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책으로 폴 블룸의 <데카르트의 아기>(소소, 2006)는 아마도 '데카르트'란 단어가 표제에 들어간 책들 가운데서는 가장 귀여운, 그리고 가장 읽기 편한 책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가장 실용적인 책일 것도 같다(특히나 새로이 육아의 세계에 뛰어든/걸려든 엄마/아빠에게라면. 육아용품과 함께 선물해봄 직하다). '아기한테 인간의 본성을 묻다'가 부제이니까 사실 제목에서 방점은 '데카르트'가 아니라 '아기'에게 찍혀 있으며 아기 인형이 박혀 있는 표지는 그걸 웅변한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현암사, 1997) 정도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에 관해서는 두 편의 리뷰를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6. 08. 04) 종교·도덕·예술의 관념은 유아 시절부터 갖게 된다

-책은 유아를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인간 고유의 특성인 예술과 유머, 믿음, 혐오, 윤리 등에 대해 일반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결과를 제시한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입장을 오가며 아기의 행동을 발달심리학의 입장에서 탐구한 내용을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이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발달심리학과 인지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아이들은 단어의 의미를 어떻게 배우는가>로 미국출판협회 우수도서상과 미국심리학회가 ‘발달심리학 분야 최고의 책’에 주는 엘리너 매코비상을 받은 바 있다(*그럼 왜 그 책이 먼저 소개되지 않은 건지?).



-원래 저자의 전공인 발달심리학은 자연적인 본능을 간직한 유아 가 어떻게 해서 문화적인 존재로 서서히 변모해 가는가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진화론적인 관점을 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화론과 창조론의 입장을 떠나 ‘왜 진짜 예술품이 가짜보다 더 가치 있는가’,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는 광경 을 보면 왜 박수를 치며 깔깔 거릴까’, ‘아이들이 사후의 세계를 믿는 건 언제부터인가’ 등 인간 고유 본성에 대한 질문에 저자가 제시하는 해답은 독자들의 흥미를 돋운다. 창조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창조주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순수한 영혼을 지닌 존재는 아니라 할지라도 상당히 어린 나이에 신과 도덕, 예술에 대한 관념을 갖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가령 아이들은 생후 1~2년 동안은 혐오감을 느끼지 못하다가 생 후 3년이 지나면서 배변훈련을 통해 이를 배우게 된다. 아이들은 일종의 오염에서 혐오감을 느낀다. 또 음식을 가려서 먹는 것, 윤리적인 이유 때문에 육식을 포기하고 채식만을 고집하는 것, 여행 갔을 때 새로운 음식 앞에서 주저하는 우리의 모습은 이미 아이 때부터 시작된다. 생후 4년이 될 무렵에는 더욱 까다로워져 혐오 음식에 대해 어른과 상당히 비슷한 직관을 지니게 된다.

-아이들에게 우연히 제작된 이미지와 의도를 가지고 제작된 이미 지를 보여줬을 때, 의도를 갖고 만든 이미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데서 아이들도 창작자의 의도를 예술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체의 소멸은 받아들이면서도 영혼은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후 세계에 대한 개념도 아주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마이티 베이비!). 인간이 경험하는 직관과는 반대되는 특성을 지니는 신의 존재도 아이들은 잘 받아들인다.

-심리학은 물론, 시와 소설, 영화, 미술, 신화, 종교, 철학 등의 분야를 종횡무진 누비며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인간 존재 를 탐색하는 무거운 주제를 전혀 딱딱하지 않게 전달하는 저자의 글솜씨가 돋보인다.(최영창 기자)

서울신문(06. 08. 05) 동심을 통해 인간본성을 보다

-사람들은 흔히 인간 존재가 처음부터 모든 동물들에 비해 특별히 탁월하다고 믿고, 성인이 아이들에 비해 특별히 탁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특별히 탁월한 것이 가장 정상적이라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은 이러한 믿음을 뿌리에서부터 흔들면서 붕괴시킨다. 인간이란 원시 생물체에서부터 환경과의 충돌에 의거해 지난하게 진화해 온 결과이고, 따라서 다른 동물들에 비해 특정할지는 몰라도 무조건 특별히 탁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 진화론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진화론의 주장을 검토할 수 있는 묘한 학문 영역이 있다. 발달심리학이 그것이다. 발달 심리학은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유아들의 행동과 그 속에 스며 있는 의식·무의식을 탐색함으로써 성인들의 세계에서 발휘되는 언어생활, 각종 지성적인 활동, 예술 작업, 종교 활동 등의 원시적인 형태들을 추적한다.

