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으로 나를 웃게 만든 책이 있어서 역시나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이주의 웃음'이 더 나을까?). F. L. 파울러의 <치킨의 50가지 그림자>(황금가지, 2016)다. 물론 베스트셀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패러디한 것인데, 덧붙여 소설의 형식을 빌린 '닭 전문 요리책'이란 점도 웃음을 유발한다. "이후 <베이컨의 50가지 그림자>, <케일의 50가지 그림자> 등 유사한 콘셉트의 도서가 다수 출간되었으나, 아직 이 책의 아성을 뛰어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푸드포르노의 진수를 보여준다나 뭐라나.

 

 

원서와 비교해보고 싶을 정도로 장이나 절 제목이 원작을 뺨친다. 3부 구성인데, 1부는 '순진한 영계'이고, 2부는 '산산이 조각나다', 그리고 3부의 제목은 '거침없이 막 나가는 치킨'이다. 1,2,3부의 목차가 이런 식이다.

담백한 바닐라 치킨/톡 불거진 체리 햇닭/엑스트라버진 가슴살/라르동을 곁들인 치킨/멈추지 마세요 치킨/사정없이 농락당한 치킨/맵싸한 닭/밧줄 묶기 첫걸음/홀리 몰 치킨/화끈하게 마사지한 치킨/알싸하게 매 맞은 치킨/완전히 튀겨진 치킨/크림처럼 매끄러운 치킨/칠리 가득 프리카세/유혹당한 햇닭/목욕하고 나온 그녀/코코뱅

 

달콤한 말에 뿌듯해진 가슴/빌어먹을 날개/꼬치에 꿰인 치킨/질투하는 치킨/펄펄 김이 나는 흰 가슴살/베이컨에 묶인 날개/꿀이 떨어지는 허벅지/치킨 스트립치즈/끈적끈적한 손가락/활짝 벌린 허벅지/세게 휘젓고 바싹 볶은 닭 허벅지살/다음 날 아침에 낱낱이 드러내다/버터를 가져와 가슴살/빨개진 두 볼/날 부드럽게 두들겨 줘요/내면의 녹색 여신 치킨샐러드/휘저어진 애간장/홍조 띤 그 부분

 

도발적인 치킨/순식간에 해치운 요리/꼿꼿이 일어선 치킨/스프레드 이글 치킨/안전 신호 치킨/손발을 묶여 돼지고기화된 치킨/새침한 크로켓/모습을 숨긴 치킨/밤새도록 나를 구워 주세요 치킨/뒷마당 맥주 캔 치킨/불길이 핥고 간 치킨/치킨 서브/섹시 슬라이더/꽃과 진심을 선사한 치킨/해피엔딩 치킨

아무려나 전국 치킨 점포의 필독서만 되더라도 상당한 판매고를 올리지 않을까 싶다. 닭 요리를 좋아하는 치킨 매니아들에게도 필독 아이템이겠고.

 

 

요리책 얘기가 나온 김에 '진짜 요리책' 내지 '특이한 요리책'도 골라본다. 윌리엄 시트웰의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에쎄, 2016)는 100가지 레시피로 정리한 음식문화의 연대기다.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음식의 발명 100가지를 흥미롭고 상세하게 들려주는 책". 헤더 안트 앤더슨의 <아침식사의 문화사>(니케북스, 2016)는 제목 그대로다. "아침식사가 왜.어떻게 탄생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즐겨 먹는 아침식사 메뉴가 어떻게 발전, 변화해 왔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패트릭 맥거번의 <술의 세계사>(글항아리, 2016)도 역시나 제목대로인 책. "알코올을 둘러싼 고고학적·화학적·예술적·문헌적 단서의 흔적들을 여행하듯 흥미롭게 탐구함으로써, 오랜 역사에서 인간이 어떻게 발효음료를 만들어냈고 또 이를 어떻게 즐겼는지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보통 주방이나 식당에는 책장을 두지 않지만 주방용 교양서가 있다면 바로 이런 책들이겠다. 단, <치킨의 50가지 그림자>는 따로 숨겨놓으셔야겠다...

 

16.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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