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전쟁
로렌스 H. 킬리 지음, 김성남 옮김 / 수막새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좋은 책을 계속 읽고 있어 너무 행복하다.

지루해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이 책도 아주 재밌고 흥미진진하다.

사실 오래 전부터 읽으려고 했던 책인데 두껍기도 하고 지루해 보여서 계속 미루다가 드디어 읽었는데 매우 만족한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과연 원시 시대가 낙원이었을까?

아르카디아는 환상이지 않을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역시나 이 책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계급이 없던 원시시대가 사실은 국가시대 보다 훨씬 잔혹했다고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밝히고 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본성을 제도와 협의를 통해 제어하지 못하던 무문자 시대, 비언어적인 시대였으니 갈등이 생기면 쉽게 폭력으로 번졌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 시대 법정 소송에 관한 책을 읽으면 별 거 아닌 일에도 쉽게 폭력이 동원되고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전쟁이 일어나면 살상력 때문에 현대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 같지만 전체 인구 집단의 비율로 보면 오히려 원시시대가 더 높았다고 한다.

특히 원시사회는 인구 집단의 규모가 작아 전사들이 죽고 여자들이 포로로 잡혀 가면 금방 와해되고 만다.

인구 규모가 큰 현대 사회는 아무리 큰 전쟁이 일어나도 다시 회복할 수 있지만 원시사회는 말 그대로 사회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원자폭탄이라는 끔찍한 참살 이후에도 다시 일본이 재기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원시사회는 인구 부양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굳이 포로들을 잡아 놓지 않고 즉시 죽이는 쪽을 택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여러 원시 사회들을 연구한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원시사회는 전투력 자체만으로는 딱히 현대 국가에 비해 떨어지지 않으나 전쟁이라는 전체 규모에서 보면 인구수와 보급에서 딸리기 때문에 졌다고 한다.

군사들을 계속 보급해 주고 식량을 댈 수 있어야 장기전이 가능한데 원시사회는 총력전이 불가능한 경제체제이기 때문에 결국은 유럽인들에게 정복당하고 말핬다.

그러고 보면 국력이 곧 전투력이라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매우 호전적인 일본이나 독일이 결국은 2차 대전 당시 미국에 진 것을 보면 말이다.

낭만주의 원시인은 우리의 머릿속에나 존재하는 이상형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 준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용맹한 전사도 전쟁 자체를 즐기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평화로운 상태를 원하기 때문에 어떻게 잘 협력하여 갈등을 풀어 나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국제기구 등이 그 역할을 하고 있고 총격 대신 외교술의 발달을 통해 매우 어려운 균형인 평화를 지속시키는 것이 인간 발전의 중요한 과제임을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기독교 석학인문강좌 54
김경현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는 좋은 책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인가!

이 책도 너무너무 재밌고 유익하다.

역사란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라 잘 쓰여진 역사책은 마치 한 권의 소설을 보는 것처럼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하다.

300 페이지 밖에 안 되는 분량이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밀라노 칙령의 배경과 비잔티움 제국의 성립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알기 쉽게 자상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번역서가 아니라서 더 쉽게 다가오는 듯하다.

저자는 내용이 너무 자세하여 교양서로 부적합 할까 봐 우려하지만,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잘 쓰여 있다.

좋은 책은 내용이나 형식과는 상관없이 독자를 감동시키는 것 같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라고 하면 기독교를 공인하고 십자가의 환영을 보고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개종자가 아닌가?

그의 어머니 헬레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못박힌 십자가를 찾아내 교회를 지어 성녀로까지 추앙된 분이다.

꼭 기독교적 측면이 아니라 해도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4황제 체제의 난립상을 해결한 중흥 군주로 알려져 있다.

우선 저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종이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회심한 것이 아니라 매우 점진적으로 바뀌어 갔다고 설명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역사책에 나오는 밀라노 칙령이 당시에는 없었고 16세기 이후부터 등장했다는 것이다.

