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비밀의 부채 1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달에 걸쳐 서점 갈 때마다 조금씩 읽던 책인데, 드디어 다 읽었다.  

(함풍제, 동치제 등의 황제 이름과 태평천국의 난이 중간에 등장하는 걸 보면) 시대적 배경은 청나라 말기 정도 되는 것 같고, 공간적 배경은 중국 후난성 근처라고 하는데, 거기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리와 그녀의 라오통(평생토록 지속되는 절친(?) 정도라고 해 두자)인 설화의 인생 이야기를 죽음을 목전에 둘 만큼 늙어버린 나리가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들에게 익숙하지 않는 두 세 가지 풍경을 만난다.  

첫번째가 전족이다. 전족은 여자 아이의 발을 어려서부터 꽁꽁 싸 매 놓는 것이란 것과 그 이유가 중국은 여자가 귀했기에 여자가 쉽게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설과 손바닥 만한 발을 가진 여자가 뒤뚱거리면서 걷는 모습이 관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듯도 하다. 펄 벅의 [대지]에서도 주인공의 처가 전족을 하지 않아 커다란 자신의 발을 수치스러워 하는 장면이 나왔다.  

두번째는 라오통이라는 것이다. 책에서는 의자매로 번역했는데, 말하자면 서로 궁합이 맞는 여자 아이들이 삼국지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하듯 정해진 날에 우정을 맹세한, 평생 서로를 아끼고 지켜주는 특별한 친구를 말한다. 그래서 라오통은 서로의 모든 고통과 아픔과 즐거움을 함께 공유하는, 어떤 면에서는 남편이나, 가족보다 더 소중하고 더 친밀한 존재를 말한다.   

라오통간이 되면 평생 서로에게 헌신하면서, 누슈라고 불리는 여인들만의 문자(어려운 한자를 간략하게 부호로 표현한 듯한 걸로 봐서 이두나 일본의 히라가나 같은 형태의 문자일 거라고 추측했다.)로 부채에 편지를 적어서 서로 주고 받는다고 한다. 예전에 우리 나라에서도 궁녀들끼리만 쓰는 궁서라는 서체가 있었다고 하니까, 뭐, 거기 여자들이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글을 써서 주고 받는다는 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마지막으로는 여자들의 거주 공간이다. 남녀 차별이 심했던 우리 나라에서는 남자들의 거주 공간이 바깥 사랑으로, 여자들의 거주 공간은 안채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에 비해 중국 후난성 부근은 여자들의 공간은 2층으로, 남자들의 공간은 아랫층(1층)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여자들의 온갖 내밀한 이야기나, 사연들은 다 2층을 중심으로 벌어진다. 그런데, 중국의 주거 문화를 알지 못해서, 여자들의 공간이라는 2층이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는지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마 복층 아파트 구조랑 비슷하려나?? 

이 소설은 나리라고 불렸던 여인의 평생에 대한 독백, 내지는 회고의 형태를 띄고 있다. 가난한 농천의 별 볼일 없는 집안에 더더군다나 별 볼일 없는 딸들 중 하나인 나리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친 끝에 금련이라고 칭송 받는 아름다운 전족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 덕분에 중매장이의 소개로 설화라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또래 소녀와 라오통 관계를 맺게 되고, 또 근방의 부유한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  

부유하고 귀티 나는 설화와 라오통인 것을 나리는 자랑스러워하지만, 사실 설화네 집은 몰락할 데로 몰락한 처지였다. 아버지는 아편쟁이였고, 어머니는 너무 귀하게 살아와서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처지였다. 중매장이는 자신의 조카가 창녀나 노리개로 팔릴 것을 염려해, 부잣집 며느리로 내정된 나리와의 라오통을 주선한 것이었고, 나리가 설화를 통해 부잣집에 어울리는 소양을 배워간 것처럼, 설화도 나리네 집에 왕래하며 여자들의 막일을 배워온 것이었다. 예정대로 나리는 부잣집 맏며느리가 되었고, 설화는 천대받는 백정의 아내가 되게 된다.  

