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들을 핑계로 '최근에 나온 책들'을 외면해 왔는데,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가벼울 리는 없다.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고 빨리 해치우는 게 제일 속편한 일일 듯싶다. 연재를 조금 늦추는 바람에 다루어야 책들이 좀 많다. 성큼성큼 보폭을 좀 늘려잡아야겠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책이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휴머니스트, 2006)이다. 소위 '고전해제'류에 해당하는 책인데, 기획과 편집에 꽤 손이 많이 간 것으로 입시 논술 등을 준비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대학생, 일반인들에게도 '서양 고전'에 대한 유익한 길잡이가 되어줄 듯하다. 출판사 휴머니스트에서는 동양편으로 이미 2권을 출간한 바 있는데, 아마도 4권까지 나온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의 '성공'에 힙입어(내가 이 출판사의 책을 처음 접한 것도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시리즈를 통해서였지 않나 싶다) '고전'에까지 손길을 뻗은 게 아닌가 싶다. 한편으로 '교양'과 '고전'은 거의 '한 식구'라고도 할 수 있으니(고전에 대한 식견이 바로 교양 아닌가?) 이 '손길'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잠시 소개를 옮겨보면, "총 네 권에 걸친 방대한 분량으로 각 분야/각 권마다 '시간과 문명의 파노라마', '정의와 권력, 정치 변증법' ,'영혼과 성장' 등의 주제에 따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부터 20세기 현대 지성들의 저서까지 고전들을 선정, 소개한다. '교과서적인 고전 편식'을 지양하고 우리 사회에 가장 깊고 넓게 영향을 끼치는 책, 21세기 한국의 문화 상황에서 다시 읽으면 좋은 작품을 선정했다."

 

 

 

 

그렇게 선정된 목록을 죽 훑어보았는데, 인문/자연과 정치/사회 분야에서 특별히 억지스럽게 들어앉아 있는 책은 보이지 않는다. 대개가 고전으로서의 평판을 얻고 있는 책들이란 얘기이다. '문학'쪽에는 다소 눈길을 끄는 책들이 몇 권 포함돼 있는데, 먼저 시집들. 릴케의 <릴케 시집>과 하이네의 <노래의 책>(이상 독일어권), 푸슈킨의 <서정시집>(러시아), 엘리어트의 <황무지>(영미권), 네루다의 <모두의 노래>(스페인어권) 등이 언어권별로 선정된 듯한데, 프랑스 시인들이 빠진 것이 좀 특이하다(요컨대, 보들레르가 빠져 있는 것). <모두의 노래>를 제외하면(음반에 부록으로 포함돼 있다) 모두가 번역본이 나와 있는 작품들이다(푸슈킨의 경우엔 단도직입적으로 운문소설 <예브네기 오네긴>을 꼽는 게 어땠을까 싶다).

 

 

 

 

소설의 경우에도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이나 발자크의 <잃어버린환상>, 만초니의 <약혼자들> 등이 포함된 것은 안심할 수 있는 번역본들이 출간된 사실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특이사항이라 할 만한 것은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 피어시그의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등이 포함된 것인데, 파농의 책이야 번역서라도 있지만, 생소한 피어시그(1928- )의 책은 어떤 연줄로 포함된 것인지?(굳이 지적하자면, 플로베르와 조이스도 빠졌는데 말이다. 프루스트는 분량 때문에 뺐다손 치더라도.)

물론 그의 작품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이 멜빌의 <모비딕>에 비견되기도 할 만큼 중요한 작품이라지만, 문제는 독자가 우리말로 읽을 수 없다면 말 그대로 '그림의 떡' 아닌가? '21세기 한국이 문화적 상황에서 다시 읽으면 좋은 작품'이 문제가 아니라 '읽을 수라도 있으면 좋은 작품'이 문제가 되는 것이니까. 여기서 '고전'에 대한 한 가지 원칙에 합의할 수 있는데, 그건 일차적으로 '번역'돼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손쉽게 구해서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번역본이 나와 있다고만 해서 문제가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같은 경우는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창비, 2005)에 따르면 다수의 번역본들에도 불구하고 추천할 만한 번역이 한 종도 없는 걸로 돼 있는데(제목은 '막대한 유산'으로 하고), 이 해제를 읽은 (청소년을 포함한) 독자들은 어떻게 '고전'과 만나야 하는 걸까? 궁극적으로 '고전해제'라는 것은 고전 읽기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읽기를 제안하고 유혹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라고 할 때 말이다. 해서, 우리가 합의할 수 있는 또다른 원칙은 신뢰할 수 있는 번역이어야 한다는 것.

