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 - 모던 뽀이에서 N세대까지
마정미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11월
절판


원칙적으로 공익광고는 국가의 이념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다. 외국의 공익 광고는 대부분 각종 재단과 민간단체 등에서 진행한다. 국가의 이익을 공익광고로 실현하려는 욕구는 정부의 독선과 편견을 조장할 따름이다. 거기에는 정부의 이익과 개인의 욕구 사이의 조절기능이 상실되고 모든 개인의 욕구를 정부의 이익 안에 포함시키려는 관료의 지배욕이 드러날 뿐이다. 1980년대 군사정권 아래 공익광고의 주제로 가장 많이 다뤄진 것이 '질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86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은 1980년대 내내 대중의 일상과 의식을 옭아맨 대규모 의식조작의 수단으로 기능했다. 집권세력은 "올림픽 개최는 곧 선진국"이라는 기묘한 공식을 내세우며 대회 유치를 자신들의 치적으로 내세웠고, '질서'와 '화합'이라는 명목 아래 강력한 통합과 억제의 수단으로 이를 이용했다. 올림픽 유치와 함께 보신탕집이 불법화되고 영어 조기교육 붐이 불어닥친 것도 기억해둘 만하지만, 1980년대 내내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불시에 튀어나와 우리의 말과 행동을 거침없이 옥죄곤 하던 '질서'의 구호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궁극적으로 어떤 의도의 산물이었는지를 잘 보여-202쪽

준다. '질서'의 구호는 교통질서 차원에서 머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하나의 방향으로 몰아간 일종의 억압적 콤플렉스 기제에 해당하는 것이었다.-202쪽

1988년 즈음부터 우리의 소비문화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여기엔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미온적이기는 하지만 개헌, 대통령 직선제 등의 민주적 절차를 지나오면 언론기본법 폐지 등의 정치적 사회적으로 변화된 상황이 작용했다. 물론 가장 큰 요인은 88올림픽이다. 이제 소비재가 넘쳐나고, 그동안 퇴폐문화라고 거부했던 소비문화를 대학생들이 거리낌 없이 향유하기 시작하면서 바야흐로 혁명의 시대는 욕망의 시대로 접어 들어가게 된다. -217쪽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소비재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수출역군이던 가전 3사들은 내수시장에 전력을 다했고 광고는 전자제품의 경합장이었다. 특히 백색 가전이라 불리는 세탁기, 냉장고, 전자렌지 등과 흑색 가전이라 불리는 텔레비전, 비디오 등의 생활용품들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컬러텔레비전의 보급과 함께 그 뒤를 이어 VTR이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문화전달매체로 자리잡아갔다. 1987년까지 전체가구의 약 14.6% 수준이던 한국의 VTR 보급률은 올림픽(217) 특수 덕에 1988년 보유대수 260만 대를 넘어서 평균 5가구에 1대꼴로 보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90년대에는 350만 대로 늘었으며 92년 1월의 갤럽조사에 따르면 그 보급률이 54.2%로 나타났다. -217~218쪽

금성, 삼성, 대우 등 가전 3사는 당시 올림픽을 겨냥하여 간단히 예약녹화를 할 수 있는 대신 다른 기능들을 간소화한 '올림픽형 VTR'을 일제히 출시하고 대대적인 판매경쟁을 벌였다. 직장업무나 학업 때문에 올림픽 경기를 제시간에 감상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올림픽의 감격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지 않으냐고 유혹했다. -218쪽

그 이전까지 VTR과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비디오 하면 떠오르는 것이 음란물이었기 때문이다. 꽤 오랫동안 각종 비디오테이프에 의무조항으로 삽입되던 문구가 있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법비디오들을 시청함에 따라 비(218)행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우수한 영상매체인 비디오를 바르게 선택 활용하여 맑고 바른 심성을 가꾸도록 우리 모두가 바른 길잡이가 됩시다. 한 편의 비디오, 사람의 미래를 바꾸어놓을 수도 있습니다."-218~219쪽

비디오 마니아들에게는 <대한뉴스>처럼 떠오르는 추억의 문구이다. 호환, 마마라니 이미 그 당시에도 시대착오적인 비유였지만 오늘날 되돌아보면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문구이다. 여하튼 VTR의 보급으로 인해 시청각문화활동은 수동적 성격에서 개인의 개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능동적 성격의 것으로 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VTR의 발달과 폭넓은 보급은 비디오테이프 대여점이라는 새로운 업종을 탄생시켰으며, 주말이나 공휴일의 비디오 감상은 도시민의 자유로운 여가활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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