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후마니타스연구소의 서평강좌 개강이 있었다. 오늘은 서평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에 이어서 다카다 아키노리의 <어려운 책을 읽는 기술>(바다출판사)을 다루었다. 매우 실전적이라는 게 책의 특징이자 강점인데 개인적으로 특히 공감한 대목은 ‘읽지 않는‘ 독서의 의의를 강조한 부분이었다. 언뜻 모순으로 들리지만(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떠올린다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사정을 보게 되면 당연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정보를 효율적으로 수집하려는 목적으로 ‘읽지 않기‘란 사실 독서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독서는 ‘읽는 것‘이라고 다들 생각한다. 그러나 오히려 책 읽는 기술의 진면목은 ‘읽지 않기‘에 있다. 독서를 할 때 무엇이든 다 읽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무엇을 읽을 것인가‘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이는 ‘무엇을 읽지 않을 것인가‘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특정 서적을 ‘읽지 않는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특정 서적의 ‘어느 부분을 읽고 어느 부분을 읽지 않을 것인가‘라는 의미에서 ‘부분‘도 포함된다.˝(83-84쪽)
저자는 그렇게 읽지 않고 건너뛰는 읽기를 ‘펼쳤다‘나 ‘바라봤다‘로 표현하는데 ‘만졌다‘고 해도 좋겠다(내가 즐겨 쓰는 표현은 ‘보다‘나 ‘만지다‘이다). 읽지 않는 독서는 책을 읽는 대신에 차례와 장제목을 꼼꼼히 보거나 책장을 대충 넘겨보며 어쩌다 집히는 대목만 읽는다. 이것이 또한 ‘책벌레‘들 특유의 독서법이다(나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작업에 비상식적일 정도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책벌레‘의 습성이다.˝
˝개인적인 야심을 말하자면 연간 5,000권 이상 책을 ‘펼치고, 바라보고‘ 싶다(이는 목표로 정한 희망 사항으로서 실제로 일주일에 두 번 총 40권 정도의 신간을 ‘만지고‘ 있으니 연간 2,000권 정도가 된다). 5,000권이라고 해도 전체 서적의 약 10%지만, 사실 나머지 90%는 ‘도서명이나 저자명을 보기만 해도‘ 쓸데없는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본인과 전혀 관계가 없는 분야도 많다.˝(86쪽)
내가 놀란 건 사정이 비슷해서다. 나도 연간 2,000권 정도는 만지는 축에 속하기에. 차이라면 5,000권 이상을 만져보겠다는 야심은 전혀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것. 2,000권을 만지는 일만으로도, 곧 2,000권을 읽지 않는 일만으로도 시간과 에너지가 턱없이 모자란다(게다가 비용은?). 그럼에도 비슷한 처지의 동병상련은 느낄 수 있어서 위안이 된다. 저자의 마무리에도 전적으로 동감인 것은 물론이다.
˝문제는 오히려 ‘과거에 출판된 책‘이다. 자기가 태어나기 전에 적어도 수만 권의 ‘의의가 있는‘ 책이 출판되었을 터인데 이들을 어떻게 하면 파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물론 ‘모두 다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경우에도 역시 ‘읽지 않는‘ 독서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