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의 '궁정식 사랑, 혹은 물(物)로서의 여성' 세번째 파트이다(이 페이퍼를 처음 접하신 분들은 앞의 두 글을 먼저 읽어보시길). 내용은 궁정식 사랑의 다양한 사례들/변종들을 다루고 있기에, 더구나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들을 분석하고 있기에 읽기에 가장 편하고 흥미로운 절이기도 하다. 원래 절제목은 그냥 '예증(Exemplications)'이지만 내용을 고려하여 '궁정식 사랑의 변종들'이라고 바꿔달고서 몇 가지 이미지들을 보충해넣도록 한다. 알다시피 강조와 군말은 나의 것이다.

 

 

 

 

13세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궁정식 사랑의 이러한 매트릭스에서 나온 수많은 변종들과 조우한다. 예컨대 <위험한 관계>에서, 몽트레이유 후작부인과 발몽의 관계는 분명히 변덕스러운 귀부인과 그녀의 하인과의 관계다(*알다시피 드 라클로 원작의 <위험한 관계>는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고, 또 각색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스티븐 프리어즈의 <위험한 관계>, 밀로스 포먼의 <발몽>, 그리고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이 있다).


 

 

 

 

여기서 역설은 하인이 약속받은 자비의 제스처를 얻기 위해 그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의 성격에 달려 있다. 그는 다른 여인들을 유혹해야 한다. 그의 호된 시련은 열정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조차도 그의 희생자들에 대한 차가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요구한다. 승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의 희생자들을 버려야 하며, 그럼으로써 귀부인에 대한 그의 충성을 증명한다.

상황은 발몽이 그의 희생자들 중 한 명(투르벨 회장부인)과 사랑에 빠져 ‘의무를 방기’했을 때 복잡해진다. 후작부인은 정당하게도 그의 변명(그 유명한 “억제하기 힘들다.” 즉 그것은 나의 통제를 벗어나 그렇게 되어갈 수밖에 없다)을 발몽의 존엄성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서, (그 용어의 칸트적인 의미에서) ‘정념적’ 상태에 대한 불쌍한 의존으로 치부한다.

따라서 발몽의 ‘배신’에 대한 후작부인의 반응은 엄밀히 윤리적이다. 발몽의 변명은 도덕적으로 나약한 사람들이 의무를 수행하는 데 실패했을 때 하는 변명 - “어쩔 수 없었어. 그것이 내 본성이고, 난 그저 충분히 강하지 못하거든……- 과 똑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발몽에 대한 그녀의 메시지는 ”너는 해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Du kannst, denn du sollst!)"라는 칸트의 모토를 상기시킨다. 그런 까닭에, 발몽 후작에게 가해진 처벌은 꽤 적절한 것이다. 투르벨 회장부인을 거절하면서 그는 정확히 똑같은 말에 의존해야 한다. 즉 그는 그녀를 향한 열정이 만료되었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일은 그렇게 되어갈 뿐이라는(…) 것을 그녀에게 설명하는 편지를 작성해야 한다.

 

 

 

 

궁정식 사랑의 매트릭스에서 나온 또다른 변종은 시라노 드 베르주락(Cyrano de Bergerac)과 록산(Roxane)의 이야기에서 출현한다(*우리에겐 제라르 드 파르디유 주연의 영화 <시라노>(1990)로 소개된 바 있다). 키라노는 그의 외설적인 자연적 기형(지나치게 긴 코)을 부끄러워해서 아름다운 록산에게 감히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와 그녀 사이에 잘 생긴 젊은 병사를 개입시키고, 그 병사에게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대리인의 역할을 부여한다. 록산은 변덕스러운 귀부인에게 어울리게도 그녀의 연인이 우아한 시적인 단어로 사랑을 표현하기를 요구한다. 불운하고 순진한 병사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자 시라노는 급히 그를 도와 전쟁터에 있는 병사를 위해 열정적인 사랑의 편지를 쓴다.

