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닥다리 같은 말이 되었지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고 9월은 독서의 달이다. 이른 추석 연휴가 변수이지만 독서 여건이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게다가 날씨도 지난여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 생각으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1. 문학예술

 

문학 쪽은 <책 읽어주는 남자>(영화 <더 리더>의 원작)로 유명한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신작을 고른다. <계단 위의 여자>(시공사, 2016). 2014년작이고, 배수아 작가의 번역이란 점이 눈길을 끈다. "테러리스트와 그 주변인들의 균열된 삶을 통해 또 하나의 탁월한 도덕적 미로를 제시한 <주말>에 이어 6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장편에서, 그는 인간의 가장 복잡하고 내밀한 미로인 사랑과 죽음의 문제에 접근한다." 계속 나오고 있는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가운데서는 여섯 번째다.

 

 

 

예술 분야에서는 '아모르문디'에서 나오는 '영화총서'를 고른다. 지난봄에 1차분 세 권이 나왔고 이번에 2차분 세 권이 더해졌다. <영화 스토리텔링>에서 <영화비평>까지다. 제작에 직접 손을 댈 건 아니어서 일단 손이 가는 건 <영화  스토리텔링><미장센><영화비평> 세 권이다. 영화 책의 번역과 강의 계획도 내년에는 잡혀 있어서 내게는 유용한 총서다. 국내 필진으로만 끌고 나간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2. 인문학

 

연휴를 고려해서 두꺼운 책들을 고른다. 먼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스페인 철학사가 훌리안 마리아스의 <철학으로서의 철학사>(유유, 2016). 1941년작이고, 유럽에서는 교재로 널리 읽힌다고. 마지막 장이 오르테가에게 할애돼 있는 것이 스페인에서 나온 철학사답다. 강신주의 개정판 <철학 VS 철학>(오월의봄, 2016)는 그에 견주자면 '대결로서의 철학사'쯤 되겠다. 노르웨이 철학자 군나르 세르베크, 닐스 길리에의 <서양철학사>(이학사, 2016)도 합본판은 1054쪽에 이른다. 이 정도면 '벽돌 세 장'이라고 부름직하다.  

 

 

역사 분야는 이슬람/중동사 쪽을 고른다. 유진 로건의 <아랍>(까치, 2016)이 개설에 해당하는 책이다. 캐런 엘리엇 하우스의 <사우디아라비아>(메디치, 2016)는 "중동의 경제적.종교적 핵심인 사우디의 위기를 입체적이고도 새로운 관점으로 보여준, 대단히 가치 있는 책"이란 평가다(제목을 보자마자, '그래, 이런 게 없었던 거야' 깨닫게 해준다). 국내서로는 중동 문제 전문가 서정민 교수의 <오늘의 중동을 말하다>(중앙북스, 2016)가 가이드북이다.

 

 

3. 사회과학

 

사회/시대에 대한 관심을 부추겨주는 평전들을 고른다. 러시아의 (이제는 대통령이라기보다는 통치자라고 해야겠다) 푸틴을 다룬 <뉴 차르>(프리뷰, 2016)가 일단 읽을거리(읽고 있는데, 각주를 다 생략한 게 유감스럽다). 그리고 <도올, 시진핑을 말한다>(통나무, 2016)는 시진핑을 다룬 책으로도, 도올의 책으로도 이채롭다. 민종덕의 평전 <노동자의 어머니>(돌베개, 2016)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평전'이다. "“제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꼭 이루어 주세요”라 당부하며 죽어가던 아들 전태일과의 약속을 남은 평생 한결같이 지키며, 고통받고 소외당하는 노동자 민중과 평생 함께하고 싸워 나갔던 그의 삶을 생전의 구술과 다양한 기록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하고 이야기 형식으로 생생하게 그려 냈다."

 

 

 

 

현대사 얘기가 나온 김에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시리즈도 연휴용 읽을 거리로 챙겨놓을 만하다. 강만길 교수의 <고쳐 쓴 한국현대사>(창비, 2006), 서중석 교수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 2013) 등과 같이 읽어도 좋겠다.

 

 

4. 과학

 

과학 분야에서는 <사라진 스푼>(해나무, 2011)의 저자 샘 킨의 신작 <뇌과학자들>(해나무, 2016)을 고른다. '뇌의 사소한 결함이 몰고 온 기묘하고도 놀라운 이야기'가 부제. "뇌가 손상된 환자들로부터 뇌과학적 통찰을 얻은 뇌과학자들의 이야기들을 풀어냄으로써 뇌과학의 역사를 관통해 나가는 책이다."

