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은, 성매매를 둘러싼 여성들의 인식의 딜레마를 "크레바스"라고 표현했다. <페미니즘의 도전> 3부에서 다루고 있는 성매매 문제에 대한 그의 분석을 읽고 있노라니, 성매매에 대한 내 입장이 다소 우왕좌왕 하였던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음을 꺠닫는다. "성매매는 포주에 의한 착취이므로 근절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렇다면 딱히 포주라 할 존재가 없는 개개인 사이의 성매매(주로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의 문제에 봉착하였고, 이에 대해 애초에 성이 편향적으로 매매된다는 점에서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깨달음과 <레이디 크레딧>의 구조 분석 덕에 어느 정도 내 안에서 정리가 되었던, 오랜 시간에 걸친 과정 말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성이란 곧 성매매라고 생각하는 남성 인식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한 여성주의 실천이 혹시라도 '가장 억압받는 민중 여성'인 성판매 여성의 목소리를 빼앗는 데 일조할까 봐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가장 '안전한' 방법인 침묵으로 일관했다. (...)

'근절 대 허용'이라는 이분법은 애초부터 어느 여성도 빠져나올 수 없는, 그래서 빠질 수밖에 없는 크레바스였다.  - 224쪽 


그러나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더 깊이 다루고 있는 부분은 '성판매 여성의 인권' 측면의 문제로, 더욱 결론 내리기 어려운 부분이다. '반(反)성매매,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성노동자 인권,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대립 구도에서, 둘 중 어느 쪽이 옳다고 딱 잘라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성매매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성이 성판매로 유입되는 근본적 원인들 - 남성의 수요와 이를 허용하는 남성성 문화, 여성의 경제적 어려움 등 - 을 그대로 둔 채, 성매매 외의 다른 길을 제시해 주지 않은 채 무조건 금지, 퇴출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 


정희진은 두 이론 중 무엇이 옳은지 보다는, 여성주의에서 성매매 당사자인 성판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반성적으로 고찰한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절대화"(233쪽)하는 것은 위험하고, "성판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계속 업주(남성) 혹은 '일반 여성'의 이해로만 환원"(257쪽)하게 되면 성판매 여성을 껍데기로 만드는 것이며, "여성 억압의 동일성에 대한 강조"(257쪽)로는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여성주의자와 성판매 여성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현실에 의해 정해진다. 여성주의는 공통된 본질과 정체성을 지닌 경험적 집단의 투쟁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범주가 종속적으로 구성되는 복합적 형식에 대한 투쟁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성매매 역시 다른 방식의 접근을 모색해볼 수 있다. 여성주의자의 입장이나 성판매 여성의 입장이나 모두 '부분적 진실'이고, '상황적 지식'이다.   - 259쪽 



그래서 결론이 뭐냐? 성매매를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냐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이 책은 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에 대한 답을 내놓는 것이 글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론에서 언급하였듯, 이 책이 제공하는 것은 '다른 목소리'(17쪽)다. "'다른 목소리'는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풍요롭게 해주며 자기 중심주의를 돌아보게 한다. 또한 모든 사람은 '다른 목소리'의 잠재적 주인공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여성주의다."(17쪽) "여성들 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여성 해방이다. 여성을 여성으로 환원하는 것이 가부장제이기 때문이다."(39쪽)라는 말에서, 이 책이 제공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여러 페미니스트 법 이론들을 마치 다양한 맛의 아이스크림인 것처럼 생각해왔다. 어떤 이들은 바닐라만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은 로키로드를 좋아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 이론은 (그리고 그 정도는 덜하지만 실용주의는) 한 가지 맛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해석을 위한 도구다. 그것은 아이스크림 스쿱과 같다.  - 58쪽 


포스트모던 철학에 관하여 모든 걸 해체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난이 있다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아주 쬐~끔 퀴어이론을 통해 맛보기 한 내가 봐도 포스트모더니즘은 중요하다. 굳어진 생각을 깨뜨리기에 좋다고 할까? '답'을 제시하지 않는 정희진의 위 성매매 관련 페미니즘 분석처럼, 그것은 새로운 인식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 1장에 나온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에 관한 위 설명- "스쿱"이라는 비유- 은 딱 이해하기 좋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을 방법론으로서 차용하면서도 실용주의 페미니즘처럼 실증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아 보인다. 


