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과의 몇년 전 (전화)대담 기사를 하나 옮겨놓는다. <월간중앙>(2003년 2월호)에 게재됐던 것인데(나는 지면에서 처음 읽었었다), 지젝은 그해 가을 방한한 바 있다. 대담자는 김영희 중앙일보 상임고문이며 타이틀은 "북한과 같은 나라에는 고립화와 봉쇄정책이 효과 없다"이다. 아무래도 잡지의 독자층을 고려한 제목이겠다. 아무튼 당시에도 최대 화두는 북한이었으니 시의적으로 읽어볼 만한 기사이다(이미지와 강조는 나의 것이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역사가·문명비평가 슬라보이 지젝은 정열적으로 질문에 대답했다. 50여 분 동안의 전화대담에서 그는 듣는 사람의 귀가 아플 만큼 큰소리로,그리고 자신있게 9·11 테러 이후 부시가 펴온 대외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한반도 안팎을 가릴 것 없이 새해 최대 화두는 이라크와 북한이다. 미국의 조지 부시 정부는 이라크를 공격할 준비를 사실상 끝낸 상태다. 남은 문제는 이라크에서 활동중인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무기사찰단이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많이 만들어 숨겨두고 있다는 물증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 증거를 못 찾으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정당성을 잃고 영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동맹국과 우방국들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라크 공격을 재가하는 제2의 결의안을 채택할 수도 없다. 그럴 경우 미국은 단독으로 이라크를 공격해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고 석유부국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세운 정권은 성공할 것인가.

북한 핵문제는 어렵사리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듯하다. 북한이 핵무기를 먼저 포기해야 대화하겠다던 미국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고 선언만 해도 대화하겠다는 쪽으로 한 발 물러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는 대화일 뿐 협상은 아니다. 대화에서 협상, 협상에서 합의는 전혀 별개의 절차다. 과연 북한이 바라는 북·미 관계 정상화와 북한의 안전보장이라는 보따리와 미국이 바라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포기라는 보따리를 교환하는 일괄타결이 실현될 것인가. 아직도 길고 긴 여정(旅程)이 남은 것이 북한의 핵문제다. 그래서 한반도 주변은 앞으로도 오래 오래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3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멘트이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역사가·문명비평가 슬라보이 지젝(Slavoj Zizek)은 9·11 테러 이후 부시가 펴온 대외정책에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신랄하게 비판적이다(*지젝의 주장은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와 <이라크>에 집약돼 있다). 영·미(英美) 편향의 견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지젝의 견해는 충격으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부분의 진보적 학자와 언론인들과 유럽의 거의 모든 전문가들은 이라크에 대한 부시의 강경노선에 지젝처럼 비판적이다. 그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해도 사담 후세인을 성공적으로 제거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후세인을 제거한다고 해도 그것이 바로 중동정세의 안정과 선진국가들에 대한 안정된 원유 공급을 보장하는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는 전망이다.

슬라보이 지젝은 정열적으로 질문에 대답했다. 50여 분 동안의 전화대담에서 그는 듣는 사람의 귀가 아플 만큼 큰소리로, 그리고 자신있게 말했다(*얼마전에 영화 <지젝!>을 봤는데 예의 그의 거침없는 목소리와 제스처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발칸반도의 슬로베니아는 수백 년 동안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배를 받은 나라다. 그래서 그 지역, 그 나라 사람들은 강력한 외세의 간섭이 현지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본능적으로 안다. 슬로베니아가 배출한 유럽 최고의 지식인과, 람보 이미지의 조지 부시의 대외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부시의 자유주의가 점점 많은 이슬람들을 反美적 원리주의자로 만들고 있다"

김영희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임박해 보입니다. 9·11 테러가 지난해의 아프가니스탄전쟁과, 그것보다 훨씬 파괴적일 이라크전쟁을 정당화한다고 보십니까.

지젝 아프가니스탄전쟁은 정당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라크전쟁의 목표는 전혀 다릅니다. 미국은 석유 공급을 확보하려고 테러와의 전쟁을 이용하고 있어요. 테러와의 전쟁과는 무관합니다. 사담 후세인은 알 카에다와 아무 관련이 없어요. 미국도 지금은 후세인이 알 카에다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아요.

