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다이어의 신간 《인간과 사진》



역자와 출판사가 바뀌어 다시 소개 된 《그러나 아름다운》《지속의 순간들》




인간과 사진

: See/Saw

제프 다이어(Geoff Dyer) | 김유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



 

오늘 로쟈님의 포스팅을 보고 제프 다이어의 책이 이번에 세 권 더 출간된 것을 알았다. 작년에 이어 다이어의 책이 계속 소개가 될지 기대된다. 제프 다이어는 영미권 작가로는 상당히 인정을 받는 작가인 듯하지만, 그동안 국내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제프 다이어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라서 이번 기회에 신간을 비롯하여 국내에 소개되었던 책들을 개인적인 관점에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번에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제프 다이어 3종 중 그러나 아름다운 (But Beautiful)지속의 순간들 (The Ongoing Moment)는 출판사와 번역자가 바뀌어 재출간된 책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신간은 인간과 사진(See/Saw)이 아닐까 싶다. 앞의 두 권은 절판이 빨리되었고, 일부 '욕심 많은' 중고책 판매자들이 책의 가격을 정가보다 높게 설정해놓아 안타까웠다. 이번에 새로운 표지와 번역자로 새로 출간되어 반가운 마음이다.


 

이 중 그러나 아름다운는 재즈 역사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인물들의 모습을 담아낸 책이었다. 다만 계속 이어지는 대화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아 처음에는 다소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제프 다이어는 독특한 방식으로 써나갔다. 앨범 <Koln Concert>로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의 추천글도 보이고, 작가가 되기 전에 재즈바를 운영하기도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 책을 직접 일본어로 번역한 모양이다. 알랭 드 보통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라고 밝힌 제프 다이어의 독특한 재즈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지속의 순간들은 사진에 관한 비평서다. 제프 다이어는 다재다능하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작가다. 음악뿐만 아니라 사진에도 관심을 갖고 글을 써왔다. 특히 미술평론가 존 버거와의 인연이 깊다. 존 버거의 사진 비평서 사진의 이해(Understanding a Photograph)에 엮은이로 참여했고, 서문을 직접쓰기도 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제프 다이어는 사진에 관한 안내인의 역할을 했던 세 명을 언급한다. 해당 책의 저자인 존 버거(본다는 것의 의미)와 사진론에 관한 책을 써낸 롤랑 바르트(밝은 방혹은 카메라 루시다)와 수잔 손택(사진에 관하여)이었다. 제프 다이어는 사진론에 중요한 화두를 던졌던 이 세 사람의 글을 읽어 왔고, 자신만의 비평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전에 나왔던 판본으로 읽어본 기억으로는 지속의 순간들역시 이 세 사람의 맥을 있고 있으며, 작가로서 보다 대중적이고 친숙한 사진 에세이를 선보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책에서는 근현대 사진가와 사진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아가 수잔 손택과 롤랑 바르트의 계보는 아우라라는 개념을 소개한 유대계 언어철학자이자 비평가 발터 벤야민의 사진론(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할 수 있다.


 

존 버거의 회화 및 예술에 관한 글을 좋아했던 독자라면 다이어의 사진 에세이도 좋아할 것 같다. 이번에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인간과 사진지속의 순간들과 어떤 점이 다를지 궁금하다. 지속의 순간들의 경우, 1800년대 사진의 발명 이후부터 대중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사진가들을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시각에서 살펴보았던 시도였다. 이번에 나온 신간의 경우, 일단 목차를 참고해보면 사진 교과서에 많이 나오던 사진가들 이후의 현대 사진가들을 많이 다루었다는 인상을 준다. 개인적으로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도 나누어 본 사진가 한 명도 나와서 흥미롭다. 이 책의 2부에 정리되어 있는 글의 제목을 보면 수록된 글들이 모두 2010년대 이후의 글들이다. 지속의 순간들의 원서가 이미 2005년에 출간된 것을 고려하면, 인간과 사진은 사진에 관해 쓴 책 이후에 저자가 사진에 대해 써온 글들을 모은 것이다.


 

내가 제프 다이어를 처음 만났던 계기는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라는 에세이집이었다. 저자가 어떤 글을 써온 사람인지 아무런 정보 없이 손에 들었던 책이다. 제목만 보면 에세이가 싱겁고 가볍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존 버거의 책을 많이 번역했던 김현우 번역가여서 장바구니에 담았을 것이다. 소설과 에세이를 모두 쓰는 작가의 경우, 나는 작가가 쓴 소설과 에세이에 대한 취향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 경우엔 제프 다이어의 소설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아직 소설에 대한 안목이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장르별로 개인적인 취향이 잘 맞는 작가를 찾는 것도 독자의 권리 아닌가.


 

나는 무엇보다 제프 다이어의 에세이를 읽고 매료되었고, 여전히 좋아한다. 이를 테면,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에서 그리스 신전이 있던 유적지를 방문한 여행에서 다이어가 폐허를 응시하며 써내려간 장면이 나온다. 나는 아직도 이 장면이 마음에 들어 기억에 남았다. 작가의 묘사가 생생했고, 그의 생각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 장면을 읽고 그가 시각 예술도 하는 예술가인줄 알았다. 비평가이지만 화가이기도 했던 존 버거처럼 말이다. 그의 책을 좀 더 찾아보려 검색했더니 나온 책이 바로 지속의 순간들이었다. 그의 에세이에는 그의 성격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다. (이게 영국식 유머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웃게 만드는 대목도 종종 나온다. 때론 가볍지만 싱겁지는 않고, 나름 진지한 매력이 있는 것이 그의 에세이가 보여주는 매력인 것 같다.


 

현재 국내에 소개된 작가의 소설은 2권으로 알고 있다. 내가 널 파리에서 사랑했을 때베니스의 제프, 바라나시에서 죽다이다. 베니스는 아직 읽지 못했는데, 현재 품절 상태다. 내가 널 파리에서 사랑했을 때의 경우, 몇 년 전에 읽었던 기억으로는 내 취향은 아니었다. 소설의 작품성과 상관없이 당시에는 중년 남자가 20대의 사랑 이야기에 공감하고 몰입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제프 다이어는 내게 예술과 여행, 그리고 자기 탐구에 대한 매력적인 에세이를 쓰는 작가다. 그의 에세이가 계속 나온다면 독자로서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영국 작가로서 다이어는 D. H. 로렌스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작년(2021)에 출간된 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는 저자가 로렌스에 관한 연구서를 쓰겠다고 선언한 후 연구서를 쓰지 않을 온갖 종류의 변명을 해대는 재미있는 책이다. 결국 연구서를 쓰긴 했지만, 이 단계는 책이 이미 거의 다 끝나가는 시점에서 등장한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끊임없이 글쓰기를 미루고 연기하는 이유를 찾는 과정이다. 독자가 보기엔 그가 그저 게으른 작가로 보일 수 있겠지만, 저자는 이 과정에서 로렌스의 삶에 대해 꽤 깊은 이해와 통찰을 보여준다. 엄살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D. H. 로렌스의 삶에 다가가는 다이어의 좌충우돌 탐구과정이 담겨있다. 다만 이 책은 표지 디자인과 만듦새가 다소 아쉬웠다. 이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로렌스에 대한 관심이 더 생겨서 로렌스의 자전적 에세이집 귀향도 찾아 일게 되었다. 이 책은 두껍지 않지만, 글마다 로렌스의 내밀한 고민과 고통이 잘 드러난다. 다이어의 책과 함께 읽으면 흥미로울 것 같다.

 




 *[참고

아래의 사진 관련 서적들은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에 관련된 책들을 추가로 정리해보았다.


[1] 낸시 쇼크로스의롤랑 바르트의 사진은 바르트의 사진론인 

밝은 방(혹은 카메라 루시다)에 대한 정밀한 읽기와 비평글이다. 영문학자의 본격적인 비평을 읽어볼 수 있다. 


[2]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 사진과 시간의 현상학은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한 저자 김득환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바르트의 사진론에 대한 이해를 폭넓게 조망한다. 학위논문이었던 만큼, 이 책과 위의 책은 학술적인 성격을 지닌다. 