내가 퀴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가장 타자화 하기 좋은' 대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종은 섞일 수 있고, 국적은 변경될 수 있으며, 계급은 상승/하락할 수 있고, 누구나 사고나 질병에 의해 장애를 가질 수 있으며, 남성도 '여성화'된 모습으로 여성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선천적이라고 보는 것이 통론임을 감안할 때, '퀴어' - 대표적으로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 는 '노멀'- 이성애자 및 지정성별과 성정체성 일치자 -과 서로 섞이거나 양자를 오갈 수 없는 '타자'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토록 '타자'로 보이는 것은 '젠더' 개념 자체가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으로 고착되어 있고 내 머릿속에 강하게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문제를 해결하기에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젠더 개념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퀴어에 대하여 "그들"이라 지칭하며 타자화 하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퀴어들의 입장도 갈리는데, 우리는 당신들과 다르지 않아요, 정상가족을 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며 기존 질서에 편입되기를 원하는 입장과, 보다 전복적으로 이분법적 젠더체계에 의문을 던지고 정상가족 개념 자체의 해체를 주장하는 입장이 있다. 전자에 비해 후자는 '위험하다'. 위험하다고 여겨져서 더 많은 거부를 불러온다. 그러나 젠더 이분법 해체, 정상가족 해체가 정말로 우리 사회를 흔들 만한 위험인가? 나는 결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이런 이데올로기가 해체되어야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의 길이 보일 것이다. 저출산 문제도 그렇다. 낙태는 금지하면서(현재는 사실상 금지상태) 낳은 아이는 나몰라라 하는 사회, 오로지 정상가족에서 출산한 아이만 보호하고 미성년자, 비혼자, 동성부부 사이의 출산과 양육에 대해 비난만 하는 사회에는 앞날이 없다... 


얘기가 왜 여기까지 왔지? 흠.  

마침 2년 전 오늘 쓴 글로 올라온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 리뷰에 인용했던 글을 다시 소개하며 마무리 해야겠다.



   

만약 성소수자의 노출과 애정표현 같은 모습이 불편하다면, 그래서 표현을 막거나 음지로 돌려보내고 싶다면, 사실은 지금까지의 '편함'이라는 것이 다수의 '편함'을 위해 소수자의 권리나 실존을 희생한 결과가 아니었는지, 그런 사회는 과연 윤리적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 조수미, '퀴어문화축제: 가시성과 자긍심의 축제,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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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3-07-12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괭님 다 읽으셨군요!
저 <페미니즘의 도전> 6월 30일에 다 읽었는데,,, 아직 페이퍼를 못써서… 주말에 좀 정리해야겠어요!
퀴어로 흐르는 결론 ㅋㅋㅋ

독서괭 2023-07-13 16:51   좋아요 1 | URL
역시 햇살님 저보다 먼저 읽으셨군요!! 주말 정리 페이퍼 약속하신 겁니다? ㅋㅋ
왠지 퀴어로 흐르네요? 주제독서에 의한 관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락방 2023-07-13 08: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괭 님, 언제나 난잡한 저를 이해한다 하시지만, 이렇듯 글을 보면 세상 정리 잘하시는 분인데 말입니다. 저에게 선한 거짓말을 하시는건가요? 흑흑 ㅠㅠ

저는 여성주의 책들을 읽는 여러분들이 각자 자신만의 가장 큰 문제점 혹은 관심의 대상을 찾는게 너무 좋습니다. 독서괭 님은 퀴어에 꽂히셔서 여러권의 책을 읽고 이렇게 쓰시고 말이지요. 제 경우에는 성폭력과 강간에 대해 더 오래 머물게 됩니다. 근데 이건 싫어요. 너무 괴로워서요. 사실 저는 퀴어에 대해서는 독서괭님과 어느 지점에서 갈라지는 의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독서괭님의 연속된 그리고 연결된 독서를 응원합니다. 그 독서로부터 파생되는 글쓰기는 물론이고요! 우리 특히 더 꽂히는 부분에 대해서 계속 읽고 쓰기를 멈추지 맙시다!

잠자냥 2023-07-13 09:05   좋아요 1 | URL
괭님과 퀴어에 대해서 갈리는 지점은 어디에서? 트랜스젠더 부분인가요? 궁금합니다~~

다락방 2023-07-17 10:35   좋아요 4 | URL
네 트랜스젠더 부분입니다. 저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성별 이분법을 없애놓으면 트랜스젠더가 디스포리아를 겪을 일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의 신체에 손을 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성주의가 하고자 하는 일이 바로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성별 이분법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기본적으로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이 주장에 동의합니다.

