정도로 인식되었던 비디오 플레이어는 점차 가격이 낮아지면서 급속히 일반에게 보급되었고, 이와 함께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비디오 대여점은 사람들이 영상매체를 대하는 습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한편으로는 영화-비디오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영화사의 창고에서 잠자던 숱한 필름들이 -걸작이고 졸작이고 가릴 것 없이-비디오에 옮겨졌고, 한편으로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다는 행위의 문화적인 의미가 새로워졌다.-237쪽

컬트 영화팬들에게 비디오는 복음처럼 들렸다. 이제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를 기다릴 필요 없이 언제나, 마음껏 볼 수 있었고, 아직 그 영화의 '진가'를 모르는 주위사람들에게도 손쉽게 일차 관람하길 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컬트 영화의 흥행으로 근근히 유지해오던 소극장들에게 비디오는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였다.일부는 아예 비디오 대여업-주로 외국영화, 독립영화,컬트 영화를 취급하는 -으로 방향을 돌려 새로운 갈 길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비디오는 컬트 영화를 보는 기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곧 공동체의 관람경험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빼앗아갔다. 소극장들이 없어지고, 영화광들이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밀실에서 텔리비전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을 때 컬트 영화의 시대는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진짜 컬트 영화와 진짜를 흉내내어 장삿속으로 만들어진 가짜 컬트 영화의 구별도 이제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는 컬트 영화라는 현상이 처음 나타났던 유럽과 미국의 경우이다. 컬트 영화라 할 만한 것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 애당초 없었던 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태가 진전될 수도 있다. -237쪽

영화의 경우는 우리나라 영화보다도 엉뚱하게도(?) 외국 영화에서 컬트 현상이 나타났으니, 다름아닌 '홍콩 느와르'의 선풍이 그것이다.그리고 여기에는 80년대 들어 소극장의 형태로 급속히 불어난 '재개봉관'들의 존재와 비디오의 광범위한 보급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국에서의 홍콩영화붐에 불길을 당긴 것은 <영웅본색>이었는데, 이 '전설적' 영화의 개봉관에서의 흥행성적은 사실 신통치 않았다(서울의 경우 화양,명화, 대지극장에서 87년 6월 23일부터 7월 9일까지 개봉, 9만 4천 604명을 동원). 그러나 <영웅본색>은 뒷골목과 변두리의 '동시상영'프로가 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주인공의 옷차림과 제스추어를 모방하고 수십번씩 같은 영화를 되풀이해 보는 청소년 집단-'주윤발 신드롬'에 걸린(?)-이 나타나기까지 하였다. -238쪽

'개봉관 실패 -> 재개봉관 성공'의 과정은 <천녀유혼>의 경우에도 반복되었는데, 여기에 '극장에서의 실패 -> 비디오로 재평가'라는 새로운 현상을 <열혈남아>가 보태었다. 이러한 사례들을 한국적인 '컬트'현상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물음과는 별도로, 80년대 한국의 대중문화에 홍콩 영화가 파고들어온 과정, 그리고 그것이 우리나라 관객에게 수용되는 양상을 이해하는 데 이들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비디오문화의 또 하나의 부산물은 쏟아져나오는 프로 테이프 덕분에(?) 우리들이(238) 말로만 듣던 '그들'의 컬트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에게 컬트인 것이라 해서 '우리'에게도 컬트 영화일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나라에도 컬트 영화가 존재하느냐 혹은 앞으로 나타날 것인가 하는 데 있지 않다. 컬트를 이야기함은 진지하게 영화를 대하는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고 '읽는' 방법의 깊이와 너비를 더해 줄 수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진지한 사람들'속에는 상투적이지 않은 시각으로 영화의 '재미'를 찾으려는 '영화광'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238,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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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나올 내 졸업논문 주제는 < VCR 시대의 영화 소비 경험에 대한 연구(1979~1999)>이다. 이제는 점점 사라져가는 비디오대여점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겠다. 임영태의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2002년에 만들어진 영화 <비디오를 보는 남자>(감독:김학순)엔 정겨운 풍경이 가득하다. 