 

 

 

 

거기에 마지막 원칙을 하나 더 덧붙이자면, '가벼운 해제'와 함께 '부피 있는 독해'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필요에 따라 우리는 고전을 (다이제스트로) 줄여 읽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그렇게 단순하게 요약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고전의 '본때'를 맛보게 해줄 만한 책들도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이 세 가지 원칙이 고전 읽기와 이해의 3박자라고 생각한다(우리네 인생살이는 네박자라지만, 교양은 세박자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한 고전 작품에 대해서 우리는 적어도 3종의 책들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해서, '21세기를 사는 한국인에게 서양 고전을 어떤 의미인가'를 묻기 위해서는, 그보다 먼저 그런 물음을 가능하게 할 만한 조건을 우리가 충족시키고 있는가를 따져물어야 한다. 그건 우리 사회의 교양지수를 묻는 것과 같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환영할 만한 것이 최근에 나온 <파우스트> 번역과 주해서, 연구서 3권이다. 이 책들은 교양 3박자에 대한 요구조건을 상당 부분 충족시키고 있기에 그러하다.

먼저, 이인웅 교수의 새번역 <파우스트>(문학동네, 2006). "괴테가 1773년 집필을 시작해 1831년 완성한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걸작 <파우스트>를 들라크루아의 석판화 연작, 막스 베크만의 펜 소묘 삽화와 함께 수록했다. 국내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번역 및 연구 성과를 집적한 완결판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책"이라는 것이 의의로 제시돼 있는데, 의당 기대해볼 만하지 않는가? 거기에 작품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담은 <파우스트 주해>(한국외대출판부, 2006)과 공동 연구서 <파우스트 그는 누구인가?>(문학동네, 2006)은 <파우스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심화시켜줄 것이다. 작년에 나온 <괴테 -그리고 그의 영원한 여성들>(서울대출판부, 2005)까지 챙겨두게 되면, 가히 전문가 수준의 교양이라 할 만하다.  

 

 

 

 

해서,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에 한정하더라도 선정된 68종에 대한 이러한 검토작업이 필요하다. 번역되었는가, 신뢰할 만한 번역인가, 주해서가 나와 있는가, 새로운 독해/연구가 소개돼 있는가, 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자세히 살펴볼 형편은 아니지만, 3박자가 고루 갖춰진 경우도 있고 2박자 정도의 빠른 템포에 엇박자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가령,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처럼 예전에 두어 종이 번역돼 나왔지만 모두 절판되어 현재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역설적인 건 2차 참고문헌들은 다수 나와 있다는 것), 다윈의 <종의 기원>처럼 여러 종의 번역본이 출간되었지만 전공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책들도 적지 않다(일반인들은 '대에충' 읽으면 된다는 뜻인가?). 때문에 우리사회는 분류하자면, '아직도 교양이 고픈 사회'이다.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의 취지는 이렇다: "단순한 고전 해제를 넘어서 21세기 한국이라는 시공간에서 동시대인들과 청소년들에게 걸맞는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고전들의 가치를 재발견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들 대표독자들이 제시하는 고전에 대한 시각과 문제의식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새로운 고전과 사유의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고전해제'를 읽고서 '새로운 고전과 사유의 세계'로 나간다는 건 물론 오버이고 과장이다. '새로운 고전과 사유의 세계'로 나가기 전에 '있는 고전들'만이라도 꼼꼼히 자신의 힘으로 읽어내는 것이 우선적이며, 그게 '진짜 교양'이다.