마치 교황에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영토를 기증했다는 문서가 가짜였음이 훗날 밝혀진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는 갈레리아누스 황제 때 내려진 기독교 관용령을 밀라노 회담 때 동방 황제였던 리키니우스와 함께 다시 지키기로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어지러진 제국을 다시 그러모아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천도까지 한 이 강력한 권력 의지를 가진 황제가 단순히 개인적인 신앙만으로 기독교를 허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기독교는 제국 내에 널리 퍼져 있고 동방 황제와의 경쟁 속에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도들을 포섭하기 위해 전대에 있었던 관용령의 시행을 재확인했을 뿐이라는 게 진실이라고 한다.

오히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태양신을 숭배했는데 313년 이후에 발행된 주화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재밌는 것은 고대의 여러 잡다한 신들이 점점 하나의 최고 신, 즉 일자론으로 수렴되어 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가장 상위의 높은 신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유일신이 좀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고 한다.

태양신도 그러한 일자론의 표현인 셈이고 예수 탄생일이 태양신 축제에 맞춰진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고 한다.

태양신이 기독교의 하나님으로 바뀐 셈이다.

권력 의지가 강했던 콘스탄티누스는 경쟁자들을 다 처단한 후, 이복아들과 아내마저 반역 혐의로 죽이고 말았는데 이런 강력한 왕권의 지지를 위해 유세비우스의 황제교황주의를 선호했다.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삼위일체론이 확립되고 예수의 인성을 강조한 아리우스파는 쫓겨 나지만, 마치 호국불교처럼 황제를 신앙의 최고 지도자로 여기는 유세비우스의 정치신학을 받아들인다.

그가 정말로 추구했던 것은 기독교적 신앙이 아니라 제국의 통합, 안정화, 절대 권력이었던 셈이다.


마치 한 권의 소설을 읽듯 흡인력 있는 문장에 빨려 들어 단번에 읽었다.

역사는 정말 너무너무 재밌는 학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12
김호동 지음 / 돌베개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호동 교수의 책은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정말 글을 잘 쓰시고 몽골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사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소설책도 아니고 역사책인데도 이렇게 재밌을 수가 있나, 읽을 때마다 감탄한다.

좋은 책은 재밌는 이야기책이 아니라 해도 독자에게 즐거움과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240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인데도 몽골 제국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에 대해 핵심만 짚어서 아주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전에는 한국에서 쓰여진 역사책은 그저 연대기 나열에 불과하고, 사회 체제와 구조를 분석하는 깊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좋은 책을 접하지 못해서 생긴 편견이었던 모양이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이라고 하면 제대로 된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부족 단위로 떠돌아 다니다가, 흉노나 몽골처럼 일시적으로 군사력이 강해질 때 흥기해서 뻗어나가다가 곧 농경국가에게 정복당하고 사라져 버리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고대의 흉노가 한나라를 압박할 정도로 큰 나라를 이루었지만 결국은 초원을 떠돌다 소멸된 것처럼 유목민은 정주민과 달리 축적된 문화나 국가를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은 유목민에 대한 이런 편견을 바로잡아 주고 있다.

농경과 유목은 인류 생산양식의 양대 축으로, 농경민이 곡식을 생산하듯 유목민은 고기를 통해 삶을 영위해 갔다.

얼마 전에 읽은 알타이 고분에 관한 책에서도 고기만 먹었을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발굴된 부장품을 보면 실제로는 곡식이 주식이었고 변경지대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도 여러 사치품과 일상용품, 곡식 등이 필요했기 때문에 정주국가와의 교역을 통해 수요를 충족시켰다.

중국이 자신들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조공이라는 형식을 통해 무역을 했던 반면, 유목국가들은 경제적 목적으로 교역을 원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세를 과시하고 좀더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교역의 목적이 전혀 다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일본인 학자가 쓴 영락제 평전에서도, 정화의 원정이 서양인의 대항해처럼 경제적 동기가 아니라 순전히 조공 국가를 넓혀 천명을 확인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정화의 원정은 돈이 매우 많이 드는 비경제적인 활동이었던지라 영락제 사후 중지되고 만다.

