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민주주의>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프랑스의 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박영률출판사, 2006)이 최근에 출간됐다. 겸사겸사 토크빌에 관한 자료 몇 가지를 모아놓는다. 작년에 탄생 200돌을 맞았던 그의 삶과 사상에 관한 간단한 소개기사와 번역된 두 주저에 관한 서평들이다.  

동아일보(05. 07. 27) "佛 자유주의 사상가 토크빌 탄생 200돌"

-(*2005년 7월) 29일은 <미국의 민주주의>의 저자로 유명한 프랑스의 자유주의 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날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토크빌 200주년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미국에서는 예일대와 토크빌학회가 공동으로 9월 30일∼10월 1일 예일대 바이네케 도서관에서 공동학술대회와 전시회를 개최한다. 유럽에서는 11월 18∼20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유럽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국제 기념 학술대회가 열린다.

-프랑스 명문 귀족 출신인 토크빌은 1831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7개월간 미국을 방문한 뒤 귀족주의를 포기하고 민주주의가 시대적 대세임을 선언했다. 그는 프랑스 혁명을 진압한 비엔나 체제라는 복고주의가 팽배한 유럽에선 낯설게만 느껴지던 신대륙 미국의 민주주의의 힘이 ‘조건의 평등’에서 나온다는 점을 꿰뚫어 봤다. 귀족 출신의 젊은이답게 평등보다 자유를 고결한 가치로 봤던 그는 그러나 미국 방문 후엔 ‘자신의 눈에 인간 쇠퇴로 보이는 것이 신의 눈에는 발전으로 비친다’는 말로 평등을 더 강조하는 민주주의를 신의 의지로까지 격상시켰다.



-이 때문에 토크빌은 미국에서 ‘프랑스적 규범(canon)과 미국적 규범 모두의 구성원임을 선언할 수 있는 유일한 프랑스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절대 선으로 믿는 조지 부시 대통령도 애독서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서슴없이 꼽을 정도다.

-그러나 170년 전 토크빌의 사상이 오늘날 다시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것은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찬사 때문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그의 경고에서 찾아야한다는 게 학자들의 지적이다. 토크빌은 민주주의의 원동력인 평등에 대한 열망이 무질서와 노예 상태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거론되는 미국과 ‘민주주의 이후의 새로운 질서’를 고민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최장집 교수가 진단하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는 어떻게 다른가?).

-서병훈(정치학) 숭실대 교수는 “토크빌은 민주주의가 ‘시기하는 감정이 충만한 정치체계’라는 점에서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싫어하는 평등제일주의를 낳고 한편으론 개인주의와 결합해 독자적 판단능력이 없는 개인들의 고립을 심화시킴으로써 다수의 익명에 자신을 숨기는 방식으로 ‘수의 권위’에 대한 순종을 낳을 수 있음을 경고했다”고 말했다. 

 

 

 



-토크빌은 미국에서 위대한 정치가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 같은 경고는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서 갈수록 비범함과 거리가 먼 인사들이 선출되는 문제점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다. 또한 다수의 결정 앞에서는 누구나 입을 다물어야 하는 반(反)엘리트주의와 평등제일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정치의 현실에 대한 지적같이 들리기도 한다(*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 진보진영의 시각과는 얼마나 다른가?). 토크빌의 이런 사상은 내년에 탄생 200주년을 맞는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토크빌이 폐결핵으로 갑자기 숨진 이후 ‘다수의 횡포’를 비판한 밀의 자유주의 사상으로 꽃피게 된다.

 

 

 



-김비환(정치학) 성균관대 교수는 “귀족주의적 자유주의자였던 토크빌이 궁극적으로 옹호했던 것은 자유였지만 그는 미국을 통해 평등의 참된 가치를 수용했다”면서 “다수의 지배를 주장하는 민주주의가 도덕적, 문화적 획일주의와 ‘부드러운 전제정치(soft despotism)’를 낳을 수 있다는 토크빌의 경고는 오늘날 더 유효하다”고 말했다.(권재현 기자)

동아일보(05. 07. 04) 알렉시스 드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고전해제)

-토크빌은 예리한 관찰자요 심오한 예언자다. 미국을 불과 7개월 여행하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장점과 한계를 면밀히 파헤쳤으며, 장래 미국과 러시아가 두 세계 강국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했다. 미국 사회가 프랑스 사회보다 민주적인 이유를 토크빌은 미국의 활성화된 지방자치, 자발적인 결사체, 배심원제도 등에서 찾았다. 이것들이 국가권력의 집중과 전제화 경향을 억제하고 다수의 횡포에 대항하여 소수의 권익을 보호하며 시민들의 공공의식을 함양시켜 준다.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도뿐 아니라 관습도 중요하다. 프랑스가 대혁명 이후 다양한 헌정질서와 정치제도를 고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달리 민주주의를 성취하지 못한 이유는 두 나라 사이의 상이한 관습에 있다. 흥미롭게도 토크빌은 당시의 급진자유주의자들 및 사회주의자들과 달리 자유와 평등을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보았다. 민주사회에서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하지만 자유보다는 평등을 선호하기 때문에 평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유를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자유를 물질적 복지를 추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호하기 때문에 자유가 번영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물질적 복지와 조건의 평등을 위해 기꺼이 자유를 희생할 것이라는 견해다. 특히 자유는 획득하기도 어렵고 그 이점도 잘 보이지 않는 반면 평등은 그 이점이 매우 즉각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평등을 더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토크빌은 평등화의 경향으로부터 오는 민주적 전제주의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개인주의로부터 오는 민주적 전제주의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민주사회에서 개인주의가 만연하게 됨에 따라 사람들의 삶은 서로 고립되고 서로를 연결시켜 주던 전통적인 유대는 거의 모두 해체된다. 게다가 조건의 평등과 물질적 복지에 대한 애착으로 중앙정부의 기능은 강화되고, 이로 인해 국가와 개인 사이에 전통적으로 존재하던 교회, 가족, 길드, 지역공동체 등 거의 모든 중간집단은 약화된다.