<여성운동의 핵심은 여성도 농구를 할 수 있고, 남성이라고 해서 꼭 듬직할 필요는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분노를 안으로 향하게 해서 우리 몸을 훼손할 것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향하게 해서 세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어쨌든 마지막으로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신발이 맞지 않으면 발을 바꿔야 할까? -글로리아 스타이넘,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中

이 다음으로 넘어가면 저는 트랜스젠더 혐오자가 됩니다.


독서괭 2023-07-13 16:5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제 글이 정리가 잘 되어있다고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ㅎㅎ 근데 다락방님 글은 난잡하지 않은데요(그렇다면 글 외의 것은..? 쩜쩜쩜). 자유연상식으로 쓰면서도 전달도 잘 되고 재미있는 글이라 참 좋아합니다. 헤헷
갈리는 지점 뭔지 알 것 같아요. 여성주의랑 퀴어이론이랑 부딪히는 지점들이 좀 있더라고요. 성별이분법을 없애면 트랜스젠더가 디아스포라를 겪지 않아도 된다, 는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트랜스젠더의 경우 특정 성에서 특정 성으로 바꾸는 예가 대부분이니 - 그렇지만 성별이분법이 약화되어 젠더스펙트럼이 널리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성별위화감을 느끼는 사람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당사자가 아니라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운동에 있어서는 무엇을 우선으로 하느냐, 에 따라 갈릴 수 있을 것 같고요. 그점에서는 저는 여성주의 쪽에 더 기울 것 같기도 하고요. 일단 제가 공부가 부족하여 스탠스가 확립이 안 되어..쿨럭
무튼 저에게는 퀴어이론이 도끼같은 존재였고, 정희진님 글이 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 좋았어요.^^

2023-07-17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17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3-07-17 13:45   좋아요 0 | URL
저도 괭님처럼 알아들음
ㅋㅋㅋㅋㅋ 아니 이 비댓 북플에서 왜 나한텐 보이죠?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7-17 13:52   좋아요 1 | URL
저도 처음에 그런 뜻으로 썼다가 아니 근데 그게 그건가 다른거이지 않았나 하고 찾아보다 보니 디스포리아 가 맞는 것 같은데 그런데 디아스포라도 겪는 건 맞지 않나? 그러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7-13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 님의 문장을 끝까지 잡고 궁리하며 분석하는 모습이 늘 인상적이고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막 읽다 보니 나중에 쓰기를 해보려고 하면 남는 게 하나도 없더군요.ㅋㅋㅋ
아직 이론이 많이 부족한 것도 있구요.
요즘 조금 아???!!!!!! 이런 느낌이랄까요?ㅋㅋㅋ
안그래도 괭 님의 퀴어 이론에 대해 정리하시는 글들이 늘 인상적이었습니다. 괭 님은 늘 소외된 곳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시선이 머무는 사람이란 생각도 들었구요. 전 아직 퀴어나 트랜스젠더...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지 않나보다! 그런 생각을 했었네요. 퀴어 소설을 읽다가 아...아직 나는...ㅜㅜ 그리됐었거든요.ㅋㅋㅋ
그래도 혐오하지는 않는다! 그런 생각은 하고 있는데....^^;;;
괭 님의 글을 읽으면서 ‘타자화‘ 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행동해야겠다는 교훈을 얻고 갑니다.
글 언제나 좋아요^^

독서괭 2023-07-14 17:20   좋아요 1 | URL
아니, 책나무님, 존경이라니... 부끄럽네요. 문장을 끝까지 잡고 궁리 잘 못하는데.. 읽기 바빠서.. ㅜㅜ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ㅎㅎ
저도 이것저것 다 아직 부족하지만, 그래도 여성주의 책이랑 퀴어 책을 꾸준히 읽다보니 조금씩은 알 것도 같고.. 그렇습니다. ˝늘 소외된 곳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시선이 머무는 사람˝이란 말씀은 너무 저를 높이 평가하신 것이고요 ㅋㅋㅋ 그리고 저도 퀴어‘연애‘소설은 거의 안 읽어봐서, 딱히 자신은 없습니다.. 유명한 <수영장 도서관>(?)은 읽을 자신 없고요;; 그저 왜 이게 그렇게 차별받을 일이지?? 하는 의문이 항상 듭니다. 그건 책나무님도 마찬가지이실 듯요^^

