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을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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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 -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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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대지진?? 근대 유럽 역사의 흐름을 바꿀 만한 엄청난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난 처음 들어보는 걸까?
1755년 11월 1일 카톨릭의 성인들을 기리는 축일인 만성절 아침,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고, 뒤 이어서 거대한 쓰나미가 도시를 덮쳤다. 유럽의 번영을 상징하던 화려한 도시 리스본은 연타석으로 터진 지진과 화재와 쓰나미로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 버렸다.
자연 재해 앞에 인간이, 또 인간이 만든 도시와 문화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은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멀게는 대서양 어디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는 아틀란티스 대륙의 이야기가 있고, 몇년 전엔가 우리 나라에서 전시회까지 열렸던 화산재 속에 덮여버린 도시, 품페이도 있고, 성경에 보면 숱하게 타락과 죄로 인해 멸망해 버린 도시들이 등장한다. 노아의 홍수로 세계가 다 물에 잠기었다거나(그런데, 왜 중국과 우리나라는 역사가 지속되어 왔을까??), 죄와 타락과 오만으로 인해 소돔과 고모라가 천벌을 받아 멸망했다는 식의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실제 현실에서도 몇 년 전에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닥쳐서 몇 십만인가가 순식간에 물귀신이 되었고,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도 무너진 집과 산더미 속에 수십만이 그대로 매장 되어 버렸다. 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 인간이 이루어낸 문명과 과학 기술이 무용지물처럼 느껴지는 게 어디 한 두번일까?
1755년 갑작스럽게 생긴 대지진 앞에 리스본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불과 3분만에 포르투갈이 수백년간 이룩해 놓은 부와 번영, 그리고 종교적인 신념이 다 무너져버렸다.
당시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수백년에 걸쳐 진행된 노예 무역의 중계와 식민지 브라질 착취를 통해 쌓아올린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내면을 파고 들어가 보면, 일단 경제적으로는 해외에서 벌어오는 막대한 재화가 왕족과 몇몇 상층 귀족에게만 돌아가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가난과 무지에서 허덕거리는 사회였고, 종교적으로는 예수회가 실권을 장악해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자들을 종교재판을 거쳐 공개처형 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던 카톨릭 신앙의 마지막 보루 같은 도시였으며, 동시에 개인의 이성과 자유와 과학에 대한 일체의 사상과 교육을 통제하던 나라였다.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내면으로는 곪을 대로 곪아 있던 나라 리스본에 유럽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재앙이 갑작스럽게 닥쳤다. 그것도 카톨릭 성자들을 기리는 만성절날, 지진은 성당과 많은 가옥과 궁전이 무너졌다. 신부와 신자과 불신자들이 함께 죽었고, 왕족과 귀족과 일반 백성들과 천민들이 평등하게 죽었다. 죽은 자들에게는 성서에 예견된 지구 멸망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날이었을 것이다.
또 그날은 로마 멸망 이후 거의 천년 이상 유럽을 지배하던 기독교 대신,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과학적 사고 방식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된 운명의 날이기도 했다. 개신교와 카톨릭 모두 대재해 앞에 무용지물이었다. 지진의 원인이 리스본 시민의 타락과 원죄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거나, 불신에 대한 벌이라는 신부와 목사들의 설교가 늘어갔지만, 실질적으로 지진으로 피폐해진 리스본을 다시 살릴 것은 카르발류라는 한 정치가였다.
그는 대재해 앞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국왕을 대신해, 리스본의 피해 실태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치안을 유지하고, 공권력을 적절히 이용해, 부상자들과 이재민들을 구호하고 썩어빠져 있던 리스본의 구태을 일소하고, 특권층의 특혜를 줄이고 긴 안목을 가지고 리스본을 재건축해 나갔다. 어디서 갑자기 이런 인물이 나왔을까 싶게, 그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뛰어난 안목과 추진력과 결단력을 가진 카르발류를 통해, 신의 저주를 받은 도시 리스본은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근대적 의식이 유럽 전역에 싹터나갔다.
그는 그의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적들에게 혹독했고, 자신의 비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대중에게도 단호했다. 그만큼 적도 많았다. 그를 지지하던 주제 1세의 사망 이후, 그는 바로 실각했고 자신이 추구했던 모든 개혁 정책들이 다 폐지되는 것을 모멸스럽게 지켜봐야했다.
카르발류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상앙을 떠올렸다. 춘추전국시대와 18세기 유럽이라는 시간차, 공간차가 있지만, 두인물이 서로 겹쳐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카르발류가 대재난 이후 멸망 위기에 처한 포르투갈을 차근차근 개혁과 결단으로 재건축해 나갔지만, 비밀 경찰, 첩자, 검열이 난무하는 독재정치를 벌임으로써 주제 1세 사후 바로 실각된 것처럼, 상앙도 변법이라는 개혁을 통해, 그 당시 변방에 속해있던 진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지만, 너무 지나친 법집행 때문에 모두의 미움을 사서, 결국 진효공 사후에 바로 실각되었다.
포르투갈은 카르발류가 펼쳤던 개혁을 다시 원점으로 돌림으로써, 더이상 유럽의 강대국으로 남아있지 못하고 점차 주도권을 네덜란드나, 영국 프랑스에 빼앗기고 쇠락해 갔지만, 카르발류는 천수를 누리다가 평온하게 죽은 반면, 진나라에서는 상앙이 추진한 변법의 덕택에 나라가 부강하게 되었고, 결국 진시황때에는 천하까지 통일할 수 있었지만, 상앙 본인은 결국 자신이 만든법에 의해 잡혀 죽임을 당했다. 자신이 남긴 업적으로 비록 자신은 죽지만 후세에 두고 두고 이름을 남기게되는 상앙과, 한 때 포르투갈을 전성기로 이끌었지만, 실각하고 쇠락해지는 포르투갈과 함께 잊혀져가게된 카르발류중 누가 더 한이 많을 지 궁금해졌다.
공교롭게도 며칠 전에 영화 해운대를 봤다. 부산을 완전히 휩쓸어 버리는 메가 쓰나미를 다루고 있는 대형 블록버스터인데 그 영화를 보면서.. 내내 이 책을 생각했다. 영화가 아니고, 실제라면.. 그 재난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카르발류 같은 지도자가 우리에게도 있을까??(물론 그의 독재적 통치 방식은 절대 사절!!!.. 지금 청와대에 있는 사람 하나도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