대단원은 두 단계에서, 즉 비극적 단계와 멜로드라마적 단계에서 일어난다. 록산은 병사에게 그의 아름다운 육체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세련된 영혼을 더 사랑한다고, 그의 편지에 깊이 감동받은 까닭에 그의 몸이 상하고 못 생겨질지라도 그를 계속 사랑할 것이라고 말한다. 병사는 이 말에 전율한다. 그는 록산이 실제의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편지를 쓴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달리 말해,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시라노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모욕을 참을 수 없어 자살하려는 듯 돌진해 죽는다. 록산은 수도원에 들어가 그곳에서 파리 사교계의 생활에 대한 정보를 주는 시라노의 정기적인 방문을 받는다.

이러한 방문이 이루어지는 동안 록산은 그에게 그녀의 죽은 연인의 마지막 편지를 큰 소리로 일어달라고 요청한다. 이제 멜로드라마적 계기가 작동한다. 록산은 갑자기 시러노가 편지를 읽지 않고 있고 암송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그가 편지의 진짜 작성자임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녀는 심한 동요 속에서 이 신체장애가 있는 건달 안에서 그의 진정한 사랑을 알아본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시라노는 이러한 만남에서 치명적으로 상처받아왔기 때문이다……

데이빗 린치의 <광란의 사랑(Wild at Heart)>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괴로운 장면 중의 하나는 궁정식 사랑을 특징짓는 지연의 논리라는 매트릭스에 기대서만 이해할 수 있다. 외로운 모텔 방에서 윌럼 대포는 로라 던을 난폭하게 내리누른다. 그는 그녀의 내밀함의 공간을 침범하고 위협적으로 “날 씹해주세요, 라고 말해봐”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그녀를 만지고 꽉 껴안는다.

Wild at Heart

추하고 불쾌한 장면들이 지나간 다음 결국 지친 로라 던이 “날 씹해주세요” 하고 말했을 때, 대포는 갑자기 물러나 훌륭하고 친절한 웃음을 지으면서 기뻐하며 응답한다. “됐어! 나 오늘 시간 없어. 다른 때 즐겁게 하지…….” 그는 그가 실제로 원했던 것을 얻는다. 그것은 성 행위 자체가 아니라 단지 그 행위에 대한 그녀의 동의, 그녀의 상징적 굴욕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개입하는 것은 큰 타자, 즉 초(超)주체적인(trans-subjective) 상징적 질서의 개입이다. 대포는 침략적인 압력을 수단으로 하여 큰 타자의 장 속에서 그녀의 동의를 ‘기입’하고 ‘기록’하는 것을 얻어내기를 원하는 것이다.

동일한 모티프의 역전된 변종이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에서의 한 짧은 사랑 장면에서 작동한다. 호텔에서 스튜디오로 운전해 가다가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 났을 때, 보조 촬영기사와 여자 스크립터는 호숫가에 그들만이 있음을 발견한다. 오랜 동안 그녀를 쫓아다녔던 보조 촬영기사는 기회를 얻어 그가 그녀를 얼마나 갈망해왔는가, 그리고 지금 그들만이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얼마나 많은 것을 의미하는가, 그러니 그녀가 짧은 성교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에 관해 감동적인 말들을 쏟아붓는다. 여자는 그저 “그러지 뭐”라고 말하고는 바지 단추를 풀기 시작한다……

물론 이러한 고상하지 못한 제스처는 그녀를 접근할 수 없는 귀부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유혹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그는 단지, “어떻게 하라고요? 자 이렇게?” 라고 하며 머뭇거릴 뿐이다. 이 장면이 <광란의 사랑>에서의 장면(그리고 궁정식 사랑의 매트릭스 안에서 그것을 작동시키는 것)과 공유하는 것은 예기치 않은 거절의 제스처다. 오랜 끈질긴 노력 끝에 얻어낸 여성의 “예!”라는 말에 대한 남성의 응답은 그 행위를 거절하는 것이다.