시집에서는 천한 백정의 아내와 라오통 관계인 것을 못마땅해 하지만, 그녀들은 어릴 적 약속 그대로 지위나 신분에 관계 없는 우정을 지속한다.  시부모와 남편을 잘 시봉하고, 손아랫 사람들을 잘 다독이면서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을 가진 맏며느리로서의 존중받는 삶을 살아가는 나리는 설화가 힘든 삶을 살아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항상 그녀를 돕고 싶어 한다.   

 곱고 아리따운 설화가 무식하고 드센 백정의 아내로 살아가기란 원래부터 고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과 기름처럼 백정의 집안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는 데다가, 병약한 아들과 쓸모 없는 딸만 줄창 낳거나, 아니면 계속 아이를 유산만 해 대는 설화를 남편과 시어머니는 용납하지 못하고 학대한다. 설화는 누슈를 이용해 나리에게 자신의 삶을 종종 하소연하고 그럴 때마다 나리는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이용해 설화를 그들의 학대로부터 보호해주려고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설화와 나리 사이에는 점점 틈이 생기게 된다. 서로의 환경과 처지가 다르다보니 설화는 귀부인이 된 나리보다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자들에게서 더 위안을 받는 듯 보이고 나리는 그로 인해 깊은 상처와 배신감에 시달리게 된다. 평생  남편보다 더 소중하게, 더 진실하게 대했던 친구가 자신이 아니라  비슷한 처지의 다른 여자들에게 더 의지하고 그녀들과 의자매를 맺었다는 걸 알게 되자 나리는 격분한다.  

자신들의 딸을 다시 라오통으로 맺어주겠다는 약속뿐만 아니라, 그녀와의 모든 약속과 맹세를 설화는 폐기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많은 여자들 앞에서 나리는 설화를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결함있는 며느리, 라오통인 자신의 배신하는 친구, 아편쟁이의 딸, 남편과 성관계에만 탐닉하는 색녀 등으로 매도해 버린다. 존중받는 마나님인 자신의 말로 인해, 설화는 이제 공식적으로 완전히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낙인 찍혀 버리게 되고 그녀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학대, 평생토록 사랑했던 라오통 나리의 외면으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다.  

설화의 비극적 죽음 뒤에 비로소 나리는 설화가 평생 라오통으로써 자신에게 헌신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라오통인 자신은 힘든 삶에서 따뜻한 공감과 위로를 바랬던 설화에게 튼튼한 아들을 부지런히 낳아 남편과 시어머니로부터 인정 받으라며 끊임없이 몰아 붙였지만,  이웃 여자들은 고통받고 아파하는 설화의 옆에서 그녀를 돌보고 위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느 사이엔가 나리는 설화를 위에서 내려다 보며 거만하게 때때로 베풀고 때로는 충고하면서 설화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해 왔던 사실을 아프게 깨닫게 된다. 자 이 평생토록 가장 사랑했던 존재를 상처주고 힘들게 하고 결국은 고통 속에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자책으로 나리는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책에서 이야기 하는 주제가 무엇이었을까?                                                                       힘든 시대를 살아간 두 여자의 우정?  혹은 환경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변해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글로 표현되지 못한 미묘한 감정이 불러 일으키는 오해로 어긋나 버린 관계?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나에게 제일 와 닿는 이야기는 동정과 공감에 대한 것이다. 나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을 동정하는 것과 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는 것은 참 다르다. 물론 두 가지다 인간의 따뜻한 본성의 발로겠지만, 동정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라면, 공감이란 같은 눈높이에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동정이 아니라, 공감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져야 할 감정인 것 같다. 설사 나와 생각이 다르고, 처지가 다르고 입장이 다르더라도, 먼저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텐데..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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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앞두고  있어서 책을 사기가 좀 꺼려진다. 이사 가기전까지는 책을 사지 말아야겠다고 결심을 하는데, 왜 이렇게 읽고 싶은 책, 사고 싶은 책은 점점 늘어나는지.... 

