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죽음의 조건
아이라 바이오크 지음, 곽명단 옮김 / 물푸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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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이지만, 실제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종종 하지 않아야 할 말과 행동을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며, 때때로 치명적인 잘못도 저지른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불의의 사고로 죽는 경우가 아니라, 이런 저런 사연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되면 숱한 후회와 아쉬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수십년간 호스피스 활동를 해 온 의사가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그 가족을 지켜보면서 써 내려간 담담한 에세이인 이 책은 어쩌면 이렇게 약한 존재인 우리 모두에게 건네지는 따뜻한 위로와 충고의 손길이 아닌가 싶다.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좀 더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 환자를 돌보며 그가 느낀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평소에 다 알고 있음에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던 아주 작은 일들일 수 있다. [감사], [용서], [사랑] 등등 늘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말들이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책 속에는 수 많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 친아버지로부터 성추행을 받은 후 받은 상처가 있는 딸이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와 어렵게 화해하는 이야기, 어머니와 재혼한 새 아버지를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마음으로 아버지로 받아들이게 되는 딸 이야기, 딸을 엄하게, 때로 아주 폭력적으로 키워 온 어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딸에게 자신의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를 그런 식으로 대를 물려서 딸에게 폭력적으로 되갚은 것에 대해 사과하며 사실은 자신의 딸을 사랑했고, 자랑스러워 했다고 고백하는 이야기,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무시하고 외면하면서 숱한 상처를 준, 그래서 평생토록 미워하고 저주하던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 인간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며 태연(?)할 수 있었던 아들이 억지로 용서한다는 말을 하고 죽어가는 그와 몇 번의 만남을 가진 후, 극적으로 자기 아버지는 물론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비로소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된 이야기 등등... 감동적이었다. 가슴에 많이 와 닿았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그러나, 어짜피 사람은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어떻게 이별하느냐에 따라 남아 있는 사람의 삶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가슴에 많이 와 닿는다. 자신의 인생에서 긍정적인 의미에서건, 부정적인 의미에서건 많은 영향을 준 사람과 어떤 방식으로 헤어지는가가 앞으로 살아갈 날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특히나 가족은 서로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있다. 어쩌면 가족이기 때문에 더 쉽게 화내고 상처 주고, 미워하다가도 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잘못을 사과하지도 않고 넘어간다. 내 편이기 때문에 내가 무슨 일을 하건, 무슨 행동을 하건 다 받아 주고 이해해 줄거라고 믿지만,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서로 무수한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속으로 원망과 오해와 미움이 가득한데도 겉으로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내는 경우도 허다해 진다. 그러다가 족 중 누군가가 죽게 되면 마음 속에는 온갖 원망과 후회와 자책감과 그리움이 밀려 들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예전에 오빠가 권해 준 책 가운데, [호노포노포노의 비밀]이라는 책이 있었다. 그 책을 읽다보면 가장 많이 반복되는 이야기가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이 네 구절이었다. 인터넷에서 [I'm sorry, forgive me, thank you, I love you!] 이렇게 네 구절이 계속 반복되는 호노포노포노의 노래를 듣고 왜 그런지 가슴이 짠해지면서 눈물이 막 났던 기억이 났다.   

이 책에서 계속 말하고 있는 주제도 결국 같은 것이었다. 죽어가는 불쌍한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을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 동안의 사랑을 표현하고, 지나간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라는 이야기이다. 죽어가고 있을 때가 아니라, 어쩌면 건강하게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랑을 표현하고 감사하고 용서하고 사과할 가장 최적의 시간대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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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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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름 만으로도 어떤 책을 선택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작가로서는 굉장히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서모셋 몸은 그런 면에서 금세기의 가장 성공적인 작가 중에 한 사람일 것이다. 나도 고등학생 때부터 그의 이름을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와 마찬가지로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이 책은 그의 대표작 [달과 6펜스]나 [인간의 굴레]보다는 덜 알려진 이야기이다. (뭐, 이건 순전히 내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면도날? 왜 제목이 면도날일까?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인생의 단면을 포착해낸 이야기일까? 아니면 쉽게 상처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 피부처럼 연약한 우리들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일까?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래리라는 한 미국 젊은이의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기 위한 방황이다. 특이한 점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나,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기가 더 쉬울 거 같은데, 그게 아니라, 작가 본인이 실명으로 등장해 자신이 고 있는 래리와 그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래리가 어떤 생각을 가졌었는지, 래리의 진짜 마음은 무엇인지, 또 다른 주변 인물들은 어떤 마음이었는지 등등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고, 단지 화자가 래리를 바라보는 방식대로, 혹은 그것과는 달리 래리의 인생에 대해 추측이나 해석을 할 뿐이다.