거듭 말하지만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이용해 다른 경제적 목표를 추구하고 있어요. 부시 독트린이라는 미국의 정치철학이라고 할까, 이데올로기가 걱정입니다. 그것은 미국에는 현실의 적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적까지 선제공격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소수의견)의 경찰과 같아요. 이 영화에서 경찰에는 앞으로 범죄를 저지를 사람을 알아내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경찰은 그 사람이 지목하는 미래의 범죄자를 미리 체포합니다. 경찰은 이렇게 말해요. "당신은 30분 뒤에 살인합니다. 그래서 당신을 체포합니다."

미국은 국제정치 차원에서 범죄가 있기도 전에 사람들을 공격하고 체포하고 벌을 주는 셈입니다.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이라크전쟁에 반대한 것은 '슈뢰더판(版) 마이너리티 리포트'라고 하겠어요. 지정학적으로 중국이 미국의 슈퍼파워 지위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이 이 영화의 경찰처럼 중국을 예방공격할 것인가 주목됩니다. 이라크 공격의 배후에는 참으로 위험한 논리가 숨어 있어요.

사담 후세인을 제거한다면 중동 지역은 평화에 한 발 가까이 가는 것입니까.

지젝 그 반대의 결과가 예상됩니다. 후세인 정권은 이슬람 원리주의 정권이 아니에요. 이라크의 기본 이데올로기는 이라크 애국주의일 뿐입니다. 후세인이 이슬람과 손잡은 것은 10년 정도밖에 안돼요.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지요. 몇 달 전에 이라크에서 대통령선거가 있었는데 후세인이 100%의 지지를 받았어요. 선거 운동 기간 중 이라크 방송들이 후세인 지지 슬로건을 실어 계속 내보낸 노래는 미국의 흑인 가수 휘트니 휴스턴의‘나는 언제나 너를 사랑할 거야’였습니다. 이슬람 원리주의 나라에서는 그렇게 못 해요. 이 나라의 제2인자인 부총리 타리크 아지즈는 기독교 신자 아닙니까. 이라크는 전형적인 민족주의 국가입니다.

만약 미국이 후세인을 몰아내고 이라크에 일종의 신식민지주의 정부를 세워 군정(軍政)을 실시한다면 그때야말로 전 세계를 망라한 이슬람 원리주의 민중들의 반미운동이 일어날지도 몰라요.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겁니다. 이라크를 원리주의 국가로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미국의 무력간섭이에요.

설마 부시 대통령이 그걸 모를까요?

지젝 물론 알지요. 그러나 정치란 이상한 겁니다. 뻔히 알면서 재앙을 부르는 것이 정치죠. 헨리 키신저를 봐요. 얼마나 똑똑한 사람입니까. 그런 사람이 베트남을 잃었어요. 그런가 하면 로널드 레이건 같이 별로 영민하지 못한 사람이 소련을 상대로 무자비한 군비경쟁을 벌여 소련 제국을 파멸시킨 경우도 있어요. 어느 한 사람의 머리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수행에 이용되는 비극적인 논리의 문제입니다.

"북한이 이라크보다 더 위험"

부시 정부는 이라크말고 북한이라는 문제도 안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슬로베니아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만 일반론으로 말해 북한 핵문제도 군사적으로 풀려고 할까요?

지젝 북한과 이라크가 자주 비교되는데 나는 북한이 이라크보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친구인 영국 언론인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나쁜 나라를 조사한 결과 북한이라는 결론을 얻었어요. 권위주의 국가에는 자유가 없는 대신 질서라도 있고, 중앙통제를 잃은 나라에는 질서가 없고 국민이 배고픕니다. 북한은 강력한 독재 아래 국민이 굶주리는 독재와 카오스(Chaos)를 갖춘 나라라는 것입니다. 북한에 대해 유화(Appeasement)정책을 써야 할 것입니다. 북한체제가 개탄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라 쿠바의 경우를 봐도 고립화와 봉쇄정책이 효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시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빙자해 경제적 목표를 추구한다고 하셨는데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를 이용해 미국의 패권을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단독주의는 우방국가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나쁩니다. 부시는 미국의 패권이라는 야망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지젝 장기적인 시각에서 보면 부시는 스스로 패배하는(Self-defeating) 게임을 하고 있어요. 부시는 두 가지를 잘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9·11 테러후 테러와의 전쟁을 다루는 국제재판소 같은 법적 체계를 갖췄어야 하는데, 미국은 국제형사재판소(ICC)에도 구속되지 않고 단독행동을 하겠다는 겁니다. 미국은 국제적인 체제에 들기를 거부해요.