 

 

유시민이란 사람을 만들어 낸 책은 어떤 것들이었을지, 그는 책에서 무얼 얻고 느꼈을지도 궁금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을 어떻게 거부감 없이 설득할 수 있을지, 사람은 어떤 경우에 쉽게 설득되고 어떤 경우에 그게 안되는지 알고도 싶다.  

또 서점에서 조금 들춰 보았던 애도하는 사람이라는 일본 소설도 읽어 보고 싶다.    

 

따뜻한 감성을 지닌 최인호님이 풀어내는 사람과의 만남과 추억 이야기도 궁금하다.. 

서점에 갈 때마다 사고 싶은 책, 읽고 싶은 책이 많고, 알라딘에 들어와 볼때마다 사고 싶은 책 때문에 손이 움찔거리는데, 지금 꾹 참고 견디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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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모처럼 서점에 갔다. 평소 같으면 일하느라 정신 없을 시간이었는데, 남들 다 일하고 있는 시간에 서점에 가니  기분이 좀 묘했다.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고(난 자유니까.. ㅎㅎ) 또 한편으로는 벌써부터 약간의 불안감 같은 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쉬는 것이었다. 그동안 먹고 사는 데 바빠, 아무 것도 못 하고 지냈다고 늘 생각했는데, 쉬기 시작한 지.. 불과 5일 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이대로 쉬어도 괜찮은 건가 하는 걱정이 조금씩 살아나면서, 일하는 동안 내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용기보다, 이렇고 놀고 난  뒷일이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직장 구하는데 신경을 더 써야 하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과 얼마만에 쉬는 건데, 그냥 쉬는 동안에라도 맘 편히, 제대로 한 번 쉬어 보자는 생각이 교대로 떠올랐다.  

그래서 자꾸 어두워지려는 내 맘을 가다듬기 위해서.. 일부러 전철 타고 시내 큰 서점에 나갔다.  

난 큰 서점에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일단 보든 안 보든 책이 가득찬 공간에 나도 함께 있다는 자체만으로 설레임을 느끼게 된다. 요즘 베스트셀러는 뭐가 있는지 보고, 잡지책도 뒤적거려 보고, 내 취미인 뜨게질 도안 책도 보고..  

그러다가 [ 세 잔의 차]란 책을 집어 읽게 되었다. 예전에 제목과 간단한 소개의 글을 보면서 기회 되면 한번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었다. 

모텐슨이라는 한 산악인이 여동생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K-2 등정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하산하던 중 길을 잃어 우연히 들어가게 된 파키스탄의 산간 오지 마을에서 문명과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가난하지만 따뜻한 코르페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코르페 사람들의 따뜻하고 헌신적인 배려 덕분에 겨우 건강을 추스린 모텐슨은  코르페 어린이들이 학교 건물도 없이 그냥 추운 바위 위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에게 학교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하고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게 불편한 몸 때문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던 여동생을 추모하는 더 나은 방법일 거라는 확신과 함께..

