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가장 강조할 만한 책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뉴욕 지성계의 여왕, 대중 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로 불렸던 수잔 손택의 <강조해야 할 것>(시울, 2006)이다. "2004년 작고한 20세기의 대표적 예술평론가이자 작가인 수전 손택의 에세이 41편을 모"은 책으로 "고전이 된 첫 에세이집 <해석에 반대한다> 출간 이후 40여년만에 발간된" 것이며, "그녀의 마지막 에세이집"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책은 <해석에 반대한다>(이후, 2002),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현대미학사, 2004), <우울한 열정>(시울, 2005)에 이어지는 것이다. 지난번에 이 연재에서 다루었던 <우울한 열정>을 미처 다 읽기도 전에 <강조해야 할 것>이 도착했으니 대략 난감이다. 덥석 집어물 형편도 아니면서 무시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국 지성계의 여왕'이란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만한 여성 지성인이 많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강조해야 할 것> 이후에 (그녀의 소설들이 남아있지만) 더 나올 만한 책도 없다는 것.  

친절한 소개나 리뷰를 미리 참조하고서 책을 손에 잡는 게 유익할 듯싶은데, "총 3부 구성으로, 해박한 교양 지식과 다독으로 유명한 지은이답게 수많은 예술 작품에 대한 글들, 그리고 '행동하는 지성인'으로서 지은이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1부 '내가 본 것들'은 영화와 회화, 오페라, 연극, 사진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2부 '내가 읽은 것들'에서는 그녀 스스로 정전으로 생각하는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돈키호테, 롤랑 바르트 이외에도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상당수 다루고 있어, 독자들에게는 예술에 대한 안목을 한층 더 넓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안목을 한층 더 넓힐 수 있는 기회'도 되겠지만, 맥락을 알 수 없기에 헤맬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겠다.

그리고, "3부 '그곳과 이곳'에서는 수전 손택의 사적인 이야기가 그녀의 사유와 얽혀들어간다. 첫 출간 30년 후 <해석에 반대한다>의 현재적 효용성은 어떠한가에 대한 논의, 전쟁중인 사라예보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한 에피소드와 번역의 문제 등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그 가운데 지식인의 의미와 그에 따르는 책임을 날카롭게 설파한다." 나라면 3부부터 읽기 시작하겠다.

 

 

 

 

두번째 책은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삼인, 2006). 주말에 각 언론에서 생각보다 많이/크게 다루어서 의외라고 생각한 책이기도 하다. 지난 2004년에 출간된 <도덕의 정치>(백성, 2004)에 대해서는 비교적 잠잠했었기 때문이다(<도덕의 정치>는 당시 러시아로 떠나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산 책으로 기억된다. 한편 알라딘에는 이 책의 저자가 '조지레이 코프'로 잘못 기입돼 있다). 레이코프는 자주 공동작업을 하는 마크 존슨과 함께 현대 인지언어학계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언어학자이다(그러니까 포스트-촘스키의 선두주자쯤 된다). 별로 읽을 짬은 내지는 못했지만, 그가 출간한 모든 책을 나는 챙겨둔다(물론 번역서들이다). 참고로 말하면, 러시아에서도 몇년 전부터의 그의 책들이 하나둘 소개되고 있다.

언어학자의 정치론이 그다지 낯설지 않은 것은 물론 촘스키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변형생성문법의 창시자와 인지언어학의 거목은 관점이 약간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의 일차적인 호기심은 그것이다. 물론 공통점도 있을 텐데, 그건 당연히 '언어(말)'에 대한 관심일 터(우연찮게도 같이 나온 촘스키의 최신간의 제목은 <여론조작>(에코리브르, 2006)이다). 

소개의 말을 잠깐 따라가본다: ""문제는 말[언어]이다." 노엄 촘스키와 함께 세계적인 언어학자로 꼽히는 지은이가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정치를 바라보며 내놓은 결론이다. 왜 말일까? 그건 말이 유권자들이 세계를 보는 프레임[생각의 틀]을 결정짓고, 이는 곧 정치적 입장과 투표 성향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언어의 문제에 주목하여 미국 민주당의 선거 승리전략에 대해 실제적인 지침들을 조언으로 제공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4년 출간 이후 민주당원들의 입소문을 타고 2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고, 정치와 언론에서 '프레임' 개념이 새로을 각광받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어쩌면 정치언어학 도서로 분류될 수도 있지 않을까?