[3] 롤랑 바르트, 밝은 방은 바르트의 사진론을 10 가지 키워드로 접근한다. 미학/미술사 전공인 저자 박상우 교수의 밝은 방읽기를 일반 독자가 다가가기 쉽게 제시하고 있다. '스투디움'과 '푼크툼'이 사진 이론에 많이 언급되지만, 롤랑 바르트가 자신의 책에서 '취소의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박상우 교수는 이 지점에 주목한 대목이 인상깊다. 과연 이 두 개념만이 사진 이론과 읽기의 핵심일까를 다시 생각해본다.


[4] 사진이란 이름의 욕망기계은 미술평론가인 장정민의 사진론을 담고 있으며, 바르트의 사진론을 비롯하여 일반적인 사진에 대한 에세이를 접할 수 있다. 사진 전공자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들일 수 있겠지만, 사진에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에게는 친숙하게 읽을 수 있겠다. 이미 익숙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기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2-03-04 14: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제프 다이어가 이런 책이었군요. 급관심이요!
특히 <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 읽고 싶네요.^^

초란공 2022-03-04 22:37   좋아요 3 | URL
지금 생각해보니 제프 다이어는 엄살왕이 아닐까 싶기도요^^;;
어떻게 연구서가 안써지는지에 대해서 책 한권을 쓸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ㅋ

레삭매냐 2022-03-04 15: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그러나 아름다운>이
번역 문제로 시끌했던 기억이
나네요.

작가 중의 작가라는 제프 다이
어의 책들이 새롭게 나온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초란공 2022-03-04 22:36   좋아요 2 | URL
로쟈님도 번역 문제를 살짝 언급하신 걸로 기억합니다. 이번에는 분야별로 번역을 맞긴 듯하네요. 저도 기대해봅니다^^
 
바다 인류 -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작인 《대항해 시대》 가 바다를 매개로 근대가 형성된 배경을 현미경적으로 들여다보는 시도라면, 《바다 인류》는 긴 호흡으로 인류 문명이 바다와 관계맺어온 역사를 조망한 작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문학자의 세상 읽기

: 망각에 대한 애도와 치유를 위한 밤의 시간들


- 황현산밤이 선생이다(2013) 읽고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지리를 파악할 겸 산책할 때였다. 이 지역은 낮은 언덕과 평지가 이어지는데, 언덕에는 주로 단독주택과 재개발된 소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모여 있었다. 반면 평지에는 재래시장과 주변의 대규모 뉴타운이 인접해 있었다. 골목길을 따라 가다가 단독주택 지역과 아파트 단지의 경계를 이루는 도로를 따라 걷게 되었다. 길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파트 단지는 언덕 위로 하늘을 절반쯤 가리고 있었고, 높은 담이 단지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의 한쪽 담벼락에는 도로변으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았기에, 나는 아파트 단지 내의 보도를 따라 산책해보려고 했지만 엘리베이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엘리베이터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만을 위한 시설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엘리베이터용 키를 지니고 있는 듯했다. 아파트 단지 주민이 아니면 아파트 담 주위로 나있는 계단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야 했다. 아파트 단지는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요새처럼 보였다. 이런 구조가 주변 지역과의 분리와 단절을 불러온다고 생각되었다. 당시에 내가 했던 생각들은 황현산의 칼럼집 밤이 선생이다를 읽으며 되살아났다.


 

해방 직전에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난 저자는 신안 앞바다의 한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칼럼집은 저자의 어린 시절 몸에 새겨진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그는 이 때의 기억을 마련해준 고향 섬이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삶의 준거가 되고 있다고 밝힌다. 1986년부터 2012년까지 사반세기에 걸쳐 쓰인 글들로부터 느낄 수 있는 정서는 망각에 대한 저항이었다. 저자의 외할머니는 가마솥에 바닷물을 넣고 불을 때어 얻는 화염과 햇빛에 말려 얻는 천일염 맛을 구분했던 분으로, 화염을 넣어 만든 제대로 된 오뉘죽 맛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안방의 술을 익게 하는 귀신’, 건넛방의 메주 띄우는 귀신과 함께한 시간들은 이제 세상의 편리와 자본의 논리에 덮여 사라져 버리고 저자의 마음 속 깊은 곳에만 남게 되었다. 저자는 글 속에서 자신의 오랜 기억을 심심찮게, 때론 집요하게 소환해내었다.


 

저자는 무슨 까닭으로 사라지는 것들에 이토록 안타까워하고 이들을 기억하고자 했을까? 사람은 태어나 언젠가는 세상을 뜨기 마련이고, 개인의 기억은 사라진다. 인류의 역사에서 무수히 반복된 이 과정에 한 사람의 기억이 사라지는 일이 대수인가. 하지만 계속 글을 읽다보면 저자가 말하는 기억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 한 공동체가 공유하는 집단의 기억까지 포함하는 듯했다.


 

사람의 마음속에 세상과 교섭해온 흔적이 남지 않고, 삶이 진정한 기억으로 그 일관성을 얻지 못하면, 이 삶을 왜 사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삶이 그 내부에서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밖에서 생산된 기호로 그것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191)


 

유독 유행에 민감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읽어내는 글에서 저자가 현대인의 망각에 줄곧 저항하는 이유를 일부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기억의 필요는 우리의 편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삶의 의미를 향하고 있었다. 저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집안의 여러 귀신우리의 고독한 몸을 세상 만물과 이어주는 연결선이며, 그렇게 맺어온 관계의 흔적이자 세상과 사랑을 나누었던 내력’(252)이었다. 우리 몸이 시간의 역사를 담고 삶을 기억하는 매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몸에 새겨진 기억들이 사라져버리면, 공동의 기억을 매개로 하던 사람들의 관계망 역시 콘크리트로 덮이듯 은폐되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영영 잊혀 지게 된다. 우리가 관계하던 땅과 그 땅에 발을 딛고 있던 사람들의 삶도 그렇게 사라진다는 의미다. ‘요새처럼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왕래가 차단된 아파트 단지를 걸을 때 내가 느꼈던 생각들과 다르지 않다. 한 지역에 거주하는 세대수는 월등히 많아졌지만, 아파트 단지 주변에서 사람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사람이 자신의 장소와 관계 맺기를 하지 못한다면, 삶이 줄 수 있는 가능성과 상상력은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화염과 천일염의 소금맛이 아니라 그저 짠맛만 남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달리 맞은편 주택가의 소규모 재래시장 주변에서는 꽤나 분주한 삶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요새처럼 폐쇄적으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에서 장소에 대한 기억과 상상력의 소멸을 우려한다.


 

저자는 기억이 없으면 윤리도 없다”(204)고 예술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가 말하는 기억은 부끄러움을 자각하는 상상력과 결부되어 있다. 이 상상력은 타인의 고통과 상처에 반응하고 공감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몸에 각인된 기억이 사라질 경우, 저자는 우리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용산 철거 시위 사건을 두고 192인의 문인들이 공동 선언을 하고 이를 글로 쓴 일은 무엇보다 이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들의 선언은 슬픔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기도였을 것이다. 또 집단의 기억을 보존하는 것에서 나아가 공동체의 공감하는 능력을 지켜내려는 다짐이기도 했을 테다. 재개발 아파트 단지가 불러온 단절, 대규모 뉴타운의 인적 없는 거리와 임대간판이 내걸린 수많은 빈 가게들을 보면서 했던 생각은, 저자가 밝고 깨끗하고 번쩍거리는 폐허’(51)라고 언급한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의 기억을 덮고 사람의 자리를 외면한 개발의 결과는 결국 사람이 제 땅에서 망명객이 되는’(51) 삶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징후를 읽고 글로 말하고 있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사람의 몸에 기억을 지닌다는 말은 삶의 깊이를 지니고 사람과 그의 삶을 존중하는 맥락’(97)을 고려한다는 의미다. 이는 그 사람이 살아온 장소와 시간의 복원을 전제한다. 인간을 획일적인 소비 대상으로 치부해버리는 무감각에 저항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고 이에 공감하는 상상력을 확보하여 어디에나 사람이 있음’(244)을 감지하는 일이다. ‘요새와 같은 아파트 단지는 장소와 관계 맺어온 사람들의 기억을 차단하고 사람에 대한 상상력을 빼앗아 가버린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여지, 내 안에 타인이 설 자리를 애초에 지워버린다. 따라서 시간 속에서 장소와 관계 맺어온 사람을 기억하는 일은 우리가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고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길이다. 저자는 이를 시를 읽을 때처럼 우리가 잠시나마 비로소 사람이 되는’(245)일 이라고 표현했다.


