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 왕국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89
다카라 구라요시 지음, 원정식 옮김 / 소화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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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얇은 책이라 좀 놀랬다.

생소한 지역사라 어려울까 봐 걱정했는데 내용은 비교적 평이하고 짧은 분량에 비해 알찬 느낌이다.

오키나와 여행을 계획했는데 어처구니 없이 여권을 안 가져와 공항에서 스케쥴을 취소한 적이 있어 아쉬운 느낌이 있는 곳이다.

저자는 류큐인으로 지역사를 연구하는 학자인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제주 같은 느낌이랄까?

제주보다는 좀더 독립적이고 저자 역시 17세기 사쓰마 번에 점령당하기 이전, 古류큐 왕국의 독자성에 초점을 맞췄다.

제주도는 류큐에 비해 한반도와 훨씬 가깝고 따로 독립적인 왕국의 존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니, 대만이나 제주와는 또다른 정체성을 가진 곳 같다.

류큐어가 일본어의 방언으로 여겨지는 걸 보면 동질한 정체성을 가진 것 같기도 하다.

고대 역사는 알려진 것이 없는 것 같고 문자 기록으로 보이는 시대는 12세기부터다.

14세기에 북부, 중부, 남부의 세 곳에 독자적인 정권이 들어섰는데 중국과의 조공 무역에서 앞선 중부 지역에서 통일 정권을 만들어 내고 슈리성을 쌓는다.

그런데 이 성은 미군의 오키나와 침공 때 사라지고 최근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1972년에서야 비로소 미 군정에서 해방되었다니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줄 미처 몰랐다.

오키나와인들만의 애환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중국과의 조공 무역을 통해 많은 상품들을 구입한 후 다시 동남아시아와 조선 일본 등과의 중계무역을 통해 성장했는데 이것의 주체가 놀랍게도 민간이 아닌 정부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류큐는 상업 왕국이었던 셈인가?

네덜란드처럼 해양국가로 성장하기에는 영토나 국력이 너무 약한 탓일까?

16세기 이후 중국의 해금정책이 유명무실해지고 중국과 일본 상인들이 직접 무역에 뛰어들자 결국 류큐는 쇠퇴하고 만다.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큰 상품 공급지이자 소비처였을 명나라가 해금 정책을 고수한 까닭이 궁금하다.

엄청난 국력을 가졌지만 결국은 폐쇄된 국가였기 때문에 몰락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류큐왕국의 독자성에 대해 알게 된 좋은 시간이었고 늘 그렇지만 좀더 많은 책을 읽어 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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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유서 - 석굴 속 실크로드 문헌
하오춘원 지음, 정광훈 옮김 / 소명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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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이상한 컨셉의 책이라 뭘 읽었는지 모르겠다.

책 디자인이나 편집은 아주 좋다.

산뜻한 느낌이고 돈황 문서들을 보여주는 도판도 아주 선명하고 좋다.

그런데 내용이 너무 이상하다.

분류학이라고 해야 하나?

돈황 문서가 주는 의미, 당시 시대상 등에 관한 내용인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돈황 문서들이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고 분류해서 알려주는 목차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돈황유서"라고 제목을 지은 건가?

돈황유서를 통한 당시 사회상의 구성이 아니라, 돈황유서 자체가 주제인 셈이다.

돈황문서들은 4세기부터 10세기까지 600년에 걸쳐 소장되었다.

보통 베껴 쓰다 보니 잘못 옮겨지는 경우가 많아 시간이 흐를수록 원뜻을 잃어버리게 되기 마련인데 송대 이전 판본이 보전되어 원전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불교 경전이 90% 이상이지만 행정문서나 유교 경전, 도교 경전, 계약서, 의학서 등도 남아 있다.

사진으로 여러 문서들을 보여주는데 글씨체가 아주 선명하고 바르다.

불교 경전의 경우 베껴 쓸 때 고승들이 수행하듯 한 자씩 정성을 들이고 종이질이나 장정 상태도 양호하다.

궁정에서 돈황까지 전해진 관방 경전들은 당대 최고의 고승들이 교정을 거쳐 좋은 종이에 해서체로 반듯하게 쓴 것들이라 문서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시대가 앞서니 보다 원전에 가깝다는 장점이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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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삶과 종교
이평래 외 지음, 중앙아시아학회 엮음 / 사계절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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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이라 쉬울 줄 알았는데 중앙아시학회에 발표된 여덟 편의 논문 모음으로 내 수준에서는 다소 어려웠다.

중앙아시아사는 항상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그렇지만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주제들도 있어 전체적으로는 유익한 독서 시간이었다.

몇 가지 기억나는 것들


1) 흔히 胡 라고 하면 흉노로 알려졌는데 당나라 시대에 와서는 소그드인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논증했다.

맨 마지막 해설자의 논평에서는 胡 가 사산조 페르시아까지 포함하는 의미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둘 다 맞는 얘기 같다.

2) 이주형 교수의 글에서는 간다라 미술에서 붓다의 고행상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것을 감상하면서 초기 경전들이 만들어졌음을 추측한다.

즉 이미지가 먼저이고 텍스트가 다음에 따라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해설자의 논평에서는 겸재 정선의 회화를 통해 18세기 조선 후기 사회를 돌아본다는 예시를 들었다.

흥미로운 추론이다.

3) 투르판 문서를 통해 구성해 본 당시 중앙아시아인들의 일상 생활.

영국 학자의 글인데 이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다.