조공 무역이 중국에게는 경제적으로 큰 이득이 없고 오히려 권위 과시를 위해 많은 돈이 들어 조선 사신들의 조공도 횟수 제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였다.

중국은 너무나 큰 나라였고 당시로서는 경제력이 최상위였기 때문에 타국과의 교역을 통해 특별히 얻을 게 없었으므로 유럽이나 유목민들처럼 단순히 경제적 목적만으로는 굳이 교역을 할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역시 필요가 발명을 만드는 것인가?

유럽이 배를 타고 바다로 뻗어 나간 반면, 유목민은 내륙에서 실크로드로 대표되는 교역로를 확대하였으나 청나라와 러시아라는 거대 제국이 생기면서 결국은 소멸되고 만다.

반대로 전통적인 중국 왕조들은 바다보다는 내륙의 방어와 확장에 집중하여 해외무역을 포기하는 바람에 결론적으로 유럽에 밀리게 된다.

중국의 항해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목표가 달랐기 때문인데 결과적으로는 서양 위주의 세계화를 맞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양이 세계화의 첫 발을 내딛도록 자극한 것이 바로 몽골이라고 지적하는데 이 부분은 동의하기가 좀 어려웠다.

몽골이 세계제국을 이루면서 서양과 중동, 중국 등을 잇는 거대한 교역망이 형성되고 세계사적인 관점이 확립되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나 세계지도 등이 작성되어 비로소 서양이 대항해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직접적인 인과관계로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요인들이 있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저자는 몽골 제국의 입장에서 보다 보니 그 영향력을 크게 평가하는 느낌이다.

현재의 중국이 결국은 청조의 영토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고 또 한족만의 국가아 아니라 여러 민족들의 화합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단순히 전통 중국이 유목민들을 일방적으로 흡수했다고만 볼 수 없다는 관점이 독특하다.

침투왕조나 정복왕조라는 표현도 그런 생각의 발로일 것이다.

그동안은 너무 중국적인 관점에서, 한족의 관점에서만 역사를 해석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저자의 말마따나 특히 몽골사는 너무나 많은 나라들의 언어로 쓰여있기 때문에 학자들 간에도 정확한 해석이 어려울 것 같고, 한국의 경우는 더더욱 중국 입장에서만 유목민들을 평가하게 되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짧은 분량인데도 유목민의 역사와 세계사적 의의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이고 무엇보다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서술이 가독성을 높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합스부르크 왕가의 흥망과 성쇠
이종완 지음 / 공주대학교출판부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이렇게 복잡한 책을 전에 어떻게 읽었지?

종이가 얇아 분량이 작은 줄 알았는데 430 페이지나 되고 내용이 정말 많다.

제목에서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중부 유럽을 지배했던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에 관한 이야기다.

한 시간에 40 페이지 정도로 천천히 읽고 있어 꽤 힘들다.

내용이 어렵다기 보다는 통혼 관계가 워낙 복잡하고 우리에게 덜 알려진 왕조의 여러 인물들이 나와 찾아 보느라 시간이 걸린다.

우리로 치자면 역사책에 잘 안 나오는 중종의 후궁들과 왕자들 통혼 관계까지 등장하는 느낌이랄까?

특히 근친혼이 많아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경우들이 있어 가계도 그릴 때 헷갈린다.

왕위를 이을 남자 후계자 얻는 것이 결혼의 가장 큰 목표인데 워낙 유아 사망률이 높을 때고 사고나 질병도 많아 왕들의 3혼, 4혼도 흔했고, 결혼하면 지참금으로 영토를 떼어 줘야 하기 때문에, 왕국이 줄어드는 걸 막기 위해 가능하면 가문 내에서 배우자감을 찾는 바람에 숙부와 조카의 결혼도 자주 일어난다.

사촌끼리 혼인은 특별히 언급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잦았고 양가 남매간의 이중혼, 즉 겹사돈도 아주 많았다.