미국이 저지른 또 하나의 잘못은 140개국이 참가하고 국제통상기구(WTO)가 지지하는 에이즈에 관한 국제적 협정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것은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들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제약회사들이 개발한 에이즈 치료제를 특허료 없이 생산하는 것을 허용하는 협정입니다. 미국 정부는 제약회사들의 막강한 로비에 따라 이 협정에 조인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9·11 테러후 미국 자신은 독일의 바이엘 제약회사에 탄저균 치료제를 싸게 수출하라고 압력을 넣었어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미국이 가난한 나라들에 인류의 재앙인 에이즈 치료제 생산을 못하게 하는 겁니다.

이것이 미국이 무자비하게 추구하는 패권입니다. 21세기의 패권국가는 미국이고, 미국에 도전할 미래의 슈퍼파워는 중국뿐인데 미국과 중국이 대표하는 정치질서로서의 두 개의 문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끔찍합니다. 그래서 유럽통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디지털 디바이드는 인류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세계화를 두고 말이 많습니다. 세계화는 필요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지젝 세계화는 피할 수 없어요. 그러나 어떤 세계화인가라는 선택의 문제는 있습니다. 세계화 반대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은 지금 진행되는 세계화가 자본주의의 세계화라고 주장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보십시오. 경제적 세계화, 상품의 교환은 오히려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새로운 장벽들을 쌓고 있어요. 미국은 멕시코와의 국경선을 더 철저히 감시하고, 서유럽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이스라엘은 요르단 강 서안(西岸)과의 사이에 새로운 벽을 세워요.

이런 세계화는 자본주의를 위한 세계화입니다. 나는 약품이 세계 곳곳에 분배되는 그런 세계화를 지지해요. 인터넷을 널리 보급하는 디지털 세계화도 중요합니다. 디지털 보급의 격차를 말하는 이른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는 운명이 아니라 인류의 집단적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그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선택의 문제입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만든 위기를 통제할 능력이 없다"

영국의 권위 있는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현실정치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붕괴했지만 이론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사상은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긴 글을 실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어떤 유산을 남겼습니까.

지젝 '자본주의는 그 물질적 조건에 지속적인 혁명적 변화를 주어야 살아남을 수 있고, 자본주의는 자체의 논리상 끊임없이 확장을 계속하고, 자본주의는 전통을 파괴한다'는 자본주의 발전의 역동성에 대한 마르크스의 진단이 오늘의 세계화 현상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데는 누구나가 동의합니다. 그러면서도 오늘날 살아남은 마르크스의 진단은 자본주의가 스스로 대립과 위기를 만들어 내고 자본주의는 그런 대립과 위기를 통제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통찰입니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관한 낡은 환상을 버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본주의 너머(Beyond)를 생각할 필요도 있어요.

부시 정부 아래서 미국은 경쟁제일주의와 시장원리주의의 깃발을 높이 든 신자유주의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은 없을까요?

지젝 단기적으로 부시의 경제적 자유주의는 잘 굴러갈 겁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갈등과 모순이 생길 거예요. 벌써 당장의 정책과 관련해서 기본적인 긴장이 생겼어요. 부시는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과격한 경제적 자유주의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이해가 걸리면 언제나 자유주의의 룰을 깨고 나와요. 한국도 피해를 입은 수입철강에 대한 관세 인상이 그런 경우 아닙니까.

부시의 미국은 다른 나라에 강요하는 룰을 따르지 않아요. 부시는 자유주의를 주창하면서 동시에 도덕적으로는 보수적인 가치를 옹호합니다.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러면서 부시는 자신이 주장하는 도덕적 아젠다(Agenda=과제)를 뒤집어 엎는 경제정책을 펴는 거죠.

역설적입니다. 레이건도 그랬어요.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는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에 매혹되었으면서도 도덕적 가치와 가족의 가치를 파괴하는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폈던 겁니다. 부시의 자유주의는 이미 긴장을 낳고 있어요. 대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는 부시의 자유주의 정책은 환경문제와 조화를 이룰 수 없고 사회불안을 다룰 수도 없어요. 장기적으로 볼 때 큰 위기가 오고 있습니다.

