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경제학 1 - 부동산의 비밀 위험한 경제학 1
선대인 지음 / 더난출판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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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전세값이 들썩이고 있다. 내년 봄에 이사를 가야 하는데, 여기 저기서 계속 오른다는 얘기만 나오니, 한편으로는 걱정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보수 수구 세력의 언론 플레이에 놀아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어떤 사람은 이제라도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앞으로 우리 나라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 거고, 조만간에 집이 남아도는 시기가 도래할 테니 절대로 집을 사면 안된다고도 하고...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말 그대로 위험한 경제학! 누구에게?? 책을 읽다 보면 답은 확연하다.  

부동산, 절대로 사지마라!! 왜?? 지금 우리나라는 부동산 거품이 최고조에 이르렀으니까.. 뭐라고 하건 간에 지금 일부 지역에서 전세가와 집 값이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명박 정부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부동산에 올인하면서.. 건설업체와 소위 강부자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기에, 당분간 부동산 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 처럼 보이지만, 어짜피 거품이란 붕괴하기 마련이다.    

집값이 국민 소득 대비로 너무 지나치게 높아졌다고 한다. 그러면 일반 국민들은 집을 살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기에, 당연하게 집을 많이 지어도 집이 팔리지 않게 되고, 미분양이 속출하면, 건설회사는 미분양을 해소하기 위해 집값을 내리게 되고 덩달아 고평가되었던 인근의 집값도 하락하면서 적정 가격으로 안정화되어야 하는데, 유독 우리 나라에서는 이것이 통하지 않느다. 분양이 안 될 것 같으면 정부에서 나서서 건설회사에 자금을 지원하고 미분양 물건들을 사주고, 일반 국민에게 저리로 주택 자금을 대출해 주면서 빚으로라도 집을 사라고 권유한다. 왜 그럴까? 


모래로 쌓은 성처럼, 빚으로 쌓아올린 부동산 값은 언젠가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거다. 미국발 경제 위기로 아직까지 세계 경제가 어떻게 될지 불확실한데, 유독 한국에서만 다시 부동산 값이 들먹거리는 이유가 현정권이 자신들의 지지 세력인 일부 부유층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부동산 몰빵 정책을 펴면서, 부동산 거품을 더욱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란다. 또 정권이나 자본에 대한 비판 역할은 포기한 채, 스스로 거대 자본화되어 가고 있는 보수 언론들도 거기에 부화뇌동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는 납득이 되는 이야기이다. 우리동네 부동산만 가도 거래 없이 한산한데, 신문이나 뉴스에서는 전세값과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나왔고, 부동산 값을 띄우기 위한 언론 플레이 덕분에 연일 집값이 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서울 시내 곳곳에서 재개발이 진행되기 때문에 앞으로 수년간 집의 공급은 줄고, 이사 수요는 늘어나니까 자연스럽게 집값이 오른다는 신문의 설명과는 달리, 올 하반기 새로 공급되는 아파트 분양 물량은 엄청나다고 한다.  또 보금자리 주택이니 뭐니 해서 앞으로 신규 공급되는 물량까지 감안한다면, 앞으로는 도권 일대에는 집보다 사람이 더 귀해지는 시기가 올 거라고 하니, 집 없는 나로서는 참 고마운 얘기다.   

그러니, 집 없는 사람들 안달하지 말고 진득하니 기다리다 보면, 국민 소득 대비 터무니없이 비싼 우리 나라의 집 값이 현실화될 날도 오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이 시점에 집을 사기 위해 무리를 하는 것은 주식 시장에서 상투를 잡는 것과 같다고 한다.  즉, 여태 부동산으로 돈 벌만큼 벌고 이제는 손 털고 나오려고 하는 부유층에게 서민이 평생 모은 재산을 헌납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어리석은 일이란다.   

부동산의 지나친 거품은 계속 유지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미 우리 나라는 과거와 같은 고성장보다는  잘 해야 지속적 저성장, 혹은 마이너스 성장을 할 수도 있고, 또 급속하게 노령화사회로 접어들고 있는데, 과거처럼 사기만 하면 마냥 집 값이 오르던 시절은 이미 지나간 듯 싶다. 여태까지 우리는 부동산 값이 폭락하는 것을 별로 본 적이 없어서, 당연히 집이란 사 두면 언젠가는 집값이 오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앞으로는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저자의 말처럼 몇 년 더 전세를 전전하면서... 집값이 떨어지기를 기다려? 그런데 당장 내년 봄에 마땅한 전세집을 찾을 수는 있을까?? 집값이 앞으로 하향세를 타거나, 심하면 폭락할 수도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백번 동의하는데, 내년 봄의 일이 걱정스러운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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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디자인 산책>을 리뷰해주세요.
핀란드 디자인 산책 디자인 산책 시리즈 1
안애경 지음 / 나무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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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북유럽 어딘가에 있는 먼나라! 사우나를 무지하게 좋아한다고 알려진 곳?? 그 정도가 핀란드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정보의 전부였다.   