계속 따라가보면, "지은이의 전작 <도덕의 정치>를 기반으로 책이 내놓는 주장은 진보 진영이 보수 진영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로이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 진영의 실패와 거짓말을 공격하고 진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유권자들이 진보 진영에 투표해 줄거란 환상은 버려야 한다는 것. 유권자들은 자기 이익이 아닌 정체성에 맞추어 투표하며, 그들의 프레임에 맞지 않는 진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범한 서민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겉으로 보기엔 이해 불가능한 현상을 명쾌하게 증명해낸 것." 우리의 경우엔, 언론학자 강준만이 언어학자였다면 썼을 만한 책처럼 보인다. 더불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언어학자의 사회적 책임'이다.

"터미네이터를 연기한 배우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배경에 대한 분석을 비롯하여 각종 미국 정치 담론에 말과 프레임의 힘이 어떻게 관여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쉬운 내용 구성 안에서 언어학과 정치학이 흥미로운 결합하여 한국 정치 환경을 해석하는 데에도 강력한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하니까 선거의 계절을 맞이하여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그런데, 내 <도덕의 정치>는 어디에 처박혀 있는 것일까?

 

 

 

 

세번째 책은 "<나의 서양미술 순례>,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으로 잘 알려진" 저자 서경식의 <난민과 국민 사이>(돌베개, 2006). "지은이가 90년대 중반부터 발표한 시론·시평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하니까 분량에 비해서는 부담감 없이 읽을 수 있겠다 싶지만, 그건 글의 형식상의 문제이고 내용상으로는 책의 제목 만큼이나 무겁고 갑갑할 것이니 미리 각오하고 읽는 편이 낫겠다. "'"난민'도 '국민'도 될 수 없는 추방자(디아스포라)의 감수성을 지닌 재일조선인인 지은이의 주변을 둘러싼 일본과 한국 사회의 정치와 역사에 대한 사유를 담았다"는 책.

난민 얘기가 나오니까 떠오르는 건 작년 봄에 <씨네21>(2005. 05. 13) '유토피/디스토피아'란에 실렸던 이진경 교수의 칼럼이다. '난민이 필요한 나라'라는 제목. 이 참에 한번 더 읽어본다.

-난민, 어느 한 나라에서 정부에 항거하거나 지배체제를 전복하려던 꿈을 꾸다 체포를 피해 도망쳐야 했던 사람들이다. 망명, 여전히 전복의 꿈을 버리지 못해서, 혹은 전복을 꿈꾸던 삶을 등질 수 없어서 자신의 나라를 뒤로 한 채 이국 땅을 떠도는 행위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 자국 정부가 자신에게 할당한 지위에서 벗어나 떠도는 이탈자들이고, 새로운 체제나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고자 꿈꾸는 탈주자들이다. 그들은 최소한 자국 정부와 혹은 자신의 국가와 맞서는 위치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정부와 맞먹는 지위를 가진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 외부에서 살기에, 한 사회의 내부에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안에서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내부에선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만들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들의 시계가 망명하던 시간에 멈추어버린, 그래서 그렇게 할 능력을 잃어버린 경우도 적지 않지만 말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사는 나라의 외부자고 망명자, 난민이기에, 그 나라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어디서도 외부자다. 내부에, 그 친숙함에 안주하려는 것을 방해하고, 익숙함의 관성에 따라가는 것을 막는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의 나라, 혹은 자신이 사는 나라에 긴장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없는 것을 밀어넣는다. 그래서 무언가 다른 것이 만들어지게 한다. 그들은 언제나 저주받은 삶, 피곤하고 힘든 삶을 강요받지만, 그것을 좀더 나은 삶으로 되돌려준다. 비록 그것이 의도된 것은 아니라 해도 말이다. 망명자나 난민의 이러한 역할은 그들이 꿈꾸는 것을 실현하는가 여부에 따르기보다는 차라리 어디서든 외부자라는 그들의 존재 자체에 기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망명자나 난민이 아예 없는 세상보다는 차라리 원하는 누구나 쉽게 그런 외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훨씬 더 좋아 보인다. 망명이 자유로운 사회. 그리고 되돌아오는 귀국도 자유로운 사회.(*'망명이 자유로운 사회'에서도 '망명자'는 여전히 '망명자'인가?)

