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즈음, 80, 90, 그리고 2000년대 노래들을 자주 듣게 된다.

어떤 노래들은 지금으로부터 30년전 노래들인데도, 이상하게 그 노래가 촌스럽다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아련한 향수 같은 것을 불러 일으킨다.

요즈음의 보여지는 것 위주의 음악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것이

어쩌면 더이상 내가 젊지 않다는 것에 대한 반증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가사를 음미하면서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 좋다.

 

좋은 노래나 좋은 책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자신이 태어난 시대의 감성을 충실하게 반영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그 시대를 넘어서는 힘이 있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나에게는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좋은 소설이다.

 

언제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용도 가물가물.. 그저 한 꼬마와 그 꼬마를 돌봐 주던 어느 여자의 이야기라는 것과 그냥 막연히 좋았던 것 같은 느낌만...

아무리 찾아도 책을 찾을 수가 없어서.. 얼마전에 다시 샀고, 주말 내내 다시 읽었다.

 

또래 보다 조숙한, 그리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10살 소년 모모라 불리는 소년이 자신을 돌보아 주던 로자 아주머니와 이별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이 책의 주된 줄거리이다.

 

로자 아주머니는 어쩌면 한때는 예뻤을 수도 있는, 그러나 지금은 늙고 뚱뚱한 유태인 여자였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아이의 부모들로부터 돈을 받고 임시로 아이를 양육해 주면서 살아가고 있었고, 화자인 모모는 그녀가 가장 오랫동안 데리고 있는 아이였다.

 

모모의 기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모모는 로자 아주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열 살이라고 하지만, 열 살이라고 그대로 믿기에는 너무 조숙한 아이 모모에게는  로자 아주머니가 가족의 모든 것이기이전에, 삶의 전부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모의 눈에 비친 로자 아줌마의 모습이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하지는 않다.

7층짜리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힘들어 하는 늙고 지친, 그리고 돈 때문에 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지만, 부모로부터 버림 받은 아이들까지도 차마 내 보내지 못하고 끼고 사는,

때때로 아유슈비츠의 환영에 시달리고, 말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거친 욕설을 퍼 붓다가도 울음을 터뜨리는 히스테릭한 병든 여인일 뿐이다.

 

나는 누구일까?

내 부모는 어떤 사람일까? 왜 내 부모는 나를 찾아오지 않는가?

왜 내 이름은 모하메드인가?

왜 아랍인인 나를 유태인 여자에게 양육을 맡겼을까? 내가 아랍인이 맞기는 한 걸까?

어린 모모에게는 궁금한 것이 많지만,

로자 아주머니에게 이런 것들에 대해 물어볼 때면, 로자 아주머니는 마치 모모가 당장이라도 자신을 버리고 떠나갈 것처럼 서럽게 울어대는 통에, 어떤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녀와 함께 산다.

그리고 그녀가 돌보는 아이들을 돌보기도 하고, 거리를 쏘다니기도 하고, 아랫층에 하밀 할아버지 같이 경험 많고 눈이 아름다운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어찌보면 가난하지만, 또 어찌 생각해 보면 그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로자 아주머니가, 뇌일혈로 점차..

정신을 놓아가게 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녀가 병으로 인해 더이상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게 되면서.. 병들어 죽어가는 로자 아주머니를 모모가 돌봐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고작 열살 (사실은 열 네살이었다. 어린 아이인 채로 자신의 품 안에서 모모를 키우고 싶었던 로자 아주머니가 모모의 나이를 속였다)자리 아이가 병들어 죽어가는 여인을 돌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건물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간신히 간신히.. 모모와 로자 아줌마는 생활을 꾸려 나간다.

 

그러나,

그것도 서서히 한계에 봉착해 가고 있었다.

