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윈도우10을 깐 이후에 PC가 좀 쾌적해진 듯싶었지만 역시나 공짜는 없는 법이었다. 갈수록 먹통이 되는 일이 잦더니 들이대는 광고가 많아지고 보안앱을 깔아야 한다는 협박도 늘어났다. 평균치의 컴맹에 속하는지라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가령 무얼 교체하거나 하드용량을 늘인다거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지내다 보니 서재는 지난주부터 때아닌 '휴가' 모드다. 간혹 안부를 물어보시는 분도 계신데, 말썽은 내가 아니라 PC라는 사실을 한번 더 적는다.

 

 

강의준비에도 쫓기다 보니 PC가 정상이라 하더라도 사실 포스팅할 시간이 별로 없는데, 그렇다고 포스팅 거리도 적은 거냐면 그건 아니다. 항상 일정한 얘깃거리는 생겨난다. 적잖은 책들이 나오고 있고 적잖은 책들을 구입하고 있으며 비교적 적잖은 책들을 읽기 때문이다. 주로 신간을 주문하지만 간혹 구간도 섞이기 마련인데, 오늘 배송받은 책 가운데는 가이 미쇼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스마트북, 2013)가 그에 해당한다(만 3년이 지난 건 아니지만 햇수로는 3년이 됐으니 구간이라고 해두자). 며칠 전 '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제목의 책들을 검색해보다가 발견하고 주문한 책이다.  

 

'다시 시작하는 인문학 문사철'을 표방하면서 같이 나온 책들이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이란 무엇인가>인데, 카와 러셀의 책은 우리에게 친숙하고 번역본도 여러 종 나와있는 것과 견주어서 가이 미쇼의 책은 이채로울 수밖에 없다. 누가 책을 발견하고 번역을 기획했는지 궁금할 정도다.

 

저자는 프랑스 문학사가이면서 그리스와 라틴 문헌 학자라고 소개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원제가 '문학의 과학을 위한 서설'로서 터키 이스탄불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하여 1950년에 펴낸 책이라 한다. 아마 프랑스에서 잊혀진 책일 수도 있지만, 분량이 얇아서 부담이 없고 문학의 원론적인 문제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데 필요한 암시나 자극 같은 게 있을까 싶어서 구입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원론적인 물음에, 또 그런 제목을 가진 책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건 문학에 입문한 지 30년이 됐으니 이젠 나대로의 문학론도 써볼 수 있지 않을까, 내지 써봐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서다. 예컨대 학부시절 읽은 김현/김주현 편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유종호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진 빚도 이젠 청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문학론은 인생론과도 관련이 없을 수 없으니 한편으론 삶과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정리의 의미도 지니게 될 것이다. 아무려나 내년에 해야 할 일의 하나로 꼽고 있는 것이 문학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자니 당연히 문학이론에도 다시 눈길을 주게 되고, 실상 얼마 전부터 조너선 컬러의 <문학이론>을 원서와 같이 펼쳐놓고는 있다(번역본은 두 종이다). 이 책도 가장 큰 미덕은 얇다는 것이다. 얇은 책은 읽는 수고를 덜어주는 대신에, 그만큼 생각할 기회를 마련해준다. 생각의 꼬투리를 제공해주는 게 이런 책의 용도인 것.

 

 

좀 두꺼운 책으로는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게리 솔 모슨의 <바흐친의 산문학> 등이 다시 읽을 거리들이다. 젊은 시절 이 책들을 처음 접하던 때보다는 읽은 작품이 많이 늘어났으니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얻을 수 있는 소득이 있지 않을까란 기대를 갖는다. 아무려나 이런 책들과 함께 30년 전 나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하여 첫 학기 수강과목으로 '문학 개론'을 선택하던 그 시절의 질문으로. 문학이란 무엇일까?..

 

16. 10. 07.

 

 

P.S. <문학이란 무엇인가>와 같이 배송된 신간은 찰스 백스터의 <서브텍스트 읽기>(엑스북스, 2016)이다. 구입하고 보니 문고본 판형인데, 최은주의 <책들의 그림자>와 가쿠타 미쓰요의 <보통의 책읽기>에 이어지는 책이다. "소설이나 짧은 이야기 안에서 플롯을 넘어서 독자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요소"를 살펴보는 '간결한 책'. 그렇더라도 소재만 보면 좀 전문적이다. 거꾸로 (좀 전문적인) 문학 독자라면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는 책이다. 주문한 원서도 내일 도착할 듯싶은데, 주말의 읽을 거리로 맞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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