 

앞서 언급한 아파트 단지의 개발 방식과 뉴타운의 모습은 우리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게 만드는 사례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청계천 복개 과정을 이야기한다. 청계천 복개 후 정리 과정에서 개발 주체 및 관련자들은 상인들과 주민들을 불암산 자락으로 내몰았다. 이 관행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로 이어졌다. 정부와 개발 주체가 주도하여 마을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구럼비 바위와 맺어온 기억을 파괴한 셈이다. 이는 공동체에 망각을 강요한 폭력이었다. 우리가 계속해서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눈앞의 현안으로 이를 가려버릴 때, 저자가 말하는 덮어 가리기 근대화’(111)의 모습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에서 저자가 기억을 붙들고 저항하고자 했던 이유다. 우리가 이런 일들을 영원히 망각해버리고, 슬픔을 함께하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마저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심지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땅이 그 기억을 간직하지 못한다면, (...) 한 사람이 이 땅에서 백년을 산다 한들, 단 한순간도 살지 않은 것이나 같다”(59)고 말이다. 인간이 삶에서 관계 맺은 모든 것들에 대해 기억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우리 정체성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밤이 선생이다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 혹은 잃고 있는 대상에 대한 애도하기를 일관된 태도로 보여준다. 청계천 복개 사업이나 강정마을 미군기지 건설에서와 같이 덮어 가리기 근대화는 집단적인 망각을 초래했고, 고통과 상처를 남겨놓았다. 저자는 공동체 앞으로 다가온 망각에 끊임없이 저항했다. 우리는 삶에서 늘 패배하곤 하지만, 이따금 누군가는 공동체가 떠안은 상처와 슬픔을 치유할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문학비평가인 저자는 시에 그 희망을 걸어 보기도 한다. 삶에서 얻은 좌절과 슬픔, 분노를 시를 통해 왕성한 생명력과 더불어 기억해낼 수 있다면, 이 모든 것을 삶의 깊이로 만들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가 시는 기억술’(204)이라는 말을 믿는 이유다.


 

저자가 주목한 관점 중 인상적인 것 하나는 그가 갈구하는 희망과 치유의 가능성이 밤의 시간에 속한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낮의 시간은 이성과 사회적 자아의 시간인 반면, ‘밤의 시간은 상상력과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또 밤의 시간은 낮에 발생하고 겪었던 슬픔과 상처를 문학, 특히 시를 통해 치유하고 봉합하며, 새살을 돋게 하는 소생의 시간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밤의 시간은 잃어버린 기억을 복원하는 시간이기도 하겠다. 이미 150년 전에 보들레르는 잘 정비된 도시의 모습에서 기억이 사라지고 상상력이 소멸된 폐허의 모습을 어둠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전했고, 괴테는 그보다 더 일찍 밤의 말이 지닌 힘을 간파했던 것 같다.


 

하늘 높이 머물러라

 사랑스러운 루나여,

 언제까지나 밤이도록 자비를 베풀어라

 낮이 우리를 쫓아내지 않도록!”  (*)


 

이 대목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요정 세이렌들이 에게 해의 바다 위로 떠오른 달을 보며 노래하는 대목이다. 이 세이렌들처럼 저자는 독자들이 각자의 은밀한 시간을 통해 기억과 상상력을 회복하고, 상처와 슬픔을 치유하며 소생해나갈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다만 그가 떠나고 없는 이 세계는 어둠의 입을 통해 기억을 전하던 그리오 Griot한 명을 더 잃게 된 셈이다





(*) 출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김인순 옮김, 열린책들, 2009, 318






[1] "언제나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 글쓰는 사람이 된다.", "그것을 잊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32)
- 「그 세상의 이름은 무엇일까」(2009) 중에서

[2] "그 시인이 시인이기 때문에 30만원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기 때문에 30만원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어야 한다."(37)
- 「30만 원으로 사는 사람」(2010) 중에서

[3] "뱀처럼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광장으로 바뀐 자리에서 제 삶의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제 땅에서 망명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50)
- 「산딸기 있는 곳에 뱀이 있다고」(2010) 중에서

[4] "강에 댐을 쌓고 하안 공사를 하고 난 후 나루터가 없어지고 나니 거기서 일하던 기억도 사라지고 말았다고 늙은 사공들은 대답했다."(60)
- 「기억과 장소」(2010) 중에서

[5] "어떤 비평가는 작가의 윤리와 작품의 윤리를 구별해야 한다면서,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는 윤리적으로 순결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가 훌륭한 작품을 썼기에 훌륭한 작가로 인정된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이 예는 적절치 않다. 발자크는 자기 안에서 들끓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자기 시대 비판의 창조적 열망으로 바꿀 수 있었기에 훌륭한 작가로 성장하였다. 반면에 친일 작가들의 친일 행위는 그들이 애초에 지녔던 창조적 열망까지도 메마르게 만들었다."(84)
- 「<고향의 봄> 앞에서」(2011) 중에서

[6] "김수영 시인이 <사랑의 변주곡>에서 말했던 것처럼 제 마음 속의 복숭아 씨와 살구 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고 그 힘을 창조력의 밑받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판단하고 선택하기 전에 모든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가려놓은 채, 생명에 삽질을 하고 시멘트를 발라 둑을 쌓아둔다면, 거기 고이는 것은 창조하는 자의 사랑이 아니라 굴종하는 자의 증오일 것이다."(100)
- 「금지곡」(2010) 중에서

[7] "이 주소의 역사는 서울이 그 주변을 식민지로 만들고, 그와 관련된 서민들의 삶을 식민화한 역사와 같다."(111)
- 「덮어 가리기와 백사마을」(2011) 중, 중계동 104번지에 있던 백사마을을 언급하며

"청계천 복개는 내가 ‘덮어 가리기 근대화’라고 부르는 것의 전형적인 예이다."(111)

[8] "표절이 명백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학위를 준 대학이 학위를 취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학이 아닐 것이며, 그 사람이 계속 교수로 남아 있는 대학도 대학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천해도 그 고통까지 마비시키지는 못한다."(124)
- 「시대의 비천함」(2012) 중에서

[9] "사람의 꿈은 사람 속에서 피어나 사람과 동행하지만 반드시 사람과 같은 방향에 시선을 두는 것은 아니다. 이 겨울의 개는 우리가 흔히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신이다."(152)
- 사진가 강운구의 사진을 다룬 「겨울의 개」중에서

[10] "사실은 공허하게, 움직일 수 없이 거기 있기에 다른 것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사실주의 예술의 뛰어난 미덕이다."(163)
- 사진가 강운구의 사진을 다룬 「찌푸린 얼굴들」중에서

[11] "사람의 마음 속에 세상과 교섭해온 흔적이 남지 않고, 삶이 진정한 기억으로 그 일관성을 얻지 못하면, 이 삶을 왜 사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삶이 그 내부에서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밖에서 생산된 기호로 그것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가지가지 유행이 밖에서 생산된 바로 그 기호다. (...) 그래서 유행의 문화는 열등감의 문화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놓인다."(191-192)
- 「유행과 사물의 감수성」(2002) 중에서

[12] "시는 기억술이라는 말이 있다. 비단 시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은 왕성했던 생명과 순결했던 마음을, 좌절과 패배와 분노의 감정을, 마음이 고양된 순간에 품었던 희망을, 내내 기억하고 현재의 순간에 용솟음쳐오르게 하는 아름다운 방법이다. 기억이 없으면 윤리도 없다고 예술은 말한다. 예술의 윤리는 (...) 순결한 날의 희망과 좌절, 그리고 새롭게 얻어낸 희망을 세세연년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기억만이 현재의 폭을 두껍게 만들어준다. (...) 미학적이건 사회적이건 일체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한 인간이 지닌 현재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에 의해 가름된다."(204)
- 「윤리는 기억이다」(2003) 중에서

