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2권을 읽는데, 노아가 고한수와 식사하는 자리에 노아의 여자친구 아키코가 예고없이 나타나 합석하는 장면이 나왔다. 아, 너무 짜증나지 않는가? 노아는 고한수와 언제 함께 만나서 같이 밥먹자는 말을 한 적도 없는데, 자기 맘대로 그 자리에 끼는 게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하고, "내가 너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니 너는 기뻐해야 마땅하다"라고 생각하다니. 무례하고 오만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노아가 좋아했던 것도 아마 아키코의 그 굴곡없는 성장배경에서 오는 자신감이었을 테니까. 아키코가 어떻게 노아를, 감옥에서 고문당하다가 죽은 아버지, 시장에서 설탕과자를 만들어 팔며 아이들을 키워낸 어머니, 종전 무렵 도망치다가 화상을 입어 누워만 있는 삼촌, 한번도 가보지 못한 조국, 폄하되는 조선인이라는 정체성,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공부했던 시절, 그런 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굳이 밝히고 이해나 연민을 받고 싶지도 않은 그 복잡한 마음을 말이다.
며칠전 스트레스가 심하게 와서 '나의 해방일지'를 보기 시작했다. 미미님이 좋다고 하셔서 마음에 두었었는데, 아, 정말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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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매 중 둘째 염창희는 말 많은 오지라퍼인데, 그들 부모의 일손을 돕는 일손 '구씨'의 집에 찾아갔다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한 방 가득 모아둔 소주병을 발견한다. 오지라퍼 답게 그는 친구(오두환)를 불러 소주병을 밖으로 날라 치우려고 한다. 그 모습을 발견한 구씨가 달려와 그만두라고 화를 낸다. 삼남매의 막내 염미정은 나중에 이 일을 오두환, 염창희로부터 듣고는 묻는다. "(구씨가) 도와달라고 했어?" 그리고는 일침을 날린다. "인간을 갱생시키겠다는 의도가 너무 오만해."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나도 염창희의 행동에 짜증이 났다.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무례하고, 자랑스러울 것 없는 알콜중독의 증거를 보고도 못본 척하는 배려도 없고, 염미정의 지적대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갱생시키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작가는 드라마 곳곳에서 타인에 대한 섣부른 평가, 함부로 뱉어내는 말들, 하나의 잣대를 들이대며 누군가를 실패자로 만들어버리는 방식을 지적한다. 첫 화에서 삼남매의 첫째 염기정은 고깃집에서 친구들에게 소개팅에 나온 이혼남 이야기를 하며 "애 딸린 유부남이라니, 총을 쏴버려야 한다"고 흥분해서 말하는데, 바로 옆 식탁에는 배우자와 이혼하고 딸을 데리고 사는 남자 조태훈이 딸과 함께 앉아 있다. 조태훈은 염미정의 회사 동료이기도 한데, 두 사람은 회사에서 강요하는 동호회 가입 때문에 괴로워하는, 말하자면 '아싸'들이다. 이들과 또다른 아싸 박상민부장은 셋이서 동호회를 만들기로 하고, '해방클럽'을 조직한다.
염미정은 매우 내성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회사 동료들의 수다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습관적으로 미소를 짓고 있다. 싫은 말을 하지 못하고, 알던 사람과 끝장을 내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녀는 전남친에게 사업자금을 빌려주기 위해 신용대출을 받았으나 전남친은 해외로 날라 버렸다. 이런 그녀의 캐릭터를 분석하면, 애착 형성이 잘 되지 않아 자존감이 부족하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한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라고 말한다. 염미정은 구씨에게, 그러니 나를 가득 채워서 나쁜 놈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라고 외친다. 한편으로 염미정은 구씨를, '좋기만 한 사람'으로, 무조건 응원할 대상으로 삼는다. 지지 않고, "뚫고 나갈거야"라고 선언한다.
염미정은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내성적인 태도를, 잘못한 사람에게도 큰소리 내지 못하는 답답함을 피상적으로 바꾸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굴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가 "채워지지 못함"에 있음을 알고 직구를 날린다.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 특히 삼남매는 참 재미난데, 각자 어느 정도 한심하고 어느 정도 답답하지만 또 나름의 사랑스러움을 가지고 있다. 이런 캐릭터들을 만들어내고 이런 이야기를 엮어낸 작가에게 감탄한다.
윌*오디오북에서 <토지> 듣기는 계속 진행중이다. 옛날, 20대에 토지를 읽었을 때는 구천이의 기구한 사연과 별당아씨와의 도피, 귀녀와 평산과 칠성의 음모, 용이와 월선이의 사랑 등 굵직한 줄기에만 집중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마을사람들 하나하나의 개성과 사연에 눈길이 간다. 나름대로 양반인 평산에게도 거침없이 말을 날리는 정많은 주모 영산댁이나, 예쁜 얼굴에 못된 심보를 가진 임이네와 강청댁의 신경전, 함안댁의 못나고 불쌍한 삶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2권의 끝에서는 함안댁이 나무에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목매단 새끼줄이나 나뭇가지가 영기를 빨아들여 좋다는 믿음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욕심껏 그것들을 챙긴다. 희한한 것은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내 잇속부터 챙기자는 이런 태도라든가, 도무지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귀녀나 평산, 칠성을 보아도 이들 모두가 정말로 싫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인데, 박경리 선생님 자신이 이 무지하면서 억척스럽고 선하면서도 악한 사람들-특히 농민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쓰셨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풍경 묘사를 듣고 있자면 마치 눈앞에 그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고, 생생하게 움직이는 등장인물들은 정말로 존재했던 이들 같으니, 괜히 대작이고 대작가가 아닌 모양이라고, 새삼 생각한다.
나는 지금 무례함과 오만함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한때는 '좋기만 한 사람'일 수도 있었을 배우자에게 '사소한 보복'을 해가며 앙금을 쌓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내게 매달리는 아이들을 가득 채워주고 있는지. 내가 뚫고 나가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엉켰던 마음이 많이 풀어졌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에서 주인공 ‘선‘은 다섯 살 남동생 ‘윤‘이 밤낮 친구 연오에게 맞으면서도 또 언제 싸웠냐는듯 다시 같이 노는 꼴을 보니 열불이 난다. 그래서 채근한다.
선: 야, 이윤, 너 바보야? 그리고 같이 놀면 어떡해?
윤: 그럼 어떡해?
선: 다시 때렸어야지.
윤: 또?
선: 그래, 걔가 다시 때렸다며. 또 때렸어야지.
윤: 음………… 그럼 언제 놀아?
선: 어?
윤: 연오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연오가 또 때리고, 그럼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
천진난만한 다섯 살 아이 윤이의 말이 어쩌면 헌법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헌법은 결국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의다. - <최소한의 선의> 252, 2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