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에서>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서울, 북촌에서 - 골목길에서 만난 삶, 사람
김유경 지음, 하지권 사진 / 민음인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아파트와 고층빌딩이 즐비한 서울에서 그나마 옛 정취를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면 누구나 북촌을 떠올린다. 한옥과 굽이 굽이 골목길이 아직은 남아 있는 곳, 그래서 왠지 하염없이 골목을 배회해도 좋을 것 같은 곳, 꼭 잃어버린 고향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 북촌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느새 우리 삶의 터전이라기보다는 어쩌다 한 번 마음먹고 찾아가야 하는 곳 같은 느낌을 주는 그곳 북촌을 수없이 답사하고, 그 북촌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 곳에 흔적을 남겼던 사람들의 인생을 더듬어 보는 책이 나왔다.  

사람은 저마다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 있다. 그게 나에게는 골목길의 기억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난 일부러 골목을 빙빙 돌아 집으로 가곤 했다. 사람 한 두명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을 만한 길 옆의  어떤 집은 낮은 슬레이트 담벼락에 쌓여져 있었고 어떤 집은 그냥 싸리 나무 울타리나 옥수수 같은 것으로 울타리를 삼아 집 안이 훤히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굽이 굽이 돌아가는 미로와 같은 그곳을 호기심 잔뜩 안고 걸었던 게 생각이 난다.  끝이 보이지 않아서, 막다른 길인줄 알았는데, 옆으로 난 또 다른 길을 만나기도 하고, 또 어디론가 연결되었을 거라 믿고 가다 보니 막혀 있어서 돌아나오기도 하고, 닫겨진 철문 뒤에 뭐가 있나 생각하기도 전에 개 짓는 소리에 지례 겁먹고 도망쳐 나오기도 하고..  낯선 골목을 배회하는 건 내가 그 당시 할 수 있는 가장 큰 모험이었다.  

이젠 시골에 가도 그런 골목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시골은 집이 드문드문 있어서 골목이라고 할 만한 게 없고, 집이 모여 있는 곳에는 어디나 차가 들어갈 수 있는 소방도로가 뚫려 있다. 그래서 고향에 내려가도 어린 시절 나를 설레게 했던, 모퉁이를 돌아서면 어떤 집이 나올까,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하는 기대를 불러 일으키는 길을 만나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길을 제작년엔가, 난 삼청동 어디 쯤에서 만났다. 우연하게 직장 동료들과 인사동을 걷다가 처음 가본 곳 삼청동!! 서울에 이런 곳이 있어 하는 놀라움을 불러 일으켰다. 어떤 풍경이 아니라, 길 자체 때문에 계속 걷고 싶다는 느낌을 정말 오래간만에 만났다. 굽이 굽이 돌아가는 길 사이 사이에 만나는 신기한 가게들.. 신기한 박물관들.. 화랑들.. 물론 어김없이 음식점들이 꽉 들어찬 곳들도 많았지만, 오밀 조밀 무언가가 꽉 들어차 있는 제대로된 골목을 만난 느낌 이었다.  참 반가웠었다.  

그 때 당시 기분으로는 주말마다 삼청동 나들이를 할 것 같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뒤로 한번도 그 곳을 가지 못했다. 바쁘기도 했었고, 또 일부러 용무없이 찾아가기에는 그곳이 낯설고 멀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서울 북촌에서를 처음 펴 보았을  때, 내가 걸었던 그 길들과 그 아기자기한 골목들, 작은 가게들이 떠올랐다. 구석 구석 수많은 곳을 누빈 흔적들, 예쁜 사진들.. 또 그곳에 얽힌 옛 이야기들과 사연들.. 재미있었다. 어느 햇볕이 좋은 오후에 책 한권 들고 저자가 소개해준대로 삼청동이며, 평창동, 성북동, 서울 성곽을 따라 걸어보고 싶다. 특별히 예술 이라고 할 것 없이 삶 자체가 격조 높고 아름다웠던 조선 조 선비 문화의 자취를  쫓아가고 싶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하루가 다르게 서울 북촌도 변해가고 있다. 옛 사람들의 흔적은 점점 묻히고 자본주의 상업 문화가 곳곳에 침투하고 있다. 한적하게 걷던 길은 없어지고 터널이 뚦리고 나름대로 정겹던 건물들은 철거되어 빌라촌으로 바뀌어가고 위엄있던 저택들은 죄다 쪼개져서 일부는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이 되고 일부는 상업 시설로 바뀌고 찻집이 되어 버리고.. 

