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에 대한 페이퍼를 쓰다가 머리도 식힐 겸 '제네바의 시민' 루소(1712-1778)에 대한 창고 정리를 한다(이른바 단순작업). 홀름스텐의 <루소>(한길사, 1997)를 읽고 메모해 놓은 것인데, (이것도 기억이라면) 꽤 오래 전에 쓴 것이다. 이미지들을 몇 개 붙여놓는다.

홀름스텐의 책은 내가 읽은 로로로 시리즈 몇 권의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다. 마치 츠바이크의 전기물들을 읽는 듯하다. 원저는 1972년에 발간된 것으로 저자인 홀름스텐은 방송기자와 저술가로서 활동하면서, 몇 권의 역사서와 10권의 전기소설을 집필한 걸로 되어 있다. 이런 류의 작가층이 두터워야 그 나라의 문화가 윤기 있어진다. 로로로 시리즈 중에서 <볼테르>도 저술한 걸로 되어 있는데 출간을 기대해 본다.

재미있게 읽은 부분들을 간추린다. 가령 디드로와의 비교(*디드로의 책들은 다섯 권 정도 검색된다. 이미지로 띄운 책들은 <수녀>와 함께 내가 갖고 있는 책). 동년배였던 두 사람(디드로가 루소보다 한 살 아래)은 기묘한 개인적인 운명, 혹은 비운 때문에 더욱 의기투합했다. 두 사람은 모두 지성적인 야심을 기대할 수 없는 소녀들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루소의 설명: "내가 테레즈를 갖고 있듯이 그는 아네트란 여자를 갖고 있었다. 이것이 또한 우리의 처지의 비슷한 점이었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었다. 즉, 나의 테레즈가 적어도 아네트만큼은 예쁜 데다가 성격이 부드럽고 상냥하며, 고상한 한 남자를 곁에 묶어두게 만들어진 반면, 그의 아네트는 게으르고 본성이 천박하여 다른 사람들 눈에 제대로 받지 못한 교육을 보충해줄 만한 어떠한 장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결혼했다. 아주 잘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녀에게 결혼을 약속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었던 나는 그의 행동을 따르려고 서두르지 않았다."(83쪽)

 

 

 

 

실제로 루소는 1745년 뤽상부르 공원 근처의 생 캉탱 여관에서 처음 만난 소녀와 꼬박 23년의 동거 끝에 결혼한다. 그 사이 다섯의 아이들은 고아원에 갖다 버린 일은 유명하다. 루소의 고백적인 기록들은 이미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 유형을 예고하고 있다. 루소와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루소와 톨스토이(톨스토이에게 영향을 미친 철학자는 칸트, 루소, 그리고 쇼펜하우어이다)에 관해서 글을 써볼 수 있을까?

<인간불평등 기원론>의 제2부 도입부: "인류사상 최초로 한 조각의 땅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말할 생각이 든 사람, 그리고 단순하게도 그러는 그를 믿는 사람들을 발견한 사람이 바로 시민사회를 처음 세운 사람이다. 만약 누군가 나서서 말뚝을 뽑아버리고 이웃들에게 '조심해라 사기꾼을 믿어서는 안된다. 당신들은 땅의 산물은 모두의 것이지만 땅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을 때 몰락하게 된다'라고 외쳤더라면 인류는 그 많은 범죄와 전쟁과 살인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105쪽)

이 대목은 "인간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의 톨스토이와 비교해 봄직하다. 이 대목에 대한 '지주' 볼테르의 평: "이것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약탈당하는 것을 보고싶어하는 거지의 철학이다." 루소의 편을 들고 싶은 걸 보면 나에겐 거지근성이 있나보다.