지젝 박사는 빌 클린턴에게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데, 부시는 클린턴보다 나은 대통령입니까.

지젝 노! 나더러 선택하라면 클린턴입니다. 부시는 속임수의 유산을 남길 거예요.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지 않고, 이라크전쟁이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면 단기적으로 부시는 전형적인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시 통치의 장기적인 결과는 대실패일 겁니다.

우리는 이슬람 원리주의에 앞서 미국의 기독교 원리주의에 관해 많이 들었습니다. 십자군 점령 아래 있던 예루살렘을 탈환한 이슬람의 영웅 샐러딘(Saladin·1137~93)은 그에게 패배한 기독교도들을 관대하게 대접한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오늘의 이슬람은 샐러딘 시대의 이슬람, 어제의 이슬람과 다릅니까.

 

 

 

 

지젝 그 질문 참으로 반갑습니다. 나는 옛 유고연방의 일부였던 슬로베니아 사람이어서 이슬람에 대해서는 피부로 느끼는 바가 많기 때문입니다. 유고연방 안에서도 가장 관용적인 지방은 이슬람의 도시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였어요. 사라예보의 유대계 인구는 유고연방 안에서 가장 많았습니다.

이슬람은 다른 종교에 대해 기독교보다 훨씬 관용적이었어요. 오늘날도 이슬람은 비(非)관용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소수의 기독교들만이 자칭 도덕적 다수라는 원리주의자들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내는 경향이 있어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아직도 소수에 불과해요. 모로코와 이집트와 인도와 방글라데시와 인도네시아에는 원리주의자가 아닌 이슬람이 수억 명이 있어요. 원리주의자들은 훨씬 공격적입니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히려 조지 부시의 잔인한 자유주의입니다. 부시의 자유주의는 점점 많은 이슬람들을 반미적 원리주의자로 만들 겁니다.

"칸트가 살아 있다면 미국을 야만적인 나라로 꼽았을 것"

미국은 21세기에도 계속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릴까요? 유럽공동체(EU)나 중국이나 러시아가 미국의 지위에 도전할 날이 오겠습니까.

지젝 러시아는 미국에 도전할 힘을 기를 수 없을 것이고, 어쩌면 중국이 미국의 경쟁자가 될지도 몰라요. 내가 바라기는 유럽이 하나로 통합되어 미국과 중국이 아닌 제3의 선택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패권주의는 이미 천천히 기력을 잃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미국이 이기고는 있지만 테러와의 전쟁은 일종의 공포(Panic)에 사로잡힌 반응이고, 다른 나라들이 강대국이 되는 것을 예방하는 전쟁입니다. 20세기는 미국의 세기였지만 21세기는 미국의 세기가 아닐 것으로 봅니다.

세계는 한없이 좁아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유럽은 무엇이고 유럽에 아시아는 무엇입니까.

지젝 구체적으로 들어가자면 어느 유럽, 어느 아시아를 의미하는가를 따져야겠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유럽과 아시아는 이상한 문화적, 경제적 교환 관계에 있어요. 아시아에 유럽은 주로 경제적 모델입니다. 아시아는 유럽의 경제체제를 도입했어요. 반면 아시아는 유럽에 정신적인 것과 이데올로기를 전파했어요. 지금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서서히 퇴색하고 있어서 아시아의 정신적인 것이 유럽에서 점점 강한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유럽은 아시아에 경제 제도를 수출하고 아시아는 유럽에 이데올로기를 수출한다고 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이라크로 돌아가서, 만약 영구평화라는 도덕적 이상을 주창한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가 부시의 안보담당 고문이라면 부시에게 어떤 충고를 할까요?

지젝 아닌게 아니라 헤이그 국제전범재판소를 준비하던 사람들도 칸트의 세계평화의 이상을 참고했어요. 세계에 법질서를 펴는 것이 칸트의 이상이었어요. 그래서 칸트는 부시에게 모든 대외정책을 국제법에 맞게 수행하되 단독으로 행동하지 말라고 충고할 겁니다. 내 말을 안 들으면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재앙을 만난다고…. 세계법정의 절대적 귄위를 인정하고 유엔에 더 많은 권한을 양보하라고….

그런 충고라면 부시가 듣지 않겠네요?

