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인물과 사상>(4월호)에 신기주 기자와 나눈 인터뷰가 실렸다. 표지 인터뷰인지라 조금 멋쩍게 됐는데, '인물과 사상' 공식 블로그(http://blog.naver.com/personnidea/220309466890)에서 소개글과 '인터뷰 맛보기'를 옮겨놓는다(참고로 '한림대 연구교수'란 직함이 수정되지 않고 계속 나가고 있는데, 3년 전에 종료된 직함이다).

 

 

이현우는 본명보다 로쟈라는 필명으로 유명하다. 그의 서평은 저공비행으로 출판계에 날아든 축복과도 같았다. 출판계는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출판사들은 무수히 많은 책을 쏟아내고 있었고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누군가 애타게 서로를 찾아 헤매는 독자와 책을 만나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는 블로그를 통해 스스로 출판계의 사서를 자임하고 나섰다.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지식을 아낌없이 대중과 공유했다. 그는 인문학적 조예와 깔끔한 문체와 방대한 독서량으로 서평이라는 장르를 개척해냈다. 독자들은 그의 서평을 신뢰했다. 출판사는 그의 서평에 의지했다. 그가 책에 대해 쓴 글들은 결국 책이 되었다. 그는 독서 공동체라는 표현을 쓴다. 책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독서 공동체다. 어쩌면 독서 공동체야말로 지식 사회의 기초단위다. 그가 치열하게 서평 활동을 하는 이유는 독서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해서다. 책을 읽는 인구가 줄어들면서 독서 공동체가 붕괴 위기에 놓였다. 독서 공동체 없이 사회에 대해 성찰적 토론을 벌이는 건 불가능하다. 독서 공동체를 지키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그는 오늘도 독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을 읽는다.


책은 읽고 씹고 소화시켜라

로쟈 이현우는 ‘책을 읽을 운명’이다. 당사주(唐四柱)에 도포 자락을 입은 선비가 책을 읽는 그림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독서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행복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가 말하는 행복은 지속적이고, 결코 줄어들지 않고, 계속해서 인생에 어떤 의미를 준다. 소장 도서만 1만 5,000권쯤 된다. 그는 책을 많이 읽는 것만큼 서평도 많이 쓴다. 그가 알라딘 서재에 서평을 올리면, 평균 ‘10권’ 정도 판매가 올라간다고 한다. 많게는 200권 정도 팔린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서평은 공신력이 있고, 독자 대중에게 큰 영향을 준다. 그는 책의 세계를 지식의 바다라고 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바다의 항해 지도가 들어 있음직하다. 그는 자신을 도서관의 사서에 비유한다. 사서가 도서관의 책을 모조리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세상이라고 하는 도서관에서 사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책이 없다면 사유가 가능할까? 현실 세계의 경험이 책을 읽는 데 영향을 주고, 책에서 읽은 경험이 다시 현실 세계를 읽는 틀이 되는 순환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책이 없다면 세상에 대한 사고나 성찰이 없다. 성찰 없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 결국 성찰 없는 삶은 사회를 병들게 하고, 급기야 어리석은 대중을 이용하는 무리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무식이 집단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한 개인의 삶을 무력화시키면서 세상을 변화시킬 힘까지도 상실하게 한다. 책을 통해서만 성찰과 검토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책은 삶과 따로 분리될 수 없다.

 

인터뷰 맛보기​

이현우 : 정확하게는 2만 권 조금 안될 것 같네요. 1만 5,000권쯤 될까요.

신기주 : 웬만한 도서관 수준인데요. 그걸 전부 어디에 두나요?

이현우 : 결국 책 때문에 집을 장만했어요. 작년에 이사했는데, 대출받아서 아예 집을 사버렸어요. 더는 이사를 할 수가 없어서요.

 

신기주 : 어떤 책을 읽을지는 어떻게 선택하세요? 아니면 책한테 선택되는 걸까요?

이현우 : 두 가지가 다 있는 것 같아요. 책을 읽는 순간 책도 우리를 붙잡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정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신기주 : 책과의 만남은 늘 운명적이라는 말씀이네요. 책 한 권 때문에 인생이 바뀐다는 말 믿으세요?

이현우 : 그럼요 일본의 어느 소설가가 돌이킬 수 없는 독서 경험에 대해 말한 적이 있어요. 책은 그냥 읽는 게 있고 읽어버리는 게 있는데, 읽어버리면 그건 돌이킬 수 없는 독서 경험이 된다는 겁니다. 그 책을 읽은 다음에는 다시는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거죠.

 

신기주 : 요즘은 속독이 더 중요해진 시대잖아요. 심지어 요즘은 발췌독이 유행이죠. 워낙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니까요. 중요한 부분만 쓱쓱 살펴보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는 거죠.

이현우 : 저는 어떤 독서법이든 안 읽는 것보다는 낫다는 주의인데요. 변속이 가능한 독서가 최고죠. 필요에 따라서요. 예전에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속독을 잘하는 아이들이 나와서 묘기 대행진을 벌이는 걸 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시집을 읽을 수는 없잖아요. 속독의 한계는 명백해요. 나중엔 기계가 대신해줄 능력이죠. 오히려 인간한테는 점점 더 느리게 읽는 능력이 중요해질 겁니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책의 진짜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 일본의 어느 학교에서는 슬로 리딩을 가르치고 있다더군요. 중학교 3년 동안 책 한 권을 읽는 거죠.

신기주 : 3년 동안 한 권이요? 부모들이 난리가 났겠는데요?

이현우 : 그런데 그 친구들이 다들 좋은 대학에 가요. 교육 성과가 좋아요. 독서는 산책과 비슷해요. 그렇게 하나하나 길을 짚어갈 줄 알게 되면, 나중엔 빨리 갈 수도 있어요. 슬로 리딩을 할 줄 알면 속독도 할 줄 알아요. 이런 생각이 더 널리 확산되어야 할 텐데요.

 

(...)

 

15. 03. 24.

 

 

P.S. 인터뷰를 담당한 신기주 기자는 '에스콰이어'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몇 권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장기보수시대>(마티, 2015), <사라진 실패>(인물과사상사, 2013), <우리는 왜?>(북노마드, 2012)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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