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강의를 끝으로 올해의 강의가 일단락되었다. 대단한 역주는 아니었더라도 완주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다. 다소 무리한 면도 있었지만 많이 읽고 또 배운 한해였다(강사도 강의를 통해 배운다). 몇몇 결과는 내년에 책으로 묶여서 나올 것이다. 무엇을 배운 것인지는 책을 내는 과정에서 다시금 복기하고 정리할 예정이다. 당장은 휴식.

내일 하루 정도는 휴식을 취할 예정이지만 그래도 책을 손에서 놓기는 어렵겠다. 편안하게 읽느냐 긴박하게 읽느냐의 차이일 뿐. 무엇을 읽을지는 아직 미정인데(내키는 대로 읽자면 십수 권은 읽어야겠기에), 후보 가운데 하나는 저명한 러시아사학자 쉴라 피츠패트릭의 <러시아 혁명 1917-1938>(사계절)이다. 올해 러시아혁명 관련서가 다수 출간됐으니 한권 더 추가된 게 대단한 뉴스는 아니다. 다만 저자가 다루는 시대 범위가 눈길을 끄는데 1938년 스탈린 공포정치기를 1917년 혁명의 일단락으로 보았다. ˝러시아혁명에 대한 간결하고 통찰력 있으며 독창적인 분석˝이라는 평도 이런 구분설정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비교해보자면 에드워드 카는 1917-1929년까지를 러시아혁명사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리고 올랜도 파이지스는 1891-1991년을 ‘혁명의 러시아‘로 제시했다. 피츠패트릭의 구분은 그 중간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올랜도 파이지스 자신이 피츠패트릭의 책에 대해 추천평을 적고 있는데 참고할 만하다. ˝소비에트 체제에 가장 정통한 학자가 쓴 간결하고 절묘한 해석이다.˝ 간결해서도, 그리고 절묘해서도 일독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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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서프라이즈‘라고 할 만한 책이 출간되었다. 구소련의 SF작가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대표작 <노변의 피크닉>(현대문학)이 번역돼 나온 것.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스토커>의 원작소설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소비에트 SF 작가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전설적인 고전. 한국에 형제의 작품이 첫선을 보인 후 거의 30년 만의 사건이다. 이번 한국어판 <노변의 피크닉>은 스탈케르출판사의 2003년판 <스트루가츠키 형제 작품집> 11권 제2쇄(2차 수정본) 원고를 저본으로 삼았다. 

1977년 맥밀런출판사 영역판에 실린 ‘시어도어 스터전 서문‘과 2012년 시카고리뷰프레스 영역판에 실린 ‘어슐러 K. 르 귄 추천사‘, 그리고 2003년 동생 보리스 스트루가츠키가 펴낸 회상록 ‘지난 일들에 관하여‘의 ‘노변의 피크닉‘ 부분 ‘후기‘」를 함께 수록했다.

<노변의 피크닉>은 외계 생명체나 외계 문명과의 첫 접촉을 다루는 ‘퍼스트 콘택트‘ 유의 소설에 속하지만, 통상 이들 작품이 평화적인 혹은 공격적인 외계의 접근 형태를 그리는 것과는 달리 그들로부터의 아무런 의사 표시가 없었다고 상정한다.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이 작품은 외계인의 지구 ‘방문‘ 이후의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아무래도 영화 <스토커>를 먼저 보고 궁금해 한 원작인데, 이 영화에 대한 제프 다이어의 에세이 <조나> 때문에 다시 생각나기도 했다. 타르코프스키에 대해서 관련서들을 이번 겨울에 자세히 읽어볼 예정이라 더욱 반가운 출간이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와 마찬가지로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봐도 좋겠다. 그런 기회도 마련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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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혁명 100주년 관련서도 이제 거의 다 나온 듯한데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책이 이번주에 나왔다. 한국러시아문학회에서 엮은 <예술이 꿈꾼 러시아혁명>(한길사)이다. 국내 전공학자들의 책으로는 지난달에 나온 <다시 돌아보는 러시아혁명 100년 1-2>(문학과지성사)와 세트로 묶을 만하다.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러시아문학회 소속 학자 20인이 쓴 책으로, 러시아혁명기를 산 작가와 시인, 건축가와 화가, 음악가 등의 삶과 창작세계를 풀어냈다. 또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발레 등 러시아혁명이 낳은 여러 이론과 유산을 소개했다. 무엇보다 러시아혁명 이후 각 예술가나 예술사조, 이론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달라졌으며, 현대에는 어떻게 연구하고 있는지까지 소개해 연속적인 맥락에서 러시아혁명기 예술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학회에 가본 지도 꽤 오래 되었는데 그간의 연구성과를 한권으로 갈무리해주어서(분량이 꽤 되는군) 아주 요긴하다 싶다. 어찌되었든 전공자들도 할 만큼 했고 독자로서도 안심이 된다. 겨울밤 독서용으로 장만해두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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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역사학 교수로 특히 러시아혁명사의 권위자인 로버스 서비스의 평전 <레닌>(교양인)이 다시 나왔다. 과거 시학사에서 나왔던 번역판이 출판사를 바꾸어 다시 나온 줄 알았더니 역자도 바뀌었다. 재번역본인 셈(서비스의 혁명가 삼부작 가운데 <스탈린>도 절판된 상태인데 이 또한 다시 나오지 않을까 싶다).