현실적으로 모텐슨은 가난한 등반가였고, 그에게 지구 반대편 파키스탄의 오지 마을에 집을 지어줄 수 있는 재력이나 능력이 있을 리 만무였다. 자신이 살 집 대신, 낡은 중고차에서 지내고 병원에서 일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도 그가 원하는 학교를 지을 수 있는 돈 2만 달러를 마련할 길이 없는 그는 유명인사들에게, 각 구호 단체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그것도 처음에는 타자기로 매번 같은 내용을 일일이 쳐서 보내다가 나중에야 컴퓨터를 활용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도와달라는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과연 그렇게 모금해서 학교를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겠지만, 그는 지치지 않고 편지 쓰기를 계속한다. 그리고 그의 열정과 의지가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한다.  그의 끈질긴 노력이 산악인들이 보는 잡지에 소개되고, 코르페에 학교를 짓고 싶다는 그의 진심이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하다 은퇴한 자산가 장 회르니의 마음을 움직여  2만 달러를 쥐게 된다.  장 회르니 회장은 말한다. 2만 달러를 주는 대신 완성된 학교 사진을 가지고 오라고.. 마찬가지로 산악인이었던 회르니 회장 역시 코르페를 방문한 적이 있었고 그 곳에 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2만 달러와 그동안 자신이 일해서 모은 돈으로 파키스탄의 오지 마을 코르페로 돌아간 그를 기다리는 것은 말 그대로 난관이었다.  자재 구입과 운반 모두 쉽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그를 더 힘들게 한것은 그가 어렵게 사서 모은 자재를 오지 마을로 운반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학교를 짓기 위해서는 먼저 목재를 실어나를 수 있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돈에 발목이 잡힌 그를 구해준 것은 또 회르니 회장이었다. 회장은 다리를 지을 돈을 선뜻 그에게 내었고, 이후 그가 그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어렵게 다리가 만들어지고 드디어 자재가 마을로 운반되어 학교가 지어지기 시작한다. 어서 빨리 학교를 완성하고 싶은 모텐슨은 주민들과 조금씩 충돌한다. 그런 그에게 촌장 알리는 말한다. '한잔을 차를 함께 마신 사람은 이방인이고 두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손님이지만,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그건 가족이 되는 것이고 가족을 위해서는 못할 일이 없다. 그래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600년을 학교 없이 살아왔는데, 학교 짓는데 일년이 더 못 기다리겠냐는 촌장 알리의 말은 미국식 성과주의에 물들어있던 모텐슨을 변화시켰다.  

가난한 파키스탄의 오지 마을에 학교를 지어 다음 세대들이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단 한번 우연히 마주친 코르페의 오지에서 시작된 모텐슨의 학교 짓기는 결국 그의 평생의 천직이 되어 현재 80여곳의 학교가 지어졌다고 한다.    

한 사람의 끈질긴 의지와 소망이 불러 일으킨 기적!! 회교도들이 주로 거주하는 파키스탄과 회교도중에서도 악명 높은 탈레반이 세력을 잡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오지에 학교가 세워졌다.  한 사람의 열정과 의지가 다른 한 사람을 감동시키고 또 그 한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을 감동시켜서 점점 같은 꿈과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현실의 기적을 만들어 나가는 아름다운 이야기!! 

반도 다 못 읽었는데, 중간 중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서점에서 서서 책을 읽으며 눈물을 훔치는 내 모습이 좀 민망스러웠지만, 위에서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학교를 지으면서 코르페 사람들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변화되어 가는 모텐슨을 보는 게 좋았다. 이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화라서 더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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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유주얼 서스팩트]란 영화를 보다가 마지막에 가서 우와! 하면서 경악한 적이 있었다. 처음 그 영화를 보고 나서는 너무 놀라우면서도 하나 하나 영화 속에 마지막 반전을 위해 그럴 수 밖에 없는 개연성과 힌트를 숨겨 놓은 감독의 재능에 감탄했었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영화들이 관람객들의 허를 찌르는 반전을 만들기 위해 이런 저런 장치를 숨기는 것들이 일상화되어서, 오히려 그런 반전이 없는 영화는 무언가 밋밋한 느낌까지 들기도 하지만,  마지막의 충격적인 반전이 머리 속에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혹은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수긍과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  

이 책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바로 그런 잘 만들어진 반전 영화 같은 느낌을 주는 로맹 가리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로맹 가리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소설가로 그의 사후에 [자기 앞의 생]이란 작품을 쓴 에밀 아자르가 사실은 로맹 가리 자신임이 밝혀져 더 유명해진 사람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의 삶 자체를 놀라운 반전으로 매듭지은 사람이라고나 할까? 

그런 사람이 쓴 소설집..어쨌든 이 책에는 그 로맹 가리의 중단편 16편이 실려 있다. 거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다채로운 배경을 가진,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다양한 장소를 배경으로 등장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꼭 현실 속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겪는 그럴 법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소설이라면, 로맹 가리야 말로 그런 재능을 타고난 소설가인 듯 싶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생생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왠지 모든 인간 속에 내재되어 있는 본성을 조금씩 엿보게 되니 말이다.