병원에서 수 많은 기계에 몸을 연결한 채.. 무의미한 삶을 영위하고 싶어하지 않는 로자 아주머니의 마지막을 지켜 주기 위해.. 모모는 모두에게 로자 아줌마의 고향인 이스라엘로 가게 된다고 속이고,

평소에 로자 아주머니가 악몽에 시달릴 때면, 숨어들곤 하던, 아무도 모르는 그녀 만의 안식처

지하실로.. 로자 아주머니를 데려 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숨이 끊어진 로자 아주머니와.. 3주 동안 더 살다 사람들에게 구출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난 조금 울었다.

 

책에서 하밀 할아버지가 모모에게 이야기 해 준 것처럼..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없이 살아갈 수가 없었던 아이 모모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법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숨이 끊어져 버린 로자 아줌마를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책 뒷편에 부록처럼..

로맹가리가 왜 자신의 이름을 속이고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이 책을 썼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젊은 시절, 이미 꽤 성공적인 작가의 삶을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더이상 누구도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읽지 않고 과거의 자신의 작품들로 자신을 한정시켜 버리는,

말하자만, 고착화된 이미지가 작가로서의 자기 자신을 대체해버리는 것, 혹은 그런 사람들에 대한 저항 ? 통쾌한 반전?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

 

로맹가리는 그 것을 에밀 아자르 필명으로 성취해 내었다.

[자기 앞의 생]이 출간되고, 로맹 가리가 자살하면서, 유서에서 자신이 진짜 에밀 아자르라고 밝히기 전까지.. 로맹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인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예전에 로맹 가리의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도, 동일인이 쓴 것이라고 하기에는 풍기는 분위기가 참 많이 달랐다.

그런 타고난 재능이 조금은 부럽다.

 

누구나, 한번쯤은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 새롭게 시작하는 모습을 꿈꾸지만,

그걸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신이 바라는 모든 것을 다 이룬 뒤, 로맹가리는 더 이상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으니,

차라리 그런 능력이 없는 우리 같은  평번한 삶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암튼..

다시 읽어도.. 여전히 눈물나게 좋은.. 아름다운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험한 관계
피에르 쇼데르로스 드 라클로 지음, 박인철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험한 관계..
 
이미 여러차례, 영화화 된 이야기이다.
멀게는 존 말코비치.. 글렌 글로스,  미셀 파이퍼, 그리고 신인 시절의 키아누 리브스와 우마 서먼 까지 세트로 볼 수 있는 1988년의 [위험한 관계] 부터,
비슷한 시기에 [발몽]이란 제목으로 개봉된 영화..
이미숙, 배용준, 전도연이 나와서.. 나름 국내에서 선전했던 [스캔들.. 남녀 상열지사] (? 제목이 이거 맞나?)
올해 초인가 개봉한.. 장동건이.. 중국 배우들과 찍은 이야기의 배경을 1900년대 초반의 상해로 옮겨 찍었다던...[위험한 관계]까지..
기타 등등..
상당히 여러번 영화화된, 그 만큼 매력적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나는 영화 보다는 소설이 훨씬 더 좋았다.
 
이 소설은 주인공들과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 간에 주고 받는 편지 형식의 서간체 소설이다.
 
서간체 소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린 시절 읽었던 [키다리 아저씨] 정도..
영어 공부 한답시고, 영어로 된 [키다리 아저씨] 책 읽다가, 한 열 페이지인가 읽고 역시 나는 한글을 너무 사랑해 하면서 내 던졌던 기억이 난다.
고아 소녀 주디가.. 자신이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르는 후원자의 도움으로 대학에 가게 되고, 그 댓가로 그 후원자에게 자신의 대학 생활과 소소한 일상을 편지로 써서 보내다가 작가가 되고,
자신이 키다리 아저씨라고 불렀던, 알고보면 어머어마한 대부호와 사랑하게 되는 흔한 로맨스 소설 같은 내용...
그런 신데렐라 스토리에 끌리기에는 내가 너무 나이를 먹어 버린 탓에...
지금에 와서는 별 감동이 생기지 않는다.
 