서울에서 그나마 가장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곳, 북촌도 자본주의의 무시무시한 변화의 손길을 피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옛날 선조들은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을 간데 없다고 아쉬워했었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사회 체제 하에서는 산천 조차도 그대로일 수가 없다. 하루가 다르게 개발이나 건설이니 하면서 아파트나 도로 골프장, 리조트 등으로 바뀌어 버린다.  

잃어버리기 전에 아끼고 보살펴야 하는데, 뒤늦게 잃어버리고 나서야 후회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책이 반갑다. 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의 취재,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전하는 진솔한 일상, 그리고 사진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도 북촌은 조금씩 달라져갈 테고.. 언젠가 우리가 조선 시대의 풍물을 이야기해주는 글을 신기한 마음으로 접하듯, 우리 후손들이 이 책을 접하게 될 거란 생각을 해 본다.  그 후손들은 우리 세대에 대해 무엇이라고 평가할 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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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박치기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인생은 박치기다 - 재일 한국인 영화 제작자 이봉우가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책!
이봉우 지음, 임경화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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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종종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이나 평전이 출판된다. 기회가 닿는 대로 그런 사람들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얼핏 보면 나와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책을 써 낼만큼(? 아니, 쓴 책을 출판해 줄 만큼 ?) 성공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기도 하고, 기왕지사 실패해서 인생의 나락에 떨어진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것보다야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게 기분에도 낫다.  예전에 텔레비젼에서 [성공시대]라는 다큐 프로를 해 준 적이 있었다.  

우리 사회의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첫 시작과 첫 실패, 좌절, 그리고 계속된 도전과 결국 값지게 얻어낸 성공을 드라마처럼 재연해서 보여주고, 사이 사이에 인터뷰도 넣고 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몇몇 편은 참 감동적으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성향이 있는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한계라고 느끼고 주저 앉게 되는 타이밍에서 그들은 한발짝 더 나간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은 "백척 간두에서 한 걸음 더!!"이다. 원래 불가의 수행자들이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할 때, 쓰는 말이다. 까마득한 절벽 꼭대기에서 한 걸음 더 내 딛는 마음 자세, 죽음도 불사하고 한 걸음 더 내딛는 순간에 비로소 정각의 순간이 다가온다고들 한다.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라 뭐라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가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모두 안된다고 하는데, 그리고 객관적으로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인 듯한데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감동과 존경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의 첫 장을 펴면서 마찬가지로 이 책도 우리들에게 꿈과 용기를 불어넣어줄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읽어나가면서부터 무언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정서라고 해야 되나?? 저자가 몸 담고 있는 현실,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 한국인(? 조총련 계??)이란 처지 자체가 낯선 세계였다.  

막연하게 나는 한국 사람은 어디에 가서 살든 당연히 한국인으로서의 정서와 전통을 유지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포들이 한국말이 더듬거리는 모습을 보거나, 군대 문제 때문에 쉽게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인임을 선언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신이 썩었다거나, 부모의 교육부터 잘못 되었다라고 비난하기 일쑤였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배척받기 쉬운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일본처럼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나라(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처럼, 일본 사람들이 양심이란 게 있어서 우리 민족에게 지난 세기 동안 저지른 일을 생각한다면 무릎꿇고 빌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오히려 그들은 일본 내 조선인들을 경멸하고 차별하고 있는 모양이다.)에서 끝까지 한국 사람으로 남아 살아내기란 쉽지 않았을 테고, 더군다나 일본 주류 사회에 편입해 성공한 영화인이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들었을 것이다.  