핀란드에 터를 잡고 활동하는 한국인 큐레이터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사소한 것들로부터 아름다운 디자인을 이끌어 내는 핀란드 디자인에 대해 설명한 책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디자인 쪽은 전혀 문외한인 나로서는 최근 디자인 추세가 핀란드 디자인이 각광 받는지 어떤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조건 핀란드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추켜 세우는 듯한 저자의 태도가 약간 거슬렸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점점 그런 마음은 사라지고, 점점 핀란드란 나라 자체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삶 자체가 여유롭게 느껴지는 곳, 당장의 눈 앞의 이익보다는 삶을 즐기고 이웃과 다음 세대까지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살 수 있는 곳, 아름다운 풍광 만큼이나 아름다운 삶과 예술이 충만한 곳, 등등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장점을 한 데 뭉쳐 놓은 나라인 것만 같다.  

예전에 케이블 방송에서 [카모메 식당]이라는 일본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한 일본 여성이 아무런 연고 없는 북유럽의 도시에 일식당을 차리고 살아가는 내용을 그린 잔잔한 영화였는데, 특별한 내용이 없는데도 그 정갈함, 잔잔함, 따뜻함이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았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영화의 배경이 된 나라도 핀란드였다. 책을 읽다보니, 핀란드 같은 나라라면 낯선 여행객이라도 그 자리에 주저 앉고 싶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면에서 우리 나라와 비교가  된다. 핀란드에서는 도시를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수 십년, 수 백년을 두고 천천히.. 무엇이 가장 어울리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한 심사숙고 끝에, 기존의 것들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조금씩 나아지는 아름다운 변화를 추구한다. 지금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배려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남아 있다.   

그것에 비하면 우리 나라의 개발은 그냥 주먹 구구식으로, 당장 호화찬란하게, 편리하게 마구잡이식으로 하다 보니, 전국 곳곳에서 오래된 집들은 다 부수고  아파트를 짓고 전국 곳곳의 하천을 덮었다가 다시 물길을 만드네 어쩌구 하면서 난리를 치고, 4대강을 개발한답시고 강을 다 파 헤치고, 산을 뒤엎고, 논밭을 갈아 없고, 피맛골 같은 옛 동네를 다 부수고 거리마다 보도블록을 일년도 안되서 다 교체하고, 등등... 온통 짜증나는 일, 한심한 일 투성이다.  조급증, 성과주의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되어가는 게 우리 현실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의 멋과 아름다움을 떠올려 보게 된다. 소쇄원에서 보는 것처럼, 청자나 백자에서 보는 것처럼, 한복의 선에서 보는 것처럼, 바람이 통하는 한옥에서 보는 것처럼, 여백의 멋을 알고 있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 선조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일상의 삶 속에서 그대로 품었다.

그런 조상의 전통을 이어 받은 우리가 어디서 이식된 것인지도 모르는 성급한 성과주의, 외형주의에 빠져서 진정한 우리의 멋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그런 멋과 아름다움을 외국의 사례를 보면서 경탄해야 한다는 게 많이 서글픈 현실이다.  

책을 통해 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핀란드 사람의 멋과 여유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스스로 무시하고 하찮다 여겼던 아름다운 우리 문화의 전통을 되돌아 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책에 소개된 아름다운 핀란드의 디자인 보다 더 내 마음을 끄는 것은 장독대에 놓인 된장독의 투박한 아름다움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편협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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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각들>을 리뷰해주세요.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생각들 - 유가에서 실학, 사회주의까지 지식의 거장들은 세계를 어떻게 설계했을까?
황광우 지음 / 비아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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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는 어느 한순간, 뛰어난 천재에 의해 획기적인 생각이 나오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려 나가기 보다는 변화에 대한 내적, 외적 여건이 충분히 성숙되어 졌을 때 비로소 꽃을 피우는 경우가 더 많은 듯 싶다.  

그런 면에서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생각은 어떤 면에서는 당시 시대의 요구에 대한 집단 지성의 반영이라고까지 말하면 너무 지나친 걸까? 

 암튼, 이 책에서는 지금 우리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듯 하지만, 사실 잘 알지 못하는 자유 민주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파시즘, 유가, 도가, 법가 사상과 실학, 동학 사상등 각 사상의 본질과 그 태동 배경, 역할, 한계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서양에서 중세시대가 막을 내리고 상공업이 발달하고 시민 계급이 성장하면서 제일 먼저 대두된 사상은 자유주의다. 재산/ 종교/ 언론/ 결사의 자유를 요구하였던 자유주의 사상은 경제적인 측면에는 자본주의와 결탁한다. 즉,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장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저절로 최상의 상태로 조절되기에 국가나 권력이 최소한의 간섭만 하는 것이 경제를 발전시키는 최선의 방법임을 설파했다.  