그에 비해, 이 소설 [위험한 관계]는 이 소설을 처음 접한 때부터.. 벌써 십수년이 지났는데도, 다시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고 매력적인 소설이다.
 
워낙 잘 알려져 있어서..따로 소개하기도 그렇지만,
줄거리만 간략하게 말하자면,  발몽 자작과 메르테유 후작부인의 대결 이야기이다.
두 사람은 난공불락의 적의 성채를 공격하는 기사처럼.. 두 사람은 자신의 타고난 외모, 지성, 지위, 돈, 그리고 무엇보다 교묘한 언변을 통해, 절대 넘어올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의 사랑을 얻고, 그 뒤에는 가차 없이 그들을 상처 주고 버린다.
그리고 경쟁적으로 그것을 상대방에게 자랑한다.
삶의 모든 목적이 오직 누가 얼마나 더 어려운 상대를 농락하였는가에 달려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치열한 경쟁?

 

메르테유 후작 부인의 교묘한 부추김에 넘어가 발몽 자작은 자신이 평생 처음으로 진정으로 사랑했던 투르벨 부인을 버리게 된다.
자존심 때문에, 결국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다.
발몽 역시 자살과 거의 다름 없는 죽음을 맞이한 후, 수도원에서 사경을 헤매던 투르벨이 마지막으로 자신이 아니라, 발몽의 죄를 용서해 달라 기도하며, 죽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 모든 사건의 원인 제공자인 메르테유 후작 부인도
발몽 사이에 주고 받은 서신을 통해 자신의 숨겨왔던 실체가 공개되어 사교계에서 매장당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메르테유 후작 부인은 거의 악의 화신.. 사람들을 교묘히 타락으로 이끄는 존재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녀는 또 그만큼.. 사람의 심리에 달통한 사람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의 심리를 꿰뚫고 조종할 수 있을 만큼..

 

그녀와 발몽의 대결 구도도 재미가 있지만,
메르테유 후작 부인과는 완전 정 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는 아름다운 투르벨 부인에 대한 발몽의 구애 과정이 나는 더 흥미 진진했다.
무슨 연애의 교본을 보는 것 같은 느낌?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긴 하나, 덤으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프랑스 귀족 사회를 엿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우리 나라에서 한때 가장 유명한 외국 작가 가운데 하나였다.

오래 전의 이야기인 하나, 그의 소설 [좀머씨 이야기]가 어마어마한 베스트셀러였었고, 그의 또다른 책 [향수]도 꽤 많이 팔렸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의 책들 가운데....

[비둘기]와 [깊이에의 강요] 두권을 가장 좋아한다.

 

[비둘기]의 주인공은 조나단 노엘이라는 50대의 은행 경비원이다.

나름대로 자신이 원하는 성공적인 삶(?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하찮을 수도 있으나, 그가 원하는 것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신의 방을 갖는 것이었다. 그 소망은 곧 이루어질 예정이었다)을 살던 그의 일상에

우연히 한 마리의 비둘기가 날아들면서 벌어지는 고통스러운 하루 동안의 일과가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하찮은 비둘기지만,

노엘에게는 비둘기는 한 공간에 있다는 생각만으로 숨을 쉬기 힘들 만큼 혐오스럽고 공포스러운 존재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쫓아낼 수 없는, (쫓아내자면 비둘기를 직접 상대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혐오스럽고 무섭다.) 비둘기로 인해,

그렇다고 타인의 도움을 빌릴 수도 없는 ( 흉물스러운 비둘기보다 더 그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비둘기를 두려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타인들에게 보이는 것이었다.) 노엘은

도망치듯 자신이 평생 가꾸어온 안식처를 버리고 모든 짐을 챙겨 나온다.

 

여름에 겨울 외투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을 감싸고 장화를 신고.. 비둘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우산까지 챙겨들고..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노엘...

그러나, 비둘기가 점유한 층을 벗어나자 마자,  자신이 이런 모습이 남들에게 얼마마 우스꽝스럽게 보일까를 생각하고, 겨울 옷을 벗어 손에 들고 출근길에 세탁소에 옷을 맡기려는 사람처럼.. 애써 태연을 가장 한다.