비디오대여점을 기웃거리는 청소년. 혹시 "오늘은 빨간 딱지 비디오를 빌릴 수 있을까?"  



영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한창 활황이었던 '90년대'. 영화광이든, 아니든 누군가의 벽에는 꼭 줄리엣 비노쉬의 영화 브로마이드가 걸려있던 시절이 있었다. 뤽 베송의 <그랑블루>나 <레옹>, 왕가위의 <해피투게더>, 장 자끄 베넥스의 <베티 블루 37.2>도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 꼭 걸려 있었던 인기 영화 포스터들이었다. 



지금은 연재가 중단되었지만, <씨네21>에 비디오카페란 인기연재물이 있었다. 그 연재물의 저자였던 당시 영화마을 종로점의 이주현씨는 비디오대여점을 하면서 겪었던 소박한 일상들을 솔직하게 전해주었다. 비디오대여점 주인들은 때때로 연체 테이프가 생길 때, 직접 수거를 하러 다니기도 했다. 



간혹 비디오테이프 속 필름이 끊기거나 씹힌 채로 반납되거나, 꼭 이렇게 양념장을 묻히거나 아이의 껌딱지가 묻혀진 채로 반납되는 경우가 있었다. 대여점주 입장에서 더욱이 회전율이 높은 새 테이프라면 골치가 아프다.  



비디오대여점엔 새 프로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남자의 경우 '비디오용 배우'를 찾는 사람도 많았다. 지금은 점점 희미해져가는 이름이지만, 우리 '스티븐 시발' 스티븐 시갈 형님을 비롯해, 돌프 룬드그렌, 장 클로드 반담, 룻거 하우어, 마이클 듀디코프 등등등.  "아저씨, 저기 스티븐 시갈 나오는 새 액션 영화 없어요?" 



간혹 일을 나가야 하는 어머니는 아이가 혼자 놀기에 적당한 비디오테이프가 있으면, 그것만을 반복적으로 빌려가셨다. 그러면 마음씨 착한 주인은 간혹 비디오테이프를 복사해주곤 했다. '복사를 '뜬다'라는 표현이 정겨웠던 시절. 



마음씨 착한 주인공 '비디오 남자'는 어머니가 나가고 없는 아이의 집에 들러, 아이를 위해 복사를 뜬 테잎을 틀어준다. 

추억의 만화영화, <은비,까비의 옛날옛적에> 



비디오는 단순히 영화만 보는 도구는 아니었다. 이른바 'how to 프로그램'이라고 불렸던 장르가 꽤 인기를 끈다. 주로 대여용이라기보단, '셀스루'라는 직접판매로 인기를 끌었던 콘텐츠들. '요가 프로그램' 등등등. 



아날로그에 익숙한 대여점주는, 직접 두꺼운 검은 노트에 일일이 손님들의 대여정보를 적곤 했지만, 시대가 발달하면서 

비디오대여업용 프로그램이 탄생했고, 업주들은 여기에 동네 사람들의 취향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정겨운 '리와인더' 장치들. 매너있는 손님으로 도장 찍으려면, 자기 집 비디오로 다 본 테이프를 처음으로 감아주는 센스를 발휘하기. 그러면 나중에 점주가 눈여겨 봐두었다가, 보너스로 한 편 더 빌려주었던 기억들.  



비디오테이프 반납기. 새 테이프를 반납하러 반납기에 넣었는데, 혹시나 퍽 하는 소리가 날까봐 최대한 조심조심하며 테이프를 넣었던 어린 시절. 알고 보니 속에는 완충기능을 하는 보조 장치들이 달려 있었다.



비디오대여점을 한다는 걸  사회는 아직 편한 직업으로 보지만, 주인은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단지 비디오테이프 자체를 빌려주는 장소가 아니라, 동네의 '코뮤니타스'역할도 충실히 했던 비디오대여점. 

