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강의할 책을 찾다가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이후)를 오랜만에 책장에서 빼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1966)에 실린 논문과 평론이 1962년과 1965년 사이에 쓰였고 그건 첫번째 소설(1962)을 발표하고 두번째 소설을 쓰기 시작한 시점(1965) 사이라고 일러준다. 그러니까 막간에, 소설 간에 쓰인 글들이라는 얘기이고 손택에게는 소설들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이런 의향과는 어긋나게도 손택은 소설가가 아니라 비평가나 에세이스트로 기억된다).

1960년대 초반은 1933년생인 손택이 30대로 접어들 무렵이다. 젊고 활기에 넘치는 지성의 탄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해석에 반대한다>는 매력적이다. 심지어 모든 문장에서 ‘젊은 손택‘이 느껴진다. 한국어 번역판이 나온 건 2002년이고 내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건 2013년에 나온 8쇄다. 그 사이에 표지가 바뀌어서 나는 두 권의 <해석에 반대한다>를 갖고 있다(물론 초판을 못 찾아서 몇년 전에 다시 구입한 탓이다).

그렇게 15년 전에 번역본이 나왔고, 심지어 원저는 반세기도 더 전에 나왔지만 놀랍게도 손택의 책은 현재적이고 또 미래적이다. 그가 다룬 책들 가운데는 이제 갓 번역됐거나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이 상당수여서다. 그렇게 번역되지 않은 책을 꼽아보다가 아연 놀란 건 미셸 레리스의 <성년>(이모션북스)이 작년말에 번역돼 나왔다는 사실. 심지어 나는 장바구니에 넣어놓기까지 했다! 아마도 러시아문학기행을 준비하느라 경황이 없어서 구입을 미뤘고 그러면서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성년>은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이자 인류학자인 미셸 레리스의 자전소설. 경력으론 조르주 바타유와 비교되는 작가다. 하지만 국내에 소개된 건 <성년>이 유일하다. 1946년에 발표된 이 소설이 1963년에 영어로 번역돼 나오고 이를 계기로 손택이 쓴 리뷰가 ‘미셸 레리스의 <성년>‘이다. 번역본에서 10쪽 분량이니 긴 글은 아니지만 이걸 읽을 만한 조건이 우리에게 갖춰진 건 불과 일년도 되지 않는다. 레리스와 손택과 시간대를 맞추기.

역자인 유호식 교수의 연구서 <자서전>(민음사)의 한 장도 레리스에게 할애돼 있기에 손택의 글과 같이 읽어볼 만하다. 물론 그렇게 읽을 만한 책이 어디 한두 권이냐는 반론이 바로 치밀어 오른다. 이럴 때는 논리적인 이유를 대기 어렵다. 그저 편애라고 말하는 수밖에. 나는 손택을 편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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