 

그날 하루는 노엘에게는 불운의 연속이었다.

수십년 동안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로,

은행 정문을 지켜왔던 자신이지만,

그날 아침부터는 온 몸이 가렵기 시작해서.. 점점 몸의 균형을 잡는 게 힘들어지고, 비둘기로 인해 앞으로 자신에게 닥쳐올 불운한 일들을 상상하다, 은행장의 출근에 맞춰 철문을 열어주고 경례를 해야 하는 타이밍을 놓쳐 버린다.

평생 단 한번도 하지 않았던 실수였다.

그 때부터...노엘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종국에는 자신이 평소에 몸서리치도록 혐오했던 삶..

빈털터리 폐인이 되어 거리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상상을 하면서,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져 나가 순식간에 제 몸과 혼이 분리되어 버리는 경험까지 한다.

 

그가 평생토록 소망해 왔던 것,

그것은 익명성..

어디에 존재하건 남의 시선을 끌지 않고 조용히 품위있게 살아가는 것, 그리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

그걸 위해, 무의미한 일.. 은행 문 앞에 스핑크스처럼 서서.. 오가는 사람을 지켜보는 삶을 수십년 동안이나 불평 없이 참아 왔었는데..

고작 한 마리의 비둘기 때문에 평생의 그의 모든 노력, 꿈, 희망이 다 무너져내린 것이다.

 

거의 유체 이탈 상태였던, 노엘의 영혼은

그날 저녁 몇 시간 동안 거리를 배회하는 동안에, 어느 사이엔가 제 몸 안으로 들어왔다.

 

노엘은 걷기에 지친 몸을 호텔에 뉘였다가 새벽 비에 깨어..

용감한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자신의 방이 있는 건물로 돌아간다.

다행히..

 비둘기의 모든 흔적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작가는 100 여쪽 남짓의 짧은 분량안에.. 비둘기 한마리로 초래되는 노엘의 내면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 내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는 내면의 두려움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노엘에게는 비둘기였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무엇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앞에 서면, 모든 논리적 생각이나, 판단은 사라지고 그저 도망치고만 싶게 만드는 그 무엇?

 

암튼 짧은 분량에 비해..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즈음처럼 수많은 글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여러 재능 가운데, 멋진 제목을 잘 뽑아내는 것은 가장 우선적인 재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상투적이거나 현학적이어서는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뻔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책의 주제와 상관없이 제목을 지을 수도 없으니, 어떤 면에서는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책을 제목과 첫 문장을 쓴다는 것이 시작이 반이라는 격언에 딱 맞는 경우 일 수도 있겠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이라!!

고슴도치에서 연상되는 날 선, 까칠한 이미지와 상충하는 우아함이라는 단어의 어감에 끌려 도서관에서 모처럼 소설책을 빌려 보게 되었다. 늘 그렇듯이 책을 앞 부분과 뒷부분을 훑어보면서 지레 짐작으로 관습적으로 무지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굉장한 교양의 소유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감추고 있는 과부 르네와 감수성 깊은 천재 외톨이 소녀의 뜻밖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혹은 이해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책의 중반을 넘어가기까지 둘 사이에는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의 기대 그대로 하류 계층의 평범한 수위 아줌마의 역할을 조심스럽게 연기하지만, 마음 속에 예술에 대한 뛰어난 감수성, 빛나는 지성으로 뭉친 르네가 자신이 일하는 고급 아파트의 사람들을 접하면서 느끼는 단상들, 또 고작 12살밖에 안되었지만, 너무 뻔한 삶의 모습에 환멸, 혹은 무상함을 느끼고 자살을 꿈꾸는 팔로마가 성찰하는 생각들 (12살 짜리 꼬마의 생각에 성찰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게 좀 과하기는 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고작 늙은 혹은 나이 먹은 어린 아이에 불과한 어른들보다는 더 삶을 성찰하고 있는 게 맞기는 한 것 같다)이 교차된다.