다음엔 80년대 VCR문화를 알 수 있던 김홍준 감독(우리에겐 필명 구회영으로도 잘 알려진)의 대표작 <장미빛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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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10-06-07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논문이겠네요 다음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ㅎㅎ

얼그레이효과 2010-06-08 00:3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바라님. 오랜만이에요~

2010-06-07 0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8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10-06-07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운 기억이네요. 어렸을 때 우리집은 VCR 때문에 오빠 친구들의 아지트였죠. 덕분에 나도 19금 영화를 초등학교 때 이미 봤다는. The Wall이요. ^^

얼그레이효과 2010-06-08 00:32   좋아요 0 | URL
오 더 월! 반가운 이름이네요!

L.SHIN 2010-06-07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디오 가게의 포스터가 아니라 안을 보는 것이, 혹시 저 남학생은 좋아하는 사람이 거기서 일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요? 하는 생각을 잠시...^^;

얼그레이효과 2010-06-08 00:33   좋아요 0 | URL
로맨틱하십니다.^^!

Alicia 2010-06-07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비까비의 옛날옛적에는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어릴 때 그거보고 자랐는데 저랑 비슷한 세대신가봐요.으흣:)
중학교때까진 비디오를 많이 봤던거 같아요.학교 끝나면 친구랑 책가방메고 비디오가게 들러서 포스터 얻어오기도 하고 그랬는데. 미성년이라고 안빌려주는 영화도 있었어요. 그래서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못봤었죠.^^
조디 포스터가 나오는 콘택트도 좋아했어요.아마 그때 당시에 여학생들한테는 첨밀밀,친니친니 이런 영화도 꽤 인기있었을 거에요.
그때 비디오로 봤던 블루나 화양연화같은 영화는 십대때 이해 못해 갸웃거렸는데 스물여섯 되어서 와닿았던 것 같아요. 두번 볼때까지 칠년이란 시간이 있었고 그 사이 매체는 비디오테잎에서 DVD로 넘어왔어요.
아! 정말 그리운 추억이네요. 앞으로 쓰실 글은 어떤 내용일지 기대가 됩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6-08 00:33   좋아요 0 | URL
요즘은 디비디도 완전히 헐값으로 팔더군요..영화 자체에 대해 90년대만큼의 애정은 없는 느낌이 들더라구요..제 논문도 그런 생각을 담았는데..시간 되면 또 올려보겠습니다.^^

Arch 2010-06-08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셸 공드리의 비카인드 리와인드가 생각나요.
논문 잘 써지길 바랄게요.

얼그레이효과 2010-06-08 11:51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arch님. 고맙습니다.

2010-06-15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15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년 슈퍼볼 하프타임. 자넷 잭슨과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공연중이었다. 공연이 끝날 무렵, 미디어사에 길이 남을 장면 중 하나가 펼쳐진다. 팀버레이크는 잭슨의 가슴이 가려진 특정 부분을 잡아 뜯었고, 별모양의 악세사리로 자신의 유두를 가린 자넷 잭슨이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다음 앨범 광고를 위한 자넷의 의도된 연출? 아니면, 팀버레이크의 손 힘이 생각보다 너무 세서 생긴 돌발 사고? 당시, 군대에서 본 이 장면- 이후 이 사건은 '니플 게이트'로 명명된다. 니플은 여성의 젖꼭지를 뜻한다-이 기억난 나는, 대학원에 입학해서 첫 학기 소논문으로 <가슴노출의 사회학>을 썼다.(당시 연구방법론을 아직 배우지 않은 터라, 좀 산만한 아티클로 끝났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꽤 아까운 글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살려보려고 노력중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가슴 노출을 두고 난분분한 견해들이 펼쳐졌다. 의도적인 것이냐, 혹은 정말 우연적으로 발생한 사고냐? 사람들은 처음에는 방송사를 질타하는 쪽이었다. 예로 들어, <일요일일요일밤에> '조향기 사건'. 다이빙을 한 배우 조향기의 비키니가 벗겨지고, 그것이 방송 그대로 나갔다. 사람들에게 '가슴 노출'이 주는 문화적 파급 효과를 거의 처음 인식시켜준 사건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더 큰 화제와 논란을 야기했던 '씨야'시절의 남규리의 가슴 노출. 사람들은 이 노출을 둘러싼 보도 형태를 비판하기도 했고, 더 나아가서, 남규리의 소속사가 펼치는 '전략의 이면'에 대해 캐고 싶어했다. 이 사건은 사람들에게 이제 연예인의 가슴 노출이 뭔가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물론 우리는 진실 자체를 알 수 없다. 단지 의혹의 소비만이 있을 뿐이다.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시각성  