그러나, 19세기가 되면서 도처에서 자유주의의 문제점이 터져 나온다. 말이 자유주의지, 결국 가진 사람들만의 자유를 위해 대다수의 빈민이 희생되는 구조적 문제가 대두되고 그 대안의로 대두된 새로운 사상이 사회주의다.( 물론 그 이전에도 사회주의적 이상이 유토피아나 공자의 대동 세계에 대한 염원등에서 꿈꾸어진 적이 있지만, 현실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 것 마르크스에 의해서이다).  

즉 사회주의는 가진 자들의 자유가 아니라, 평등을 요구하는 새로운 사상이었다.  그리고 이 사상을 실제 역사 속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게 소련의 사회주의였지만, 지난 역사를 통해 소련의 사회주의 실험은 완전히 실패임이 드러났다. 충분히 자본주의가 성숙하기도 전에 몇몇 엘리트 층에 의해 강제적으로 실시된 사회주의는 결국 프로레탈리아 독재란 미명하에 반대파에 대한 대대적 숙청 및 경제 퇴보로 인해 실패했다.     

소련과 동구권에서 사회주의가 실험되고 있었던 데 비해 서유럽에서는 자유주의의 자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수용되고 있었다. 즉, 국민 대다수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국가의 역할이 증대되었고,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해 줄 대표를 선출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참정권이 실현되었고, 노조라든가, 사회 취약층에 대한 지원도 확대되어 갔다. 그러나, 독일이나 이탈리아처럼 국가 통일 자체가 어렵게 된 나라들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파시즘, 즉,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통치하는 극단적 국가주의의 독재가 시작된 것이다.  그 결과는 600만 유태인의 학살과 2차 세계 대전이라는 비극을 불러 왔다.  

격동의 20세기가 끝난 지금은 어느 곳에서나 자유 민주주의가 대세이다. 그러나 과연 세계 곳곳에서 명목 상의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를 실천하는가 하는 면에서는 아직 갈 길은 멀다. 또, 사회주의가 주장한 것처럼 평등의 문제를 고려한다면 자유 민주주의가 완벽한 것은 결코 아니다.

동양의 정치 사상은 크게 유가, 법가, 도가 정도로 분류해 놓았다. 세 가지 사상 모두 춘추 전국시대라는 극도의 혼란기에 그 혼란을 극복할 구체적 방법으로 제시되었다. 유가 대표라고 할 공자의  가르침은 주나라 시대를 이상적 시대로 삼아 인과 예가 충만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각자 자기의 지위에 맞게 윗 사람은 덕을 베풀고 아랫 사람은 충과 효로서 답하면 만물의 질서가 회복되어진다는 주장이다. 맹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임금 다운 임금이 아니면 갈아엎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유가 사상은 윗사람에게 충과 효를 지배층의 통치 논리로 이용되었다.  

도가의 주장은 이와는 정 반대이다. 충효, 인의, 예지 이런 것들을 강조하는 자체가 그런 것들이 이 세상에 드물기 때문이며, 인위적으로 무엇이든 하면 할 수록 더 혼란스러워짐을 이야기 한다. 무위자연이라고 해서 인간의 본성 그대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설파한다.  

법가는 아주 현실적이다. 법과 원칙을 명확히 세워 그 법에 따라 통치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란 주장이다. 변방이었던 진나라가 전국시대를 통일하여 최초의 통일 왕조를 세우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법가는 아주 효율적인 통치 원리였지만,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데는 실패했다.  

그래서 외형적으로는 유가 사상이(만 백성을 살피는 어버이 같은 임금님의 이미지), 내적으로는 법가 사상이(왕과 신하의 끊임없는 주도권 싸움과 권력 투쟁의 과정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중국을 지배해왔다. 그리고 때때로 권력의 간섭이 없는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는 도가에 뿌리는 둔 세력들이 혼란기마다 등장하곤 했다.  

유가나 법가는 기존의 신분 질서를 옹호하고 지배계층의 권한을 강화시켜줄 뿐 백성들의 삶을 개선시키는데는 실패했다. 그래서 실학이나, 동학같은 새로운 사상이 대두되곤 했다. 탁상 공론이나 일삼고, 출세의 수단으로 전락한 유학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사상, 혹은 후천 개벽으로 열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지만, 기득권 세력의 단단한 벽 앞에서 결국 미완의 혁명으로 끝나버린 동학 혁명까지.... 

지금 우리 세상이 자유로운가? 우리 모두가 평등한가?  

그렇지 않기에, 과거의 사상이지만, 위에 언급한 여러 사상들이 우리 삶 속에서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이런 사상들을 공부해야 할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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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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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있다.  