-이런 점에서 보자면, 망명이 꼭 정치적 핍박과 목숨을 위협하는 억압에 의해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국적을 던져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일전에 내가 아는 한 선배는 붕괴한 소련으로 늦은 유학을 떠나면서 자신의 소련행을 “문화적 이유에 의한 망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귀국할 수 없게 하는 위협이 없다고는 해도, 이런 망명이 결국에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 무언가 다른 것을 만들어낼 것은 분명하다.(*그런 소련행을 환영할 '러시아인'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요즘 러시아에는 스킨헤드 경계령이 다시 떨어졌다.) 

-이른바 ‘임시정부’를 자처한 망명자들에 의해 수립된 나라, 가장 저명한 정치지도자가 오랜 망명생활을 한 끝에 대통령이 된 과거를 가진 나라, 그러나 난민협정에 가입하기 전에는 물론, 뒤늦게 가입한 뒤에도 10년이 넘도록 단 한명의 난민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나라, 그리고 미얀마의 망명자들처럼 정치적으로 곤혹스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난민보다는 불법체류자 다루듯 처리하는 나라, 목숨이 걸린 문제를 서류에 동그라미 치는 ‘서면회의’로 처리하는 나라, 난민된 사정이나 현재의 처지에 귀기울이기보다는 그가 돌아가도 결국 죽지는 않을 거라는(사람은 정말 얼마나 죽기 어려운 것인지!) 생각으로 안심하고 추방명령을 내리는 나라, 그 나라가 바로 우리가 사는 나라다. 이 나라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혹시 윤리적, 혹은 도의적 이유에 의한 망명자들인지도 모른다. 정말 난민이 필요한 나라다.

칼럼을 읽을 당시에 몇 마디 촌평을 페이퍼로 써볼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지만 다른 일들에 치여 흐지부지됐었다. 칼럼의 반어적인 문제제기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내가 가졌던 소박한 의문은 '난민'과 '망명자'자 과연 같은 부류인가? '한번쯤 국적을 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 한번" 해본 사람과 난민/망명자는 같은 부류인가? 하는 점. 그런 의문은 '노마드적 사유(노마디즘)'와 '노마드'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나의 기본적인 입장에서 비롯된다. 물론 저자 서경식이 다루는 건 '재일 조선인'이라는 진짜 '난민', 혹은 국민도 난민도 아닌 어중간한 '난민'이다. 구체적인. 그리고 현실적인.     

책소개를 따라가자면, "총 3부 구성으로, 1부는 본격적인 시론과 시평에 앞서 지은이의 정치적 관점과 윤리적 감수성을 개괄할 수 있는 짤막한 에세이들을 실었다. 2부에서는 식민지배 시기부터 재일조선인의 과거를 구성하는 주요 사건들을 돌이켜보며 이들을 타자로 취급하고 차별하는 일본과 한국의 문제를 강도높게 비판한다. 국민의 영역 안에 들어와야만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오류라는 것."

 



 

 

"책 전반에서 드러나는 근대 국가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또다른 디아스포라들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진다. 3부에선 윤이상, 에드워드 사이드 등 국가주의의 폭력에 저항한 이들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애도한다. 국가에 의해 배제당하고 추방당하고 희생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과거사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 우리 안에 숨어있는 근대의 문제를 극복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독자들에게 던져준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네번째 책은 팔 다리가 없는 장애를 딛고 화가가 된 여성, 앨리슨 래퍼(1965- )의 자서전 <앨리슨 래퍼 이야기>(황금나침반, 2006)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가족과 사회로부터 쏟아지던 편견과 배척을 이겨내고, 독창적인 예술가이자 당당한 엄마로 살아가게 된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준다."그 래퍼가 23일(오늘) 방한했다.



'살아있는 비너스'라고 불리는 "앨리슨 래퍼는 양쪽 팔이 모두 없고 다리는 무릎 아래가 없이 넓적다리뼈에 발이 달려 있는 형상의, 이른바 '해표지증'이라는 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얼마나 살 수 있을까를 모두가 의심했던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자신의 벗은 몸에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조각 같은 영상을 표현하는 구족화가이자 사진작가로 데뷔하게 된다." 그러니까 책은 그냥 한 예술가의 자서전이다.



그녀는 "이혼한 뒤인 1999년에 임신을 했고, 아이 역시 같은 장애를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출산을 반대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생명을 지키기로 결정하고, 건강한 남자아기를 낳았다. 임신 9개월의 앨리슨 래퍼의 모습은, 트라팔가 광장에 역사적 영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조각상의 모델이 되었다. 모성 및 장애에 대한 편견에 도전하는 앨리슨의 예술작품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2005년 세계 여성 성취상'과 대영제국국민훈장(MBE)이 그녀에게 수여되었다."

