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롱이의 꿈 ㅣ 동심원 11
이옥근 지음, 안예리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9월
평점 :
2006년 제4회 ‘푸른문학상’을 수상한 시인들의 작품집 <방귀 한 방>으로 만났던 이옥근 시인의 첫 동시집이라 반가웠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으로 고딩들과 생활하며 동시를 쓴다니 의외였다. 순수한 동심을 간직한 고딩들도 있겠지만, 입시에 각박할 일상에서 동시의 소재를 찾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서.^^
<방귀 한 방>에서 만났던 시가 11편 실렸는데, 같은 시를 다른 삽화로 감상하는 맛도 나쁘지 않았다. 시인이 온갖 시어로 한 상 가득 차린 밥상을 받는 기분... 가을과 어우러져 더욱 좋았다.
시인처럼 세상 보는 눈을 가진다면 우리도 시인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시인의 눈은 누구나 갖는 것이 아니고, 거저 얻는 것도 아니다. 어린이처럼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아야 그런 눈을 갖게 되나 보나. 시인의 시를 소리내어 읽어보면 절로 동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사물을 사람처럼 대하는 겸손한 마음, 작고 하찮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안타까운 일을 만나면 같이 아파하는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알록달록 예쁘고 따듯한 시들을 쏟아낼 수 있겠다.
호기심을 잃지 않은 시인이 발견한 것들이 새롭다. 일상에서 늘 대하는 것들을 무심코 지나는 나와는 전혀 다른 눈을 가진 시인이 부럽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지 동시집을 볼때마다, 술래잡기 선수 같은 시인에게 감탄사만 날린다.
장롱 속 옷걸이
무엇이
궁금해서
??????
바깥세상
궁금해서
??????
이런 표현은 정말 아이들 아니면 생각해내지 못할 거 같다. 혹시 시인 곁에 있던 아이들이 한 말을 시로 옮긴 것은 아닐까?^^
내 동생
오랫동안 꿇어앉아
벌 받던
내 동생
일어서려다
힘없이 주저앉으며
울먹인다.
-엄마,
발가락이
사이다를 먹었나 봐.
<나는 뚱보 시침 바늘> 엄마따라 학교 운동장을 억지로 도는 아이는 엄마는 날씬한 초침, 강아지는 분침, 뚱뚱한 나는 시침이라 노래한다. <우리집 냉장고가 죽었습니다>에서는 끙끙 앓던 냉장고가 집을 비운 사이에 죽어버려, 돈 들어갈 일에 심란한 엄마 마음을 읽어내고, <아저씨, 이만해요>는 엘리베이터 탈때는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엄마 말처럼, 공연히 같이 탄 아저씨를 의심했던 미안한 마음을 그려냈다. 표제작인 <다롱이의 꿈>에서는 한달 간 가둬 기른 다람쥐를 뒷산에 놓아 준 후, 다롱이가 베란다 화단에 묻어 둔 해바라기 씨앗이 음표처럼 싹을 튀웠다는 걸 발견한다. 술만 마시면 큰소리 뻥뻥 치는 아빠가 좋다는 <큰소리 뻥뻥>에선 가진 것 별로 없는 평범한 아버지의 고단한 일상을 그려냈다. <횡단보도 사다리 타기>는 횡단보도에 그어진 줄을 사다리로 생각하는 아이가 등장하고, 주인을 닮은 신발장의 실내화들이 시끌시끌 떠들다가, 선생님처럼 뒷짐지고 지나는 내 모습에 조용해졌다는 <에헴, 오늘은 내가 선생님이다>는 사랑스럽다.
방앗간 고추씨
토옥! 튀어 나간
방앗간 고추씨 하나
문 앞
시메트 바닥의 갈라진 틈
한 줌도 안 되는 흙에
뿌리 내리고 싹을 내어
세 뼘 키로 자랐다.
방앗간 주인이
어린 고추 다칠까 봐
막대를 대고 묶어 주니
겨드랑이마다
하얀 별꽃 초롱초롱
초록 고추 대롱대롱
옆집 옷 가게
길 건너 식당
방앗간 손님들
오며 가며 한마디씩 한다.
-고것 참, 대견하구만!
고추 씨에서 나온 싹 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이미 시인의 마음과 눈을 가진 시인들이다.
어른들의 삶에서 묻어나는 고단함을 따뜻하게 감씨 안은 -은행나무, 우리 동네 가게, 신호등 앞에서, 웃는 얼굴, 날아라 연탄- 시, 자연의 소중함을 노래한 - 귀뚜라미야 안녕, 갯벌 마을 철새- 시,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이 녹아 있는 시 등 다양한 소재로 풍성한 감성을 노래한 동시집을 읽으며 동심에 풍덩 빠져 보는 가을밤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