 





 

예컨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만 하더라도 수 종의 번역서 중 하나 정도는 읽어주고, <세계를 뒤흔든 공산당선언>(그린비, 2005)로 역사적 배경을 확인해둔 다음,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선언>(뿌리와이파리, 2006) 같은 책을 통해 한 장이라도 자세히 따라 읽어보는 습관을 길러야 하는 것. 강유원에 따르면 그게 '근대인'의 기본조건이기도 하다.

"서양 근대인들은 인간의 힘으로 세계를 구축하자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왕의 권력을 신이 준 것이라고 하는 왕권신수설을 부정하고 프랑스 혁명과 같은 정치적 혁명을 통해 인간 중심의 사회를 이룩하려 하였다. 이들은 긴간의 힘에 의해 파악된 지식을 바탕으로, 이른바 근대의 교양을 형성하였다. 이들이 부르주아로 불리는 근대의 시민인데 고전적 의미에서의 우파, 즉 오늘날의 의미에서 자유주의자다. 즉, 근대의 지식인이라 하면 일단 누구나 다 우파 수준의 교양을 갖춘 셈이다... 그러니까 일단 '근대인'이라 하면 우파적인 교양을 갖추는 게 기본이다. 우파적 교양을 기본으로 갖추고 거기서 좀더 나가서 골고루 먹고사는 문제, 그러니까 평등의 문제 등을 고민하면 좌파인 거다. 우파건 좌파건 근대인이라는 것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사람들 모두 교양인이다."(50-1쪽, 강조는 나의 것)

 

 

 

 

흥미로운 대목인데, 일단 '근대인=교양인'이라는 것, 그리고 그때의 '교양인'이란 '우파 부르주아지(시민)'라는 것. '좌파'는 그 '우파 부르주아지'에서 나온다는 것(일단 기본 교양을 갖춘 우파가 평등의 문제를 고민하면 좌파라는 것이이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교양 대가리' 없는 놈들이 좌파 행세하면 안된다). 예전에 나는 강유원이 '배고픈 우파'가 아닐까란 지적을 했었는데, 크게 잘못 짚은 것 같지는 않다. 좌파가 되기 이전에 우리는 모두 교양있는 우파가 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하는 것이니까('이사야 벌린' 정도 된 이후에 '칼 마르크스' 쪽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니까. 마르크스 또한 일차적으론 '근대적 교양인'이었다).

조금 확대해석하면, 그는 고전적인 역사적 유물론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혁명(=좌파 혁명)'보다 '부르주아 혁명(=우파 혁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된다(그런 관점에 설 경우, (조급했던) 러시아 혁명이 정통에서 일탈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더불어, 교양이 아닌 '품성론'에 기초한 현실 사회주의가 '전근대적' 체제라는 진단도 가능하다).' 없는 것들'이 순서도 모르고 나서면 곤란한 것이다.  

아무려나 우파이건 좌파이건 간에 '근대인'이 되기 위해서라면 '근대인이 알아야 할 모든 것'으로서의 '교양'이란 문턱을 넘어서야 한다.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는 그 문턱에서 요긴한 가이드북 노릇을 해줄 것이다(하긴 68종의 고전에 대한 3종 세트를 구입하여 읽을 만한 여가를 프롤레타리아가 마련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전무할 터이니 교양은 우파 부르주아의 전유물이 아닐 도리가 없다. 이건 혹 딜레마가 아닐까?).

 

 

 

 

