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곤증으로 잠시 헤매다 특이한 '요리책' 두 권 얘기를 꺼내기로 한다. 전문 교정자 김정선의 <동사의 맛>(유유, 2015)과 메리 앤 코즈의 <모던 아트 쿡북>(디자인하우스, 2015)이 두 권의 책이다. 이미 알라딘에서는 '블로거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는 <동사의 맛>은 한국어 동사의 세계를 깔끔하게 총정리해주는 책. 겸하여 남자와 여자의 아련한 이야기도 같이 적어두고 있어서, '소설 같은 사전'이자, 장르를 따로 적자면 '사전소설'의 효시도 될 만한 책이다(따로 생각나는 책이 없어서 '효시'라고 적었다). 그게 어떤 것인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일단 맛을 한번 보시라고 할 밖에. 미리 맛보고서 내가 쓴 추천사는 이렇다.

 

저자가 오랫동안 해 온 외주 교정 일을 쉰다고 했을 때, 건강을 염려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남의 글을 읽고 다듬는 일에 그만큼 밝은 눈과 노련한 솜씨를 가진 이가 드물었기에.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가 '이제 루비콘 강을 건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 동사에 대한 이토록 맛깔나면서도 사려 깊은 책이라니! 뛰어난 교정자를 잃은 대신에 빼어난 '한국어 셰프'를 얻었다. 한국어에 어디 '동사의 맛'만 있겠는가. 바라건대 한국어의 모든 맛을 다시 일깨워주기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저자는 알라딘에서 '후와'님으로 활동했고, 출판계에서는 '이모부'로 통했다. '임호부'란 필명으로 낸 독서일기 <이모부의 서재>(산과글, 2013)가 바로 저자의 책이다(개인적으로는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내면서 인연을 갖게 되었다). 독서 에세이로나 한국어 요리책으로나, 어느 분야이건 저자를 좀더 자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특이하다는 점에서는 <모던 아트 쿡북>도 마찬가지다. '고흐의 수프부터 피카소의 디저트까지'가 부제인데, "예술과 음식의 오묘한 교집합을 기본으로 한 독특한 콘셉트의 ‘예술 인문 요리책’이다."

현대 예술가의 음식을 소재로 한 정물화, 요리 재료와 음식과 관련된 글들, 그들이 먹은 음식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 음식들의 실제 레시피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담았다. 그림, 시, 에세이, 소설, 악보, 레시피가 어우러진 이 책은 ‘현대 예술가들의 음식에 대한 모든 것’을 엮은 책이라 할 만하다.

페이퍼의 제목으로 갖다 쓴 '읽는 즐거움과 요리하는 즐거움'은 책의 서문에 나온 문구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읽는 짤막한 글 한 편은 소소하지만 큰 기쁨을 준다. 그 글은 물론 조리법에 관한 것일 수도 있지만 부엌에 관련된 다른 글인 경우도 많다. 다른 종류의 글들은 특정 조리법과 연관이 되어 있든 그렇지 안든 간에 요리할 재료에 특별한 질감과 풍미를 더해주는 것 같다. 이를테면 산문의 한 단락이나 시 한 줄이 식탁을 비로소 완벽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처럼. 그것이 이상적인 경우라면 그 생생한 예들을 이 책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읽는 즐거움과 요리하는 즐거움을 한데 섞어 보자는 것이 이 책의 애초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요리책, 어마 롬바우어의 <요리의 즐거움>에서 얻은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찾아보니,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롬바우어의 책은 영어권 요리책의 '전설'인 듯하다. 75주년 기념판을 비롯해 여러 종의 책이 나와 있다. 요리 관련 프로그램들도 꽤 인기를 끌고 있는 터이라 우리의 요리책도 더 다양하게, 혹은 '레벨업'돼 나옴직하다. 그래, 무얼 먹으면서 책을 읽기 위해서라도 요리가 빠지면 안 되겠다...

 

15. 0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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