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로 미뤄놓은 일이 늘 있지만 요즘은 아랑곳하지 않고 쉬는 편이다. 오전에는 잠을 보충하고 오후에는 머리를 식히고(오늘은 실제로 머리도 잘랐다. 우리말 ‘머리를 자르다‘는 중의적이어서 오역하기 싶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쉬면서 비우지 않으면 다시 채우지 못할 것이다.

어제 대구는 영상 11도까지 올라갔기에 봄날씨라고 여겼는데 오늘 서울경기는 다시 영하로 내려갔다. 저녁무렵 기온이 영하 4도였다. 동계올림픽 기간이기도 하지만 당분간은 여전히 겨울일 듯싶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대로, 아직 겨울인 김에 ‘어느 겨울의 어두운 창문‘을 제목으로 내건다. 기형도의 시다. 마지막 연.

오오, 모순이여, 오르기 위하여 떨어지는 그대. 어느 영혼이기에 이 밤 새이도록 끝없는 기다림의 직립으로 매달린 꿈의 뼈가 되어 있는가. 곧이어 몹쓸 어둠이 걷히면 떠날 것이냐. 한때 너를 이루었던 검고 투명한 물의 날개로 떠오르려는가. 나 또한 얼마만큼 오래 냉각된 꿈속을 뒤척여야 진실로 즐거운 액체가 되어 내 생을 적실 것인가. 공중에는 빛나는 달의 귀 하나 걸려고요히 세상을 엿듣고 있다. 오오, 네 어찌 죽음을 비웃을 것이냐, 삶을 버려둘 것이냐, 너 사나운 영혼이여! 고드름이여.

나만 좋아하는 시는 아니어서 나희덕 시인의 ‘현대시 강의‘, <한 접시의 시>(창비)에도 이 시가 ‘은유‘의 좋은 사례로 꼽혔다. 내내 어느 영혼으로 호명되다가 시의 마지막에 가서 그것이 ‘고드름‘이란 사실을 밝힌다는 게 시의 묘미라고 지적한다. 책은 나희덕 시인의 시집들과 함께 어제 주문해서 받은 것이다. 또 갑작스레 주문한 것은 그제 기형도문학관에 갔다가 영상자료에서 선후배 지인들의 회고 가운데 나 시인의 발언도 포함돼 있어서였다. 연대 문학회 후배였던 듯하다. 기형도 시인이 세상을 떠난 1989년, 신춘문예로 나희덕 시인은 등단했다. 기형도는 1985년 신춘문예로 등단.

나 시인은 기형도의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의 선율을 떠올린다고 하는데 그런 감상은 다 비슷하구나 싶다. 실제로 기형도 시인은 릴케와 예이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 마디 더 보탠다. 기형도를 읽을 때 염두에 둘 만하다(내가 이 시에 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현대시에서 릴케의 영향을 받은 시인들의 계보를 그려봐도 좋겠다. 얼른 생각나는 시인은 윤동주와 김춘수 등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김재혁 교수의 연구서가 있다).

아파트에서는 보기 힘들어졌는데 문득 ˝기쁨을 숨긴 공포˝, ˝단단한 확신의 즙액˝을 보고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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