우리는 에릭 로메르의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에서 궁정식 사랑이라는 모체(matrix)의 보다 세련된 변형을 만나게 된다. 궁정식 사랑은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이 한 거짓말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논리를 제공한다. 영화의 중심 부분은 남자 주인공과 그의 여자친구 모드가 함께 보낸 밤을 묘사하는 데 할애된다. 그들은 몇 시간 오래 이야기하고 심지어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으나, 남자 주인공이 주저하였기 때문에 성행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전날 저녁에 교회 앞에서 만난 신비로운 금발 여자에게 사로잡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모드와 섹스할 수 있는] 그 기회를 붙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녀가 누군지조차 모르지만 이미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해버렸다(이를테면, 그 금발은 그의 귀부인Lady인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를 보여준다. 남자 주인공은 그 금발 여자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결혼한 상태인데, 우연히 해변에서 모드와 마주친다. 그의 부인이 그에게 이 모르는 여자는 누구냐고 물었을 때, 남자 주인공은 거짓말을 한다, 그에겐 손해가 될 것으로 보이는 거짓말을. 그는 그의 아내에게, 모드는 결혼 전 그가 마지막으로 사랑의 모험을 나눈 상대[즉, 마지막 섹스 파트너]라고 거짓말을 한다. 왜 이런 거짓말을? 왜냐하면 그가 사실을 말할 경우, 모드 역시 [그에겐] 귀부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그의 아내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동안의 무의미한 성적 접촉이란 것이 불가능한 그런 귀부인 말이다. 그는 아내에게 간단히 거짓말을 함으로써, 즉 모드와 섹스를 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는 그의 아내에게 모드는 그의 여인이 아니었음을, 그저 한 때 지나쳐간 [즉, ‘짧은 시간 동안의 무의미한 성적 접촉’을 나눈] 친구일 뿐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십 년 동안(*'recent decades'이므로 '최근 몇 십년 동안'이라고 해야 맞다)  궁정식 사랑의 최종적 판본은 물론 필름 느와르에서의 요부(femme fatale)의 형상 속에서 나타난다. 외상적인 여성-물(Woman-Thing)은 그녀의 탐욕스럽고 변덕스러운 요구들을 통해 하드보일드 주인공을 파멸로 이끈다. 여기서 핵심 역할은, 요부를 ‘합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제3의 존재(갱 집단의 보스 역할 같은)에 의해 수행된다. 그의 존재가 그녀를 접근 불가능하게 만들고, 그래서 남자 주인공과 그녀와의 관계는 위반의 관계로 낙인찍힌다. 그녀와 연루되면서 주인공은 그 자신의 보스이기도 한 아버지와 같은 인물을 배반하게 된다(*지젝이 거론하고 있는 영화 몇 편의 포스터들이다).

느와르의 세계에서의 요부와 궁정식 사랑의 여인을 이렇게 연결시키는 일이 놀라운 것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필름 느와르에서 요부는 기사가 충성을 서약한 그 고상하고도 군주스러운 여인과는 정반대가 아닌가 말이다. 하드보일드 주인공은 요부에게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그는 그녀를,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그 자신을 혐오하지 않는가? 그는 요부에 대한 그의 사랑을 진정한 자기 자신에 대한 배반으로 경험하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가 여인에 대한 이차적 이상화 말고, 여인이 갖는 원초적인 외상적 충격을 명심한다면, 관련성은 분명해진다. 여인처럼, 요부 역시 ‘비인간적인’ 파트너요, 그와는 어떤 관계도 불가능한 외상적 대상(Object)이며, 무의미하고 변덕스러운 명령을 부과하는 감정 없는(apathetic) 공동(空洞)이니까 말이다...  

06.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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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9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0-29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벤더스의 영화였던가요? 언젠가 빨리 돌려봐서 봤다고도, 안봤다고도 하기 뭐하네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