르네는 27년동안 파리의 어느 고급 아파트의 수위 아줌마로서의 세상 사람들의 이미지에 부합된 삶을 연기하며 산다. 물론 자신의 공간안에서 그녀는 누구보다도 빛나는 지성을 지니고 아름다움과 예술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에 속하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마누엘라라는 친구가 있어서 종종 차를 함께 즐기고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르네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 르네를 아파트의 새로운 입주자인 지혜로운 일본인 가쿠로 오즈씨가 알아보게 되면서 르네의 삶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통해 사람을 평가하고 단정짓는 기존 입주자와는 다르게 오즈씨는 르네의 반짝거리는 지성과 감수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르네와 소통하고 싶어한다. 안나 까레니나를  읽고 네덜란드 정물화를 사랑하는, 문학과 예술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고 즐기는, 자신과 비슷한 공감대를 가지는 여성에게 편견없이 우정과 사랑을 느끼는 가쿠로 오즈씨를 통해 르네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또 가족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삶을 지속할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해 자살을 결심한 조숙한 천재 팔로마와 친구가 되려 한 사람도 역시 오즈씨였다.

그런 오즈씨의 등장으로 인해 르네와 팔로마는 친구가 되게 되고, 르네가 평생토록 못 배운 하층민의 삶을 연기하도록 만든 애초의 트라우마.. 누구보다 아름다웠지만 결국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아이를 낳다고 죽어버린 언니의 환영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팔로마 역시 삶과 사람 모두 그렇고 그런 허무하고 무상한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혹은 아름답게 변주될 수 있음을 알게 되고 예측 불허의 순간에 삶, 예술, 혹은 사람의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기에  삶이란 충분히 살아갈 만한 어떤 것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다시는' 속에 있는 '언제나'의 순간, 수많은 절망의 순간 가운데 반짝거리는 아름다움의 순간들을 느끼고 추적하면서 살아가리라 결심하게 된다.

 

사람은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아는 것만큼 그 세계가 확장되는 것과 똑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나무를 100개 정도 구별해 낼 수 있는 사람보다는 나무를 1000개 정도 구별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조금 더 삶이 풍성하지 않을까?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닌지만, 삶의 풍성함이란 결국 경험과 인식의 풍성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 책을 읽고 나서 왜 다시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팔로마의 엄마처럼... 숱한 문학 작품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지적 허영심을 자랑하지만, 실제의 삶의 아름다움에는 문맹일 수도 있겠지만, 드물게는 르네와 일본인 가쿠로 오즈씨처럼 자신의 삶을 충만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왜 약간의 반감 같은게 자꾸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인지 모르겠다..

삶으로부터 도망치듯 살아가는 두 주인공을 연결시켜주고 또 그럼에도 삶이란 충분히 아름답고 살아갈만한 것이라는 것을 함께 느끼는 사람이 일본인인 것, 서양인의 눈에 비친 삶의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듯한 여유가 일본색이라는 것, 혹은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그들만의 소통과 그들만의 이해, 타인과 진정으로 친구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바로 그 순간에 찾아온 급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자각 (내 딸 팔로마!!) 등등..

날선 자아 속에 웅크린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는 여린 영혼의 소통기라고 생각하며 읽기에는 왠지 산뜻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식하고 그저 하루 하루 연명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할 일도 없을 것 같은 늙은 수위 아줌마의 빛나는 지성, 남의 집 가정부 일을 하고 있지만 기품있는 삶을 영위하는 마누엘라의 태도, 상류층입네 하는 사람들의 허위의식, 한 송이 동백꽃의 아름다움을 통해 구원받을 타락한 영혼 등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터인가 딱딱한 책을 읽는 일이 아주 힘들어졌다.  긴 호흡을 가지고 읽어야 하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읽지 못하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특정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책들이나, 실제 생활과 별 연관이 없는 인문학 책을 읽는 게 어려워졌다. 나이 먹어가면서, 혹은 사는 데 바빠 예전처럼 책을 자주 읽지 않아서 생기는 아쉬운 현상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을 겪는 게 비단 나 뿐이 아니었다. 