 

 

 

그런 이야기라면 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올리버 색스다. 지난주가 일주기였는데,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색스의 책들도, 아직 그를 접하지 못한 독자라면 읽어볼 만하다. <깨어남><뮤지코필리아><편두통> 세 권이 대표작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알마, 2016)와 함께 다시 나왔다.

 

 

조금 딱딱할 수 있지만 과학책 독자들은 오히려 환영할 만한 책들도 몇 권. <최초의 3분>양문, 2005)의 저자이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시공사, 2016)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과학이 지금처럼 현대적 형태를 갖추고 '합리적 지성'을 상징하는 학문으로 불리기 전의 모습까지 세밀하게 추적하는 책"이다. 저자가 이야기꾼은 아니지만 거꾸로 그래서 오히려 신뢰감을 준다. 어디까지 따라가느냐는 독자 개개인의 몫.  

 

이바르 에클랑의 <가능한 최선의 세계>(필로소픽, 2016)는 '수학과 운명'이 부제다. "모든 가능한 세상 가운데 최선의 세상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철학자 라이프니츠에서 비롯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의 출발점을 수학에서 찾는다." 독파할 수만 있다면 볼테르의 <캉디드>도 새로운 눈으로 읽을 수 있겠다.

 

그리고 알렉스 벨로스의 <수학이 좋아하는 수학>(해나무, 2016). '보통 사람들을 위한 미적분, 통계, 수학 법칙들'이 부제다. "피라미드에서 에베레스트 산까지, 프라하에서 광저우까지, 빅토리아풍 거실에서 자기 복제자들의 디지털 우주까지, 알렉스 벨로스는 역사를 거슬러 오르고 지구 곳곳을 오가며 우리를 수학의 세계로 이끈다." 그렇게 해서 수학을 좋아하게 되느냐고, 묻는다면, 나로선 장담할 수 없다. 애초에 수학을 좀 좋아해야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하기에. 

 

 

 

5. 책읽기/글쓰기

 

글쓰기 관련서는 여전히 많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메리 카의 <자전적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다른, 2016)은 최신 원작을 옮긴 것이어서 눈길이 간다. '자전적 스토리텔링'이란 '회고록'을 말한다. "미국 출간 즉시 수많은 비평가의 찬사를 받으며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와 같은 글쓰기의 고전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책의 저자 메리 카는 뛰어난 자전적 스토리텔링의 핵심 요소들을 분석하면서 기억과 정체성에 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의 카타르시스적인 힘을 강조한다."

 

이준기, 박준이의 <보통 사람의 글쓰기>(아시아, 2016)는 제목 그대로 보통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 지침서를 자임한다. "저자는 글에 정수가 정확성에 있다고 말한다. 좋은 글은 정확해야 하고 정확해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은유의 <쓰기의 말들>(유유, 2016)은 더 노골적으로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가 부제다. 요즘 드는 생각은 '글쓰기 책'이 '다이어트 책'과 비슷하지 않나 싶은 것인데, 여하튼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은 한번 더 속는 셈치고 일독해보시길.

 

 

아예 일년 일정표를 만들어서 써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 수전 티베르기앵의 <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책세상, 2016)이 가이드북이다. 읽기 책도 고르자면, 김지안의 <네 멋대로 읽어라>(리더스가이드, 2016)은 부제가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독서 에세이'다. '알라디너들을 위한 독서 에세이'로 고쳐 읽는다(알라딘 이웃인 stella.K님의 책이다). 그리고 나대로 고른 책은  '뉴요커' 기자로 활동한 대프니 머킨의 에세이집 <우상들과의 점심>(뮤진트리, 2016)이다. '상처 입은 우상들, 돈, 섹스, 그리고 핸드백의 중요성에 관하여'가 부제인데, 원서의 부제에는 '브론테 자매'도 들어가 있다. 스콧과 젤다 피츠제럴드 부부 이야기를 먼저 읽고 지금은 원서를 주문해놓은 상태다...

 

16. 09. 04.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고른다.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프랑스어 주해판 <시학> 번역을 벼르다가 최근에 읽었는데, 전문가를 염두에 둔 책이어서 과도할 만큼 상세하지만 이미 다른 번역본으로 <시학>을 읽은 독자들에겐 유익하다.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이상섭 교수가 옮긴 <시학>(문학과지성사)이 무난해 보인다. 지금은 절판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연구>(문학과지성사, 2002)에서 번역과 주석 부분을 문고본으로 펴낸 것이다.

 

 

원전 번역으로는 천병희, 손명현 교수의 번역본이 있지만 너무 오래 전 번역이라 개정판이 필요하다. <시학>에 대한 연구서는 드문데, 그중 레온 골든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예림기획, 2002)가 가장 상세하다. 아직 품절되지 않은 건 그만큼 찾는 독자가 없어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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