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처럼 서점에 갔다. 평소 같으면 일하느라 정신 없을 시간이었는데, 남들 다 일하고 있는 시간에 서점에 가니 기분이 좀 묘했다.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고(난 자유니까.. ㅎㅎ) 또 한편으로는 벌써부터 약간의 불안감 같은 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쉬는 것이었다. 그동안 먹고 사는 데 바빠, 아무 것도 못 하고 지냈다고 늘 생각했는데, 쉬기 시작한 지.. 불과 5일 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이대로 쉬어도 괜찮은 건가 하는 걱정이 조금씩 살아나면서, 일하는 동안 내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용기보다, 이렇고 놀고 난 뒷일이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직장 구하는데 신경을 더 써야 하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과 얼마만에 쉬는 건데, 그냥 쉬는 동안에라도 맘 편히, 제대로 한 번 쉬어 보자는 생각이 교대로 떠올랐다.
그래서 자꾸 어두워지려는 내 맘을 가다듬기 위해서.. 일부러 전철 타고 시내 큰 서점에 나갔다.
난 큰 서점에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일단 보든 안 보든 책이 가득찬 공간에 나도 함께 있다는 자체만으로 설레임을 느끼게 된다. 요즘 베스트셀러는 뭐가 있는지 보고, 잡지책도 뒤적거려 보고, 내 취미인 뜨게질 도안 책도 보고..
그러다가 [ 세 잔의 차]란 책을 집어 읽게 되었다. 예전에 제목과 간단한 소개의 글을 보면서 기회 되면 한번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었다.
모텐슨이라는 한 산악인이 여동생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K-2 등정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하산하던 중 길을 잃어 우연히 들어가게 된 파키스탄의 산간 오지 마을에서 문명과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가난하지만 따뜻한 코르페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코르페 사람들의 따뜻하고 헌신적인 배려 덕분에 겨우 건강을 추스린 모텐슨은 코르페 어린이들이 학교 건물도 없이 그냥 추운 바위 위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에게 학교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하고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게 불편한 몸 때문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던 여동생을 추모하는 더 나은 방법일 거라는 확신과 함께..
현실적으로 모텐슨은 가난한 등반가였고, 그에게 지구 반대편 파키스탄의 오지 마을에 집을 지어줄 수 있는 재력이나 능력이 있을 리 만무였다. 자신이 살 집 대신, 낡은 중고차에서 지내고 병원에서 일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도 그가 원하는 학교를 지을 수 있는 돈 2만 달러를 마련할 길이 없는 그는 유명인사들에게, 각 구호 단체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그것도 처음에는 타자기로 매번 같은 내용을 일일이 쳐서 보내다가 나중에야 컴퓨터를 활용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도와달라는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과연 그렇게 모금해서 학교를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겠지만, 그는 지치지 않고 편지 쓰기를 계속한다. 그리고 그의 열정과 의지가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한다. 그의 끈질긴 노력이 산악인들이 보는 잡지에 소개되고, 코르페에 학교를 짓고 싶다는 그의 진심이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하다 은퇴한 자산가 장 회르니의 마음을 움직여 2만 달러를 쥐게 된다. 장 회르니 회장은 말한다. 2만 달러를 주는 대신 완성된 학교 사진을 가지고 오라고.. 마찬가지로 산악인이었던 회르니 회장 역시 코르페를 방문한 적이 있었고 그 곳에 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2만 달러와 그동안 자신이 일해서 모은 돈으로 파키스탄의 오지 마을 코르페로 돌아간 그를 기다리는 것은 말 그대로 난관이었다. 자재 구입과 운반 모두 쉽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그를 더 힘들게 한것은 그가 어렵게 사서 모은 자재를 오지 마을로 운반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학교를 짓기 위해서는 먼저 목재를 실어나를 수 있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돈에 발목이 잡힌 그를 구해준 것은 또 회르니 회장이었다. 회장은 다리를 지을 돈을 선뜻 그에게 내었고, 이후 그가 그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어렵게 다리가 만들어지고 드디어 자재가 마을로 운반되어 학교가 지어지기 시작한다. 어서 빨리 학교를 완성하고 싶은 모텐슨은 주민들과 조금씩 충돌한다. 그런 그에게 촌장 알리는 말한다. '한잔을 차를 함께 마신 사람은 이방인이고 두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손님이지만,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그건 가족이 되는 것이고 가족을 위해서는 못할 일이 없다. 그래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600년을 학교 없이 살아왔는데, 학교 짓는데 일년이 더 못 기다리겠냐는 촌장 알리의 말은 미국식 성과주의에 물들어있던 모텐슨을 변화시켰다.
가난한 파키스탄의 오지 마을에 학교를 지어 다음 세대들이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단 한번 우연히 마주친 코르페의 오지에서 시작된 모텐슨의 학교 짓기는 결국 그의 평생의 천직이 되어 현재 80여곳의 학교가 지어졌다고 한다.
한 사람의 끈질긴 의지와 소망이 불러 일으킨 기적!! 회교도들이 주로 거주하는 파키스탄과 회교도중에서도 악명 높은 탈레반이 세력을 잡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오지에 학교가 세워졌다. 한 사람의 열정과 의지가 다른 한 사람을 감동시키고 또 그 한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을 감동시켜서 점점 같은 꿈과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현실의 기적을 만들어 나가는 아름다운 이야기!!
반도 다 못 읽었는데, 중간 중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서점에서 서서 책을 읽으며 눈물을 훔치는 내 모습이 좀 민망스러웠지만, 위에서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학교를 지으면서 코르페 사람들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변화되어 가는 모텐슨을 보는 게 좋았다. 이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화라서 더 감동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