다만, 그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 영화에 대한 열정!, 수많은 시행착오, 비슷한 고민과 상황을 공유하는 재일 교포들과의 유대 등등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할 수는 있었지만, 제대로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책 자체에서 그의 삶의 이력 이야기보다는 주로 자신이 제작한 영화 [박치기]와 기타 자신이 수입한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독자의 공감을 사기 쉬운 이야기, 박해 받는 재일 한국인이라는 이야기 보다는 저자는 자신의 삶에 대해, 재일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정체성에 대해,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로서, 혹은 숨겨져 있던 보물 같은 영화를 수입해서 대중에게 소개시켜주는 영화 수입업자로서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가 제작한 영화를 한 편이라도 보았더라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많이 공감할 수 있었을텐데.. 다음 기회라도 이봉우라는 인물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면 보아야겠다. 공감이라는 것도 앎을 전제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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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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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고 남과 다른 방식으로 살면서도 후회하지 않는 것, 그 속에서 자신이 꿈꾸던 진짜 자신을 만나는 것, 진짜 행복을 만나는 것!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다 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타인의 평가나 시선에 연연하기에,  선뜻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튀지 않게 그저 보통 사람들처럼만 살아가려고 한다.  

책은 저자는 그런 면에서 좀 다른 사람이다. 고아였지만, 자신의 인생을 참 열심히 살아오신 부모님의 영향으로 스스로 자신을 책임지는 삶을 선택했던 여자.. 그래서 홀홀 단신으로 그 옛날에 독일 유학까지 가서 건축 관련 분야의 박사 학위까지 딴 여자. 그 과정에서 하우스 메이트 였던 독일 남자를 만나 아들 딸 낳고 알콩달콩 멋지게 살고 있는 여자. 돈 많이 버는 것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자. 지구 환경을 위해 차 대신 자전거를 선택한 여자, 사회에 대한 개인의 책임, 특히 배운 사람들의 책임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여자. 자신의 아들, 딸을 사랑하지만, 그들을 개별적 한 인간으로 존중할 줄 아는 여자, 한마디로 멋진 여자!! 부러운 여자!!  

영어 속담에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란 말이 있다. 그런데, 용감한 사람은 미인만 얻는 게 아닌 것 같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대해 용감한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일에 대해 용감한 사람들만이 어쩌면 진짜 인생을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평생 지켜가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와 저자의 남편은 그런 면에서 약간 별종에 속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배운 사람들(부부 모두 박사란다!!)이기에 우리 사회가 그토록 원하는 성공의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었을 텐데, 애초부터 사다리 자체를 거부한 사람들이고, 보다는 가족과의 함께하는 시간을 선택했고, 직장에서의 출세나 돈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걸 선택한 현명한 사람들이다.   

물을 아끼기 위해 욕조에 물 받는 것도 꺼리고 에너지 절약을 위해 뜨거운 고무팩을 안고 잠을 자며, 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커다란 집 대신 가족과 함께 알콩달콩 살 수 있는 작은 집을 선택한 이야기, 겨울에 샌들 신고 다니고, 수업 빼먹고 아르바이트하면서도 대학을 잘 다니고 있는 아들, 이집 식구들 같지 않게 멋쟁이인 딸 이야기,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선택할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우기 위해 노력한 일화들.. 등등 어떻게 보면 소소한 일상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자신의 삶과 원칙에 충실했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독일인과 결혼에서 독일에서 수십년을 살고도 여전히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인 저자가 독일의 철저한 나치에 대한 반성과 역사 청산 노력을 언급하면서 그와는 정반대의 행태를 보이는 일본에 대해 가하는 비판이라든가, 부모의 경제력과 교육 정도에 따라 자녀의 교육 정도가 결정되어지는 현 독일 시스템의 한계(이건 우리 나라도 언제부터인가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다. 공부는 자신의 노력보다 부모의 재산과 정보의 힘이 더 중요하다란 말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에 대한 비판, 통독이후 2등 시민으로 전락해 버린 동독 사람들의 잠재된 불만이 다시 신나치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현실. 인간은 누구나 상황에 따라 집단 광기와 집단 이성 마비에 휩쓸러 버릴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 지성인으로서의 사회에 대한 책임 문제!! 등등가볍게 읽고 그냥 넘기기엔 버거운 이야기들도 많이 실려 있었음에도.. 읽는 내내 편안했다.  