[13] "오페라 <심청>의 대본을 쓴 사람(윤이상)에게 정작 그 착상을 도와준 것이 있다면, 아마도 괴테의 《파우스트》 가운데 한 구절,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라는 그 유명한 구절일 것이다. 여기서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낭만주의 이후의 문학, 특히 시는 이 밤에 거의 모든 것을 걸었다. 시인들은 낮에 빚어진 분열과 상처를 치유하고 봉합해줄 수 있는 새로운 말이 "어둠의 입"을 통해 전달되리라고 믿었으며, 신화의 오르페우스처럼 밤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걸어들어가 죽은 것들을 소생시키려 했다."(220)
- 「낮에 잃은 것을 밤에 되찾는다」(2003) 중에서

[14] "어디에나 사람이 있다. (...) 내가 버린 쓰레기도 사람이 치워야 하고 내가 만들어내는 소음도 사람의 귀가 들어야 한다."(244)
- 「어디에나 사람이 있다」(2004) 중에서

[15] "이 신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왔고, 우리와 함께 그 영검이 깊어졌으며, 또한 우리 운명의 많은 부분을 지배했다. 그것들은 우리와 숨결을 교환하고 냄새를 교환했다. 그것들은 우리의 고독한 몸을 세상의 만물과 이어주는 연결선이며, 그렇게 맺어온 관계의 흔적들이며, 세상과 사랑을 나누는 내력들이며,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남은 기억의 시간들이었다."(252)
- 「귀신들 이야기」(2003) 중에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3-01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현산님 글 정말 좋아요. 기억에 대한 작가님 글들 공감합니다. 초란공님 정성 가득한 서평도 👍

초란공 2022-03-01 21:06   좋아요 1 | URL
항상 관심갖고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 사진의 뿌리를 찾아서


- 박주석의한국사진사출간기념전시를 다녀와서

 


작년(2021)에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한국사진사를 기념하여 마련된 전시 ()에서 ()으로에 다녀왔다. 전시장에는 한국사진을 개척했던 사진가 22명의 사진 50여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번 사진들은 한국사진사 연구를 처음 개척했던 고 최인진 선생(1941-2016)이 수집한 800여 점의 프린트에 이번에 출간된 한국사진사의 저자 박주석 교수(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 대학원 교수)가 수집한 700여 점의 빈티지 및 오리지널 프린트를 더한 컬렉션에서 선별한 사진 전시다. 오늘 페이퍼는 도서 소개와 더불어 국내에서도 실제로 보기 힘든 사진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이기에 전시에 다녀온 후기를 겸해서 작성하게 되었다.


 

현재 서울의 강남에 있는 전시관 <언주라운드>에서 진행중인 전시는 이달 26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이후 광주에 있는 <갤러리 혜윰>(03.05-03.25)과 대구의 <아트스페이스 루모스>(04.02-05.01)에서 전시된 다음, 해외 순회전시가 기획되어 있다. 전시장 담당 큐레이터분이 직접 말씀해주신 바에 따르면, 이번에 전시되는 사진 일부는 미국 순회전시에 포함되어 있어서 당분간(2년 정도)은 국내에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사진사에 소개된 사진 중 일부가 전시되어 있지만, 이번에 전시되는 작가들의 빈티지 프린트, 오리지널 프린트는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귀한 사진들이다. 그러므로 사진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방문해보시기를.


 

(전시회()에서 ()으로포스터(왼쪽)와 2021년에 출간된한국사진사표지(오른쪽))


 

책의 저자인 박주석 교수는 연구자로서 사진은 이미 포토그라피()를 품고 있는 단어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진()의 문제이다.”라고 바라보며, 그러므로 오늘날의 진()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사진을 감상하면서 이 두 글자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내게 ()’의 문제는 기술적인 조건과 형식이 답하는 문제다. 카메라, 렌즈, 기본적인 원리 혹은 시대성 등등을 포함한 가시적이고 객관적인 조건들을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의 문제는 ()’의 문제와 모종의 연관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도 보다 비가시적이고 주관적인 조건들을 포함한다. 이를테면 사진가의 해석과 관점, 의도와 같은 것들이다. 사진가의 의도는 기술적으로 ()’를 구현하기 위한 선택에 개입한다고 볼 수 있겠다. 각종 특수인화 기법들과 사진가의 의도에 따른 도구의 선택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또한 이 의도에는 인화지의 유형과 종류, 프린트 방식과 크기 등의 선택 과정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그러므로 이 ()’의 문제에는 무엇보다 사진가의 철학이 담긴 해석과 의도가 근간을 이룬다고 생각된다.

 


사진을 전공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국내에서 이른바 한국인에 의해 이루어진 사진 활동 기록은 1928년 정도부터 라고 한다. ‘조선포토싸롱이라는 공모전 형식의 사진 대회가 생겨난 것이 이 때부터이며, 이 때부터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사진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사진가 문치장의 이력처럼 1920년에 조선 총독부 사진과 조수로 일본인들에게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정황도 무시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들이 사진술을 습득한 후 20년대 후반부터 보다 활발하고 능숙하게 사진 활동을 전개해나가기 때문이다. 이번 사진 전시에 선보인 사진들도 1929년에 촬영된 정해창의 사진으로 전시회의 포문을 열고 있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사진전람회를 개최한 사진가다. 작가 소개 정보란을 보니 일본 유학 시절 독일어를 공부하고, 서양화를 배웠으며, 동경예술사진학교 연구실에서 사진화학과 피그먼트 인화법을 연구하며 사진가의 길로 들었다고 한다그림을 공부한 사진가라서 그런지 정해창의 사진에는 전통적인 회화의 특징적인 구도와 양식이 반영된 근대 사진의 특징이 잘 나타나있다. 사진이 회화와 구별되는 지점을 치열하게 고민했을 사진 선구자의 방황과 열정이 느껴진다. 특히 정해창의 사진 몇 점은 사진가 구본창이 재인화 작업을 하여 선보인 작업들이다. 아마도 유리 건판으로 작업했을 정해창의 사진 인화물이 이제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당시에 작업했던 인화물(주로 RC인화지로 작업)이 현재까지 남아있지 않아서일 것이다.(인화지 관련 정보는 아래 추가 설명 참조)




(정해창, 여인의 초상(1929), 왼쪽/ 인형과 오브제(1934), 오른쪽, 두 사진 모두 구본창 인화)

 

이번 전시회를 보면서 한국 사진의 역사가 비록 일제 강점기에 태동했지만 세계 사진사의 역사에서 크게 뒤쳐져있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렇게 일제 강점기에 본격적으로 태동한 한국 사진의 역사는 1938년 정도 까지는 국내의 사진 동호회(구락부) 활동이 꽤나 활발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했던 손기정 선수의 시상식 사진에서 일장기를 삭제한 동아일보의 <일장기말소사건> 이후부터는 국내 사진활동에도 큰 제약을 받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이 사건을 주도했던 사진가가 동아일보의 사진과정으로 있었던 신낙균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전시회 포스터로 사용된 무용가 최승희의 사진을 비롯하여 세련미가 느껴지는 자화상 사진 세 점이 선보이고 있다. 전시회 소개자료의 작가 소개 정보를 참조하면, 신낙균은 무엇보다 국내 최초의 사진학자이자 근대 사진교육의 기초를 마련한 교육자였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1927년에 한국인 최초로 일본 동경사진전문학교에서 사진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졸업하고, YMCA의 사진과 교수로 처음 부임하여 후학을 양성했다고 한다.


