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책과삶(186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지난 연말에서 첫 완역본이 나온 루 월리스의 <벤허>(시공사, 2015)에 대한 글을 청탁받고 쓴 것이다. 오늘 신문을 받아 같은 지면에 실린 편집자의 글을 읽어보니 <벤허>가 다시 영화로 만들어져 올 8월에 개봉 예정이라고 하며 그에 맞추어 작가의 손녀가 손질한 개정판도 나온다고 한다. 공들인 번역본이 미리 나오게 된 배경이구나 싶다. 아무튼 서평 때문에 영화 <벤허>도 이번에 다시 보았다. 8월에 개봉된다는 새 영화도 기대된다.  

 

 

책과삶(16년 3월호)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공식의 '복수'

 

사실부터 고백하자면 <벤허>에 대한 나의 기억은 윌리엄 와일러의 영화 속 몇 장면이 전부다. 아마도 어릴 적에 TV에서 보았던 듯한데, 벤허가 갤리선의 노예로 노를 젓는 모습과 전차 경주에서 필사적인 경합 끝에 승리를 거두는 장면만이 <벤허>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어떻게 해서 노예가 되었는지, 그리고 전차 경주가 끝난 뒤에는 어떤 이야기가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백지상태였던 것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벤허’가 주인공의 이름이라는 것도 특별히 의식하지 못했다. 하물며 루 월리스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라는 사실을 어찌 알았으랴.


하지만 <벤허: 그리스도 이야기>의 완역본이 지난해 말에야 나왔으니 나를 포함한 우리의 ‘상식적’ 무지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설사 영화의 원작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간에는 읽어볼 여건이 안 되었다는 얘기니까. 여하튼 <벤허>는 아주 뒤늦게 우리에게 왔다. 그것도 미더운 번역자의 손을 거쳐서 탄탄한 모양새의 책으로. 더 나아가 ‘우리가 읽기 전에는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말하자면, <벤허>는 이제야 비로소 실재하는 책이 되었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말이다.


<벤허>를 손에 들면서 먼저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먼저 1880년작이라는 사실. 즉 19세기 소설이다. 아카데미상 기록을 갈아치운 1959년 영화의 원작이라고 해서 막연히 그맘때 나온 작품이겠거니 했지만 뜻밖에도 상당히 오래 전 작품이었다. 게다가 ‘미국 대중소설의 금자탑’으로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6)가 출간되기 전까지 미국문학사상 최대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니 한 번 더 놀란 표정을 지어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리스도 이야기’가 부제라는 사실.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을 벤허의 이야기와 병치하고 있는 영화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놀랄 일은 아닌데, 여하튼 나처럼 막연히 ‘벤허 이야기’로만 생각해온 독자에게는 부제가 특이하게 여겨진다.


제목과 부제를 유의해서 읽자면, 작가 월리스는 벤허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회적으로 그리스도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 게 아닌가 싶다(교황 레오13세에게 축성까지 받은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그리스도교 소설’로 꼽힌다). 그럼에도 사실 그리스도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장면은 상당히 적은 편이다. 비록 소설의 시작과 끝이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대부분의 분량은 예루살렘의 유대인 귀족 유다 벤허의 인생 이야기에 할애돼 있다. 당연하게도 이 두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이 작품 읽기의 관건이다. 자연스레 벤허와 그리스도가 만나는 장면이 주목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데, 작가는 단 두 장면만을 배치해놓았다.


먼저 부유한 귀족 벤허가 신임 총독의 거리 행군을 구경하다가 지붕의 기왓장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체포돼 이송되던 중 나사렛 마을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장면. 갈증에 고통 받던 그에게 비슷한 나이의 한 젊은이가 우물에서 길어온 물병을 건넨다. “유다는 물병에 입을 대고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그동안 젊은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유다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다와 예수는 그렇게 처음 만나고 헤어진다. 벤허가 예수를 다시 만나는 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목전에 둔 때이다. 벤허는 막대기에 매단 해면을 포도주에 축여서 이 ‘나사렛 사람’의 입술에 갖다 댄다. 예수는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사이에 놓여야 하는 것은 그의 행적과 말씀이다. 그것을 <벤허>는 특이하게도 벤허의 복수 이야기로 대체했다(복수란 주제는 영화 <벤허>에서 주연을 맡은 찰턴 헤스턴의 눈빛과 함께 더 강렬하게 그려진다). 로마인 메살라의 친구이기도 했지만 벤허는 억울한 죄명을 뒤집어쓰고 재산을 모두 강탈당한 뒤 갤리선의 노예가 된다.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지하 감옥에 갇힌다. 복수의 일념으로 그는 지옥 같은 생활을 버텨내고 우연한 기회에 로마인 사령관의 목숨을 구한 덕분에 그의 양자가 된다. 절치부심하던 그가 전차 경기에서 원수인 메살라의 전차를 박살내 마침내 복수하는 것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면서 소설에서도 핵심 장면이다(영화에서와 달리 소설에서 교묘한 술수를 쓰는 것은 메살라가 아니라 벤허다). 가족과의 재회와 그리스도교 귀의는 이러한 복수 이후에 이루어진다.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난 뒤 벤허는 자신의 많은 재산을 교회에 기부하고 지하 교회의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 “그리스도교는 그 넓은 지하 교회에서 로마 황제의 지상 권력을 능가하는 영원한 힘을 이루어냈다.”는 것이 소설의 대미다. 그리스도의 가장 큰 가르침은 사랑이지만, <벤허>는 그 사랑의 전제조건으로 복수를 배치했다. 월리스가 발명해낸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공식이자 <벤허>의 성공 비결처럼 여겨진다. 

 

16. 0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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