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에 북리뷰를 다시 격주로 연재하게 되었다. 이번주에 실린 서평을 옮겨놓는다(분량이 전보다 조금 짧아져서 적응이 좀 필요하다). 지난 연휴에 리처드 왓슨의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원더박스)를 읽고 적었다(계기가 되어 미래학 관련서를 몇 권 더 구입했다).



주간경향(18. 03. 06) 인간이 원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설 연휴가 지나고 나니 비로소 한해가 시작되는 듯하다. 서평을 다시 연재하게 되면서 어떤 책을 다룰지 고심하다가 영국의 미래학자 리처드 왓슨의 책을 골랐다. 그의 신간을 손에 든 것도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라는 제목에 이끌려서다(원제는 디지털 대 인간이다). 알파고가 보여준 위력 때문에 부쩍 체감하게 된 인공지능 시대는 과연 어디까지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달라진 세상에서 인간은 여전히 인간일까.


저자도 인간이기에 당연한 선택인 것도 같지만 그가 편을 드는 쪽은 디지털(내지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이다. 디지털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인공지능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지만 인공지능의 특이점은 아직 불가능하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인공지능의 특이점이란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갖게 되는 단계를 가리킨다. 만약 그런 단계의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고, SF영화에서 흔히 보여주듯 거꾸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그런 특이점이 가능하지 않은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한데, 우리가 아직 인간 의식의 작동원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계에서 의식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방법을 알지 못하면서 언젠가는 인공의식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말하는 것은 저자가 보기에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따라서 현재로서는 불필요하다. 대신에 필요한 것은 컴퓨터는 인간을 통제하는 도구가 아닌 해방하고 보호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한 컴퓨터 과학자의 기대를 관철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디지털 세계가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은 분명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인간적 가치와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세상과 현실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끔찍한 불행을 낳을 수 있다. 대표적 사례로 저자가 꼽는 것이 한국인 부부다. 온라인에서 만나 사귀다가 결혼한 김유철과 최미선 부부는 진짜 딸은 집에다 방치한 상태로 디지털 딸을 돌보느라 PC방에서 하루 12시간씩 게임에 몰두했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가장 잘 갖춰져 있고 인터넷 평균속도도 가장 빠른 나라에서 발생한 일이라 더 상징적이다.


디지털 기술은 현실을 더 흥미롭게 바꿔줄 수 있지만 현실의 인지를 방해할 가능성도 더 높여놓았다. 디지털화된 현실이 초연결사회를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가까운 인간관계는 더 약화시켰다. 영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국인의 33퍼센트가 디지털 소통에서 소외를 느낀다고 답했다. 여전히 우리의 마음과 정서는 구석기 시대에 머물러 있는데, 디지털 기술은 폭주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기술의 발달은 분명 이전에 가능하지 않았던 많은 변화와 혁신을 가져왔다. 그렇지만 기계문명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기술을 우리의 목적에 맞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먼저 그려야 한다는 게 저자의 제안이다.


18. 03. 02.


P.S. 분량상 여러 주제를 다루지 못했는데, 일단 '디지털 대 인간'이라는 원제는 디지털 딸을 키우느라 진짜 딸을 방치하여 죽게 만든 한국인 부부의 사례에서 가져온 것이다(찾아보니 국내기사에서는 부부의 실명이 뜨지 않았는데, 외신에는 보도가 나간 모양이고 저자도 책에서 실명을 적고 있다. 혹은 외신용 가명인지도 모르겠지만). 책의 유익함은 다양한 사례 소개에 있는데, 영국 사진작가 베이비케이크스 로메로의 작품이 언급되기에 찾아보았다. 디지털 시대의 익숙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풍경이었다. '대화의 죽음' 시리즈 몇 장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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