 

 (신낙균의 자화상(1927), 왼쪽 / 임응식, ‘구직(求職)’(1954), 오른쪽)


 

한국의 사진역사에서 본격적으로 일제의 영향으로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된 것은 1942년에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제가 전시에 사진 찍는 일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한국사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아마추어를 포함한 사진활동은 한 번 이상의 소강상태를 겪는 것으로 보인다. 그 첫 번째 계기가 태평양 전쟁이었겠고, 두 번째는 물론 한국전쟁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40년대 사진 몇 점이 보이지만, 뚜렷한 개성을 지닌 리얼리즘 사진은 한국전쟁 전후에 두드러지는 것 같다. 전시회 소개 자료에는 생활주의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사진가 임응식을 언급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구직(求職)>(1954) 사진도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선보이지 않았지만 이 리얼리즘사진의 맥을 있는 사진가로는 사진가 정범태와 최민식으로 맥이 이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사진 전공한 친구는 사회적 리얼리즘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애(humanity)가 잘 느껴지는 정범태 작가의 사진도 볼 수 있었으면 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선정되지 않았나보다.


 

개인적으로는 사진가 이형록의 사진들이 마음에 들었는데, 책이나 전시회에서 보면 금방 어떤 사진의 유형인지 알 수 있겠다. 그의 사진은 앞서 언급한 임응식이나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삶을 주제로 작업한 임석제리얼리즘사진들과는 조금 다르게 조형성이 강조된 사진들이었다. 내 취향에 가장 가까웠던 이형록의 사진은 아침 시장의 모습을 담은 작품(1955)이다. 어렸을 적에 전통시장 근처에서 살아서 그런지 그 사진을 봤을 때 털털거리며 연기를 내뿜으며 배추를 가득 실은 트럭이 떠올랐다. 또 비가 오지 않아도 언제나 뜯어낸 무나 배추 잎이 섞여 질퍽한 진흙탕이었던 시장 바닥이 생각났다. 인물의 검은 실루엣이 프레임을 양분하며 쓰레기를 태우기 위해 손잡이 달린 양동이(대개는 불을 떼기 위해 양동이 주변으로 구멍을 뚫는다)를 흔들어 불을 붙이는 듯한 장면이 포착되어 있는 사진이다. 질퍽하고 싸한 재래 시장의 아침에 불을 제대로 붙이려고 흔드는 사내와 화면을 가로지르는 흰 색 연기의 대비가 강렬한 사진이었다. 나는 아마도 이렇게 조형성이 강조된 사진을 좋아하는 것 같다(예전엔 그다지 생각을 안했는데 말이다). 이번에 전시된 사진 중에서 조형성에 주목한 사진가는 이상규, 김행오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흥미로울 것 같다.


 

 (이형록 시장의 아침’(1957), 왼쪽/ ‘어촌’(1958), 오른쪽)


 

이형록과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은 그가 앞서 언급한 리얼리즘 사진의 선구자 임응식1935년에 강릉 우체국 직원으로 부임했을 때 서로 알게 되어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일화다. 한국 사진의 선구자들이 서로 만나 각각의 관심과 취향에 따라 한 명은 리얼리즘 계열의 사진을, 다른 한 명은 조형주의 사진을 개척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내가 이형록의 전시회 사진을 보면서 놀랐던 점은 그의 섬세한 조형 감각 때문이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아침 시장사진 외에 머리에 물건을 이고, 포대기에 아이를 엎고 배가 엎어진 모래사장을 지나가는 사진(1958)이나 공사 현장의 노동자들을 찍은 사진(1955)이 보여주는 조형 및 균형 감각은 매우 놀라웠다. 내가 보기에는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조형성과 비견되는 사진들이라 생각한다. 그의 사진이 궁금한 분들은 책이나 이번 전시회 사진들을 참고해보시기 바란다.



 

 (현일영 손목시계’, 왼쪽/ 박필호 무제(손 위의 시계)’(1937), 오른쪽)


 

전시회 안내 자료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이번에 공개된 사진 중 사진가 현일영의 사진들이 또 다른 사진들과 맥이 다른 것 같아 흥미롭게 주목해본다. 자료에는 작가주의 사진가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현일영의 사진에는 간결한 오브제를 주시하며 하나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가져오는 사진들인 것으로 보인다. 손에 찬 손목시계, 그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달력, 타고 남은 담뱃재가 쌓인 재떨이, 부식되는 사과와 같은 대상들을 응시한 사진들이다. 앞서 언급한 이형록의 사진들처럼 외부세계를 향해 관찰하며 조형성을 가미하는 시선과는 분명히 다르다. 현일영의 사진들은 사진가의 시선이 사물을 응시하지만 결국은 반사되어 사진가의 내부로, 그리고 이어서 관람자인 나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사진 같다. 그러므로 그의 시선은 분명히 내부를 향하고 있었다. 사진가가 관찰하고 응시하는 대상에서 결국은 나의 기억과 감성을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는 사진들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사진적인 사진이라고 말하곤 하는 그런 사진들이다. 현일영의 사진과 맥을 같이 하는 사진으로는 손바닥 위의 회중시계를 찍은 사진가 박필호의 사진을 꼽을 수 있겠다. 현일영손목시계사진과 비슷한 형태의 오브제를 찍었다는 점을 넘어 하나의 상징이자 기호로서 오브제를 이용하는 점,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이형록의 사진들과는 분명히 다른 맥락을 이루지만 현일영의 사진들은 오히려 더 현대적인 감각을 일깨워 준다. 사물에 사진가의 내면을 비추고 있기에 오히려 한편의 짧은 시와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 이형록의 사진들은 외부 세계를 응시하면서 기록하기에 소설 속의 이야기(서사) 한 장면이 담겨 있을 것만 같다.


 

 (문치장 설빔 차림의 아이들’(1937), 왼쪽, 전시장 입구의 안내문, 오른쪽)

 


현일영의 사진 옆에 이어지는 사진 중에 또 나의 눈길을 끌었던 사진은 1933년에 촬영된 항공사진이었다. 동아일보의 사진기자였던 문치장이 프레임의 한쪽 끝에 보이는 복엽기를 타고 서울 상공을 날았다. 이번에 전시된 사진 중에는 서울 상공에서 찍은 항공사진이 있다. 사진의 한쪽 프레임으로 보이는 복엽기의 날개 사이로 동아일보 사옥이 촬영되었다. 전시장에는 대형 카메라를 조작하는 사진가의 자화상 사진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미 30년대에 다양한 시각을 검토하고 실험하고자 했던 시도들, 그리고 기술적 조건들을 엿볼 수 있는 사진들이었다위에 제시한 사진은 항공사진이 아닌 그의 설빔 입은 아이들’(1937) 사진이다. 일제 강점기에 사라진 나라의 유적 앞에 나있는 거리 한 가운데에서, 설빔을 입은 모습을 찍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사진가가 느꼈을 법한 감정을 조금은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사진은 그렇게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배운 것이 있다면, 전시 소개 자료에 나온 사진 비평가 박평종의 도움글이다. 그는 빈티지 프린트로 보는 한국사진의 작은 역사라는 글에서 빈티지 프린트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번 전시의 의미를 짚어준다. 우리가 흔히 빈티지 감성’, ‘빈티지 효과라는 상투어에서 많이 보듯이 낡고 오래된 무언가를 연상하게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사진에서 빈티지 프린트라고 하면 필름 원본(혹은 유리 건판)이 사라진 유일무이한 인화물을 가리킨다. 따라서 매번 인화할 때마다 같은 작품은 존재하지 않지만, 더 이상 인화물을 만들어낼 수 없는 작품을 의미한다. 따라서 박평종이 언급한 것처럼 빈티지 프린트는 희소성이 높고 컬렉터들이 주목하고 있기에 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에 더하여 비평가는 빈치지의 비교 불가능한 가치와 의미를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빈티지 프린트가 생산되었던 당대의 정확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는 것. 바로 빈티지 프린트가 갖는 역사적 가치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는 시대와 관계 맺고 있던 작가의 개입, 이를 테면 사진가가 네거티브 원판을 어떻게 해석했는가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작가의 해석이라면 보다 구체적으로 앞서 언급한 인화지들의 종류, 작품의 크기(혹은 카메라 판형), 프린트 방식과 기법 등에 관해 작가의 의도가 개입된 선택을 포함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사진의 역사에서 빈티지 프린트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에는 네거티브 원본만 있으면 되기에 인화물에 대한 관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도 있다. 또 보관성이 좋은 FB인화지보다 보다 일찍 변색이 되곤 하는 RC인화지에 작업을 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의 의의는 한국사진사의 출간 기념 전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박평종의 말을 빌리면, 고 최인진 선생과 박주석 교수가 그동안 수집, 정리, 보존해온 빈티지 사진들을 통해 한국사진의 역사를 복원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 중 일부는 꾸준히 작업하고 사진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글을 써온 사진가 구본창, 주명덕이 다시 작업한 인화물(정해창, 현일영의 사진들)이 있어, 빈티지 사진과 한국 사진사 정리와 보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계기이기도 했다. 특히 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말에 이르는 초기 한국 사진의 선구자들의 활동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피식민지의 땅에서 태어나 당당히 일본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체계적으로 사진을 배우고 다양한 생각과 시도를 구현해보고자 했다. 이들은 호기심과 열정이 넘치는 지식인들이었다. 아울러 지금의 시선에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모든 형식들이 이들의 손에서 시도되었고 실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단지 편리해진 디지털 카메라로 이들 선구자들이 고민하고 시도했던 작업들을 반복해보는 정도에 불과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장비에 접근성이 높아진 지금과 달리 100년 전의 한국 사진은 진지한 지식인들이 접근할 수 있었던 예술분야라 할 수 있겠다. 여기서 나는 서양의 역사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역사에 대해서도 반드시 알아야 함을 배운다. 그런 다음에야 후학들은 선구자들이 고민과 실험을 통해 내놓은 결과를 기반으로 더 깊이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에 읽은 불문학자이자 문학 비평가 황현산의 글 한 대목이 여기에 어울릴 듯하다.