건수하 2023-07-14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괭님이 주제 독서 키워드로 ‘퀴어‘를 선택하신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은 했는데 확인하게 되었네요. 책나무님 말씀대로 독서괭님은 통합적으로 정리를 잘 하시는 것 같아요. 부럽고 본받고 싶습니다 :)

<페미니즘의 도전> 읽었을 때 저도 성매매 부분이 가장 혼란스러웠는데요. 얼마전 <정희진의 공부>에서 페미니즘이 가장 필요한 여성은 성매매 여성이라고 하셨을 때 <페미니즘의 도전>의 이 부분이 생각나더라고요. 정희진 선생님도 아직 더 공부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2년쯤 전에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었을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은, 그때는 성매매도 하나의 노동, 직업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주저했지만 이제는 성매매를 결국 없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마지막 인용문이 여러 곳에 적절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런 기본적인 것을 사람들이 내재화 할 때까지 갈 길이 멉니다..

독서괭 2023-07-14 17:23   좋아요 1 | URL
통합적으로 정리를 잘하는 것 같다니.. 이 글에 이렇게 과분한 칭찬들을 받을 줄이야. 좀 부끄럽지만, 감사합니다!
수하님은 성매매도 하나의 노동- > 성매매근절 쪽으로 이동하셨군요. 성매매여성의 ‘당장의 생계‘를 위한 부분이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없어져야 하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 길은 엄청나게 멀고 험난하겠지만요...ㅠㅠ
마지막 인용문 좋지요? 다시 읽어도 좋아서 갖다 썼습니다 ㅋㅋ

공쟝쟝 2023-07-14 1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님 저는 괭님의 이 페이퍼가 짜릿한 수준입니다! 이거예요! 그거예요! 제경우 약 2009년? 정도로 기억합니다만, 페미니즘이 필요해서 책을 읽으려다 시중에 풀린 책이 <퀴어> 뿐이라서 먼저 읽고 주저 앉았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성폭력문제 때문에 책을 읽는데, 왜 내 섹슈얼리티를 알아야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때 그 책들이 미리 열렸다면 인생 이렇게 고생하진 않았을텐데요. 어쨌든 그 시절에 제가 반지성주의 테크를 타기 시작했던 까닭은 어려움이라기 보다는 지식에 대한 방어기제(+현실보다 어려운 지식의 언어) 때문이구나하는 반성도 하는 요즘입니다.

저는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포스트 구조주의 철학에 머물러있어요. (공부하고 싶어짐) 모든 것을 해체해서 싫은게 아니라 왜 해체해야하는 지를 몰랐어요. 나는 그 사상들을 반성문이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과 약간 다를 수 밖에 없는 긴장이 거기서 나오는 구나. 어쨌든 서구의 반성문이 서구를 따라잡고 싶어하는 한국 사회에서 절대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사고구조라는 것까지 이해했고요, 안과 밖 혹은 겉과 속을 옳고 그름 좋과 싫음을 나누고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행위가 가져오는 필연적인 폭력(적임)에 대해서도 조금 더 깊게 이해하고 있고 (난 이런 인간이라) 내 속을 긁어파는 중 입니다. 푸코 독후감 쓰려다가 서재를 또 유랑하고 있네요. 반갑습니다. 괭님.

저는 우리가 같은 질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요. 개념을 해체해야하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개념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없는 개념을 만든 다음에 다시 해체해야하는 과제는 개념을 습득할 수 있는 조건이 기반인 사람들 이라는 거. 어떻게 얻어낸 정체성인지를 알기에 (적어도 여성에게는) 그걸 내려놓을 때까지 사유해야한다는 사실은 좀 아프지만... 나는 그걸 하며 살고 있는 사람 정희진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여서 개념의 해체 관념의 해체는 위험하지 않아요. 관념과 개념을 명확하게 집어 넣은 다음에 그걸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려고 하는 일종의 무의식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건 무의식이잖아요? ..... (여기서 멈춤.) 암튼 계속해보아요. 괭님. 저도 계속해보겠습니다. 지바 마사야의 <현대사상 입문>은 해체라는 개념 보다는 데리다의 탈구축이라는 말을 활용하더라고요. 저는 지적언어/관념적 언어 사용에 대한 물음표도 가지고 있습니다.ㅋㅋㅋㅋㅋ 누가 알려주진 않을 거 같고 나 혼자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만 생각합니다. 조급증을 버려야하는데 ... 흑... 또만나요. 또올게요.