책에서 화자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인물은 래리이다. 작가가 처음 그를 만났을 당시, 그는 호감가는 외모와 신비로운 눈빛을 가진 말이 없는 청년이었다. 그는 1차 세계 대전에 조종사로 참전한 적이 있었고, 현재 아름다운 이사벨과 약혼중이었으며, 물려받은 약간의 유산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청년이었다. 래리의 약혼녀 이사벨을 비롯한 지인들은 그런 래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눈에 래리는 그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무 의욕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   

래리는 어떤 일도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1차 대전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동료 조종사의 죽음이 그를 일상적인 삶에 안주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살아야하는지,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인간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있는 삶인지, 어떻게 해야 마음의 안정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래리는 계속 방황한다.  그런 래리의 방황은 이사벨을 힘들게 할 뿐이다. 이사벨은 안락하고 행복한 삶, 변화 발전하는 무한한 기회의 나라 미국 속 상류 사회의 삶을 살고 싶어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여자였고,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래리와는 이상이 더이상 함께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래리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친구 그레그와 결혼한다.  

래리는 이제 더이상 이사벨에게 얽매이지 않아도 되자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자 세상 속을 배회한다. 수많은 책들을 파고 들어 인생의 답을 찾으려고도 해 보고, 광부로 살면서 육체를 써서 사는 노동자의 삶을 경험해보기도 하다가 결국 인도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곳에서의 몇 년의 삶은 래리를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존재로 만들었다.  

나중에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만난 래리는 이전의 래리가 아니라, 자신 안에 충만한 존재를 느끼는, 동양에서 말하는 기준으로 말하자면 깨달음을 얻은 자가 되어 있었다. 내면의 평화가 충만한, 그래서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주변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되어 있었고, 그런 래리는 세상 속에서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간다.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물론 래리다. 특별히 눈에 뜨지 않는 것 같지만, 공기처럼, 물처럼 모두에게 필요한 존재, 신비로운 눈빛을 가진, 말이 없지만, 그럼에도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지닌 사람!  

래리와 소피이 이사벨의 잴투와 교묘한 훼방(?)으로 인해 맺어지지 않았지만(원래 인생은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그래도 그 둘의 관계가 제일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을 잃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인생을 망쳐버린 소피를 아마 래리는 진심으로 사랑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소피의 드러난 삶을 보지만, 래리는 그녀의 상처받은 마음과 자신과 더불어 시를 이야기하던 소녀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소피가 이사벨이 파 놓은 술의 함정에 빠져 도망치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의 인생이 다르게 진행되었을텐데.... 이사벨은 자신이 평생 사랑해 온, 그러나 물질적인 풍요를 위해 버린 래리가 자신이 경멸해 마지 않는 소피와 결혼한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순간의 우리의 선택과 판단에 따라 좌우된다. 인생의 진지한 목적을 찾고자 하는 목적 하의 일관된 래리의 선택은 후회 없는 삶을 그에게 선물했을 테지만, 과연 책 속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았을까? 특히 이사벨은 후회없은 삶을 살았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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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스토리 - 생애와 리더십
이경식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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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 사는 사람 치고 이건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대통령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고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대단한 사람, 보는 시각에 따라, 우리 경제를 이끈 선진 경영자, 혹은 삼성 왕국의 독재자이자,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악덕 경영자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평가를 받는 사람, 그 이건희를 인간 이건희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책이 나왔다.  