-대중의 여론도 전제주의를 부추긴다. 개인주의가 만연하게 됨에 따라 개인들의 다양한 의견보다는 다수가 형성한 여론이 오히려 더 강한 지적·도덕적 권위를 행사하게 된다. 이로 인해 개인들은 다수의 의견에 복종하고 거기에 안주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한다. 정치적 무관심 또한 문제다. 정치가 시민들의 관심으로부터 떨어져나갈 때 사적인 이해관계가 공적영역을 침범하게 된다. 현대사회의 병폐라 할 로비문화와 정경유착이 나타나는 맥락이다.

-파리의 유서 깊은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다양한 행정경험을 쌓은 토크빌의 사상은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를 넘나들 정도로 독특하고 뛰어나서 당대의 정치사상가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미래 민주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다. 그가 우려했던 대로 자유의 자발적 포기, 평등에 대한 열망, 다수의 횡포, 그리고 로비문화와 정경유착 등은 오늘날 미국을 위시한 여러 민주주의 나라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선후진국들이 겪고 있는 자유와 평등 사이의 갈등 또한 풀어가야 할 중대한 과제다.(임현진 서울대 기초교육원장)

조선일보(06. 06. 24) "자유를 잃은 혁명은 독재를 낳는다"

-프랑스의 사상가·정치가 토크빌(1805~1859)의 이책은 그가 죽기 3년 전에 자신의 모든 역사사회학적 지식과 학문적 역량을 기울여 저술한 대표작이다. 이책은 우리 독자에게도 익숙한 초기 저작인 <미국 민주주의>와 함께 토크빌의 양대 저작을 이루며,‘ 미국 민주주의’에서 시작된 프랑스 민주주의의 성숙이라는 문제의식을 평생을 고뇌하며 뼈를 깎는 노력으로 완성한 명작이다.



 

 

 

-이 책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어째서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라는 것이다. 그리고‘자유·평등·박애’라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이념적 기반을 인류 최초로 성공적으로 완성한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이 어떻게 개인들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민주적 독재’의 사회로 변질되어갔는가 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토크빌의 설명은 후대의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들이 프랑스 혁명에 대한 자유주의적(또는 수정주의적) 해석이라고 부르게 된 이론적 틀을 제시한 선구자적 작업이었다.

-토크빌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의 첫째 요인은 구체제(앙시앵 레짐) 때부터 시작된 프랑스의 지나친 중앙집권화 된 획일적 통치 방식이다. 둘째는 프랑스만의 독특한 절대왕정체제 하에서 정치적 결사와 시민적 자유가 결여됐기 때문에 과거의 특권계급인 귀족과 새롭게 등장한 지배계급인 부르주아 사이에 철저한 분리와 불신이 이루어져서 그들 사이에 국가를 통치하는 방식에 대한 합의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군주정 최고의 번영기를 누렸던 루이 16세는 인민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국민들에게 봉건적 잔재들이 가장 참을 수 없는 구체제의 속박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그래서 시민들이 계기만 주어지면 기존의 정치·사회체제를 혁명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정서를 갖게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혁명가들은 귀족계급을 현대사회의 법 정신에 맞게 복종시킴으로써 그들을 새로운 엘리트 계급으로 만드는 대신에 타도해버렸다. 그리고 이와 함께 현대사회라면 반드시 필요한 엘리트 계급과 그들의 덕목들-용기·모험정신·사회적 책임의식·창의성·지도력 등-을 함께 잃어버렸다. 또한 오랜전통을 지닌 기독교 정신을 인위적으로 대체한 반(反)기독교적 정서의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는 평등의 정신을 일방적으로 강조했다. 그 결과 시민들의 물질적 번영과 안락한 생활이 위협 받을 때 자유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평등과 복지를 추구하게 만드는 전제주의에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 프랑스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계몽철학적 문필가들은 전문성과 경험적 사실을 무시한 추상적 시민관과 사회관을 가졌다. 이들은 머리 속에서만 가능한 정의관을 시민에게 가르침으로써, 당면한 문제들을 구체적 사실과 경험에 입각해서 논의하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실용적 해결책을 찾는 방식을 경멸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의 석학 레이몽 아롱은 1968년‘5월 혁명’을 계기로 맑시즘이 다시 부활하고 프랑스 사회가 큰 혼란에 빠졌을 때 반드시 일어야 할 필독서가 토크빌의 저서라고 주장했다(*얼마 되지 않는 레이몽 아롱의 번역서들은 모두 전사한 듯하다). 이 책은 또한 프랑스의 ‘5월혁명’에 준하는 좌파 지식인과 민중운동가들의 실험을 경험한 최근 10년간 한국 사회의 혼란에 대한 사회학적 진단과 처방의 단초도 제공한다.(민문홍 서울대 국제대학원 전임연구원·사회학)

(*)그러니 요즘 분발하고 있는 우파/신우파 지식인들도 토크빌을 열심히 읽어주면 좋겠다. 그게 한국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듯하니까. 더불어 자신을 좌파라고 간주하는 이들도 <공산당 선언>보다는 <미국의 민주주의> 같은 책을 더 열심히 읽어주었으면 싶다. 그래야 앵무새가 되지 않을 테니까(생각은 다른 생각들과 부딪치면서 단련된다)...

06. 0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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