지젝 이론적으로 부시는 야만인(Barbarian)입니다. 미국의 정치에는 처음부터 야만적인 요소가 있었어요. 칸트가 오늘의 국제정치판을 관찰한다면 미국을 야만적인 나라로 꼽을 겁니다. 

 

 

 

 

06. 1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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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culp 2006-11-0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석유, 야만 애기나오면 이 영화가 떠오릅니다.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 콘돌인데(Three days of condor,1975)
75년 영화니 미국은 거의 바뀌지 않은 셈 같은데요. 이영화 보고난후로 미국에게 어떤 정의 같은것을 미국의 이익에 반해서 해주길 바라는것은 접었습니다.
민노당 북에가서 할말은 참 정선해가면서 하고 한국와서 미국에 대해서는 그냥해대던데 그런말한다고 미국이 콧방귀나 낄런지.

인터넷을 뒤져보니 영화 내용요약이 있어옮겨봅니다.

제임스 그래디의 소설 을 바탕으로 CIA의 조직적인 음모에 휘말려 쫓기는 어느 사나이의 모험을 그린 첩보 미스테리의 수작. 호화 캐스트 영화의 무게를 더했으며 특히 데이브 그루신의 도회감각 넘치는 상큼한 리듬감의 재즈음악이 좋다.

70년대 정치 스릴러 영화의 정점에 있는 작품으로 우연히 석유 전략 문제에 관한 CIA 내부의 극비 정보을 접한 하부 조직원이 생명을 위협당하면서 자신의 양심과 개인의 가치를 시험하는 싸움에 휘말리게 되는 얘기를 그리고 있다. 즉 CIA는 필요에 따라 하부 조직원들을 거리낌없이 죽인다는 것, 그리고 가공할 국가 권력은 결코 시민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 또 국가 기밀의 원칙은 시민의 알 권리를 통제하고 개인을 희생시킨다는 윤리적인 문제가 이 영화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시기적절한 주제와 탄탄한 서스펜스, 인정있는 영웅상을 보여준 로버트 레드포드로 인해 커다란 성공을 거둔 <콘돌>은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정치 기관을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각을 반영한 정부의 음모와 편집망상증을 그린 작품이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시드니 폴락은 오랫동안 파트너쉽을 유지했는데, 이 작품 이외에도 <추억>, <아웃 오브 아프리카>, <하바나> 등의 작품에서 공연했다.

미국 워싱턴 근교에 그 본부가 있는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는 1만 6500명의 직원을 두고 연간 예산이 7억 5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액수를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는 거대한 정보 조직이다. 이 영화 <콘돌>은 이 CIA의 무서움을 여실히 들어낸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로버트 레드포드는 '콘돌'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리는 CIA 요원으로 나온다. 그가 일하고 있는 직장은 아메라칸 문학상협회, 그러나 알고 보면 이것은 위장 간판이고 삼엄하게 경비되고 있는 건물 안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 아메리카 문학사 협회는 고도로 전문화된 요원들이 전세계에서 출판된 공개적인 간행물이나 학술 연구 서적, 외국 방송, 또는 각국 정보기관의 자료 등에서 정보를 수집해 분석 정리하는 조직이다. 영화 <콘돌>은 로버트 레드포드가 우연히 석유 전략 문제에 관한 CIA 내부의 극비 정보에 접하면서 자신이 생명을 위협하고 자신의 양심과 개인의 가치를 시험하는 싸움에 휘말리게 되는 그런 얘기를 그리고 있다. 즉 CIA는 필요에 따라서 하부 조직원들을 거리낌없이 죽인 다는 것, CIA라는 가공할 국가 권력은 시민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 또 국가 기밀의 원칙은 시민의 알 권리를 통제하고 개인을 희생시킨다는 윤리적인 문제가 이 영화의 핵심 주제이다. 마침내 비정한 조직의 환멸을 느낀 주인공은 모든 사실을 '타임즈'지에 폭노한다. 그러나 CIA부장은 "그 정보는 결코 보도되지 않을 것이며 결국 너는 길거리에서 개처럼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자신만만했던 주인공의 당혹스런 얼굴에서 화면은 정지된다.


written by 홍성진

로쟈 2006-11-05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지적대로, 미국의 문제는 '제국'의 덩치에 걸맞지 않게 '국민국가'로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