부모와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고, 혼자 일본에서 조센징이리고 놀림 받고 왕따 당하고 외로움에 몸부림 치다 영화에 빠져든 소년 이건희, '미꾸라지를 강하게 키우려면 메기를 같이 넣어라!'라는 신념에 따라 형제 간에 따뜻한 우애보다는 강하고 능력있는 자라 되라는 이병철 회장의 적자생존식 양육방식에 따라 삼성의 후계자로 길러진 청년 이건희, 아버지의 대를 이어 삼성을 물려받았지만, 자신을 허수아비 내지는 어린 아이 취급하며 회사를 지배하던 아버지의 사람들을 내칠 수 있는 힘을 키울 때까지 수년간 참고 인내하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떠올렸다는 이건희!, 세계 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면서 삼성의 위기를 얘기하며 프랑크푸르트 회의를 통해 신경영을 선언하는 이건희! 세계 속의 삼성을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게 만든 선진 경영인이지만, 아들 이재용에게 편법적으로 재산 승계를 하고 우리나라 정/검계를 떡값 명목으로 관리하고 주무르다 세인의 지탄을 받고 물러나는 이건희.. 등등.. 

우리가 알고 있는 피상적인 이건희가 아니라, 인간 이건희의 입체적인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일 것이다. 타인과의 소통이나 애착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채, 홀로 일본에서 자라났다는 이건희, 삼성이라는 거대한 성안의 임금님!!  

고 병철 회장이 아들 이건희에게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고 한다. "경청"과 "목계(木鷄)"   상대방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동요하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찾은 모습이 나무로 만든 닭과 같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목계란 말은 아마도 이건희의 평생의 화두였을  지도 모른다. 자신의 외로움과 두려움, 분노를 속에 감추고 남들 앞에 우뚝 선 지엄한 삼성의 통치자!   

견고한 삼성이라는 성벽 속에서 모든 것을 자기 맘대로 좌우하는 성주가 아니라, 그냥 우리처럼 피와 땀이 흐르는 같은 사람이었다면 좋을 텐데.. 그는 자신의 좌우명 "목계"처럼.. 그냥 나무로 만든 사람 같다!!

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그가 대단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무엇이든 하나에 빠지면 끝을 보는 사람, 매니아라는 말 그대로 한 분야에 미친듯이 빠져 들어 그분야의 전문가들에게도 빠지지 않을 만큼 지식과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점만으로도 그가 존경스럽다. 어느 한분야에도 일가를 이루기는 커녕, 하루 하루 어떤 면에서는 허송세월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의 치열한 삶이 더 대단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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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4-19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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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비밀 - EBS 다큐프라임, 타인을 움직이는 최상의 커뮤니케이션 전략 설득의 비밀
EBS 제작팀.김종명 엮음 / 쿠폰북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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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비슷한 사람, 혹은 비슷한 취향이나 생각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살다보면 오히려 나와 전혀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을 훨씬 더 많이 만나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며 살아가는 법, 게다가 그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설득의 비법이란 게 있다면 누구라도 다 배우고 싶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욕구에서 출발한다. 설득의 달인이 되고 싶은 지원자들을 모아서 여러 상황 하에서 대상자를 설득하는 모의 실험을 하고 그 과정을 분석하면서 사람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한단계 한단계 배워가는 과정을 서술했다.  

나는 설득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동화시키는 작업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설득이란 단순하게 내 논리를 상대방에서 설파해서 그를 내 쪽으로 당겨오는 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내가 먼저 한 발 다가가는 일이며, 결국은 서로간의 이해와 공감을 통해 합일점을 찾는 것이란다.  그래서 설득의 달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는 7:3 정도로 상대방의 말을 더 많이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주장을 펴기 전에 먼저 진심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이게 부족하게 되면 그 때부터 설득이 아니라, 일방적인 설교나 논쟁으로 끝나게 되는 것 같다.  