현대인들의 생각처럼 비단 교류가 주였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중국 정부의 통제를 강하게 받는 일상의 삶도 인상적이었다.

4) 맨 마지막에 실린 16세기 몽골의 불교화 과정이 가장 재밌었다.

솔직히 다른 글들은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이 주제는 관심을 확 끌었다.

막연하게 차가타이 칸국이나 일 한국, 킵차크 칸국의 이미지만 생각해 원나라 이후의 몽골은 이슬람화 됐다고 생각했었다.

정작 몽골 초원에 남아 있던 유목민들은 티벳 불교를 받아들여 21세기 현재까지도 민족의 종교로서 자리매김 했다고 한다.

13세기 쿠빌라이가 티벳 승려들을 받아들인 이래 16세기 동몽궐 수장 알단 칸이 소남갸쵸를 달라이 라마로 칭하면서 왕공들이 위로부터 법제화를 통해 불교를 강제화 한다.

이 과정에서 샤머니즘의 저항을 분쇄키시키도 하고 일부 수용하기도 하면서 기층민들에게까지 전해지는 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알탄 칸이 왜 불교를 국교화 했는지에 대해 저자는 몽골 지역을 이념적으로 통일하기 위해 쿠빌라이의 정치 철학을 모방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승려들이 의학적으로 학문적으로 몽골 사회의 고급 문화를 선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치 게르만인들의 가톨릭 수용과도 같은 개념이랄까?

위로부터 종교법 제정을 통한 강제적 개종과 또 일반 민중들의 생활을 파고드는 토착화가 함께 일어나는 과정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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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 5
김호동 지음 / 사계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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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 때도 어려웠는데 재독 해도 여전히 어렵다.

중앙아시아사가 제대로 개념이 안 잡혀서 그런 것 같다.

지도가 많아 책 자체는 보기 좋지만, 본문 서술이 부족해 안 그래도 복잡한 중앙아시아의 역사가 소략되어 이해하기 더 힘들었다.

얼마 전에 읽은 <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덕분에 맨 앞 장의 스키타이와 중간의 몽골 제국 정도가 이해가 좀 되고 그 외의 부분은 전부 힘들게 읽었다.

여전히 돌궐이나 차가타이 칸국, 우즈벡, 카자흐 등은 실체가 모호한 느낌이다.

뭉뚱그려서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 국가들이 명멸을 거듭했고 18세기부터 러시아의 동진과 청나라의 서진으로 제국에 합병되는 과정을 거쳤다고만 이해했다.

관련 서적을 좀더 많이!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원나라의 멸망이 흑사병 때문일 수도 있다는 가설이 신선했다.

좀더 논의가 필요한 부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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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보는 고대사 - 민족과 국가의 경계 너머 한반도 고대사 이야기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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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출간된 책이니 벌써 10년이나 흘렀구나.

조공외교가 단순한 허례의식이 아니라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적 질서였으며, 한반도 고대 국가들은 그런 조공 형식을 잘 이용하여 당시로서는 가장 앞선 문명권이던 중국의 선진 문화를 수입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구절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오늘날 정치 현실과 비교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다 시의성에 떨어지는 어설픈 비판인 경우가 많다는 걸 알기에 말을 아낀다.

어떤 의미로 "거꾸로" 보는 고대사인지 잘 모르겠다.

민족주의 시각의 극복이라는 뜻인가?

저자는 러시아 태생으로 한국 고대사를 전공한 독특한 이력 때문인지 확실히 한국의 민족주의적 시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민족이란 용어 자체가 근대의 탄생어라는 말이 이제는 기본 상식처럼 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고구려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아쉬워 하고 만주 벌판을 마치 회복해야 할 고토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으니, 과연 민족주의 극복은 여전히 어려운 일 같아 보인다.

신라가 통일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군사력 보다 외교력에 있었으니, 당나라가 토번이나 투르크계의 서역 국가들보다 극동을 덜 신경쓴다는 지정학적 정세를 잘 파악하였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견해에 공감이 간다.

국사 교과서에는 남북국 시대라 명명하지만 당시 신라인은 과연 발해를 언젠가는 통일해야 하는 문화적 종족적 동질성을 가진 한 민족으로 여겼겠냐는 질문이 날카롭다.

통일 신라 대신 후기 신라라는 표현이 과연 역사적으로 온당한 것일까?

신라인들이 오늘날 우리가 북한을 생각하는 것처럼 발해를 한 민족으로 인식했을까?

오히려 신라는 발해를 말갈족의 나라로 인식했을 거라고 슬쩍 내비친다.

고조선이 한에 멸망한 뒤 평양에 설치된 낙랑군이 당시 한반도와 왜국에 선진문화 공급처였다는 사실도 언급한다.

이 중계무역을 맡았던 곳이 바로 김해의 금관가야인데 낙랑이 고구려에 멸망한 뒤 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광개토왕의 남정 이후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고령의 대가야로 주도권이 옮겨졌음은 다른 책에서도 읽은 바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저자는 중국의 한사군 설치가 절대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고 문화 교류, 특히 선진 문화 수입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는데, 그렇다면 일제 시대는 어떤가?

자원을 완벽하게 착취하는 근대의 제국주의와 고대의 중국은 달랐다고 하지만 완벽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새삼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의문이 드는 대목들이 있다.


<오류>

267p

서역 승려 불도징은 후조왕 석록을 '기적'을 통해 교화하여

->石勒, 즉 석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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