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의 단편집은 선집 형태로 여러 종이 나와있지만 첫 단편집 <플래퍼와 철학자>(1920)의 번역본은 현재 세 종이다. 재미있는 것은 원제의 ‘플래퍼(flappers)‘ 번역인데 마땅한 번역어가 없는 탓인지 각각 ‘아가씨‘와 ‘말괄량이‘, ‘말괄량이 아가씨‘로 옮겼다. ‘아가씨‘란 말로 1920년대 신여성을 가리키는 건 역부족이고 ‘말괄량이‘라고 옮기더라도 사정은 별로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굳이 번역하자면 ‘왈패‘나 ‘왈짜‘ 정도가 유사할까.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1920년대는 미국의 성 혁명 시대로 기록되는 데, 이 혁명의 선두 주자가 바로 flapper(플래퍼: 건달 아가씨, 왈가닥)였다. 넓게 보자면 플래퍼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의 사회참여로 인해 생겨난 신여성을 일컫는 말이지만, 그 전형적인 모습은 짧은 치마를 입고 담배를 물고 색소폰 소리에 몸을 흔들어대는 ‘노는 여자‘였다. 1922년 <플래퍼>라는 잡지가 창간될 정도로 ‘플래퍼 붐‘은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말이 외국으로 수출되면서 부정적인 의미가 더욱 강해져, 한국에서도 한때 ‘여자 깡패‘나 ‘행실이 방정하지 못한 여자‘를 가리켜 ‘후랏빠‘라고 부르기도 했다.˝

우리에게도 건너왔던 ‘후랏빠‘란 말은 ‘플래퍼‘의 일본어 음역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동아시아 여성상에 견주어 본래보다 더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된 성싶다. 본래의 ‘플래퍼‘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주체적 형상을 가리키기 때문이다(현대적 여성 주체성의 첫 모델이지 않았을까).

여덟 편의 단편을 묶은 피츠제럴드의 첫 단편집의 가장 큰 의의가 나는 제목에 있다고 생각한다. 표제작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그의 단편들은 ‘플래퍼‘라는 새로운 여성상을 포착하여 주목하게끔 한 공로가 있다. 더불어 플래퍼의 유행에 한몫 거들었다. 그가 시대의 흐름과 징후를 읽을 줄 알았다는 뜻인데, 데뷔 장편 <낙원의 이편>(1920)과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1925)의 여자 주인공에게서도 플래퍼 형상을 읽을 수 있는 건 자연스럽다. 피츠제럴드는 재즈시대의 작가이면서 플래퍼의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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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한스 2024-02-24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미소니안 IPTV 채널에서 컬러로 보는 미국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20년대 미국의 경제 호황과 같이 새로이 등장한 flappers를 신세대 여성이라고 나오더라구요 지금 MZ세대 처럼요(부정적인 뉘앙스 보다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