 

아직도 나는 그 섬의 이런저런 해안 자락을, 이 마을 저 마을의 고샅들을, 동내에 함께 살던 어른들의 이름과 성품까지 낱낱이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 삶의 모든 표준이 여전히 그 섬에 있다. 나는 지금도 그 섬으로 세상을 잰다.


(밤이 선생이다중에 실린 글 고향의 잣대(2001), 난다, 2013, 292)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을 신안군에 속한 작은 섬에서 보냈던 황현산은 어린 시절 몸에 각인된 세계가 이후의 세계에 대한 잣대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말마따나 지난 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포스트모던의 담론이 기존의 잣대를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럼에도우리에게는 세계를 파악하기 위한 나름의 잣대는 필요하다는 말로 이해된다. 그는 이 글을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국제 외교나 통상에서 그때그때마다 현행의 잣대에만 매달리다 보면 우리 같은 처지의 국가들은 늘 한 걸음 뒤지게 마련이다. 그 잣대의 향방을 예견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파악하고 그 고향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구미 제국을 공부할 때, 그 고대와 중세를 더듬어 그 잔뿌리까지 남김없이 캐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도 하겠다.”(294)

 


따라서 우리 사진의 역사에서도 캐내야 하는 대상은 서구의 역사와 문물만이 아니다. ‘내 안의 타자인 우리 선구자들의 기억과 이들이 남긴 자료들을 정리하고 보존하며 그들의 작업을 면밀히 파악하는 일이 곧 잔뿌리가지 캐내는 일이 될 것이다. 이제 한국사진사을 또 하나의 토대삼아 한국 사진의 작은 역사를 우리 것으로 이어가는 일이 앞으로의 과제로 남는다.

 

 



[덧붙임] 인화지에 대한 추가 설명

1920-30년대 당시의 인화물은 섬유 재질로 된 화이버 베이스(FB) 인화지보다는 감광성 수지를 입힌 RC(Rasin-Coated) 인화지에 주로 인화했기 때문일 텐데, RC인화지가 작업에 좀 더 편리하고 가격이 저렴한 반면, 계조나 암부 묘사 등의 표현력에 있어서 FB인화지보다 떨어지고 보관성이 떨어진다. 반면 FB 인화지는 작업이 좀 더 까다롭고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표현력이 좋고 무엇보다 보관만 잘 하면 100년 이상은 거뜬히 갈 수 있는 보관성이 좋은 인화지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2-23 14: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설빔 차림의 아이들 사진을 초란공님 설명 읽으면서 보니 달라 보이네요 ㅠㅠ 신낙균의 자화상은 지금 시대에 봐도 카리스마있고 멋집니다. 시장의 아침도 좋고. 초란공님 설명과 함께 사진보니 전시회에 온 느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초란공 2022-02-23 18:37   좋아요 3 | URL
네 저도 쵤영년도를 보면서 저런 시도는 가능했을까 싶더라구요. 자화상은 세련된 것 같아요. 근데 이게 20년대 사진이라니 놀랍구요.

프레이야 2022-02-23 14: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반짝! 초란공 님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전시 기간과 공간이 세 가지군요.
그 중 한 곳은 가볼 수 있기를 기약해 봅니다.
아무래도 대구가 될 것 같습니다. 국내 첫 공개 빈티지 오리지널 프린트도 궁금하고요.
황현산 선생의 인용문도 의미 있습니다.

초란공 2022-02-23 18:46   좋아요 3 | URL
네~ 기회되면 꼭 가보세요.~ 저는 전시장 사진을 찍는다는걸 깜빡했는데 다른 전시장 모습도 궁금하네요~

얄라알라 2022-02-23 23: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초란공님, 지난 Lucy 리뷰에서도 마지막 단락에서, 소설속 사진집 작가를 콕 집어 추정해내시는 걸 보고, 사진에 애정이 깊으시구나 했는데
전시회 다녀오셔서 이렇게 기억하시고 쓰실 수 있다니
다시 한 번 감탄하고 갑니다

최승희님의 춤을 컷컷 사진으로밖에 보지 못해 아쉽습니다. 타임머신 탈 수 있다면 최승희의 무대를 보고 싶어요^^

초란공 2022-02-24 22:46   좋아요 2 | URL
사진에 관심있는 분이 많이 계신 것 같아 기억을 짜내서 후기를 남겨봤습니다. ^^;; 그리고 공개된 사진은 많지 않지만 정말 귀한 사진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인것 같아서요. 한 70년 전의 모습이라는게 실감나지 않을 정도였어요. 정말 영상으로 무대를 보면 어땠을까 싶네요.
 
루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3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루시 Lucy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

 



피식민지 출신 소녀가 자신에게 다가가는 과정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보고 대개 감탄하곤 한다. 혹은 풍경 속의 현장에 직접 가보고 싶다거나 그 장소의 이력을 궁금해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이가 그런 것 은 아니었다.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소설 루시 Lucy는 이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도시에서 사는 백인 중산층 부부와 이들의 아이를 돌보는 흑인 소녀가 기차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는 길이었다. 창밖에 갈아엎은 밭이 펼쳐진 풍경을 보고 백인 여성은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풍경이라고 말한다. 반면 흑인 소녀는 저 일을 내가 안 해도 돼서 정말 다행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 장면은 소설 전반부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처럼 동일한 풍경, 혹은 이를 담은 사진을 보고 사람마다 크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풍경을 보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경험과 기억을 지녔기 때문이다.


소설 루시 Lucy는 저자 킨케이드의 자전적 이야기다. 저자는 서인도 제도의 영국 식민지였던 앤티가섬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17살 때 학업을 중단하고 미국 뉴욕 주의 백인 중산층 가정에 입주 보모(오페어)로 일을 시작했다. 화자는 저자의 분신이었다. 화자의 생년월일이 저자와 동일하게 설정되기도 했다. 킨케이드가 대학에서 잠시 사진을 공부했던 것처럼 화자 루시도 사진을 찍는 것으로 나온다. 이 소설은 길지 않은장편소설이지만 꽤나 다양하고 복잡한 층위가 뒤섞여 있다. 식민주의, 여성으로서의 삶과 페미니즘, 가부장제도, 인종주의와 같이 현대인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틀과 맥락이 밀도 있게 담겨 있다. 인종주의적인 측면은 소설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되지 않지만, 인종 문제는 소설 속 인물의 배경이 되는 전제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이 모든 문제는 사실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다.