-<데카르트의 아기>는 진화론을 바탕으로 발달 심리학의 이러한 과제들을 일반 대중들이 실감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쓴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블룸은 현재 예일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다. 그는 미국심리학회에서 ‘발달심리학의 최고의 책’으로 선정한 <아이들은 낱말들의 의미를 어떻게 배우는가>라는 책을 쓴 학자다.

-유아들은 이미 물질적인 존재와 비물질적인 존재를 구분할 줄 안다. 여기에서부터 정신 혹은 영혼의 관념이 생겨난다. 유아들은 원본과 복사본을 구분할 줄 안다. 여기에서 예술적인 가치가 발생한다. 유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공감을 느낀다. 여기에서 도덕심과 도덕이 발생하고 확대된다. 유아들은 혐오스러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안다. 여기에서 동정심이 발생한다. 유아들은 자연적인 세계와 인위적인 세계를 구분할 줄 안다. 여기에서부터 신성한 존재를 믿는 종교가 발생한다. 유아들은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암암리에 구분한다. 여기에서 웃음과 유머가 발생한다. 블룸이 이 책을 통해 내리는 결론들이다.

-블룸은 유아들의 행동과 의식에 관한 갖가지 예화와 사실들을, 심리학 분야는 물론이고 시, 소설, 영화, 미술, 신화, 종교, 철학 등의 각종 교양 영역과 연결해서 이러한 결론을 내린다. 블룸이 책 제목에 ‘데카르트’를 삽입했다고 해서 그가 물질·정신 이원론이나 원리상 물질과 분리된 영혼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물질·정신 이원론 혹은 독자적인 영혼의 존재는 인간의 특정한 삶의 방식에서 진화론적으로 발생되어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블룸이 드러내 보이는 유아들의 세계는 대단히 매혹적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인간 존재의 특성들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발생적인 기원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블룸의 문체는 결코 딱딱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을 일단 읽기 시작하면 특별히 긴급한 일이 없는 한 좀처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그런가 하면, 책을 읽는 과정에서 문득 자신이 평소 인간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었는가를 깨닫게 되고, 자신 혹은 나아가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자연스러운 기초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다만 한 가지 부연할 것은 이러한 블룸의 작업은 발생론적인 신경과학 연구와 결합될 때 더욱 더 빛을 발할 것이라는 사실이다.(조광제 철학아카데미 공동대표)

06. 08. 05.

 

 

 

 

P.S. 소개해놓고 보니까 블룸의 책이나 브록만의 책이나 오늘 품을 거든 교양과학서들이 모두 소소출판사에 출간된 것이다. 이전에 <시냅스와 자아>란 책을 소개한 기억이 나는데, <데카르트의 아이>는 'new humanist classic'의 6번째 책으로 돼 있는데, 나머지 다섯 권의 면면을 한번 더 들여다보기로 한다(재출간된 <언어본능> 정도가 관심을 끌었을까. 부피와 품에 비해서 대개 소홀하게 대접받고 있는 책들이다). <거짓말쟁이, 연인, 그리고 영웅>이 새로 눈길을 끄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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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는 어떻게 말을 배울까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2-17 11:31 
    육아 관련서는 관심도서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지만, 지능이나 언어발달 쪽이라면 약간 사정이 다르다. <아이는 어떻게 말을 배울까>(교양인, 2010)란 신간에 눈길이 가는 이유인데, "영유아 언어 발달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발달심리학자 골린코프와 허시-파섹이 함께 쓴, 초기 언어 발달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이론서이자 실용서"라고 소개되는 책이다. 스티븐 핑커의 추천사는 이렇다. "이 책은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다! 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