교양 있는 분들을 위한 책으로 또한 꼽을 만한 것이 <브레히트 희곡선집1, 2>(서울대출판부, 2006)이다. 예전에 '한마당'에서 브레히트 선집이 나온 적은 있었지만, 이처럼 정격 번역이 두 권 분량으로 묶여서 출간된 건 처음이 아닌가 싶다(역자는 브레히트와 독일 희곡의 전문가이며 유려한 문장을 자랑한다). 사실, 폴 존슨의 보고에 따르면, 브레히트야 말로 '배부른 좌파'의 표본적인 작가였다(고가의 노동자복을 맞춰 입고 다녔던 브레히트는 자기PR의 귀재이기도 했다). '배고픈 좌파'라는 게 편견일 수도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인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희곡들은 고전으로서의 '명망'을 유지하고 있다. 한 작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천적인 재능(=문학적 재능) 못지 않게 후천적인 재능(=정치적 감각)도 갖추어야 함을 웅변해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끝으로 <세계의 고전을 읽는다 -동양문학편>(휴머니스트)에 '해제'가 포함돼 있는 시선(詩仙) 이백의 시선집 <이백 오칠언절구>(문학과지성사, 2006)를 꼽아두기로 한다. 소개에 따르면, "이백 시세계의 백미를 담아낸 책. 현전하는 이백의 절구시(絶句詩) 전체인 187수를 우리말로 옮기고, 이백 시의 전문 연구자 황선재 씨의 주석과 해설을 곁들여 소개했다. 이백의 시 중에서 가장 짧은 형식인 '오.칠언절구시'만을 묶어 펴낸 것은 중국을 포함하더라도 이 책이 세계 최초이다." 이 어이 아니 주목할 수 있겠는가?

"오칠언절구(李白 五七言絶句)는 이백의 작품 1천여 편 가운데 가장 짧은 형식의 시로서, 작품 한 편이 오언절구는 20자, 칠언절구는 28자로 이루어져 있다. 시 한편은 비록 짧지만, 그 가운데는 오묘한 진리와 풍부한 음악성이 스며들어 읽으면 읽을수록 운치 있는, 즉 말은 다했지만 뜻이 무궁하게 남는 경지(言有盡而意無窮) 속으로 몰고 간다. 이백 시를 내용에 따라 15장으로 분류하고 후대의 연구자들에 의해 이백 시로 추정되는 17편을 추가해 이백 오칠언절구 전편을 이해할 수 있도록 편집했다. 한시 원문을 읊고 적확한 우리말로 음미한 뒤, 이백의 생애와 역사 등 시가 씌어진 배경 해설을 함께 읽을 수 있다."

 
 
 
 
 
 

러시아 문학에서의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처럼, 당시(唐詩)에서 '이백'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알다시피 시성(詩聖) '두보'이다. 이 기회에 두 시인에 관한 책들과 두보 시선도 몇 권 눈여겨 봐두도록 한다(두시에 대해서는 고전적인 '언해'와 현대적인 '언해'가 제법 출간돼 있다). 자, 이런 것들이 '고전'들이다. 이걸 읽고 음미할 만한 여유만 각자 마련하면 되겠다...

06. 05. 24-28.

 

 

 

 

P.S. 그럴 만한 여유/형편이 안되는 이들이 왜 없겠는가? 그런 이들은 '세계의 고전'이니 '서양의 고전'이니 다 (개)무시하고, 백석의 시집 한 권과 최근에 나온 고형진 교수의 <백석 시 바로 읽기>(현대문학, 2006) 같은 책 한 권 정도 사놓고 틈틈히 읽어보면서 노트에다 시와 자기만의 감상을 적어보는 걸로 '교양'을 대신하면 되겠다. 백석의 절창 '흰 바람벽이 있어'(1941)에 나오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시인 안도현이 자신의 시집 제목으로도 갖다쓴 시구이지만, 그가 멋있는 제목에서 빼먹은 것은 '가난하고'란 단어였다. 외롭고 높고 쓸쓸하지만, '가난한' 이들은 오늘도 '흰 바람벽'을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과 함께 오래 응시해볼 일이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 절은 다 낡은 무명셔츠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 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격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여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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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 2006-08-09 09:17   좋아요 0 | URL
언급하신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은 이미 우리말 번역본이 있습니다. 절판되었지만, 도서관에서는 찾아볼 수 있지요. <선을 찾는 늑대> 로버트 M. 퍼시그 저 ; 一指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1.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인 <라일라>(로버트 퍼시그 지음 ; 정영목 옮김 김영사, 1994)도 나왔지만 역시 절판되었군요.

로쟈 2006-08-09 11:43   좋아요 0 | URL
그랬었군요.^^ 동명의 책이 검색되지 않아서 나온 적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참에 새 번역본이 나왔으면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