 


식민주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과 고통


앞서 언급한 흑인 소녀의 이름은 루시 조지핀 포터다. 루시는 자신의 이름을 무척 싫어했다. 식민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녀가 태어나 자란 앤티가섬은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968년 즈음에도 여전히 영국에 속해 있었다. 1981년에서야 독립했던 이 섬은 공식적으로 무려 349년 동안 식민지였다. 루시의 성 포터는 예외 없이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왔던 조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식민지 현실에서 노예들이 주인의 성을 따랐던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루시의 할머니는 사라져버린 원주민의 후손이었다. 3대에 걸친 여성의 피 속에 식민주의의 잔재가 여전히 흘렀다. 실제로 킨케이드는 루시 Lucy의 전편 격인 자전적 소설 애니 Annie John를 출간한 해에 딸을 낳았는데, 딸의 이름 역시 애니로 지은 바 있다. 현실의 삶에서도 여성이라는 공통분모를 기반으로 식민주의의 역사가 세대를 건너 이어지고 있었다. 소설 속 인물과 실제 작가의 삶이 맺는 관계는 마치 거울에 비친 대칭 이미지처럼 여겨진다. 작가는 피식민지 여성의 목소리를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잊지 않기를 무엇보다 바랐던 것 같다.


식민지 모국에서 살아가는 피식민지 여성의 삶은 내게 익숙한 삶을 너머 훨씬 다양한 층위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한다. 오랜 시간 피지배자로 살았던 환경에서 개개인이 그 영향력을 떨쳐내기란 역부족이다. 루시와 엄마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줄곧 나는 엄마와 닮지 않았고,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해도 이 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루시는 언젠가부터 엄마가 겪던 두통을 마찬가지로 앓는다. 백인 주인 머라이어의 손을 보고도 엄마를 떠올리는 루시는 자신이 곧 엄마임을 깨닫는다. 멀리 도망갈 수는 있겠지. 하지만 내가 네 엄마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내 피가 네 속에 흐르고 있고, 넌 아홉 달 동안 내 뱃속에 있었으니까.”(74)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애증의 관계다. 엄마가 자신과 다르게 세 남동생을 대했을 때, 엄마에 대한 증오가 두드러졌다. 점령국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간 피식민지 여성이 가부장제도를 내면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루시의 가슴에 칼이 꽂히는 순간이었다.


난 사회적 지위도 없고,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없었다. 내겐 기억이 있고, 분노가 있고, 절망이 있었다.”(108) 소설 전반에서 루시가 줄곧 보여주었던 정서가 아닐까한다. 루시에게는 엄마처럼 미운 사람이 없었고, 또 엄마처럼 그녀에게 중요한 사람도 없었다.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딸 사이의 애증관계다. 루시는 언제나 자신을 친절하게 돌봐주는 백인 여성 머라이어의 모습에서 엄마를 떠올렸다. 머라이어의 손이 엄마와 닮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도 엄마가 보낸 편지는 읽지도 않고 치워버렸다. 하지만 갑자기 아빠가 돈 한 푼 남겨 놓지 않고 세상을 뜬 다음 큰 빚까지 남겨둔 것을 알게 되자, 루시는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을 엄마한테 보냈다. 아들이 할 법한 행동과는 사뭇 다른 엄마-딸 사이의 모습이다.


피식민지인에게 가해진 억압과 왜곡된 가부장제 질서의 모순 때문이었을까. 루시의 대인관계, 특히 남녀 관계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랑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육체적 관계에는 탐닉했다. 일반적인 관계에서 기대되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란 없었다. 자신이 가진 돈을 전부 준 다음 엄마와 손절했던 루시는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살아가고 싶어 했다. 이게 자신이 늘 원했던 삶이라고 생각했다. 겉보기에 루시는 자유를 얻었지만 사랑이 빠진 대인관계에서 행복감과 희열, 소망이 성취되었다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삐걱거리는 그녀의 대인관계는 식민주의와 가부장제가 남긴 상처의 결과였다. 루시에게는 곁에서 자신의 상처를 돌보아줄 사람이 없었고, 스스로도 상처를 돌볼 기회도 놓쳤다. 사랑 없는 공허한 관계에 탐닉했던 것은 더 이상의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던 무의식에서 나온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기만의 키스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 루시만 고통 받았던 건 아니었다. 자신이 돌보던 아이들의 부모, 머라이어와 루이스의 결혼 생활 역시 파탄을 향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식었지만, 가족들 앞에서는 애정 표현을 과시했다. 루시는 루이스의 행동이 그저 임을 곧바로 알아챘다. 게다가 루이스는 가족이 별장에 머물 때, 텃밭을 망친다는 이유로 토끼를 쏘아 죽였다. 이 모습은 피식민지인들에게 가했던 식민지 모국의 행적을 떠올리게 한다. 백인 가족이 토끼를 위해 치러주는 장례 의식을 보면서 루시는 이것이 이들의 삶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허위라고 여겼다. 이처럼 소설은 백인 중산층 가정의 기만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을 화자의 눈으로 고발하기도 한다. 그녀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폐허라는 사실”(72)을 깨닫게 되었다.


 


사진 - 분노와 절망, 거짓을 걷어내는 의식


대인 관계는 언제나 삐걱거리고, 매사에 불만과 분노를 드러내던 루시도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박물관 가기와 책읽기였다. 머라이어는 박물관에서 본 어떤 사진을 좋아했던 루시에게 사진집 한 권을 선물했다. 사진집을 보면서 루시는 지인들을 떠올렸는데, 특히 한 소년에 대해 말했다. ‘두 팔에 커다란 병 두 개를 안고 경쾌하게 걸어가는, 반바지를 입은 아이 모습’(93)을 담은 사진이었다. 틈나는 대로 사진집을 보던 루시는 자신도 사진기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실제로 킨케이드가 사진학과에서 1년 동안 공부를 했던 이력이 있었던 것처럼, 루시도 사진에 관심을 갖고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인화하여 들여다보곤 했다. 여러 면에서 루시는 작가의 분신이었다.


소설 속의 화자가 사진을 찍고 결과를 들여다보는 과정은 상징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사진 활동은 앞서 언급했던 식민주의적 질서에 영향을 받은 인간들의 모습을 비추어 주었다. 다시 말해 허위와 허영, 기만적인 삶에 얽힌 대인 관계로부터 거리를 두고 이를 관찰할 기회를 준 것이다. 또 그녀가 회피하고 가슴 깊이 묻어 둔 상처들을 돌아보게 했다. 사진 찍는 이유를 알지는 못해도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아 그녀는 계속 사진을 찍었다. 루시는 가족과 떨어져 낯선 곳, 익명성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자유로움과 더불어 행복감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를 기다린 건 공허함뿐이었다. 반면 사진 속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흔들림 없이 응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고통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더라도 말이다. 이 과정은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애도하는 과정과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 타인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해주는 사진의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머라이어의 집에서 나와 독립한 루시는 이제 자신만의 방에서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사진기는 렌즈 앞에 있는 대상 그대로의 모습을 담았다. 결과물은 사진가와 피사체를 기록하며 이들의 현존을 증명했다. 반면 루시는 사진 자체가 모든 진실을 말해주지도 않음을 간파했다. 자신이 인화한 사진을 보면서, “어떤 실재를 찍은 사진이 종국에는 그 실재 자체보다 더 흥미로운 건 왜일까?”(97)라고 묻기 때문이다. 루시의 궁금증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사진을 보는 감상자의 경험이나 기억에 따라 사진의 진실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 진실과 사진에 보이는 진실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할 수 있음을 직관했던 것. 그녀는 바로 이 점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사진은 이를 읽고 말하는 자에 따라서 언제든 우리를 기만할 수도, 혹은 진실을 말해줄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이점을 이해한 루시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통로로 사진을 활용한다. 촬영자와 감상자가 동일하기에 오히려 현실에 덧씌워진 기만과 허영의 장막을 걷어낼 수 있었고, 거짓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 지나가버리는 현실과 달리 사진 속의 현실은 자신의 기억,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마주하며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루시의 사진 활동은 상처를 숨긴 채, 사람들 앞에서 삐뚤어지고 모순된 행동을 보였던 자신과 마주하게 해주었고, 자신의 면모를 새롭게 발견하게 해주었다.


