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의 소식지 '오늘의 도서관'(240호)에 실은 짧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청탁받은 분량이 5매였던 글이다. 몇 권의 후보 가운데 내가 고른 책은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지식채널, 2014)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년만에 개정판이 나왔군(출판사 이름만 지식채널에서 지식플러스로 바뀐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도서관(16년 3월호) 과학에서 다원주의를 옹호하다

 

‘생각하고 싶어하는 일반 대중과 학생들을 위한 과학철학 입문서’.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가 내세운 모토다. 저자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간 것은 그가 세계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학자이기 때문이다. 장하석 교수는 케임브리지대학 과학사-과학철학부 석좌교수로 재직중이고, <온도계의 철학>으로 과학철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책은 EBS에서 기획한 강연에 바탕에 두고 있는데, 저자의 이름값만으로도 충분히 들어볼 만한 강연이고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일반 대중과 학생들을 위한 입문서라고 해서 ‘단순한 개론서’ 정도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학자로서 과학에 대한 견해와 독특한 시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철학 개론서에 해당하는 책은 이미 여럿 나와 있기 때문에 이 책만의 특징이라고 할 저자의 독특한 시각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그가 보는 과학철학의 핵심은 다원주의다. 그에 따르면 과학에는 절대적인 지식도 없고 절대적인 방법도 없다. 얼핏 저명한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의 상대주의적 과학관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쿤이 패러다임들 간의 교체와 이동을 통해서 과학사를 설명하는 반면, 저자는 경쟁관계의 패러다임이 공존할 수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이 공존하는 게 더 좋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패러다임 이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 간의 공존과 상호작용이라는 것이다.


과학에서 다원주의가 갖는 여러 이점을 저자는 관용의 이득과 상호작용의 이득이란 관점에서  설명하고 그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 반박한다. 이러한 입장은 비단 과학철학 분야에서만 의의를 갖는 게 아니다. 저자는 과학적 다원주의를 사회적 다원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 일원주의 사회, 곧 독재사회가 나쁜 것처럼 과학에서도 독재와 권위주의는 나쁘다. 그런 연속성과 공통점에 비추어 과학탐구의 의의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다. “시민들이 진정한 독립적 과학탐구를 배우는 것은 권위와 이데올로기에 맹종을 막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입니다.”

 

16. 03. 01.

 

 

P.S. 과학철학 개론서는 여럿 나와 있다고 적었는데, 고전적인 책은 물론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까치, 2013)다. 쿤의 과학관과 관련한 논쟁을 엮은 책으로 <현대과학철학 논쟁>(아르케, 2002)도 이 분야의 필독서(였다). 국내 저자들의 책으론 <과학철학>(창비, 2011)이 학계의 성과를 집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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