한마디로 대단하다. 더불어 드는 생각은 장애나 콤플렉스가 없는 미래 '생명복제시대'의 인간이란 '위대함'의 조건을 박탈당한 '평균인'이 아닐까란 것이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초상은' 완벽하지만 위대하지는 않은' 인간들의 군집은 아닐까?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나비와 전사>(휴머니스트, 2006). 중앙일보의 리뷰는 "거침없는 '역사 비빔' 스페셜"이란 타이틀을 뽑았는데, 이 '비빔(퓨전)'에 있어서 저자의 솜씨는 단연 독보적이란 걸 우리는 이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 2003)에서 확인한 바 있다. 저자가 다시 3년만에 내놓은 책은 "시공간, 인간, 성(性), 몸, 앎, 글쓰기 등을 주제로 2001년부터 5년여간 써온, 한국 근대성의 기원과 다양한 양상들을 살피고 탈근대의 미래를 논의하는 11개의 글을 실었다."

"책 전반에서 지은이가 시도하는 접근법은 근대, 18세기, 탈근대 이렇게 세 가지 시간대를 서로 충돌시키고 넘나드는 것이다. 즉 근대의 담론을 이질적인 다른 두 시간대의 담론에 '밀어넣음'으로써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 "푸코가 고고학적 탐사를 무기로 근대성의 지축을 뒤흔든 전사라면, 연암은 그 위를 사뿐히 날아올라 종횡으로 누비는 나비다!" '나비와 전사'라는 제목은 이 접근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거기에) 다산, 이옥, 옹녀와 변강쇠, 대장금, 그리고 허준, 노신, 달라이라마 등 18세기와 탈근대 담론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지니 소문난 잔치상으로 충분하다. 챙겨먹는 건 독자의 몫이다.

 

 

 

 

다소 예외적이지만, 여섯번째 책도 꼽아본다. 존 릭던의 <1905 아인슈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랜덤하우스중앙, 2006). 1905년, 러시아에서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나고, 우리에겐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해에 아인슈타인은 무려 5편의 세기적인 논문들을 써냈는데, 그 논문들 이야기란다. "당시 물리학의 상황배경을 설명하고, 아인슈타인이 이들 논문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발전시키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보여주어, 아인슈타인 특유의 사고방식과 독창성을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에필로그에서는 1905년 이후 물리학계의 흐름을 다루어 아인슈타인이 미친 영향을 실감하게 해준다." 과학사 산책으로 더없이 유익해 보인다.

게다가 책은 "수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본문 중간에 삽화를 삽입하여 일반인들도 큰 어려움 없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아인슈타인의 인간적인 면보다는 학자로서의 면모에 집중하고, 상대성이론 이외에 아인슈타인이 남긴 과학적 업적들을 대거 다루어, 우리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아인슈타인의 진면목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 여타의 '아인슈타인'까지 같이 챙겨서 읽어볼 만하다. 

 

 

 

 

그리고 일곱번째 책은 러시아 특파원으로 활동한 일본인 기자 에가시라 히로시의 <푸틴의 제국>(달과소, 2006). 몇년 전에 나온 <푸틴 자서전>(문학사상사, 2001)과 함께 현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그의 '제국'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자료가 될 듯하여 꼽아둔다. 나로선 불가피한 '전공관련서' 범주에 들어가기도 하고(얼마나 새로운 내용이 들어가 있을지는 궁금하기도 하고 미지수이기도 하다).

소개를 약간 옮겨오면, "지은이는 일본 특파원 기자로 활약한 경험을 바탕으로 푸틴 정권의 권력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미디어와 의회를 장악함은 물론, 소련 해체 이후 엄청난 부를 획득한 신흥 재벌(올리카키)들이 차지한 자원사업을 다시 국영화하여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푸틴 정권의 활동상이 자세히 그려진다. 이와 함께 러시아와 체첸 간 분쟁이 푸틴 정권에게 의미하는 바는 어떤 것인지, 남북정당회담에서 드러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놓지 않으려는 러시아의 야심 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상대적으로 우리의 주변 4강 중에서 미, 일, 중에 대한 전문가들은 많다. 당신의 '희소가치'를 좀 살리기 위해서라면, '러시아'에 좀더 투자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 연구의 미답지들은 그 광활한 영토만큼이나 널려 있기에 5년만 공부하면, 자기분야의 국내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이 러시아이다. 당신에게 러시아를 권한다.

06. 0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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