루시의 사진 활동이 소설에서 중요하다고 여긴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자기를 발견하는 글쓰기의 가능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머라이어는 도시 생활을 정리하면서 이탈리아에서 샀던 가죽 장정 공책을 루시에게 선물한다. 침대에 누워 있던 루시는 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자신의 이름을 공책에 쓴 다음 이 문장을 썼다. “사랑해서 죽을 수도 있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130) 이어서 루시는 수치스러움이 몰려와 오열한다. 사랑과 신뢰가 깃든 대인관계에 실패했던 것은 또 다시 상처입기 싫었기에 상대방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루시가 사진을 찍고 이를 들여다보는 행위는 식민주의의 영향과 여성의 굴레 속에서 지난한 삶을 살아야 했던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또 자신을 가리고 있던 기만적이고 두터운 장막을 걷어내게 해주었다. 이 과정은 자신과 만나는 글쓰기의 가능성으로 이어졌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루시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가능성과 사랑이 깃든 인간관계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될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덧붙임]


루시는 머라이어가 선물해준 사진집 한 권을 보고 사진기를 사겠다고 결심했다. 이 사진집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으로 생각된다. “한 소년의 사진이 특히 그랬다. 두 팔에 커다란 병 두 개를 안고 경쾌하게 걸어가는, 반바지를 입은 아이였다.”(93)라는 대목을 근거로 한다면 말이다. 이 사진은 브레송이 1952년에 파리에서 찍은 흑백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의 배경인 1968년과도 시간적으로 모순되지 않는다



(c) Henri Cartier-Bresson, Paris, 1952



[1] "한 곳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남자에게 매맞는 여자아이가 있고, 다른 한 곳에는 눈에 보이는 남자에게 목이 베이는 여자 아이가 있구나. 이렇게 넓고 넓은 세상인데 어째서 내 인생에는 선택지가 고작 그 둘뿐이지?" (22)

[2] "우리가 그 장면을 똑같이 보고 함께 눈문을 흘릴 수도 있겠지만, 그 눈물의 맛은 다를 것이었다." (29)
- 활짝 핀 수선화가 무리지어 넘실대는 수풀을 보고 한 사람은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은 비통함과 원한만을 느끼는 모습.

[3] "내가 머라이어를 사랑했던 때는, 그녀를 보면 엄마가 떠올랐을 때다. 내가 머라이어를 사랑하지 않았던 때는, 그녀를 보면 엄마가 떠올랐을 때다." (49)

"머라이어를 보면 볼수록 내가 사랑하는 엄마의 면모가 점점 더 많이 떠올랐다. 손이 엄마 손과 똑 닮았다." (50)


[4] "꽤 어렸을 때였는데도 난 잘사는(그러니까 분명 행복한) 사람들은 다들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이 뚜렷한 네 계절로 나뉘는 지역에 산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기울어진 자전축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곳이었다. 해가 쨍쨍하고 가뭄에 시달리는 단 하나의 계절만 있는 곳." (70)

[5] "그리고 틀림없이 난 여자였다. (...) 엄마처럼 되기 싫다는 말을 얼마나 오랫동안 되뇌며 살았던지 그러다가 사정의 전말을 놓치고 말았다. 난 엄마처럼 되지 않았다. - 난 그냥 엄마였다." (74)


[6] "남자의 생애는 언제나 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막 알게 된 참이었으니까." (78)

"요즘 깨닫기 시작했는데, 무슨 일을 하든 정확한 방식을 아는 사람들, 그러니까 찻잔을 쥐는 법이나 포크로 찍은 음식을 옷 앞자락에 흘리지 않고 입으로 가져가는 법을 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이 세상 대부분의 불행에 책임이 있고, 미칠 일도 빈털터리로 생을 마감할 일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80)

[7] "어떤 실재를 찍은 사진이 종국에는 그 실재 자체보다 더 흥미로운 건 왜일까? 아직 그 대답은 알 수 없었다." (97)

[8] "자유를 향해 가는 길에서 누구든 재물을 얻고 누구는 죽음을 얻지." (103)
- 폴이 차를 몰면서 대양을 건넜던 위대한 탐험가 이야기를 하면서 ‘자유를 찾아 나서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하자 로드킬당한 동물을 보면서 루시가 대꾸한 말.

[9] "난 내가 그 섬에 존재하게 된 기원이, 내 조상의 역사가 사악한 행위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09)
-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데려와 사탕수수 농장 등에서 일을 시킨 역사를 가리킨다.

[10] "포터라는 성은 틀림없이 우리 조상이 노예였을 때 그 주인이었던 영국인의 성일 것이다." (120)
- 실제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어머니 이름도 로더릭 포터다.

[11] "악마 이름을 붙인거야. 루시는 루시퍼를 줄인거지. 하여튼 내 뱃속에 들어선 그 순간부터 얼마나 성가셨던지." (121)
- 자신의 이름이 지닌 의미를 알게 되어 오히려 실패자라는 기분에서 벗어나 의기양양한 기분을 느끼는 루시.

[12] "사랑해서 죽을 수도 있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130)
- 루시가 선물로 받은 공책에 썼던 첫 문장.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2-02-17 22: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물을 렌즈 안에 담는 시선은 글을 쓰는 것으로 이어지겠죠?!
여성은 항상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안게 되네요.

초란공 2022-02-17 22:27   좋아요 4 | URL
킨케이드 여사가 바로 그 증거이겠죠? 얇은 소설인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그만큼 생각거리가 많은 소설 같아요. 저도 계속 배우고 있고요.

mini74 2022-02-17 22: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루시의 사진들이 궁금하네요. 무엇을 담았을지. 사진과 글쓰기는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거 같아요 ~ 초란공님 글 잘 읽었습니다~

초란공 2022-02-17 23:01   좋아요 3 | URL
저도 새롭게 알아가고 있네요~ 글쓰기와 사진... mini74님이 좋아하시는 그림도 그렇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scott 2022-02-17 23: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리뷰 읽으니 루시에 급 관심이!
마지막 사진 속 주인공 꼬마!

반세기 후에 브레송 미망인과 만났습니다. ^ㅅ^

초란공 2022-02-19 18:00   좋아요 2 | URL
브레송 미망인과 만난 이야기가 더 솔깃하고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인연이 이어진다는 것이 신기하네요~

새파랑 2022-02-18 07:1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피식민지인에다가 여성이라는 것까지 저자는 힘들게 살았을거 같아요. 자전적 소설이어서 그런지 더 생생할거 같은 이야기인거 같아요~!!

초란공 2022-02-19 18:02   좋아요 4 | URL
본문 중간에 힘들었으리라 짐작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얇은 책인데 묵직한 이야기들이 숨어있는 소설인 듯합니다.

얄라알라 2022-02-19 18: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토끼를 쏘아 죽이고 장례식을 치르는 백인 가족에게서 허위의식을 느끼다니,
얇은 책이라 하셨는데 행간이 넓은 책이겠어요.

˝포터˝ 이름이 식민지적 잔재라면 Porter겠구나 했습니다. 좋은 소설, 특히 루시처럼 자서전적 소설은 좁은 시야를 넓혀주는 데 정말 유용한 것 같아요.

루시가 가부장적 남아선호(?)를 한 어머니에게 분노하면서도 돈을 몽땅 보낼 수 있던 마음이 뭔지, 왜 공책을 적다가 오열했는데 직접 읽고 느껴보고 싶어지네요. 좋은 리뷰, 고맙습니다.

초란공 2022-02-19 18:06   좋아요 3 | URL
리뷰쓰느라 다시 들여다보는데 그 기분이 좀 더 느껴졌달까요. 모녀 간의 이런 애증관계는 가부장제의 영향을 받는 곳 어디에나 공통적일 수 있겠다 싶어요.

2022-02-19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9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9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