내용중에서 루소가 연극예술을 반대한 점도 흥미로운데, 제네바에 극장을 건립하는 문제로 볼테르와 의견이 갈린(그는 디드로와 달랑베르와도 사이가 나빠진다) 그가 볼테르에게 보낸 편지. "당신은 당신이 찾은 피난처 제네바를 타락시켰습니다. 바로 당신이 제게 고향에 머무는 것을 못견디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저는 당신 때문에 이국 땅에서 죽어야 합니다. 당신이 제 조국에서 인간이 바랄 수 있는 모든 영예를 차지하는 동안, 저는 죽은 짐승을 버리는 구덩이에 던져질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해 저는 당신을 증오합니다."(146-7쪽)

윌 듀란트 부부는 이들의 시대에 관한 저작(<루소와 혁명>, 1967)에서 이렇게 요약한다: "볼테르와 루소의 긴 싸움은 계몽주의의 면전에서 벌어진 가장 유감스러운, 치욕적인 사건 중의 하나였다. 볼테르는 장 자크와 똑같이 민감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평소 자신의 재능을 격정에 의해 왜곡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감정과 본능에 호소하는 루소의 이론에서 반란에서 시작해 종교로 끝나는 개인주의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비합리주의를 예감했다. 볼테르는 파리와 그 도시의 유쾌함과 사치의 아들이었다. 반면 루소는 제네바의 아들로 자신이 당했던 신분차별과 자신이 누릴 수 없었던 사치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 찬 음울하고 청교도적인 시민이었다. 볼테르는 문명의 죄는 문명이 가져온 안락함과 예술에 의해 상쇄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루소는 도처에서 불쾌함을 보았고 거의 모든 것을 비관했다. 개혁론자들은 볼테르에게 귀를 기울였고, 혁명가들은 루소에게 귀를 기울였다."(191쪽, 강조는 나의 것)

 

 

 

 

끝으로 루소에 대한 아놀드 하우저의 평가: "계몽주의 '철학자들'도 때때로 민중의 편에 서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항상 단순한 대변자 내지 보호자로 나섰을 뿐이었다. 루소는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말한 최초의 인물이요, 민중을 위해 말하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해 말하는 것이기도 했던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반역을 고취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반역자였다. 그의 선구자들이 개량주의자, 사회개혁가, 박애주의자였다면 그는 최초의 진정한 혁명가라고 하겠다."(221쪽)

루소의 저작 중 대부분이 번역돼 있다. <신 엘로이즈> 정도가 빠져 있을까? 연구서 중에서는 카시러의 책을 읽고 싶다(<루소, 칸트, 괴테>, 서광사, 1996). 듀란트의 책과 함께 장 스타로벵스키의 <루소: 투명성과 장애물>, 그리고 토도로프의 <덧없는 행복>도 읽고 싶다(스타로벵스키의 '주제비평'에 대해서는 김현의 연구서 <제네바학파의 비평>(혹은 <제강의 꿈>)을 참조할 수 있다. <덧없는 행복>(한국문화사)은 번역돼 있다. 러시아에는 스타로벵스키의 책들이 근간 <작용과 반작용>을 포함해 여러 권 번역돼 있다. 이 걸출한 문학연구자의 저작들이 국내에도 소개되었으면 싶다). 전문적인 연구서적은 물론 다 섭렵할 수 없다. 폴 드 만의 <독서의 알레고리> 2부가 루소에게 할애되어 있는데, 이것도 언젠가는 읽어야겠다. 자자손손...

06. 0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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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루소 사상의 이해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7-21 20:03 
    오늘 눈에 띈 한권의 책은 박호성의 <루소 사상의 이해>(인간사랑, 2009). 루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편역자가 루소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논문들을 엮고 옮긴 책이다. 김용민 교수의 <루소의 정치철학>(인간사랑, 2004) 이후에 드물게 나온 연구서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론 4부에 실린 몇 편의 논문을 기회가 되면 우선적으로 읽어보고 싶다.      제1부 루소 사상의 시
 
 
2006-01-24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1-24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저도 영역본은 갖고 있는데 읽을 짬을 내는 건 쉽지 않네요. (여성)전공자들은 대개 루소를 아주 싫어하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