아마도 그런 무거운 주제들을 무겁게 다루는 게 아니라, 삶에서 부딪치는 이웃의 이야기로, 자신의 이야기로 다루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암튼 책을 다 덮고 나서 내가 느끼는 느낌은 "참 멋진 여자구나. 멋진 사람이구나. 그러니까 자신과 똑같이 닮은 사람을 만나 자신의 소중한 삶을 알알이 가치있게 만들어가고 있구나!"였다.  

사람은 모두 유일무이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각기 다 나름대로 소중한데, 우리는 남들에게 내가 소중하게 대접받기를 원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또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진짜 자신이 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이미지에 일희일비하는 경우도 많다. 타인의 우호적 시선 내지는 존중을 갈망하기에 돈이나 지위에 집착하게 되고 평판에 신경을 쓰게 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대다수가 갈망하는 삶을 자신도 살려고 허덕거리다가 결국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회의에 빠지거나,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메말라 간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는 사람만이 타인에게서도 같은 존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걸 저자를 통해 다시 한번 배웠다.   

책에 나온 이야기중.. 저자가 자신의 딸에게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한 두번 실수로 망쳐지는 인생은 없어!" 나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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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 - 사랑했으므로, 사랑이 두려운 당신을 위한 심리치유 에세이
권문수 지음 / 나무수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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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란 직업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텔레비젼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들은 대개 지적이고 따뜻하게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멋진 사람처럼 보여졌다. 내심으로는 뼈 빠지게 육체를 써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하느라 자신의 뇌를 혹사시킬 것도 없고, 다른 의사들처럼 힘든 수술을 해야 하거나,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 내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환자나 상담자들의 이야기나 들어주면서 적당히 맞장구만 잘 쳐 주면, 설렁설렁 하면서 돈도 벌고 존경도 받으니, 더할 나위 없는 직업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보니, 타인의 말을 진심을 다해 듣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기에, 이젠 더이상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란 직업이 만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보편적인 애정과 신뢰가 나에게 있는가? 라는 면에서 나와는 맞지 않는 일인 듯 싶고 무엇보다 이제와서 업종 전환을 꿈꾸기에는 내가 너무 나이를 먹어 버렸다.  그래도 늘 타인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더듬는 그들의 직업에 대해 적당한 정도의 호기심과 존경심은 여전히 간직하게 된다.  

이번에 내가 읽은 책은 바로 그런 사람이 쓴 이야기이다. 정신과 의사는 아닌 것 같고, 테라피스트라니까, 심리 치료사(?), 혹은 상담사(?) 인 듯 싶다. 미국에서 사랑의 상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수많은 환자들을 상담한 사례를 들어서, 어쩌면 모두가 갈망하고 간절히 원하지만, 필연적으로 우리를 아프게 하고 절망케 하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하게도 했다가 사라져버리는, 움켜쥐려고 할 수록 더 금새 빠져나가버리는 사랑의 경험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번번히 상처 받을 줄 알면서 나쁜 남자에게 끌려 다니는 여자, 혹은 습관처럼 이여자 저여자와 관계를 맺고, 상처를 주면서도 죄의식이 없는 남자, 사랑이 두려운 사람, 혹은 더이상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게 될까 두려운 사람, 모든 것에 무감각해진 여자, 외도를 하는 여자와 남자 등등 많은 사람들의 진솔한 고백과 그 고백을 듣고 때론 이해하고 때론 충고하고 때론 함께 안타까와하는 저자의 생각들을 함께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의 주제는 한 마디로 사랑이다.. 가수 양희은의 노래처럼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에 한번은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 사랑, 혹은 외사랑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상대에 대한 애타는 갈망, 기대, 초조감, 애착, 그리움, 망상, 원망, 황홀감 등등 정말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 과정에서 현명한 처신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청소년기를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들 하지만, 어쩌면 진짜 질풍노도의 시기는 바로 한 인간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부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는가에 따라 한 사람의 나머지 인생이 좌우된다고 말하면 지나친 걸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그 사랑을 겪는 과정에서 무언가 순탄하지 않았고, 그게 자신의 삶의 앙금으로 남아 다른 모든 부분까지 힘들어져버린 사람들이다. 우리는 쉽게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옳지 않다거나, 어리석은 일이라거나, 무모한 일이라거나 지금은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다 편안해질거라거나, 여러 가지 말로 충고하거나 판단을 내려 버린다. 그런데, 과연 그런 판단이나 충고를 할 만큼 우리 자신은 사랑에 대해, 삶에 대해 자신만만한가??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내가 감탄한 부분은 저자의 태도였다. 상담자들을 도와주고 싶어하는 마음(?뭐, 이건 직업 상담사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소양이니까,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이 아니라, 판단을 배제하려는 마음, 선입관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 보려는 마음,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그들의 생각과 판단을 존중해 주려는 그의 태도였다.   