아주 예전에 나는 내가 말을 잘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떤 상대든지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꼼짝 못하게 막아버리고 다다다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마구 해 대면서 스스로 만족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상대방이 더이상 반박을 하지 않은 것일뿐 나와 의견을 같이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거부감(?)만 더한 꼴이었다.   

설득은 논쟁이 아니라, 공감, 혹은 소통이며 어떤  면에서는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가 아니라,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맞다'라는 것을 알지 못했었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승복하지 않는 논쟁은 무가치한 설교일 뿐인데, 그걸 아는 데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또 피한다고 능사가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누군가를 설득해야하는 일 자체를 피하게 되었다. 논쟁하지 않고 상대방을 내 편으로 끌어당겨와야하는 상황 자체가 몹시 부담스럽고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니.. 나 자신의 문제점이 어느 정도는 보였다. 일단.. 마음가짐부터.. 너무 상대방을 내편으로 당겨오려는 의도만 강했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면이 부족했고 단판 승부를 내려고 하거나,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들을 줄을 몰랐던 것이다. 또 사람의 유형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냥 일방적으로 내 스타일대로 밀어붙여 보다 안되면.. 이 사람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아예 제쳐 두고는 했다.  

책 한권을 읽는다고 해서 그런 내 성향이 단번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제부터라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우선 남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또 단 한번에 모든 것을  것을 끝내는 게 아니라, 언제든지 다른 협상의 여지.. '최선이 안되는 경우엔 차선!!'이라도 고를 수 있는 준비를 해 두어야겠다.  설득이라는 것도 결국 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 본질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자 소통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진심을 다해 하는 말은 결국 그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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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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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마구의 책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를 참 재미있게 읽었던 나는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자마자 망설임 없이 빌려왔다.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어디서부터가 대화이고 어디부터가 묘사인지 어디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되는 건지 육안으로는 구별되지 않는 그의 독특한 글쓰기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또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뜬금 없는 사건(예를 들어 어느 날 갑자기 어느 나라의 사람들이 전염병처럼 눈이 멀게 되었다가 갑자기 눈을 뜨게 되거나, 이 책 내용처럼 죽지 않게 되는 일)이 일어난 이후의 일을 이야기하더라도  그 진행과정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납득해왔고, 오히려 그런 극단적인 사건을 통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더 잘 통찰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이 책을 엄청난 기대감으로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앞부분은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영생이 축복이 아니라, 일상의 파괴이자, 저주일 수도 있겠다. 죽기 위해 국경을 넘는 사람들을 비호하는 마피아라..어떻게 이런 기발한 상상을 하지?' 등등 경탄에 경탄을 거듭하면서 읽어 나갔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소문자 죽음이 자주색 봉투를 통해 사람들에게 일주일 뒤의 죽음을 통보하면서부터 벌어지게 되는 후반부의 이야기는 지금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죽음의 자주색 편지가 계속 반송되어 오는 첼리스트를 관찰하다가 결국 그를 사랑( 혹은 연민?)하게 되어 같이 잠자리에 들면서 소멸되어 버리는 죽음의 존재 자체가 참 아이러니하다.  

