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책들'이란 연재는 2002년 가을부터 한 카페의 게시판에 올리기 시작했었다(정확하지는 않다). 이번에 인터넷에 떠있는 자료들을 정리하려고 하니까 아무래도 알라딘에 한데 모아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30회부터인가는 동시에 올려놓았었기 때문에, 따로 옮겨오는 것들은 대략 29회분이 아닌가 싶다.

아주 먼 과거는 아닌지만, 3-4년전에 나온 책들을 원래대로 '최근에 나온 책들'이라고 옮겨올 수는 없기에 '에피소드'라는 말을 덧붙이기로 한다(스타워즈 시리즈의 '에피소드'에서 힌트를 얻었다). 말하자면 '최근에 나온 책들'의 잃어버린 고리들이다. 말미의 날짜는 글을 최초로 띄운 날짜이다. 옮겨오면서 새롭게 구겨넣은 말들은 (*)를 달았다. 어쨌거나 앞으로 짬짬이 옮겨올 이 글들에서 2-3년 정도의 시간차여행을 해보는 것도 나쁜 경험은 아닐 듯싶다.그것이 나만의 판단이 아니기를 바랄 뿐...

최근에 무게있는 (교양)학술서들이 몇 권 출간됐다. 관심분야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모든 분야의 책들을 망라할 수는 없지만, 인문사회쪽의 몇몇 주목할 만한 신간을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나는 이 책들을 읽을 계획이지 아직 읽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지젝의 <향락의 전이>(인간사랑)의 개역판이 나왔다. 나부터도 여러 차례 그 번역 수준에 대해서 비판해왔는데, 이번에 얼마나 교정/개역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궁금하지만 물론 그 책을 다시 사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에 하드카바로 장정이 바뀌면서 책값은 70%가 뛰었다(2만5천원). 양식있는 출판사라면 초판에 대해서 리콜을 실시해야 마땅하지만(열린책들의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의 경우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리콜을 실시한 바 있다), 그런 건 전혀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다만, 개역을 해서 과연 읽을 만한 책이 됐는가가 궁금할 따름이다(*나중에 알게 되는 것이지만, 역시나 기대를 배반한 책이었다).

역자의 '반성문'적인 개역판의 서문을 읽어봤는데, 그 진의야 누가 의심하겠는가? 다만, 지젝의 판권을 갖고 있는 출판사나 역자가 좀더 세심하게 책임감을 가지고 책을 만들어주었으면 하고 바랄 따름이다. 개역판 <향락의 전이>를 읽으시는 분은 조만간 서평을 올려주시기 바란다. 인간사랑에서 나온 <환상의 돌림병> 또한 <향락의 전이>보다는 낫지만, 그 번역이 신뢰할 만한 수준은 아닌데(그런 심증을 갖고 있다) 이번에 원서를 구하게 됐다. 부분적으로라도 조만간 번역의 장단점에 대한 글을 올릴 예정이다(*<향락의 전이>에 대한 리뷰는 예정대로 올렸었다).

 

 

 



한나 아렌트의 <칸트 정치철학 강의>(푸른숲)가 번역돼 나왔다. 역자는 이미 <정치와 진리>(책세상)이라는 아렌트 해설서를 쓴 이이다. 그 책의 서평 말미에서 나는 아렌트의 다른 저작들보다는 <칸트 정치철학 강의>의 역간을 기대한다고 썼는데, 생각보다 빨리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무척 반갑다(원서는 도서관에 주문중이다). 내가 아는 상식에 의하면, 아렌트는 특이하게도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전거로 삼아서 그의 정치철학을 재구성해내는데, 이것은 리오타르의 <판단력 비판> 다시 읽기인 <칸트의 숭고미에 대하여>(현대미학사)와 함께 <판단력 비판>에 대한 20세기 연구/해석 중 가장 중요한 문헌에 속한다. 더불어 3대 비판서 중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온 <판단력 비판>이 재평가되는 데 기여한 책이다. 내 생각에 아렌트의 책은 레오 스트라우스 <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아카넷)와 함께 정치철학 분야에서 올해 번역돼 나온 가장 중요한 책이다.

 

 

 



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의 <이것이 생물학이다>(몸과마음)이 번역돼 나왔다. 500쪽 가까운 분량을 최재천 교수를 비롯한 생물학 전공자들이 우리말로 옮겼다. 원저는 1997년에 나온 마이어의 21번째 책이라고 한다. 20세기의 다윈이라 불리는 마이어의 책으론 <진화론 논쟁>(사이언스북스)이 나온 적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강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는데(후배 다윈주의자들인 리처드 도킨스나 스티븐 제이 굴드와 비교해서), 이번 저작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

평소 생물학 교양서를 갖고 싶었는데(킴볼 생물학 같은 책 말고), 마이어의 책이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줄 듯하다(주문해놓은 책이라 아직 만져보지도 못했지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까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발굴>이란 책도 저자가 에른스트 마이어로 돼 있는데, 그가 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언지 아니면 동명이인의 고고학자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김상환 교수의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창작과비평사)가 출간됐다. 김교수는 그간에 소위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의 현대철학(푸코의 규정)에 대해서 가장 정통한 이해를 선보여 왔는데, 이번에 그 성과들이 단행본으로 묶였다. 아직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짐작에 대부분의 글들이 이미 발표된 것들이지 싶다. 하지만 아직 묶이지 않은 글들도 많이 있는 걸로 봐서 그의 무게 있는 저작 목록은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도 곧 역간될 거라는 소문이 있다(*알다시피 재작년에 역간되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데리다와 라캉에 대한 깊이있는 번역/연구서가 기다려진다. 김교수의 신작과 비슷한 주제(니체 이후의 해석학)를 다룬 책으로 애런 슈리프트의 <니체와 해석의 문제>(푸른숲)가 권할 만하다.

 

 

 



김동식 교수의 <프래그머티즘>(아카넷)이 출간됐다. 김교수는 리처드 로티 전공자로서 이미 <로티의 신실용주의>(철학과현실사)를 출간한 바 있는 중견학자이다. 흔히 실용주의로 번역돼온 프래그머티즘이 한국에 수입된 지 수십년이 되었지만, 대개의 다른 학술분야와 마찬가지로 내놓을 만한 성과가 별로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저작은 조금은 뒤늦게 전공학자들의 '책임'을 반영하고 있다. 분석철학과 함께 현대 미국철학을 대표하는 사조인 프로그머티즘에 대한 개괄적 이해가 이번의 저작과 함께 가능해질 거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덧붙여 말하자면, 국내 연구자에 의한 분석철학 입문서는 아직 없다. 박이문 교수의 <현상학과 분석철학>이라는 개론서가 있을 뿐이다. 몇 사람이 돌려보는 전문적인 논문보다도 교양 수준의 개론서/입문서들이 많아져야 그 나라의 '학술'수준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게 개인적인 믿음이다. 연구자들의 책임(밥값!) 의식을 다시금 촉구하게 된다(학문하는 사람이 학문이 뭐 별거냐고 말하는 건 도통한 게 아니라 천박한 것이다. 학문하는 사람은 별거아닌 학문을 별거인 걸로 만들기 위해 죽어라고 노력해야 된다. 그게 책임이고 윤리이다!).

2002.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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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타 2006-05-03 02:24   좋아요 0 | URL
멋지심돠~

로쟈 2006-05-03 07:18   좋아요 0 | URL
옛날에 쓴 글들을 올린다는 게 좀 멋쩍은 일이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