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설겆이하고 지난여름 교토에서 사온 전병 남은 걸 커피와 함께 먹어치우고, 이제 배를 깔고 엎드려서 책을 펼친다. 이시영 시집 <하동>(창비)을 뒤적이다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생각함‘에서 눈길이 멎는다. ‘김남주를 생각함‘으로 읽어도 되는 시다. 아래가 전문이다.

임종이 임박했다는 새벽 전화를 받고 고려병원에 달려갔을 때의 일이다. 황달이 퍼져 샛노란 눈빛의 김남주가 주변을 돌아보며 외쳤다. ˝개 같은 세상에 태어나 개처럼 살다가 개처럼 죽는다. 부탁한다. 남은 너희들은 절대로 이렇게 살지 마라!˝ 그의 숨이 끊어지고 난 뒤 병실 복도에 나와 나는 나에게 다짐했다. 빗방울 하나에도 절대 살해되어서는 안되겠다고!

마지막 문장은 김남주가 옮긴 브레히트의 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의 마지막 행에서 차용했다고 시인은 덧붙였다.

잠시 브레히트와 김남주와 개 같은 세상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개처럼 살지 말아야 할 사명에 대해서도. 어젯밤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사건의 억울한 희생자들에게도 세상은 얼마나 개 같았을 것인가. 우리는 빗방울 하나에도 절대로 살해되어서는 안될 사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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