사실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아니면 애써 외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에게 무엇이 옳다거나 이게 더 나은 방식이라고 가르치는 것보다는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들어주면서 그들이 자신 속의 진실에 다가가도록 해 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참 그게 어렵다는 걸 종종 느낀다.  

얼마전에 오래 동안 아끼던 동생이 술을 왕창 먹고 와서 한참 울다 간 적이 있었다. 서른을 훌쩍 넘은 뒤에 찾아온 첫 사랑의 아픔 때문에 마음을 추스리지 못한 탓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남자의 지극한 구애에 넘어갔다가, 뒤늦게 남자가 전 애인과 여전히 만나고 있음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숱하게 싸우고 상처주고 결국 이별하고 등등.. 누구나 주변에서 한 두번을 들어보았을 법한 사랑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안타깝기도 했고, 동생이 바보 같다는 생각도 했다. 어짜피 이루어지기 힘들 상대였음에도 그 상대가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았다며 자책하며 아파하는 후배와 함께 아파해주기보다는 나는 그 정도 남자 때문에 왜 네가 힘들어야 되냐고, 바보 같이 굴지 말고 정신차리라고  다그쳤었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어쩌면 그 동생이 부러웠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새 책에 나온 첫 번째 여자처럼 모든 것에 무감각해져버려서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런 감정을 품지 않게 된 나 보다는 그 후배가 훨씬 더 아름답게, 더 여자 같이 느껴졌었다. 책에 나온 사람들처럼 무슨 특별한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울하거나 슬프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냥 신나지도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저자가 어떤 말을 해 줄지 문득 궁금해진다. 제목에서 두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이라고 했는데, 꼭 나 같다. 그런데, 단 한번의 사랑이라도 나는 제대로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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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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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그저 좋은 사람]은 미국으로 이민간 인도인 2세를 중심으로 한 중, 단편 소설 모음이다. 제목만 보고 빌린 책이라, 처음에는 이야기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이야기의 분위기가 계속 비슷비슷해서.. 꼭 언젠가는 등장인물들이 다 만나 얽히고 설힌 더 복잡한 이야기가 전개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각 등장인물간의 관계도를 나름대로 그려 보려고 했는데, 세 편 정도 읽고 나서야, 내가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당연히 별개의 소설이니까 각 등장인물들도 다 별개의 인물들이다. (마지막 세편만 빼고! 마지막 세편은 화자가 바뀌는 연작 소설이다.)  

