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밀러의 <위험한 독서의 해>(책세상, 2015)를 읽으며, 역시 독서록 종류의 책인 만큼 안 읽은 책들을 눈여겨 보게 되는데, 초반에 눈에 밟히는 책은 로버트 트레슬의 <누더기 바지 박애주의자>다. 저자가 부코스키의 <우체국>,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선언>과 같이 묶고 있는 책인데, 그 중에서도 압권은 <누더기 바지 박애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분량으로 그 두 권의 두 배 이상이다. 무삭제판은 600쪽이 넘어가니 말이다(옥스포드판으로는 649쪽이다. 해설이 포함돼 그럴 수 있다).

 

 

<우체국>도 노동을 다룬 소설이지만 "<누더기 바지 박애주의자>에 담긴 투쟁과 절망에 비하면 <우체국>은 거의 휴가 여행 광고물 같았다"라는 게 밀러의 평. 로버트 트레슬은 로버트 누넌(1870-1911)의 필명인데, 그가 쓴 '역사상 최초의 노동계급 소설'이 <누더기 바지 박애주의자>라고(러시아문학에 견주자면 고리키의 <어머니> 같은 급?).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고 신랄하면서도 진솔한 묘사로 노동계급의 삶을 그려 보였다"는 격찬이 이어진다.

 

그래서 번역되면 좋겠다 싶어 '세계의 책' 카테고리에서 다루려고 했더니, 앗, 뜻밖에도 번역된 적이 있다. 안정효 역의 <누더기 바지 박애주의자들>(실천문학사, 1988). 다만 분량이 388쪽인 걸로 보아 무삭제판으로 옮긴 게 아니고 저자 사후에 책이 나오는 과정에서 편집자가 상당 분량을 축약했는데, 그 축약판을 옮긴 게 아닌가 싶다. 친필 원고는 25만 단어 분량인데, 1914년에 나온 초판이 10만 단어를 쳐낸, 그러니까 15만 단어 분량이었고, 4년 뒤 1918년에 나온 재판은 거기서 6만 단어를 더 쳐낸 9만 단어 분량. 원래 원고의 1/3로 줄어든 셈. 1955년에야 무삭제판이 대중에게 소개될 수 있었다 한다(초판이나 재판의 편집자들로선 책을 더 많이 읽히게끔 하려는 고육지책이었다. 특히 노동자 대중에게).

 

600쪽 넘는 분량의 영어 원서가 388쪽의 한국어판으로 옮겨질 수는 없으므로 축약판의 번역이거나 역자의 재량에 따른 또다른 축약본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그래도 귀한 자료다 싶어서 구해놓기로 했다. 이왕이면 무삭제판의 새번역본이 나오면 좋겠다. 그보다 더 두꺼운 대작들도 곧잘 번역되는 게 출판계니까. 그러길 기대해본다...

 

15. 0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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