˝로버트 서비스는 레닌을 무결점의 사상가, 정치가, 인도주의자로 채색해 온 소련의 공식 해석을 반박한다. 트로츠키가 제시한 레닌상, 즉 레닌이 죽기 직전에 독재, 계급 전쟁, 공포 정치와 절연하고 공산주의를 개혁하려 했다는 의견도 부정한다.

그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세 주역인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의 전기를 연이어 발표했다. 세 권의 전기 중 첫 번째 책인 <레닌>은 서비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소련 중앙당 문서고에 봉인되어 있던 레닌에 관한 모든 기록들을 자료로 삼아 완성한 이 레닌 전기는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요컨대 레닌에 대한 소련의 공식적인 해석을 반박하는 수정주의적 해석을 제시한 평전으로 보면 되겠다. ‘또다른 레닌‘이라고 할까. 아무튼 러시아혁명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겨보게끔 하는 책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 참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한 레닌의 삶과 사상을 되짚어보는 일은 충분한 의의를 갖는다. 이전 번역판도 갖고 있는 터라(서비스의 삼부작은 원서로도 구비해놓았다) 비교해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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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제니친(솔제니찐)의 <수용수군도>(전6권)가 리커버판으로 재출간되었다. 오래 고대한던 일이라 반갑기 짝이 없다. 추천사 요청에 망설임 없이 응한 이유다. 알라딘의 이벤트 페이지에 실은 추천사를 여기에도 옮겨놓는다...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책들이 올해 다수 출간되었고. 나대로는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 20세기>를 통해서 내 몫의 입막음은 했다고 자부한다. 20세기 러시아문학 소개서를 쓰면서 내가 그린 그림은 ‘고리키에서 솔제니찐까지’라는 것이었다. 고리키의 <밑바닥에서>(1902)부터 솔제니찐의 <수용소군도>(1973)까지. 그러면서 유감스러워 한 것은 한때 완역되었던 전6권 가운데 1권만이 겨우 출간돼 있는 사실이었다.

언젠가 대학에서 이 작품을 강의하면서도 1권만을 읽힐 수밖에 없었는데, 딴은 학생들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로선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갈망하면 이루어진다던가. 무려 22년만에 전6권이 새로운 장정으로 다시 출간된다. ‘서프라이즈’한 일이자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마무리하는 멋진 피날레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내년에 탄생 100주년이 되는 작가 솔제니찐의 위업을 미리 기념하는 의미도 갖겠다. 

솔제니찐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중편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1962)로 기억된다.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수호프가 수용소에서 보낸 하루, 심지어 아주 행복하기까지 한 하루를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이 데뷔작으로 솔제니찐은 당시 소련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겉으로는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표방했지만 실제는 거대한 수용소 국가라고 폭로한 이 단 한 작품만으로 솔제니찐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부상한다.

그렇지만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일종의 맛보기였다. 솔제니찐은 이 문제작을 발표하기 전부터 ‘수용소의 하루’가 아니라 ‘수용소의 모든 것’을 집약하는 대작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3년 프랑스의 파리에서 처음 출간되지만 실제로는 1958년부터 68년 사이에 집필한 <수용소군도>가 그것이다. 이 작품의 해외 출간이 결정타가 되어 솔제니찐은 결국 소련에서 추방당한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솔제니찐 문학의 선발대였다면, <수용소군도>는 바야흐로 본진에 해당한다. 실제로 2차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사소한 빌미로 체포되어 8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던 솔제니찐은 이 부조리하고 야만적인 체제의 알파와 오메가를 모두 기록하기로 작정한다. 당대 사회의 거대한 벽화를 그리고자 했던 발자크적 기획의 솔제니찐판이라고 할까.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탄생했다가 1991년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한 소련은 어떤 국가였던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두 권의 소설(이라기보다는 논픽션)을 지목하고 싶다. 솔제니찐의 <수용소군도>와 알렉시예비치의 <세컨드핸드 타임>이다. 현실 사회주의, 곧 실제로 존재했던 사회주의 체제의 실상을 그 두 작품은 여실히 증언한다. 문학이 언제 위대질 수 있는가. 나는 이런 작품들과 함께할 때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기록, 위대한 증언, 위대한 고투를 읽는 시간은 우리에게도 결코 사소할 수 없는 시간이다. 바야흐로 우리에게도 <수용소군도>를 읽는 시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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