이제 사람들은 가슴노출을 정밀하게 볼 수 있는 도구를 얻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터넷이다. 자기 자신이 직접 수행하지 않아도, 다른 이들이 성실하게 그리고 예민하게 캡처해 놓은 장면들을 통해, 추측과 의혹이 난무한다. 가령 개그우먼 곽현화의 경우. 그녀의 옷에서 유두가 삐져 나왔다, 이것은 유두가 아니라 조명의 문제다라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사람들에게 이러한 논란을 제시해 준 것은, 지나가는 장면을 포획할 수 있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기능 때문이었다. 곰플레이어나 KMP 등으로 논란 장면을 보고, 그 장면만을 캡처해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은 욕망. 그것이 실현된다.  

가슴노출과 영화문화 

이제 사람들은 90년대식 영화문화 관련 밀담처럼, "에로 영화는 아무리 그래도 이야기가 살아 있어야 해. 그런 에로 영화가 얼마나 좋은 줄 아니?"라는 구별짓기 놀이를 하지 않는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야동'. 이제 원하면 원하는 만큼 자신이 요구하는 어떤 상을 장르별로 볼 수 있는 세상에서, 더 욕망되는 대상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셀레브리티'의 노출이다. 지금도 인터넷 다운로드 시장에는 특정 영화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연예인의 베드신 모음집만 따로 업로드되는 문화가 이미 오래전부터 넘쳐났다. 가령 김혜수의 경우, 그녀가 베드신을 찍고, 노출을 감행했다고 해 화제가 된 <얼굴없는 미녀>는 영화 자체보다, 그녀의 가슴과 엉덩이가 보이는 편집본이 더 큰 인기를 얻는다.  

흔히 우리가 고수하는 작가영화의 존심? 그것도 가슴노출과 관련된 영화문화 안에서 퇴색된다. 적잖은 사람들은 홍상수의 다음 메시지를 궁금해하기도 하지만, 홍상수가 감독하는군, 그럼 이번에 참여하는 그 배우 또 벗겠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것을 연구 과정을 통해 알았다. 사람들은 <생활의 발견>에서 추상미와 엄지원의 노출 부분만을 딱 떼어 내거나, <극장전>의 엄지원이 보여준 노출을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품평하며, 영화 안에서 가슴을 떼어낸다. 이른바 물신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박찬욱도 예외는 아니다. <올드보이>의 강혜정이나, <복수는 나의 것>의 배두나에 대한 노출신을 복기하며, 사람들은 그녀들의 노출을 또 기대하는 놀이를 벌인다.)   

사람들이 여기서 어떤 포장 전술을 펼치기도 했다. 영화 자체가 좋아서 보다 보니, 그런 장면도 있는 거지 뭐에서부터 아예 목적 자체를 여성 배우의 노출이 과연 어떤 정도인가를 확인하고 싶어서라는 이유도 꽤 있었다. (최근에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의 김옥빈, 유하 감독의 <쌍화점>의 송지효,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의 조여정까지.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노출을 기대하는 스타가 누구누구인지를 미리 점찍어보는 대화를 커뮤니티 안에서 자주 유통시키고 있었다.)

진짜야? 가짜야? 