독서괭 2023-07-14 17:28   좋아요 2 | URL
쟝쟝님의 댓글이 저에게 짜릿하네요!! ㅋㅋㅋ 집나간 쟝쟝이 돌아왔다~~ 자주 나타나 주세요.
페미니즘 책이 그 당시 그렇게 없었나요? <퀴어>를 잡으셨다니 방향이 많이 달랐네요 ㅎㅎ 당장 폭력 앞에 여성들이 희생되고 있는 상황에서, 섹슈얼리티 고찰이라니? 싶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근본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는 건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쟝쟝님이 푸코에 빠지신 거라는?? ˝서구의 반성문이 서구를 따라잡고 싶어하는 한국 사회에서 절대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사고구조˝라는 말씀이 오호! 맞는 것 같네요.
아랫 부분 말씀은 좀 어려운데요. ˝관념과 개념을 명확하게 집어넣은 다음에 그걸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려고 하는 일종의 무의식이 위험하다˝는 건 뭔지 알겠는데, 근데 그건 무의식이잖아요? 에서 멈추지 마시고, 계속 가주시기 바랍니다 ㅎㅎ
해체도 어려운데 탈구축이요..... (쩜쩜쩜)
저도 언젠가 푸코 읽을 수 있겠죠..? 쟝쟝님이 앞서서 읽고 쉽게 좀 풀어주세요. 흐흐. 계속 서재 유랑도 하셔야 하고요. 그러다 언젠가 정착하실 날도 오겠죠? 그날을 기다리며~~^^

건수하 2023-07-14 17:31   좋아요 1 | URL
저는 쟝님의 이 댓글이 (너무 어려운데) 짜릿합니다... 근데 너무 어렵다....

서구를 따라잡고 싶어하는 한국 사회에
관념과 개념을 명확하게 집어넣은 다음 그걸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고 싶은 무의식
이 겹치네요.

포스트모던에 손을 대야 할 때가 온 걸까요?

공쟝쟝 2023-07-16 09:46   좋아요 1 | URL
제가 읽다 만 책은 퀴어 책 이었다기 보다는 버틀러를 따라 뭔가 논의를 급진화해야한다는 맥락의 여성주의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는 무슨 말인지 아예 이해를 못했고여. 지금도 논의를 급진화하자는 말은 왜 나오는지 모르겠…어서 글쓴 적 있어요. (급진적으로 사유를 재구성해야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로 이해) 할튼 그때는 페미니스트들이 하는 말이 어렵고 불편하고 나는 공부가 싫었어요. 이미 답이 없다는 데 공부를 왜해요. 어려운 지식을 공부하기는 싫고 누가 해결해줬음 한다는 일종의 방어기제가 분명있었던 거 같고요. 근데 이건 태도라고 생각하는 데… 당장 급한 불 끄러 왔는데… 우리는 질문을 더 해야한다! 이런식으로 대답하면 누가 좋겠어요… 내가 그 책들을 읽기로한 건 페미니즘 리부트 + 제가 먹고 살만한 이후라는 걸 확실히 일단 해둬야할 거 같아요. 페미니즘이 당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언제나 페미니즘은 가장 멀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리고 진짜 페미니즘적 시각이 확고해지면 되려 사실 페미니즘 필요없어지고요. (제 경우 인생에 전통적인 남성성에 대한 요구가 아예 사라짐 ㅋㅋㅋ 남자가 아예 필요가 없습니다. 걸리적 거림. 이견은 안받겠습니다. 같이 살기 위한 휴먼으로서 대국적으로 공존 모색해야하는 데 아직 대국 안됨)

번역의 문제인데 해체(어감에서 오는 어떤 불편함)를 탈구축으로 말하는게 좋겠다고 지바 마사야가 그러더라고요. 그건 데리다. 데리다를 여러분께 데리다주기 위해 ㅋㅋㅋ <현대사상 입문>을 추천드리고요. (게을러서 독후감은 못씀…) 어렵지 않아요. 겁내지마세요.