 이야기 들중 내 마음을 특히 끄는 이야기는 자신 안에 꿈틀거리는 예술적 감수성으로 고통 받는 외교관의 이야기를 그린 [류트]와 좀 다른 방식으로 독일의 유태인 학살 비극을 다룬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이다. 두 작품 모두 어떤 면에서는 충격적인 반전을 깔고 있다.  

먼저 류트에서는  겉보기에는 든 면에서 완벽한 삶을 영위하는 한 외교관이 등장한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그는 자기 안에서 꿈틀거리는 예술가적 감수성으로 인해 내적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내면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한 완벽한 품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고미술상을 돌아다니지만, 완벽한 듯 보여지는 작품들도 섬세한 그의 눈에는 무언가 부족한 듯 보였다. 그런 그의 고통과 갈등은 이제 집안의 식구들이나, 그가 종종 들르곤 하는 고미술 가게의 주인의 눈에까지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오래된 터키의 악기 류트를 만나면서 그의 그런 갈등은 드디어 해소되기에 이른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류트를 통해, 그의 예술적 감수성,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지만, 갇혀있는 듯한 그의 감수성이 표현되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드디어 그가 자신의 길을 찾은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물론 처음 접하는 악기를 대번에 잘 할 수는 없겠지만, 런던의 주식 중개인이었다가, 40도 넘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게 되는 고갱처럼 이 사내도 드디어 자신의 가식과 체면을 벗고 류트와 함께 진짜 삶을 사는 이야기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간간히 등장하는 외교관의 아내가 남편을 위해 류트를 뜯는 마지막 구절을 보면서 나는 말 그대로 멍했다. 나의 당연한 예상을 보기 좋게 벗어난 경탄스러운 결말이었다.  

자신 안에 감당하기 어려운 예술적 감수성이 꿈틀거리다, 결국 어떤 타락의 길에 이르는 외교관과 그를 사랑하기에 어쩌면 평생 자신을 희생했던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고, 또 반대로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삶의 이미지를 위해 자기 자신과 주변 모두를 속이는 아내와 비록 비루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자 하는 남자의 충동에 관한  이야기로 해석해 볼 수도 있을 듯 싶다. 그리고 타인의 내적 고통을 즐기는 고미술상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재해석 해 보아도 재미있을 듯 싶다. 길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참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작품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2차 대전이 끝난 것도 믿지 못하고, 유태인들의 나라 이스라엘이 건국된 것도 다 독일군들이 마지막 한 명의 유태인까지 찾아내 학살하기 위한 잔인한 술책이라고 생각하면서 볼리비아까지 와서도 자신을 학대하고 고문했던 나치 간부를 숨겨두고 그의 비위를 맞추며 그를  부양하고 있는 유태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머리 속 시계가 수용소에서 멈춰져 있기에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어도 그는 여전히 두려움에 떠는 나치 간부가 개인적으로 부리는 유태인 포로일 뿐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인질이 어느 사이엔가 인질범에 동화되어 나중에 인질에서 풀려난 뒤에도 인질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 주게 된다고 한다. 2차 대전 중에 잃어났던 유태인의 비극을 아주 짧은 분량의 이야기 속에 담고 있는 이야기였다.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썼다는 소설 [자기 앞의 생]은 나도 예전에 읽었던 작품이다. 그런데, 성장 소설이라는 것 말고는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망할 기억력!! 도서관에 가서 [자기 앞의 생]을 다시 빌려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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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회귀선
헨리 밀러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세계사 / 199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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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이십대 후반, 나를 사로잡았던 몇 안되는 책 가운데 하나였던 북회귀선을 우연히 헌 책방에서 다시 만났다. 똑같은 표지에 갈색으로 누렇게 빛이 바랜 책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사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다시 읽으면서..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에 대해 절감했다. 북회귀선 하면 나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파리 뒷골목, 사창가등을 전전하며 거지처럼 살던 한 사람.(아마도 헨리 밀러 자신이겠지)의 이야기라는 것 정도가 전부다.  

그래서인지 꼭 처음  읽는 것 같다. 