책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날 갑자기 죽어야 할 사람들이 죽지 않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영생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게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모든 기능은 쇠퇴한 채.. 단지 숨이 넘어가는 순간만 지연되게 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영생의 축복에 환호하던 사람들도 곧 현실적인 문제들을 깨닫게 된다. 죽어야 할(?) 사람이 죽지 않음으로서 초래되는 무서운 혼란, 금새 꽉 차 버릴 병원이며, 요양원의 문제. 보험의 존재 이유, 종교의 의미, 직업을 잃어버리게 된 장의사들. 송장이나 다름 없이 숨만 쉬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과 함께 살 수 밖에 없을 젊은 세대들의 문제가 사람들의 숨통을 죄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어느 선량한 노인이 자신의 가족들에게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는 이런 삶 대신, 죽을 수 있는 이웃 나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노인을 사랑하는 가족들은 어느 밤 몰래 노인을 운반해 국경 너머로 가고 그곳에 노인을 매장하고 돌아온다. 죽어야 할 사람들이 자의에 의해, 혹은 타의에 의해 국경으로 운반되고, 국경을 둘러 싸고 이웃 나라와 이 나라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이 혼란스러운 사태는 어느 텔레비전 사장 앞으로 자주색 편지가 보내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자칭 자신을 소문자 죽음이라고 밝힌 여자는 이제부터는 예기치 않은 죽음 대신 그 나라의 모든 사람이 자신이 죽기 일주일 전에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될 것이기에 남은 일주일을 뜻깊게, 용서할 사람은 용서하고 정리할 것을 정리하며 살아가라고 한다.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죽음의 자주색 편지를 받은 사람은 마지막 방탕에 빠지거나, 절망하거나 죽음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했고, 죽음과 싸우기 위해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까지 나왔다.  

그러다가 이야기의 촛점이 소문자 죽음(망또를 뒤집어 쓰고 있는 뼈다귀들의 집합체?)과 첼리스트에게로 맞추어진다. 50세가 되기전에 죽을 운명이었던 첼리스트에게 보낸 죽음의 자주색 편지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반송되어지고 물론 이 사실을 알수 없는 첼리스트는 자신의 운명과 다르게 50세의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죽음은 납득할 수 없는 이 사태를 맞이하여..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알기 위해 첼리스트를 찾아간다.  

개와 함께 살고 있는 늙은 첼리스트, 평생 여자를 사랑해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특별하지도 않은 첼리스트를 관찰하면서... 어쩌면 죽음이라는 존재 자체가 모든 곳에 존재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특별하지 않고 공평한 태도를 버리고 개인적인 관심과 호기심을 첼리스트에게 드러낸 그 순간부터 죽음은 더이상 죽음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매력적인 여자의 모습으로 첼리스트의 연주회를 찾아간 여자는 직접 가방에서 자주색 봉투를 전달하려고 하지만.. 결국 두번째의 만남 이후 그들은 함께 잠들어 버린다.  

소설은 "다음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로 끝맺는다. 멋진 수미쌍관법이긴 한데.. 여전히 의문부호가 많이 남는다.  

우리 나라에는 저승사자라는 개념이 있다. 죽을 사람을 죽음 이후의 세계로 데려가 주는 존재이고 주로 남자로 상징된다. 소설의 내용을 한국식으로 변형시켜 보자면.. "우리 나라를 관할하는 저승 사자가 죽기 싫어하는 인간 심리에 부응해 한 6개월 정도 파업을 하다가, 세상이 혼란스러워지자 죽기 일주일전에 통보를 해 주는 식으로 업무 처리 방식을 변경하였다. 그는 새로운 시스템이 정착되는 것을 즐기고 있는데, 예기치 않게 자신의 시스템의 결함을 발견하게 되고 죽음의 통지를 계속 받지 못해 자신의 수명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 사람의 주변을 배회하다가 결국 그와 사랑에 빠져 저승사자라는 자신의 본분을 버리고 인간이 되어 함께 살게 된다.' 아마, 이정도 될 것이다. 이렇게 써 놓고 나니 조금은 소설의 뒷부분이 이해가 된다.    

아마, 우리 나라가 배경이었다면 자신의 본분을 놓아버린 저승사자를 벌주는 더 높은 존재(염라대왕)가 나왔을 터이고, 또 저승사자를 달래기 위해 사람들은 무당을 불러 굿을 하거나... 제를 지내거나 하는 내용이 나왔을 텐데.. 저승 사자의 존재를 믿지 않는 서양의 소설이다 보니.. 죽음이 갑자기 여자의 모습으로 의인화되어 나타나는 부분이 좀 혼란스럽게 느껴진 게 아닌가 싶다.   

사라마구란 작가의 필력은 인정하지만... 암튼 이번 책은 나에게는 좀 어려운 책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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