남성들이 많이 활동하는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면서 연구한 결과, 참여 유저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테마 중 하나가 여성들의 가슴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연예인들의 가슴 크기에 대한 의문들. 자연산인가? 성형인가?로 부터 시작해 유두의 색깔과 섹스경험이란 전혀 관련없는 루머들의 확산과 공유까지. 그 주제는 다양했다. 남자들은 대체로 성형 가슴을 판별하는 이른바 '판단 놀이'를 자주 감행했는데, 여배우들의 섹스신 때, 가슴이 봉긋 솟아오른 형태로 유지되냐? 아니면 평평하게 펼쳐져 있냐?를 몇몇 영화의 캡처 장면을 대상으로 나름의 분석들을 내놓았다. (나는 최근 개봉한 <방자전>의 주연 배우 조여정의 노출을 두고 인터넷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주목했는데, 내가 앞에서 설명한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다.) 

가슴 노출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가슴 노출을 둘러싼 기사들을 분석하고, 또 사람들이 가슴을 노출했다고 주목하게 된 현상을 볼 때, 과연 가슴 노출에서, 가슴은 어디까지를 지칭하는 것인가에 대한 판단 기준이 애매했다. 가령 90년대 섹시 아이콘이었던 '룰라'의 여성보컬 김지현이 노출이 심한 상의를 입고 퍼포먼스를 했는데, 며칠 후 관련 기사를 보니, 기사에서 '가슴 노출'이란 표현을 쓰고 있었다. 근데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가슴 노출에서 중요한 건 '여성의 유두가 드러났는가, 안 드러났는가'의 문제로 나뉘어지고 있었다.  

가슴 노출의 정치학 

당시 이 연구를 하면서 연구자로서 갈등했던 윤리적 태도가 있었다. 일단, 나는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삼는 가벼운 소재주의로 논문을 쓰고 싶지 않았다. 과연 가슴 노출을 둘러싼 연구가 있었을까? 그러다가 찾은 책 두 권이  

 

 

 

 

 

 

 

예릴린 멜로의 <유방의 역사>와 한스 페터 뒤르의 <에로틱한 가슴>이었다. 여성의 유방이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유의미한 관련성이 있는가를 연구한 두 책에서, 나는 가슴노출의 정치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한스 페터 뒤르는 '문명화이론'을 주창한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반기를 든 학자로서, 한길사에서 나온 그의 시리즈가 더 있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신체와 그것에 관련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의미들을 고찰하는 책 시리즈인데, 문명과 야만, 그리고 이 안에 개입하는 근대적 시선이 어떻게 주조되고 충돌하는가가 궁금하다면, 또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이론에 반기를 든 그의 이견이 궁금하다면, 권하고 싶은 시리즈다.   



장 푸케가 그린 <믈룅 성모 마리아>(1451~1452경)

예릴린 멜롬의 <유방의 역사>는 대중이 읽게 쉽도록 쓴 역사서 성격이 강한 책이다. 특히 그녀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국가가 여성의 유방을 어떻게 이용하는가를 알기 쉽고 명확한 사례로 설명한다. 가령, 중세 프랑스 사회에서, 여성의 수유 행위가 국가 이데올로기와 만났을 때, 그 모성성이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미화시키는가에 대한 그녀의 시선은 제법 탁월하다. 또, 유방암에 걸린 여성운동가들이 자신의 절제된 가슴을 노출한 채, 길거리에 나가 사회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 때, 가슴 노출이 갖는 저항에 대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의 고민을 던져주기도 한다. 

윤리의 충돌 

이 연구를 수행하면서 부딪혔던 어떤 윤리의 충돌. 내가 까뜨린느 브레이야의 영화를 볼 때, 그녀가 생각하는 여성 스스로의 성적 주체로서의 행위와 그 의도성을 나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가의 여부. 과연 브레이야의 시선을 올바르게 정당화시키는 게 당연한가의 여부, 그녀의 의견을 올바르게 소비한다는 것 자체가 도리어 그녀의 의도 자체를 또 한 번 관음증적 시선으로 포장하여 보고 있지 않았는가의 여부가 연구 과정 중에서 스스로에게 제기한 고민거리였다.  

구성주의적 관점? 