며칠에 걸쳐서 겨우 다 읽었다. 몇 몇 부분은 뒤집어질만큼 웃기기도 하고 또 몇몇 표현들에 대해서는 그럴 법하다고 공감하기도 하지만,  왜 내가 이십대 후반일 때, 이 책에 그렇게 열광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에 반했던 것일까? 

세척기에다 큰 볼일을 본 불쌍한 인도인 에피소드?? 혹은 아직 아무런 작품도 쓰지 않았지만, 기성 작가들을 발 아래로 내려다보는 그의 친구 이야기?? 매혹의 도시 파리에서 운수 나쁘게 드센 프랑스 여자에게 발목 잡혀있다 헨리 밀러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하는 그의 친구 이야기?? 도대체 어디까지가 실제 이야기이고 어디까지가 작가가 상상으로 창조한 인물들인지 구별할 수 없게 만드는 그의 솜씨?? 단 한가지의 사물에서 번뜩이면서 사방으로 튀는 헨리 밀러의 자유로운 상상?? 성에 관한, 그리고 보통은 점잔 빼기 마련인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이었을까??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건 잘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부분만큼이나, 저자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감 조차도 잡지 못하는 대목도 많았기에, 책을 제대로 읽기는 한건지도 확신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 작가가 좋다. 사람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한 두마디로 어떤 사람의 본질을 표현해 내는 그의 어투가 좋다. 도덕적으로는 납득하기 힘들지만, 자유롭게 여러 음식을 맛보듯 여자와 관계를 하고 사람을 사귀는 그의 태도나, 자신의 자유를 위해 거친 삶(?? 글쎄, 거친 삶이라기보다는 비루한 삶이란 표현이 더 맞을 것도 같다. 지인들에게 빌붙어 끼니와 주거를 해결하는 경우가 태반이니까..)을 감수하는 모습까지 매력적으로 보인다.  

나라면 절대로 그런 삶을 선택하지도, 살아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더 대단하게 보이는 것일 거다. 충분히 재능이 있음에도, 또 원한다면 다른 삶, 보통 사람들의 안락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음에도, 헨리 밀러는  자신의 자유로운 상상과 거침 없는, 그러나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삶을 살아간다.  

예전에 읽었던 조지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영락 생활]이란 책이 떠오른다. 잘 기억 나지는 않지만, 그 책에서도 조지 오웰이 파리와 런던에서 헨리 밀러처럼 가난하게, 어쩌면 더 가난하게 무료 급식소와 부랑자 숙박 시설 같은 곳을 전전하는 이야기였는데, 결국 조지오웰은 드디어 그 생활을 벗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 원해서 거지처럼 사는 사람과 그냥 거지와의 차이는 뭘까?? 

책을 다 읽고 나서 뒤에 해설을 보니, 1차 세계 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사건을 겪은 그 시대 유럽인들은 다들 혼란스러워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전쟁이라는 사건 속에 표출된 인간의 무자비한 폭력성과 잔인함, 광기 등등.. 그걸 이해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 노력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 반면, 헨리 밀러는 바깥 세상의 온갖 혼란에 반해 자신의 내면의 사유의 세계로 눈을 돌림으로써 그 시기를 살아내었다는 표현이 나왔다..  

그런 것이었나?? 

암튼, 나를 경탄케 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바 그대로 살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이다. 타인의 시선이 나 평가에 연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가치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힘.. 그건 그의 자신감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삶과 생각들을 글로 옮겨 낼 수 있는 능력!! 그것 역시도 경탄스럽다. 어쩌다 한번 편지를 쓸 때도 처음 인사말부터 수없이 썼다 지웠다는 반복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머리속에서 벌어지는 숱한 단상들을 놓치지않고 글로 옮기는 그의 능력(?? 헨리 밀러가 실제로 이렇게 글을 썼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북회귀선을 읽으면서 내가 받은 느낌은 그랬다... )은 정말 대단하게 보였다. 물론 그의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에 대해 동의할 수는 없지만, 조금 이해할 수는 있을 것도 같다.  그의 다른 책들도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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