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송 ‘고엽‘의 작사가로 유명한 시인 자크 프레베르(1900-1977)의 시집이 리뉴얼판으로 다시 나왔다. <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민음사). 민음사판 세계시인선으로 읽었건, 청하판으로 읽었건 기억엔 30년 전에 읽은 시인이다(요즘 들어 30년 전에 읽은 책들과 마주치는 일이 잦다).

작사가로도 알려져 있듯이 프레베르의 시들은 평이하면서 뭔가 읊조리는 것 같다. 오래 전에 읽은 시들을 다시 읽으려니 마친 오래 전 친구를 다시 만나는 듯한 기분이다. 기억나는 시의 하나는 ‘꽃집에서‘.

(...)
꽃집 아가씨는 꽃을 싸고
남자는 돈을 찾으려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꽃값을 치를 돈을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갑자기
가슴에 손을 얹더니
쓰러진다

그가 쓰러지는 순간
돈이 바닥에 굴러가고
그 남자와 동시에
돈과 동시에
꽃들이 떨어진다
돈은 굴러가는데
꽃들은 부서지는데
남자는 죽어 가는데
(...)
그 여자는 무언가 해야 한다

꽃집 아가씨는
그러나 그 여자는 어찌할지 몰라
그 여자는 몰라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를
―「꽃집에서」에서

그리고 ‘알리칸테‘도 한번 읽으면 따뜻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시다.

탁자 위에 오렌지 한 개
양탄자 위에 너의 옷
내 침대 속에 너
지금의 감미로운 선물
밤의 신선함
내 삶의 따뜻함.
―「알리칸테」

이 시들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다. 비록 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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