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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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그저 좋은 사람]은 미국으로 이민간 인도인 2세를 중심으로 한 중, 단편 소설 모음이다. 제목만 보고 빌린 책이라, 처음에는 이야기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이야기의 분위기가 계속 비슷비슷해서.. 꼭 언젠가는 등장인물들이 다 만나 얽히고 설힌 더 복잡한 이야기가 전개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각 등장인물간의 관계도를 나름대로 그려 보려고 했는데, 세 편 정도 읽고 나서야, 내가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당연히 별개의 소설이니까 각 등장인물들도 다 별개의 인물들이다. (마지막 세편만 빼고! 마지막 세편은 화자가 바뀌는 연작 소설이다.)  

책의 표지에 실린 저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책에 등장했던 많은 여주인공들의 모습이 저자의 모습과 겹쳐져서 보였다. 큰 눈에 이지적인 표정을 지닌 꽤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작중 화자들은 모두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미국 이민 1세대인 인도인 부모를 둔 자녀들이란 점이다. 그들의 부모는 몸은 미국에서 살지만, 여전히 사고방식은 인도인이다. 인도 전통 의상인 사리를 입고, 인도의 풍습을 지키고 인도 음식을 차려 먹고 비슷한 처지의 인도인들과 교류한다. 그에 비해 이민 2세대인 화자들은 나름대로 미국 생활에 적응해서 미국적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들 부모에게는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존재처럼 바뀌어 가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완전히 미국인으로 동화되어 살아가지도 못한다. 백인들에게는 그들은 여전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특이한 풍습에 젖어 있는 인도인이기에..   

소설에서는 특히 가족 간의 갈등과 해소에 대해 많이 주목하고 있다. 사별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딸과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된 아버지간의 미묘한 긴장감! 알코올 중독이 되어버린 동생을 둔 누나의 자책감과 원망, 자신을 형수님이라고 부르는 남편과는 전혀 다른 생기발랄할 청년에 대한 어머니의 연정과 질투, 스치듯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서 비로소 운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경력과 삶을 포기할 수 없기에 이별하고 결국 영원히 헤어져버린 연인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나 하나가 묘하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책에 실린 여러 이야기 중 책의 제목이 된 [그저 좋은 사람]이란, 알코올 중독에 빠진 동생을 둔 누나의 이야기였다.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뛰어난 수재였던 동생은 집안 식구 누구와도 마음을 터 놓고 지내지 않는 듯 싶다. 자신과도 서먹한 사이였던 동생이 어느 날, 모처럼 방학을 맞아 집으로 온 누나에게 맥주를 사달라고 한다. 동생과의 친밀감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에 부모님 몰래 맥주를 사서 집안 구석 구석에 숨기고 그런 일은 그 뒤로도 몇 차례 지속된다.   

누나가 자신의 꿈을 위해 영국으로 유학간 사이에 동생은 명문대생이 되었지만,  몇년 뒤에 만난 동생은 희곡을 쓰고 싶다는 이유로 대학공부를 소홀하게 하다 퇴학당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또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애가 딸린 미혼모와 결혼하겠다고 해서 부모님을 기함을 하게 만드는 사고 뭉치이자, 어떤 면에서는 인생의 패배자가 되어 있었다.   

누나는 영국에서 자신이 꿈꾸던 일을 했고, 자신을 사랑하는 괜찮은 남자를 만나 결혼까지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누나의 결혼식날 동생은 술에 취해 결혼식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그 뒤로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다. 다시 몇 년만에 동생은 술을 완전히 끊었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누나를 찾아 런던으로 온다. 누나의 집에서 동생은 예전의 그 불안한 모습이 아니라,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조카와 놀아주는 좋은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못 미덥지만, 동생을 믿고 아이를 맡기고 남편과 외출했다 돌아온 누나는 욕조 안에서 위험하게 방치된 자신의 아이와 제 방에서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동생을 발견하게 되고 왜 동생이 알코올 중독자인 것을 숨겼는지, 그로 인해 자신의 아이가 죽을 수도 있었다며 화를 내는 남편과 대판 싸운후 동생을 쫓아내 버린다.  다음날 아침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에게는 삼촌이 그저 좋은 사람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그런데, 그저 좋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 그저 좋은 사람이란 나와 직접 관계가 없을 때나 성립되는 말이지, 누구건 나와 직접 연관되면 크고 작은 이해관계(이해 관계라고 하니까, 좀 삭막한 거 같다. 꼭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관계란 의미 같아서.. )가 얽히게 되면 누구도 나에게 그저 좋기만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어떤 면에서는 가족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존재이지만, 또 동시에 가장 많이 나를 아프게 하고 상처주는 존재일 거란 생각을 다시 해 보게 된다. 나에게 의미가 없는 사람들이라면 무시하거나 외면하거나 잊어버릴 수 있지만, 늘 부딪치게 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가족들의 나와 다른 행동, 태도,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은 종종 우리들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나를 아프게도 할 수 있다는 걸 다시 책을 읽으면서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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