일이 곧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생산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일이란 곧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혹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짐이자 굴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딱 부러지게 전자/ 혹은 후자로 나누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두 가지 생각 사이를 오간다.

전자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일은 하면서 진짜 자신이 존재함을  느낀다. 반면에 나처럼 약간 후자에 속한 사람은 일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일의 기쁨과 슬픔이란 바로 두 가지 태도에서 빚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일에 대해 어떤 생각과 어떤 느낌을 가졌던 간에 우리들은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을 하면서 보낸다.  

그 일에 대해, 특히 일하는 세계의 아름다움과 권태, 기쁨을 파헤치기 위해 알랭 드 보통은 화물선, 새채 잡이 어선, 물류 창고, 송전선, 과자 공장, 로켓 발사대, 상담사, 회계사, 무명 화가, 창업을 꿈꾸는 사람, 비행기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진열대 위에 놓여 있는 참치 통조림을 보면서 그 통조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떠올리고 실제로 몰디브까지 쫓아가서 참치를 잡는 어부들을 취재하고 고속도로 변에 있는 비슷비슷한 컨테이너 박스 형태의 물류 창고 안에서 세계 곳곳에서 오는 물건들을 분류하고 발송하는 직원들을 인터뷰하고, 송전선에 매료된 지인을 따라 송전선을 따라 여행하고, 기타 등등.. 직접 일하는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일 하는 자들의 모습에서 살아있는 생명력, 별 볼일 없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과 현재를 중심에 놓고, 코 앞의 회의에 집중하며, 또 그런 것이야 말로 진정한 우리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가장 중요한 일이란 걸 믿게 하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하는 회사 관리자들을 보면서..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우리의 모든 노력과 기획의 궁극적 운명은 소멸과 죽음일텐데, 적어도 우리의 일은 그것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소멸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떠나 완벽한 희망, 빛나는 내일에 대한 꿈을 꾸게 해 준다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우리의 가엾은 불안을 위로해주며, 그 일을 통해 작지만, 삶에서 무언가 이루었다는 느낌을 줄 수 있고, 의식주를 해결해 주며, 무엇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라고..!! 

그러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맞이하는 권태나 불안보다는 차라리 일하면서 겪는 수고와 피로가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더불어.. 일은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돈도 가져다 주니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일의 기쁨이라면, 무얼 해야 할 지 모르는 무의미한 시간을 채워 주면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돈을 벌게 해 준다는 점이고 일의 슬픔이라면, 바로 그 시간에 일 이외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어쩌면 내가 하루 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기 때문에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 그 시간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건지도 모르겠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는데, 난 일하지 않구도 잘 먹고 잘 사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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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
조셉 M. 마셜 지음, 김훈 옮김 / 문학의숲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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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끌려서 오직 제목만 보고 주문한 책이다.  

나는 바람을 좋아한다. 곧 다가오는 늦가을의 서늘한 바람, 옷자락을 날리고, 낙엽을 공중에서 떠돌게하는 그런 바람을 특히 좋아하고, 그런 바람 속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이 책은 라코타 인디언들의 삶의 지혜를 담은 에세이다. 지금은 미국 사회의 비주류로 물러났지만, 한때는 미국의 드넓은 대 평원을 소유했던 수많은 인디언 부족 가운데 하나인 라코타 인디언들 사이에서 전승되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진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무엇이 진짜 소중한 것인지 한번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책이다.   

과거에 비해 현대인들은 더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산다. 발달된 현대 과학문명의 덕택으로 많은 편리한 문명 이기들을 사용하고 있고, (제 3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유럽이나 동북 아시아에 사는 우리들은 거의 잘 먹고 잘 산다. 우리 나라만 해도 과거에는 보릿고개라고 해서 대부분의 농민들이 일년 중에 한 두달은 거의 굶주렸었고 명절 선물로 계란이나 설탕을 주고 받던 게 불과 몇 십년 전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아주 가난한 사람이라도, 최소한 밥은 먹고 산다.  

그럼 우리들은 선조들보다 행복한가?? 선조들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현대인들은 많은 것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댓가로 고독해졌고, 작아졌고, 나약해졌다라고 말하면 지나친 걸까??  

과거 라코타 인디언들은 대자연 속에 일부로서 살아갔다. 우리 조상들이 그런 것처럼, 그들 역시 천지의 아들, 딸로 살아갔고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로서 살아갔다. 나와 다른 그것이 아니라,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커다란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갔다. 그런데, 물질 문명이 발달하면서, 삶은 편해졌지만, 우리라는 개념은 거의 사라지고, 나와 타자, 즉, 나 이외의 것들로 개별화 되어 버렸다. 자연 속에 소외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되고, 물질로부터도 소외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제 생각해 보아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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