결혼이 곧 정치적 동맹이므로 같은 가문끼리 여러 차례 혼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비단 유럽 뿐 아니라, 조선 시대에도 매우 흔했으니 상류층의 가문 영속 방법인 듯하다.

근친혼 때문에 유아 사망률이 높고 결국에는 대가 끊어졌다고 하지만 자세히 살펴 보면 꼭 합스부르크 왕가만 그랬던 것도 아닌 듯 하다.

숙질간의 결혼, 즉 4촌이 아닌 3촌 간의 결혼은 너무 가까운 사이라 문제가 더 많았던 것일까?

결혼 동맹을 통해 신부가 지참금으로 영토를 상대방 왕국으로 가져가고, 또 후계자가 안 태어나면 시집간 딸에게 왕위 계승권이 넘어가 그 남편이 왕위를 계승하여 외국인 왕실이 들어온다.

민족 국가 성립이 이루어지기 전이라 가능한 일일까?

오랫동안 한반도에서 단일 국가를 이루고 살아온 우리에게는 낯선 개념인 듯하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스페인과 중부 유럽을 다스리게 된 것도 이런 중첩된 혼인 정책을 통해서였으니 정말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의 발명품이 확실하다.


<오류>

68p

1346년 대립왕으로 황제 하인리히 4세의 손자인 카를 4세(1316-1376)를 선출하였다.

-> 카를 4세는 하인리히 7세의 손자이다.

145p

모리츠는 작센 선제후의 사촌이며

-> 모리츠는 작센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 1세와 6촌 간이다.

163p

카를 5세의 이모가 되는 카타리나가 영국왕 헨리 8세와의 재혼에서 낳은 딸로 펠리페 2세와는 이종사촌 간이었다.

-> 카를 5세의 아들인 펠리페 2세는 영국의 메리의 5촌 조카이다.

191p

장자인 막시밀리안 2세는 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차남 페르디난트 2세는 티롤과 포르란테를 상속하였고

-> 조카인 황제 페르디난트 2세와 헷갈리므로 대공 페르디난트 2세로 표기해야 할 것 같다.

193p

차남인 프랑스의 왕 샤를 9세는 오스트리아의 막시말리안 2세의 딸 안나와 결혼하여야만 하였다. 그와 동시에 샤를의 누이동생 마가렛은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 루돌프를 얻어야만 하며

-> 샤를 9세는 막시밀리안 2세의 딸인 엘리자베트와 혼인했고, 안나는 외삼촌인 펠리페 2세와 혼인했다.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 루돌프는 독신이었고, 샤를 9세의 누이동생 마가렛은 앙리 4세와 혼인했다.

239p

요제프 2세가 부르봉-파르마의 이사벨라와 결혼함으로써 축제의 막을 올렸다. 차남 레오폴트 2세가 부르봉-스페인의 마리아 루도비카와 결혼함으로써 두 번째 막을 올렸다. 특히 이사벨라와 마리아 루도비카의 어머니들은 자매간으로 이종사촌이었다.

-> 이사벨라의 아버지 파르마의 필리포 1세와 마리아 루도비카의 아버지 카를로스 3세가 모두 펠리페 5세의 아들들로 둘은 사촌간이다.

부록의 가계도

막시밀리안 2세의 딸 엘리자베트 = 샤를 4세

-> 샤를 9세와 결혼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줌 인 러시아 2 - 도시 이야기 줌 인 러시아 2
이대식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전에 1권을 읽었던 것 같은데, 2권이 신간으로 나와 못 지나치고 빌리게 됐다.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는 학자가 아니다 보니 깊이 면에서는 부족하지만 현재 러시아의 산업 분야에 초점을 맞춰 현장감 있게 소개한 것이 장점이다.

기업 연구소라서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지금 현재의 경제 상황도 같이 소개하여 균형감이 있다.

그렇지만 역시 본격적인 러시아의 역사적 전통을 알기에는 내용이 부실하다.