버틀러의 의견을 받아들여, 남자의 경우 / 여자의 경우를 다시 고민해보기. 남성 또한 흰 와이셔츠를 입을 때 런닝을 입지 않는 것이 패션 에티켓이라고 알고 있다. 가령 학교 교정을 거닐다보면, 흰 와이셔츠만을 입고 다니는 남자들이 보인다. 그 남자들의 젖꼭지가 그대로 보일 때, 그 노출에 대해 우리가 품을 수 있는 의미들과 또 차이들은 과연 무엇일까? 이것은 섹슈얼리티 자체로 다져진 어떤 자연적 본능으로 마무리되는 것일까? 아니면, 아주 고도화되고 자연스러운 형태로 채워진 훈련의 언어들이 우리를 이런 시각성으로 유인하도록 하는 담론의 '수행성'이 문제인걸까?  

다시 성경을 펴고, 선악과를 먹고 나서, 잎으로 자신들의 몸을 가려 부끄러워했던 아담과 하와를 상상한다.  



마솔리노 다 파니칼레가 그린 <아담과 하와의 유혹>(1426경) 



마사초가 그린 <낙원 추방>의 이미지들.  

왜 하와는 가슴을 가렸을까? 화가의 시선이 어떻게 개입된 걸까? 문명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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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6-06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잘 기억은 안나요,,그래서 제 기억이 맞는지 자신없다는,,) 들은 이야기 인데요,,,여탕에 불이났을 경우 세종류의 여자들이 있다고 하는데 발가벗은 몸으로 뛰어 나올때 어떤 여성들은 얼굴을 가리고 뛰어 나오고, 어떤 여성은 가슴을,,뭐 그런 얘기 였는데 가슴을 가리며 뛰쳐 나오는 여성의 유형은 체면을 중요시 하는 유형이라고 한것 같은,,,암튼 여성인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글이 있어 새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시네요~.

얼그레이효과 2010-06-07 03:14   좋아요 0 | URL
여탕에 불이 난 경우 이야긴 참 오랜만에 듣네요.^^

2010-06-06 0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7 0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8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yolly 2010-06-16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회학을 전공했고, 미디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아티클 잡기에 아주 적절한것 같소
다만 너무 광범위하게 넓혀 놓은 카테고리 바운더리에 그 유효적절한 타당성이 좀 흩어지는것 같소
젠더의 억압 얘길 할려는건지, 여성성의 상징화 쪽인지... 아님, 그냥 미디어적 신체 물화 인지...
그 어느쪽도 그동안 많이 얘기 나온 담론이라 새로울게 없는 분야라, 그냥 처음 제시한 아티클에서
더 깊이 들어가는게 가장 나아 보이오. 그리고, 표현 중 조향기의 사례는 사진 없이 그냥 글로 봐서는
못 본 사람들에게 오해를 줄듯 하오. 당시 생방송으로 생생히 (물론 나중에 캡쳐도 봤지만) 본 사람으로서
수중카메라가 수면에 걸쳐서 떠 있는 조향기를 잡았는데, 물속에 잠긴 비키니중 물에 빠질때 내려치는 힘으로
브라가 위로 반쯤 말려 올라가 화면 맨 아랫쪽에 유두가 잡힌것이오. 아주 선명하게 정면으로 콱 박힌건 아니오
그런일이 발생하는건 방송국 편집실의 모니터가 온에어 되는 화면 사이즈 보다 작기 때문이오
편집할 때는 2개의 모니터가 필요하니 (소스, 편집본) 두개 다 보기 어려워 모니터 크기가 조금 작소
그래서 그 찰랑찰랑 수면 밑의 모습이 편집 모니터에선 보이지 않았소. 그런 일이 있는 것이오
물론, 그렇다고 면책이 되는건 아니오. 한번 편집 되는게 아니라 종합편집까지 되는데 그 때는 큰 모니터로
보니깐 걸려져야하오. 하지만 당시 공중파 제작 방식이 워낙 초치기 작업이 되다 보니
시간에 쫒겨서 제대로 모니터 하지 못하고 그냥 가편집 된 대로 쭉 밀고 나갔을 것이오
암튼 난 그 셀러브리티의 니플 노출에 대해선 신선한 소재 같소. 그냥 철저히 여배우의 편에서
그들이 왜 노출을 감행해야 하고, 노출을 감행한 후의 반응에 대한 시대적 차이나, 호응도 등에 대해선
연구할 가치가 있는듯하오. 우리나라 여성 90%에 해당하는 납작하고 작은 가슴에 대해서
셀러브리티와 동질감 혹은 차별성에 대한 반응? ㅋㅋ 사실 남자에겐 재밌는 아티클이오. 나도 뭐
색다른건 없고, 비슷한 생각을 해봤고, 나름 그 쪽의 많은 자료를 소장하고 있어서 그런가보오.
좋은 글 잘 봤소.
아 마지막으로 그쪽으로 오래 수행하다 보면, 아무래도 일본쪽과 줄이 닿지 않을 수가 없소
물론 소라 아오이 같은 요즘애들 얘긴 아니오. 6~70년대 일본 핑크영화에 대해서 한번 관심 있음
찾아서 보시오. 그 방면에서 놀라운 발견을 할것이오. 한국과 일본의 은밀한 (그당시는 문화교역이 없던때이니)
문화교류에 대해서 연구해 본다면 어떨까 하오

