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납하고 대출할 책이 있어서 도서관에 들렀다가 돌아가는 길에 PC방에 들렀다. 서재일도 잔업이 좀 남아서인데, 잔업 처리에 앞서 눈에 띄는 책이 있어서 몇 자 적는다. 나쓰메 소세키의 아내 나쓰메 교코의 회고록 <나쓰메 소세키, 추억>(현암사, 2016). '아내 교코가 들려주는 소세키 이야기'가 부제다. 작가의 아내가 쓴 회고록이 몇 권 될 텐데, 얼른 생각나는 건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내 안나 도스토예프스카야의 회고록 정도다. <도스또예프스끼와 함께한 나날들>(그린비, 2003)이라고 나왔었지만 현재는 절판된 상태. 교코의 책은 소세키 연구서들에서 보통 <나쓰메 소세키의 추억>이라고 일컬어지는 책이다. 번역서 분량이 486쪽인데, 생각보다는 두툼한 편이다.

 

"소세키가 세상을 떠난 후 1928년에 교코가 소세키와의 결혼 생활을 구술하고 이를 소세키의 제자이자 사위인 문학가 마쓰오카 유즈루가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이 발표되자 "교코는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소세키를 미치광이 취급한 악처다"라는 차가운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교코는 '읽는 분들에게 뭔가를 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며, '되도록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말씀드렸다는 것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렇기에 이 책의 가치가 더 있다."

소세키는 교코와의 사이에서 7남매(2남 5녀)를 두었지만 부부간의 사이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오랜 기간 신경쇠약을 앓았던 탓으로 보이는데, 심신이 괴로운 데다가 일본의 근대성이라는 필생의 화두와 대결하던 터여서 아내와 가족에게 살뜰한 가장이 되기는 어려웠다. 교코는 결혼초에 한 차례 유산을 하고 나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 무정하면서 간혹 폭력적이기까지 했던 남편 소세키를 두고 교코는 '미치광이(정신병자)'가 아닌가 생각했다. 모두 회고록에 근거하고 있기에 이번에 2차문헌이 아닌 1차자료를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겠다.

 

안 그래도 오늘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의 하나는 소세키의 산문집 <유리문 안에서>(문학의숲, 2008)이다. 아직 절판되지는 않았지만 다시 구입하기도 애매하여 도서관에서 필요할 때마다 대출하곤 한다(계속 대출하는 건 찔끔찔끔 읽다가 반납하곤 해서다).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일년 전에 아사히 신문에 연재한 산문을 모은 책. 만년에 이른 작가의 인간관과 인생관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는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과 자각이 배어 있다. 아울러 그동안 터부시해 왔던 작가의 성장과정과 인간관계를 둘러싼 고민이나 인생관을 더욱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교코의 책과 짝으로 읽어보면 좋겠다.

 

 

소세키의 작품 세계는 <산시로> 이전과 <산시로><그 후><문>에 이르는 '전기 3부작', <춘분 지나고까지><행인><마음>에 이르는 '후기 3부작' 그리고 <마음> 이후의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유리문 안에서>는 자전소설 <한눈팔기>와 미완성 유작 <명암>과 함께 그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책이다. 소세키 소설전집(전14권)의 출간으로 <한눈팔기>와 <명암>도 복수의 번역본을 갖게 되었는데, 내친 김에 <유리문 안에서>도 새 번역본이 나오면 좋겠다 싶다. 바람을 더 적자면 절판된 서간집 <소가 되어 인간을 밀어라>(미다스북스, 2004)도 더 온전한 판본으로 나오면 좋겠다.

 

 

소설전집과 산문집, 서간집을 제외하면 소세키의 책으론 단편집과 <문학예술론><문명론>(소명출판, 2004) 정도가 남는다. 소세키 독자라면 필히 소장해둠 직한데, <문명론>은 현재 품절 상태다. 출간된 지 12년이 됐으니 그럴 만하다. 참고로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은 소세키의 <문학론>에 대한 검토에서부터 시작한다(고진의 평론가로서 등단작이 소세키론이었다). 소세키를 포함해 일본 근대문학 대표작가들을 강의에서 다루면서 갖게 된 욕심은 <일본근대문학의 기원>까지 소화하는 것이지만(대표 작가들에 대한 독서가 선결과제다) 일단은 소세키를 통독하는 것 정도를 올해의 목표로 정했고, 절반 남짓 마쳤다.

 

많은 일정이 미뤄진 상황에서도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그리고 소세키에 대한 강의만큼은 목표에 근접하게 진행했고, 진행하고 있는 중이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프랑스문학 강의와 함께 올해의 개인적인 수확이다...

 

16. 1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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