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맞은 첫 주말인데, 큰 근심을 덜었다 싶다(아마도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이 그러하리라).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은 정부이지만 충분히 신뢰할 만한 출발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몫의 역할과 응원을 보태는 것 정도가 남은 일이다. 내게는 서재일이 그런 일에 속한다. 대개 일이 그렇듯이 놔두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쌓인다. 먼지까지 덮어쓰기 전에 손을 부지런히 놀려야겠다. 먼저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엊그제 고르기도 했지만 이 또한 밀려서 그렇다).



역사학자 백승종 교수가 <생태주의 역사강의>(한티재, 2017)를 펴냈다. '근대와 국가를 다시 묻는다'가 부제다. 저자는 '생태주의 역사가'를 자임하면서 근대 역사학의 한계를 비판한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으로 제52회 한국출판문화상을, <금서, 시대를 읽다>로 2012년 한국출판학술상을 수상하면서 독자와 학계의 호응을 받았던 백승종 교수. 이 책 <생태주의 역사강의>는 '근대'와 '국가'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주류 역사연구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저자의 문제의식을 집약한 저작이다. 저자는 근대역사학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생태주의'를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생태적 전환'은 인간의 탐욕에 의한 생태계의 착취를 중단하려는 시도이다. 그리하여 구성원 모두에게 평화를 선사하고, 생태적 존재로서 본성의 회복을 촉구한다."


'주류 역사연구'의 범위가 워낙 넓기 때문에 전선이 어떻게 그려지는지 가늠이 안 되지만, 여하튼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제안으로 읽힌다. <조선의 아버지들>(사우, 2016)도 가볍게 읽어봄직하다. 


소설가이면서 전기 작가로 활발한 필력을 보여주고 있는 안재성의 신작은 '5.18 민주화둥온 마지막 수배자' 윤항봉의 편전이다. <윤한봉>(창비, 2017). 

"5·18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배자이자 국제연대를 조직한 세계적 활동가, 임수경의 방북과 귀환을 기획한 통일운동가였던 합수 윤한봉 선생의 삶을 충실히 기록한 평전이다. 총 19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내용의 대부분을 운동가로서 그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던 1971년부터 1993년까지의 이야기에 할애했다. 그 전반부에 해당하는 10년은 늦깎이 대학생으로 전남대에 입학한 윤한봉이 우여곡절 끝에 5·18민주화운동의 주모자로 수배되어 미국 망명을 결심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여기서는 ‘목장 풀밭에서 아내에게 피리 불어주며 조용히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던 청년 윤한봉이 ‘반란 수괴’로 거듭나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5.18민주화운동 37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의 책이기도 하다. 소설가 황석영 선생이 붙인 추천사는 이렇다. 
"윤한봉, 그 이름을 내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광주 시절 그는 내 문화운동의 정치위원이었고 해외 망명 시기에는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식구들은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고 나는 그를 합수라고 불렀다. 거름의 토박이말인 합수는 그의 별명이기도 했다. 그는 살아서 광주는 물론 분단된 조국의 거름이 되겠노라 했으며 죽어서는 5·18 광주 아우들의 틈으로 돌아가 묻혔다. 지혜롭고 강인하고 부지런했던 합수는 원칙의 사내였고 그 때문에 모두가 불편해하였다. 오늘 나는 그가 곁에 있어 나를 여전히 불편하게 해주기를 소망한다."


한국근대 연구자이자 사진가이도 한 이승원이 '나무를 다듬고, 가죽을 꿰매고, 글을 쓰는 남자의 기록'을 펴냈다. <공방 예찬>(천년의상상, 2017). 저자가 뛰어난 목공인이기도 하다는 건 수년 전에 사석에서 알게 되었는데 책으로 만나게 되어 반갑다. 

"<공방예찬>은 목공방과 가죽공방에서 나무를 다듬고, 가죽을 꿰매고, 글을 쓰는 남자의 소소하지만 감칠맛 나는 일상 에세이다. 옛사람들의 삶을 다루던 인문학자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따뜻한 필치로 써 내려간, 에세이스트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책이기도 하다. 가죽과 나무를 향한 열렬한 사랑, 장인들의 세계, 아날로그적 취향, 중년의 자기 육체 탐구, 가족 특히 친구 같은 아내와의 아옹다옹 일화 등을 소재 삼아, 가벼움과 무거움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풀어놓는 그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읽는 맛과 동시에 마음의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또한 그가 직접 포착한 공방과 유럽 곳곳의 풍경 사진들은 세심하게 배열한 문장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먼 곳을 향한 그리움과 동경,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한 설렘까지 고스란히 전한다."


저자는 빼어난 사진가이기도 한데, 그의 사진들은 부부이기도 한 정여울 작가의 에세이에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연구노동자이자 저술노동자 커플의 부창부수다(사자성어에서는 남편 부가 아내 부보다 먼저 나오지만, 이 경우는 두 한자를 바꿔적어야겠다).   


페이퍼를 적는 중에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그 전에는 남자는 두어 시간 잤더니 모처럼 머리가 맑다. 밀린 책들을 몇 시간 읽어야겠다...


17. 0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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