얼그레이효과 2010-06-16 14:12   좋아요 0 | URL
소중한 정보 고맙습니다!
 

동무 참참의 고향 가는 길을 배웅해주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탔다. 해군 정복을 입은 익명의 사람에게 문득 말을 걸고 싶어졌다. "천안함 때문에 많이 힘들죠?. 좀 달라진 게 있나요?", 속으로 이 사람 뭐야? 싶었겠지. 하지만 청년은 제법 차분하게 "그렇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어색함을 깰려고, "저는 해상병 468기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제가 해군2함대 정훈공보병 출신인데.."라며, 어색함을 무릅쓰고 한 몇몇 이야기에 대한 필연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다. "아..네."청년은 창 밖에 비친 어느 젊은 여성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청년을 안 보는 척하려고, 지하철 노선도를 슬쩍 봤다. 

그리고 다시 어색한 상태. 손녀로 보이는 꼬마가 할머니 등에 자기 꼬딱지를 묻히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잠들었다. 

내렸다. 아, 사람많다. 입에서 아이스 카페모카 마시면 나는 달달한 탄 내가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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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문제는 해결했다. 이제 다른 한 가지 문제가 남았는데, 이게 큰 산이다. 아무래도 총장과의 면담까지 가야할 것 같다.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졸업을 앞둔 다음 학기까지 지루하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갈등의 선을 넘어야 할 듯하다.

내가 그동안 제기한 문제에 대해 답변을 대신해 준 교수님은 공개게시판을 통해, 다른 학생들에게 내가 했던 요구들처럼 더 요구하는 문화, 이런 요구를 공론화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라고 오히려 촉구했다.  

교수님의 답변을 통해 양심과 정의가 살아있어서 다행임을 확인했다.  (특히 교육 현실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희망을 본 전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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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05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 되었네요.
다른 문제도 잘 해결될 것만 같습니다.
아~~외롭고 힘든 길일거라고 걱정했었는데, 어느정도 보람도 찾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희망과 함께 할 수 있다니...오히려 의욕도 불끈불끈 하시겠다?!
얼님~~홧팅!!!!

얼그레이효과 2010-06-05 14:57   좋아요 0 | URL
제가 빨리달리기보다는 오래달리기를 좋아하는데요. 학교가 저라는 벌집을 쑤셨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한 번 보여주고 싶어요.ㅎ 고맙습니다.

롱롱 2010-06-05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엊그제 정말 우연히 반가왔어요! 아무튼 고민하시던 문제가 일부나마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다행이고 잘 되었어요. 그 얘기도 만나면 해주세요^^ 조만간 봐요,

얼그레이효과 2010-06-05 14:58   좋아요 0 | URL
저도 반가웠어요. 문화학과 분들은 제가 수업때로만 봤지만, 사람들이 포근하고 좋더군요. 롱씨의 학업에도 좋은 영향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