책의 표지에 실린 저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책에 등장했던 많은 여주인공들의 모습이 저자의 모습과 겹쳐져서 보였다. 큰 눈에 이지적인 표정을 지닌 꽤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작중 화자들은 모두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미국 이민 1세대인 인도인 부모를 둔 자녀들이란 점이다. 그들의 부모는 몸은 미국에서 살지만, 여전히 사고방식은 인도인이다. 인도 전통 의상인 사리를 입고, 인도의 풍습을 지키고 인도 음식을 차려 먹고 비슷한 처지의 인도인들과 교류한다. 그에 비해 이민 2세대인 화자들은 나름대로 미국 생활에 적응해서 미국적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들 부모에게는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존재처럼 바뀌어 가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완전히 미국인으로 동화되어 살아가지도 못한다. 백인들에게는 그들은 여전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특이한 풍습에 젖어 있는 인도인이기에..   

소설에서는 특히 가족 간의 갈등과 해소에 대해 많이 주목하고 있다. 사별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딸과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된 아버지간의 미묘한 긴장감! 알코올 중독이 되어버린 동생을 둔 누나의 자책감과 원망, 자신을 형수님이라고 부르는 남편과는 전혀 다른 생기발랄할 청년에 대한 어머니의 연정과 질투, 스치듯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서 비로소 운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경력과 삶을 포기할 수 없기에 이별하고 결국 영원히 헤어져버린 연인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나 하나가 묘하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책에 실린 여러 이야기 중 책의 제목이 된 [그저 좋은 사람]이란, 알코올 중독에 빠진 동생을 둔 누나의 이야기였다.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뛰어난 수재였던 동생은 집안 식구 누구와도 마음을 터 놓고 지내지 않는 듯 싶다. 자신과도 서먹한 사이였던 동생이 어느 날, 모처럼 방학을 맞아 집으로 온 누나에게 맥주를 사달라고 한다. 동생과의 친밀감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에 부모님 몰래 맥주를 사서 집안 구석 구석에 숨기고 그런 일은 그 뒤로도 몇 차례 지속된다.   

누나가 자신의 꿈을 위해 영국으로 유학간 사이에 동생은 명문대생이 되었지만,  몇년 뒤에 만난 동생은 희곡을 쓰고 싶다는 이유로 대학공부를 소홀하게 하다 퇴학당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또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애가 딸린 미혼모와 결혼하겠다고 해서 부모님을 기함을 하게 만드는 사고 뭉치이자, 어떤 면에서는 인생의 패배자가 되어 있었다.   

누나는 영국에서 자신이 꿈꾸던 일을 했고, 자신을 사랑하는 괜찮은 남자를 만나 결혼까지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누나의 결혼식날 동생은 술에 취해 결혼식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그 뒤로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다. 다시 몇 년만에 동생은 술을 완전히 끊었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누나를 찾아 런던으로 온다. 누나의 집에서 동생은 예전의 그 불안한 모습이 아니라,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조카와 놀아주는 좋은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못 미덥지만, 동생을 믿고 아이를 맡기고 남편과 외출했다 돌아온 누나는 욕조 안에서 위험하게 방치된 자신의 아이와 제 방에서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동생을 발견하게 되고 왜 동생이 알코올 중독자인 것을 숨겼는지, 그로 인해 자신의 아이가 죽을 수도 있었다며 화를 내는 남편과 대판 싸운후 동생을 쫓아내 버린다.  다음날 아침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에게는 삼촌이 그저 좋은 사람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그런데, 그저 좋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 그저 좋은 사람이란 나와 직접 관계가 없을 때나 성립되는 말이지, 누구건 나와 직접 연관되면 크고 작은 이해관계(이해 관계라고 하니까, 좀 삭막한 거 같다. 꼭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관계란 의미 같아서.. )가 얽히게 되면 누구도 나에게 그저 좋기만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어떤 면에서는 가족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존재이지만, 또 동시에 가장 많이 나를 아프게 하고 상처주는 존재일 거란 생각을 다시 해 보게 된다. 나에게 의미가 없는 사람들이라면 무시하거나 외면하거나 잊어버릴 수 있지만, 늘 부딪치게 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가족들의 나와 다른 행동, 태도,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은 종종 우리들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나를 아프게도 할 수 있다는 걸 다시 책을 읽으면서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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