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실종자>를 오랜만에 강의에서 읽었다. 나머지 두 장편과 마찬가지로 미완성이지만 카프카의 첫 장편 시도로서 의미가 있는데 두 가지 판본이 전한다. 1927년에 나온 막스 브로트판(<아메리카>란 제목을 붙였다)과 1983년에 나온 비평판이 그것으로 한국어판의 대본도 이 두 종이다. 3종의 완역본 가운데 <아메리카>란 제목으로 처음 나왔던 범우사판은 브로트판을 옮긴 것이고 나중에 나온 지만지판과 솔전집판은 비평판을 옮겼다.

그런데 비평판을 옮겼다고 하지만 지만지판은 중요한 대목에서 비평판 번역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주인공 로스만이 마지막 여정지로 찾아가게 되는 오클라호마 극장이 비평판에서는 카프카의 유고에 따라 ‘오클라하마 극장‘이라고 표기되어 있음에도 이를 브로트판처럼 ‘오클라호마 극장‘이라고 옮기고 있어서다.

‘오클라하마‘는 카프카의 의도가 반영된 오기인데, 연구자들은 카프카가 아르투어 홀리처의 여행기 <아메리카>(1912)를 참고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 책에 실린 사진 설명에 ‘오클라호마‘가 ‘오클라하마‘로 오기돼 있다. 홀리처의 책은 오기이지만 카프카가 이를 작품 속 지명으로 그대로 가져온 것은 작품의 결말과 관련하여 중요한 암시를 갖게 된다. 로스만이 오클라하마 극장의 일자리를 구하면서 자기 이름을 ‘니그로‘라고 밝히고 있어서다.

홀리처의 사진은 백인들이 흑인(니그로)을 교수형에 처한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는 로스만의 운명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홀리처의 책을 전거로 하여 ‘오클라하마‘와 ‘니그로‘가 긴밀하게 연결되고 이것이 이 작품의 쓰이지 않은 결말을 추정하도록 한다. ‘오클라하마‘로 옮겨야 하는 이유다.

브로트는 이러한 사정에 둔감했기에 유고의 ‘오클라하마‘를 ‘오클라호마‘로 교정하고 ‘실종자‘라는 제목도 ‘아메리카‘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해피엔딩으로 끝날 예정이었다고 증언한다. <실종자>에 대한 오해의 첫단추였다. 현재로서는 전집판 번역만이 이런 오해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전집판이 아주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역자해설의 이런 오문은 전집판의 의의를 현저하게 깎아먹는다.

˝17세의 카알 로스만이 뉴욕 항에 도착하는 장면이 이 작품의 시작이다. 작품 <성>이나 <소송>, <변신>에서 어떤 기이한 사건의 갑작스러운 시작이 작품의 출발은 스스로 되는 것과 같이 이 작품에서도 카프카적인 시작을 볼 수 있다.˝

참으로 ‘카프카에스크‘적인 문장이다. 놀라운 것은 2003년과 2017년판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오탈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무려 14년간 (역자나 편집자나) 아무도 다시 읽지 않았다는 얘기인가?! 책을 만드는 정신도 어디론가 실종됐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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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3-21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의 진입에 결국 실패하는 K를 안타깝게 여겼는데
해맑은 모습으로 처형장을 향해 가는
열여섯 살의 로스만은...

로쟈 2018-03-21 00:45   좋아요 0 | URL
네 견적이 안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