얼마 전에 읽은 <시베리아 유형의 역사>를 읽어 보면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이 갖는 의미와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나온다.

동방정책이라고 점잖게 표현하지만 사실은 미국이 인디언들을 몰아 내고 금을 찾아 서부 개척을 했던 것처럼, 러시아 역시 시베리아의 수렵인들을 몰아내고 모피를 찾아 동쪽 끝까지 진격해 나간 내부 식민지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중국이 신장과 티벳트를 정복하여 한인 이주 정책을 펴는 것처럼 러시아 역시 현지인의 동화 과정이 활발하고 약소 민족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과정일 듯하다.

이런 내부적인 문제는 과연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러시아의 도시라고 하면 기껏 아는 게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가 전부였는데 시베리아 철도를 지나가는 여러 도시들을 소개해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모스크바 공국이 여러 러시아의 공국들을 통합한 이유가, 몽골 제국에 가장 열심히 조공을 바쳤기 때문에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그렇지만 결국 힘을 키워 몽골을 몰아내고 주변을 통합하게 된다.

진정으로 러시아가 제국이 된 것은 그칠 줄 모르는 동방으로의 진출 야욕이었을 것이다.

일관되게 로마노프 황제들이 동방정책을 추진했던 점이 인상적이다.

마치 청조의 중앙아시아 정복을 보는 듯하다.


<인상깊은 구절>

270p

당연히 정치와 경제 면에서도 몽골의 영향을 받았다. 정치적으로는 귀족과 교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전제권력의 기반이 확립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관련 학계에는 이반 뇌제, 표트르 대제, 스탈린, 그리고 푸틴으로 이어지는 오랜 권위주의 정권의 전통이 몽골 지배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14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르네상스와 산업화로부터 러시아가 철저히 단절되어 오랫동안 농업국가로 남아 있던 것도 몽골의 지배를 그 요인으로 본다.

 더 흥미로운 것은 모스크바가 러시아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몽골에 가장 충직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러시아의 최고 지도자인 대공의 지위는 몽골이 정해줬고 대공은 러시아에서 조공을 거둬 몽골에 바치는 대리 수금자 역할을 했다. 몽골의 인정을 받기 위한 지방 공후들의 경쟁에서 가장 돋보인 사람이 바로 모스크바 공후였다.


<오류>

184p

사실상 매형에게 국정을 맡기는 섭정 체제가 시작되었으니, 표도르의 매형이 바로 보리스 고두노프이다.

-> 보리스 고두노프의 여동생이 표도르와 결혼했기 때문에 매형이 아니라 처남이다.

270p

이반 뇌제의 사위이자 류리크 가문의 대를 끊은 보리스 고두노프

-> 보리스 고두노프의 여동생이 이반 뇌제의 며느리가 됐다.

342P

프리드리히 1세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한다. 그의 아들 빌헬름 1세는 호박방에 관심이 없었고

-> 프리드리히 1세의 아들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이다. 빌헬름 1세는 후대 사람이다.

344p

엘리자베타의 며느리로 와서 남편 표트르 3세를 암살하고 황제가 된, 독일 출신의 예카테리나 여제는

-> 엘리자베타 여제는 미혼이었고, 표트르 3세는 그녀의 조카이다.

354p

시어머니인 엘리자베타가 지은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겨울궁전에 입성한 예카테리나는

-> 엘리자베타는 예카테리나의 시어머니가 아니라 시이모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대식 2020-11-27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정확한 지적 꼭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marine 2020-11-28 09:08   좋아요 0 | URL
저자께서 직접 댓글 달아주시고, 감사드립니다^^
시베리아 철도를 기준으로 모스크바의 여러 도시들을 소개하는 형식이라 러시아라는 거대한 나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특히 매 챕터마다 지도를 실어준 부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이대식 2020-11-29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적하신 내용은 실제로 제가 강의할 때 말하는 내용인데 원고를 쓸 때 어떻게 그렇게 작성되었는지 저도 이해가 안가네요.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