이 책을 접하면서 비로소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바로 재미없는 책을 잘 읽지 못하게 되어버린 내가 이 책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바로 나 자신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흥미진진하게 책을 끝까지 쉬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점점 어려운 책, 혹은 긴 호흡을 가지고 읽어야 하는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은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에 따른 손쉬운 정보 접근성이 가지고 온 댓가라고. 빨리 빨리 정보를 검색하고 처리하는 기능은 점점 늘어가고 있지만, 침착하게 생각하고 몰입하며 책의 내용을 깊게 이해하고 사색하는 능력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멀티 태스킹이라는 말이 보편화 된 것처럼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노출됨에 따라, 뇌 자체가 순간 순간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는데 특화되어가는 나머지  긴 호흡의 독서가 힘들어지게 된다.   

인터넷에서 활자를 읽는 방식은 대개 대충 훑어보기이다. 인터넷 상의 긁일기는 대개 스크롤 바를 마구 아래 위로 내리면서 맨 앞과 맨 뒤, 중간 중간에 섞인 그림과 굵은 글씨체에나 좀 주목할 뿐 건너뛰기 식으로 읽는다. 그리고 이런 독서에 익숙해진 나머지 종이에 인쇄된 활자화된 책을 읽을 때도 나도 모르게 인터넷에서 글을 읽듯 읽고는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건너뛰곤 하는 것이다. 그러니 진정한 의미의 독서의 의미와 효용은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 저기서 쓸어모은 정보들이 깊은 통찰을 제공하기보다는 단편적인 지식, 혹은 정보 조각으로 소비되고 있을 뿐이다. .  독서를 저자와의 대화라고 하는데, 요즈음의 우리들은 책을 읽으며 수없이 인터넷을 들락거리면서 모르는 것을 검색하고 이메일을 체크하며 또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 받는다. 그러니 저자와의 대화가 제대로 될 리가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의 뇌 신경망의 가소성 때문이다. 마른 땅에 물이 흐를 때 처음에는 어디로든 흐를 수 있지만, 물길이 한번 생기고 나면 점점 그 물길이 고착화되는 것처럼 우리의 뇌 신경망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부분은 그 기능이 강화되는 반면, 사용하지 않는 영역은 축소되어 버린다는 얘기다.  일례로 후천적으로 실명을 하게 된 사람들의 경우, 시각 정보를 처리하던 뇌 영역이 축소되고, 그 영역에서 후각이나 촉각 정보를 처리하게 된다고 한다. 신경 세포는 한번 손상되면 영원히 재생될 수 없다는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신경세포야말로 가장 flexible하게 반응하는 세포란 이야기이다.  사람의 뇌는 가소성을 가지고 있는 대신, 한번  한번 그런 경향으로 기울어지면, 어지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는 현대 정보화 사회가 반대로 무가치한 쓰레기 정보 더미에서 허덕이면서 오히려 정말 필요한 정보를 간직하게 못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건 아닌가 하고 저자는 묻는다.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기에 결국 어떤 정보도 스스로 기억하거나 간직하지 않게 되고, 깊은 통찰이 필요한 순간에 단편적인 정보를 모으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우리 현대인들을 저자는 the shallows(얕은 사람들, 혹은 천박한 사람들)이라고 칭한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점점 더 가속화되어 갈 것이다.  

시간을 가지고 하는 긴 호흡의 독서, 그리고 그런 독서를 통해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거나 성장시켜 나가는 생활이 그립다. 막연히 책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이젠 독서에도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 같다. 웹 서핑에 익숙한 뇌에게 '잠시 멈추어서서 생각하기!'란 잃어버린 능력을 되살리는 길이 쉽지는 않겠지만,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