제가 포스트구조주의를 서구의 반성문이라고 거칠게 통칭하고 공부해보마 하는 것은 미백남(+인셀)때려잡기 위해 (하 반지성주의 언어사용ㅋㅋㅋㅋ) 그것만한 것이 없기 때문인데… 때려서 잡아지는 건 아니지만… 이것과 이어지는 답은… 마지막 무의식과 덧붙여 부연하면

무의식은 언어가 없지만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고… (지금부터는 약간의 라캉주의) 그것이 비의식이 아닌 무의식 즉 - 억압되어있는 것이라면… 징후에 대한 해답은 거기에 맞는 언어/이름을 붙여주는 것입니다.(의식화) 그건 새로운 언어고요. 누군가에게는 약간의/막대한 고통을 선사하는 언어일겁니다. 새로운 언어는 언제나 위험하게 느껴지죠. 모두가 불편해질지도 몰라요. 직면하지 않기 위해 억압해둔 것들이니까. 어쨌든 언어로 이루어진 인간의 무의식을 포함한 복잡한 인간에 대한 이해는 전통적(혹은 근대적)지식생산자인 서백남의 이해를 초과하는 부분이 있고 지들 외의 인류들에게 저지른 일들도 있으니 이제 그거까지 포함해서 훑는게 근대성에 대한 비판담론이라고 치면요.(반성문) 페미니즘 혹은 탈식민주의는 (여기에 현대의 급진적인 물리학과 뇌과학도 섞어볼까요? ㅋㅋㅋ 근데 지금 뇌과학은 자계러들이 다 챙겨 먹었음… 그것까지 통제해서 성공등식으로 만드는 신자유주의 ㅠㅠ) 그걸 가장 빨리 전면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방식같다는 생각이 저는 들고요. (여성억압이야 말로 5천년치 무의식적 억압이 쌓여있다고 봅니다. 일단 글자와 역사 자체가 남자꺼ㅋㅋㅋ) 우리에게 언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게 이쪽이니까요.

그런데 ….
여기까지 쓰고나니 이걸 쓴 내가 좀 이걸 누가 알아먹냐 ㅋㅋㅋㅋ

정리할게요.
새로운 언어를 향해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5권의 제목이네요)

페미니즘은 훈련예여. 내 위치에서 나를 보는 훈련. 내가 말하지 못하거나 말할 수 없었던 것들에 말을 만들어보는 훈련. 말하고 써보는 훈련. 우리에겐 언어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훈련을 하다보면 내가 누군가의 말을 어떻게 듣고 있고 묵살하는지 자연스럽게 성찰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담론의 효과나 언어에 대해서도 계속 민감해지고(포스트구조주의). 페미니즘을 읽는 건 먼저 그런걸 한 사람들의 사유를 읽는 훈련이요. 마치 외국어를 습득하듯. 좋은 독자가 되는 것. 어제보다 더 복잡하게 인간을 이해하는 것. 복잡한 인간을 선악 옳그 이분법으로 강화하는 언어나 생각을 중단시키고 재빠른 판단만을 부추기는 시스템에 대해 저항하는 것. 그걸로 나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 바로 그 목적이자 과정이 평범한 우리들이 해야할 공부인것 같아여. 물론 이 모든 건 나의 생존문제가 해결이 되었다는 조건 하예요.

우리 이미 충분한 부분도 있잖아요. 잠깐 멈춰서 다시 생각해보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언어가 이기고 지는 싸움의 언어보다 많아질 때, 그때 이 성공지상주의 한국이 조금 나아질거라고 믿어요.

잘하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힘내자^^

마지막 관념 무의식 어쩌고는 정리해서 꼭 쉽게 써볼게여. 남성특권 독후감으로 쓰려던 건데 아직도 못썼음 ㅠㅠ

독서괭 2023-07-19 17:46   좋아요 1 | URL
쟝쟝님 댓글을 여러번 읽었는데요, 저는 아직 쟝쟝님만큼 깊이 고민해보지를 못해서 많은 얘기를 할 수가 없지만.. 일단 ˝데리다를 여러분께 데리다주기 위해˝ 에 빵터지고 ㅋㅋ 저는 탈구축보다는 해체가 나은 것 같은데(쪼끔은 익숙해서인지?) 흠. <현대사상입문> 안 어렵다고요..? 일단 믿고 담아두겠습니다.
무의식에 관한 단락은 다시 찬찬히 읽으니 이해가 됩니다.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정희진이 ˝새로운 대안적 인식론으로서 여성주의˝를 강조한 것과 통하는 것 같고, ˝나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다는 것, 더구나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된 역사를 알게 된다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31쪽)라는 부분과도요. 그래서 가부장제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구나 싶기도 하네요.

˝잠깐 멈춰서 다시 생각해보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언어가 이기고 지는 싸움의 언어보다 많아질 때, 그때 이 성공지상주의 한국이 조금 나아질거라고 믿어요.˝라는 쟝쟝님 말은 정희진의 말만큼이나 감동적이예요.
따로 글 길게 써보신다는 말씀 꼭 지키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